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자유한국당(자유당) 김진태, 이종명 의원 공동주최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 발표자로 나선 사람들이 5.18 광주민중항쟁을 비방하고 모독한 사실이 밝혀져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구나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5.18 광주민중항쟁을 폄훼하고 모독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을 넘어 헌정 파괴와 국기 문란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서 발언하는 지만원 씨
자유당의 5.18 공청회 발표자로 나선 극우 성향의 지만원 씨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또다시 주장하고 나섰다. 오래전부터 5.18 광주민중항쟁을 모독해온 그는 당시 계엄군의 유혈진압 참상을 찍은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북괴가 찍은 사진을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세계에 방송하게 한 간첩'이라고 어처구니없는 거짓 누명을 씌운 바 있다.
지만원 씨는 또 1981년 광주 현지에서 5.18 광주민중항쟁의 전말을 생생하게 기록한 '광주백서'(어젠다 출판사)의 저자 소준섭 씨에 대해서도 '소준섭이 쓴 책이 아니라 북한 작가가 대한민국을 모략하기 위해 써준 책이다.'라면서 '북한 통일전선부가 작성해준 내용들을 소준섭의 이름으로 발간한 것이다.'라는 등 허위 사실을 주장한 바 있다.
자유당 이종명 의원은 '1980년 광주 폭동이 10년, 20년 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됐다, 이제 40년이 됐는데 다시 뒤집을 때'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이라고 규정한 이종명 의원에 이어 같은 자유당 김순례 의원은 5.18 광주민중항쟁 유공자를 '종북좌파가 만든 괴물집단', 지만원 씨는 '북한군 개입, 전두환은 영웅'이라고 발언했다. 심지어 '광주는 우리의 적이다.'라는 극언까지 나왔다. 자유당 의원들과 지만원 씨의 발언을 보면 공청회를 빙자한 5.18 광주민중항쟁 규탄대회나 마찬가지였다.
5.18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가 자행한 집단학살은 사법당국에 의해 이미 '헌정질서 파괴 범죄행위'로 단죄된 국가범죄다. 따라서 전, 노 신군부가 자행한 국가범죄를 부인하고,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해서 왜곡, 비방, 폄훼, 모독하는 행위는 단순한 명예훼손 차원을 넘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기를 문란케 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지만원 씨의 발언에 대해 북한군으로 지목된 광주시민들과 탈북자들은 잇달아 그를 사법당국에 고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자유당 의원들과 지만원 씨가 지속적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모독하는 것은 처벌이 솜방망이처럼 가볍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독일이었다면 자유당 의원들과 지만원 씨는 즉각 국민선동죄로 엄중한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히틀러(Adolf Hitler)와 나치(Nazi)가 자행한 유태인 집단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는 독일만이 아니라 전세계 인류의 비극이었다. 그럼에도 독일의 네오나치(Neo-Nazi)를 비롯한 극우파들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고 왜곡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독일의 집단지성은 형법 제130조에 국민선동죄 처벌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고 왜곡하는 행위를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국민선동죄 처벌 조항에는 히틀러와 나치의 폭력적, 자의적 지배를 승인하고 찬양하며 정당화함으로써 피해자의 존엄을 침해하는 방법으로 공공의 평온을 교란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5.18 광주민중항쟁을 부정하고 비방하거나 왜곡하고 날조하는 범죄 행위들이 현행법상의 미비와 허점으로 명예훼손죄를 거의 피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왜곡과 비방 행위에 대해서는 현재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을 적용해서 처벌하는 것이 전부다. 그것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며, 불기소 처분도 많다.
우리나라도 이번 기회에 5.18 광주민중항쟁과 관련된 허위 정보를 날조하거나 부정, 비방, 왜곡, 폄훼, 모독하는 등 공공의 평온을 교란한 자들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의 적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왜곡, 비방, 폄훼, 모독 행위는 이제 더 이상 개인적 법익인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법익인 공공질서에 대한 범죄라는 차원에서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12일 '5.18 역사 왜곡과 망언을 처벌할 법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면서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 날조, 비방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여야 4당이 공동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홍 원내대표는 '5.18 민주화운동이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정의도 특별법에 담을 것'이라며 '한국당이 개최한 공청회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자행되는 범죄적 망언도 처벌항목에 포함시켜 형법 등 일반 법률보다 강력히 처벌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허위조작정보대책특위(위원장 박광온)는 성명서를 통해 국회가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반복되고 있는 5.18 관련 망언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위는 최근 자유당의 5.18 망언이 '일시적이고 우연한 것이 아니라 자유한국당의 반복적이고,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헌정 파괴 시도'라고 비판하고, 이어 '보안사령부를 발판으로 정권을 찬탈했던 신군부는 1988년 5공 청문회를 앞두고, 시민을 최초의 발포자로 만들어 광주민주화 운동을 광주폭동으로 조작했다.'고 지적하면서 '미 국무부 비밀문서에 따르면, 5·18 북한군 침투설은 내란범 전두환 씨가 최초로 유포한 허위조작정보'라고 강조했다. 특위는 또 '이러한 전두환 신군부의 반헌법적, 반역사적 행태는 당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자유한국당 세력에게 그대로 내재되어 왔고, 이것이 이번에 망언으로 표출된 것'이라며, 자유당의 망언은 '실수가 아니라 본심'이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이번만큼은 '5.18 망언'에 대해 절대로 유감표명 정도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바른미래당 권은희 정책위의장은 12일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이 민주국가임을 알리는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었는데, 국회 안에서 그런 파렴치한 망언을 하도록 놔둔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심각한 행위'라면서 '국회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 수치스럽다. 국회 차원에서 가장 강력한 중징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권 의장은 또 '해당 의원들은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국민 앞에 철저하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자유한국당도 변명으로 사태를 키우지 말고 해당 의원들을 강력히 징계하고 당 차원에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도 '자유한국당 황교안, 김진태 등 당권주자들은 지만원 씨의 주장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 의원은 '김진태 의원은 지만원 씨를 5.18의 최고 전문가라고 추켜세우면서 존경한다고 말해왔는데,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지만원 씨인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하고 '황교안 전 총리도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둥 아무런 내용이 없는 말만 하고 있는데, 지만원 씨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와 유성엽 최고위원을 비롯한 의원들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일제히 자유당 의원들의 5.18 망언을 규탄하며 자유당의 해산을 촉구했다. 민주평화당 광주시당도 성명을 내고 '자유한국당과 그 지도부는 소극적인 사과가 아닌 대국민 사과하라. 자유한국당과 그 지도부는 망언 국회의원들을 즉각 출당시키고 제 정당과 발 맞춰 국회의원 제명에 동참하라. 자유한국당과 그 지도부는 5·18민주화운동을 둘러싸고 있는 왜곡과 폄훼에 맞서 진상규명을 위해 진정성을 보이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1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이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 당론으로 5.18 망언 3인방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하고 국회의원 제명 즉 국회 추방을 목표키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정의당은 5.18 망언 주동자인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의 국회 추방뿐 아니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아울러 법의 단죄와 심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군 개입설을 멈추지 않는 지만원 씨를 포함해 이날 고소, 고발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정의당의 강은미 부대표, 신장식 사무총장, 장화동 광주시당위원장, 곽희성 당원은 자유당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과 지만원 씨를 5.18 광주민중항쟁을 폄훼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정의당 곽희성 당원은 과거 지만원 씨에 의해 북한군이라고 지목됐던 당사자이다. 정호진 대변인은 '곽 씨는 5.18 당시 20대 초반의 시민군이었다. 지만원 씨 등에 의해 북한군 광수 184로 지목된 당사자'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회에는 박광온 의원이 대표 발의한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밥안에서는 5.18 민중항쟁을 부정하고 비방하며, 왜곡, 날조하는 행위와 5.18 광주민중항쟁 관련 단체를 모욕, 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등 강력하게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입증된 명백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중대한 범죄 행위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명백하게 공공질서에 반하는 범죄 행위를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 5.18 광주민중항쟁 특별법을 개정해서 허위 사실 유포죄 처벌 조항을 신설하던가 독일처럼 국민선동죄를 신설하여 우리 사회 전체의 집단지성에 대한 도전을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2019.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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