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삼성 X파일과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의 추억

林 山 2019. 7. 20. 14:17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과의 인연은 민주노동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필자는 민주노동당 충주시지구당(준) 위원장으로 있었다. 노 전 의원 부부는 필자를 격려하기 위해 충주의 일터를 방문하기도 했다. 사석에서 만나면 노 전의원은 언제나 유쾌하고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는 노 전의원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에 대한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삼성 x파일 일명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x파일 사건을 만천하에 폭로한 업적 하나만으로도 불멸의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그는 유사 이래 국민들 편에서 가장 열심히 의정 활동을 했던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노 전의원의 죽음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있어서 크나큰 손실이었다. 


노회찬 저 '노회찬과 삼성 X파일'


삼성 X파일 사건은 2005년 7월 MBC의 이상호 기자가 안기부 미림(美林)팀의 도청 내용을 담은 90여분짜리 테이프를 입수하여 삼성그룹과 정치권, 검찰 사이의 검은 관계를 폭로한 사건이다. 안기부 미림팀의 뿌리는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의 동향 파악을 위해 정보 수집팀을 운영했다. 미림이라는 팀명은 고급 술집 마담 등을 협조자(속칭 망원)로 활용한 데서 비롯됐다. 내부적으로는 여론조사팀이 공식 명칭이었다.


삼성 X파일에는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이 삼성그룹 부회장 이학수에게 신라호텔에서 1997년 대선 당시 특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금 제공을 공모하고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을 보고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사건을 접한 국민들은 한국 정치권의 고질적인 정경유착, 문민정부를 자칭했던 김영삼 정권의 불법 도청,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일상적으로 행해진 광범위한 불법 도청,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의 타락상, 삼성그룹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식 수사, 국민의 알권리 침해, 언론의 불공정 보도, 사법부의 불공정한 재판 등에 분노했다. 


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1년 9월 공운영을 팀장으로 한 안기부 정보수집팀은 도청장비를 이용해서 첩보수집에 들어갔다.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92년 12월 보안 문제 등으로 인해 안기부 정보수집팀의 활동은 잠시 중단되었다.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인 1994년 6월 2차 안기부 정보수집팀은 미림팀으로 재건돼 1997년 11월까지 활동했다. 검찰은 2차 미림팀이 활동한 3년 5개월 동안 하루 1개, 일주일에 5개씩 모두 1000여 개의 불법 도청 테이프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했다. 미림팀의 도청 대상은 여야 최고위 정치인, 언론사주, 청와대 수석, 국무총리, 보안사령관, 참모총장 등이 망라되었다.


MBC는 사건을 보도하면서 도청 녹취록인 이른바 삼성 X파일에 나오는 전, 현직 검찰 고위 간부들의 이름을 이니셜로 처리하여 비실명으로 보도했다. 이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실명으로 공개하기엔 부담스러웠고,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 X-파일의 원본을 입수했다. 삼성 X-파일의 존재는 노회찬 전 의원 외에 다른 의원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다른 의원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노회찬 전 의원만은 용감하게도 자신의 블로그 등에 삼성 X-파일에 나오는 실명을 공개함으로써 사건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노 전 의원이 공개한 검사들의 실명은 당시 최경원 법무부 차관(후 법무부 장관), 김두희 성균관대 이사(후 법무부 장관), 홍석조 법무부 검찰국장(후 광주지검장, 홍석현의 동생), 김상희 대검수사기획관(후 법무부차관), 안강민 서울지검장(후 대검중수부장), 김진환 서울지검 2차장 검사(후 서울지검장), 한부환 서울고검 차장검사(후 법무부 차관) 등 7명이었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이들 7명은 이른바 '떡값 검사(떡검)'로 불렸다. 떡검들은 삼성 X파일 폭로 이후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당시 검찰은 삼성 X파일에 중대한 범죄 정황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공소시효가 완료되었다는 점과 증거자료 자체가 불법 도청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부인하면서 수사를 하지 않았다. 이후 신문, 방송 등 언론과 참여연대의 고발로 검찰은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검찰은 2005년 12월 14일 삼성 회장 이건희, 부회장 이학수,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 등을 횡령혐의로 처벌하기 어렵고 뇌물공여혐의도 공소시효 만료로 무혐의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건희, 이학수, 홍석현에게 면죄부를 준 검찰은 삼성 X파일 내용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와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삼성 X-파일의 원본에 나오는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전 의원도 불구속 기소되었다. 


도청 테이프 녹취록을 공개한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주심 민영일 대법관)을 선고받았다. 김연광 편집장도 징역 6개월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검사들 중 7명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국회의원은 2011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2013년 2월 의원직 상실이 결정된 뒤 기자회견을 연 노회찬 전 정의당 공동대표(출처 오마이뉴스)


도청을 통해 부도덕한 권력형 비리를 밝혀냈지만 도청과 폭로한 사람만 처벌되고 비리는 묻혀버린 초원복집 사건의 재판이었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12월 11일 오전 7시 당시 법무부장관 김기춘, 부산직할시장 김영환, 부산지방경찰청장 박일용, 안기부 부산지부장 이규삼, 부산직할시 교육감 우명수,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정경식, 부산상공회의소장 박남수 등 정부 기관장들이 복어 요리 전문점 ‘초원복국’에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 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폭로된 죄질이 매우 무거운 사건이다. 이들은 민주자유당(현 자유한국당) 후보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 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를 모의한 중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이었다.


법을 앞장서서 준수해야 할 정부기관장들이 초원복집에 비밀리에 모여 부정선거를 모의한 사실은 정주영을 후보로 낸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에 의해 도청되어 언론에 폭로되었다. 아파트 반값 공약 등으로 보수층의 표를 잠식하던 정주영 후보 측은 민자당의 치부를 폭로하기 위해 전직 안기부 직원을 시켜 도청 장치를 몰래 숨겨서 녹음을 한 것이었다. 김기춘, 김영환, 박일용, 이규삼, 우명수, 정경식, 박남수 등은 비밀회동에서 '우리가 남이가',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와 같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  


불법 부정선거 증거가 명확했음에도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했으며, 신문 방송 등 주류 언론은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켰다. 언론의 불공정 보도는 경상도 지역의 지역감정을 더욱 자극하여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후보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김영삼 후보에 대한 영남 지지층이 결집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김영삼은 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결국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2013년 2월 14일 대법원(주심 박보영 대법관)에서 원심을 확정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하지만 노 전 의원은 2016년 4월 13일 실시된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3년만에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다. 유권자들은 노 전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한 부패한 권력,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과 사법부, 부도덕한 정경유착 기업을 준엄하게 심판한 것이었다.


이상은 2005년부터 2013년까지의 부끄럽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2019.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