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양노원에서 만난 사랑

林 山 2019. 6. 20. 11:22

해병대 출신 70대 중반의 예비역 중령 할아버지와 10년 연상의 조선인민군 간호장교 출신 탈북자 할머니가 함께 아침 일찍 내원했다. 인사를 건네면서 언뜻 보니 부부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했다. 할머니가 먼저 치료실로 들어기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만나 소울 메이트가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할아버지는 강화도에서 해병대 대대장으로 근무할 때 부하 장교 3명이 월북하는 바람에 지휘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은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해군 장교였던 할아버지는 당시 해병대 사령관이었던 외삼촌과 외숙모의 권유로 해병으로 병과를 바꿨단다.


그렇게 해병대에서 군복을 벗고 사회에 나와 경험도 없이 양돈사업을 하다가 돼지파동으로 도산하고, 이어 벌인 양계사업도 가격폭락으로 도산하는 등 고생도 많이 했는데, 마지막으로 식용 개 사육이 성공해서 그동안의 실패를 만회했단다. 그러는 사이에 부인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삶의 의욕을 잃은 할아버지는 매일 소주 됫병짜리 한 병을 비우면서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한 딸 부부가 양견사업을 물려받으면서 3년 전쯤 양노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13살 때 조모를 따라서 북한의 친척집에 다니러 갔다가 삼팔선에 가로막혀 남한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평양에서 눌러 살아야만 했던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대학도 나오고 간호장교가 되어 한국전쟁 때는 김일성 주석을 지근 거리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북한에 있을 당시 김일성 주석을 단독 면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도 했다. 그 정도 위치에 있었으면 북한에서도 특권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탈북을 결심했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거긴 너무 못살고 굶어죽는 사람도 많고 사람이 살 데가 못돼요'라고 말했다.


마침내 할머니는 탈북을 결심하고 혈혈단신 압록강을 건너 심양까지 간 뒤 남한에서 온 남동생과 함께 그리운 고향땅을 밟았다. 나이가 많아지고 홀로 생활하기가 어려워진 할머니는 충주에 있는 양로원으로 들어가 거기서 젊은 할아버지를 만났다고 한다. 두 노인은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두 분이 소울 메이트로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두 분의 사연을 듣고 나니 문득 오승근이 부른 트로트 명곡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사랑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2019.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