독일 영화 '포화 속의 우정(Unsere Mütter, unsere Väter, 2013)' 엔딩에 독일과 점령지에서 나치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며,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을 집단수용소에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히틀러의 나치 비밀국가경찰 게슈타포(Gestapo, Geheime Staatspolizei) 장교 출신이 미 점령군 협력자로 변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험' 때문이다. 히틀러와 나치의 만행에 저항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인 그 경험 말이다.
일본이 패망하고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들도 일본군이나 일경 밑에서 독립지사들을 집아다가 고문하고 죽인 일제의 앞잡이 조선인들을 미군정의 협력자로 선택했다. 바로 그 '경험' 때문이다. 친일민족반역자들에게는 정말 천금같은 기회였다.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자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언제든지 또 배반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군정은 알고 있었다. 미군정은 바로 이 점을 이용했다.
일본 제국에 이어 미군정의 협력자가 됨으로써 친일민족반역자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독립군을 토벌하고, 독립지사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인 자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하고 장관, 국회의원도 하고 국군과 경찰의 요직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종군위안부'는 일본군 성노예에 대해 일본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다. 우리의 누이들이 언제 자발적으로 일본군을 위안해주러 갔던가? 바로 일제의 앞잡이 친일민족반역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또는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선택의 자유가 없었기에 성노예가 정확한 표현이다.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는 자발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일본의 논리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군 성노예들을 위안부라 칭하는 것은 우리의 누이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B규약 인권위원회)는 2014년 일본에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을 쓰도록 권고했다. 유엔 인권위원회 위원 1명도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은 종군위안부란 명칭을 고수하고 있다. 성노예를 강제로 동원한 사실을 부정하기 위한 속셈이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분명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우리 정부나 신문 방송에서는 왜 아직도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영국의 공영방송 BBC만도 못한 정부, 언론이다. 도대체 종군위안부가 뭔가! 이 말이 무슨 뜻이나 알고 쓰는가!
3월 1일 충주 관아공원에서 일본군 성노예 소녀상 제막식이 열린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소녀상을 세우더라도 용어만큼은 정확하게 사용하도록 하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갔던 우리의 누이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2019.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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