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92nd Academy Awards, 오스카)에서 101년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봉준호(Bong Joon Ho) 감독의 '기생충(Parasite)'이 작품상(Best Picture)과 감독상(Best Director), 국제장편영화상(Best International Feature), 각본상(Best Original Screenplay)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기생충'이 한국영화사는 물론 세계영화사도 다시 쓰는 순간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포스터
작품상을 수상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기생충' 제작사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여진 것 같다. 아카데미 위원의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CP) 자격으로 무대에 오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기생충'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많은 분들이 저희의 꿈을 만들기 위해 지원해줬다"고 인사했다.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비영어권 영화가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가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것은 세계영화사에서 델버트 만 감독의 '마티'(1955) 이후 두 번째다.
봉준호 감독은 타이완 출신 이안(李安, Lee Ang) 감독에 이어 아시아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감독상을 받았다. 리안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6)과 '라이프 오브 파이'(2013)로 두 차례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각본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한진원 작가
봉준호 감독은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오늘 밤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다. 내일 아침까지 말이다.(I am ready to drink tonight until next morning)"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봉 감독은 또 "좀 전에 국제영화상을 받고 오늘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정말 감사하다. 어렸을 때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다. 영화 공부를 할 때 책에서 읽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의 말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마틴 영화를 보면서 공부를 해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는데 상을 받을 줄 몰랐다"면서 "제 영화를 아직 미국 관객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하셨던 쿠엔틴 타란티노 형님도 계신데 너무 사랑하고 감사하다. 쿠엔틴 '아이 러브 유'"라고 외쳤다.
봉 감독은 이어 "같이 후보에 오른 토드 필립스나 샘 멘데스 다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감독님이다"라고 말한 뒤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5등분 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하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트로피를 5등분하겠다는 것은 후보에 오른 감독들과 수상의 영예를 함께 나누겠다는 뜻이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세계 각국에서 온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은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 자막을 1인치의 장벽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때도 때늦은 소감이었다. 이미 장벽은 부서지고 있다. 유튜브, 스트리밍 서비스, 소셜미디어로 세계가 모두 연결되고 있다. 이제는 외국어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는 게 사건으로 취급되지도 않을 것 같다. 모든 게 자연스러워질 순간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곽신애 대표는 “한국 장편영화가 아카데미 후보가 된 것도 처음이라 한 개 부문만 받아도 기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4개 부문, 트로피 개수로는 6개를 받았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를 상상하지도 못하겠다”고 말했다. 곽 대표는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수 있을까, 상상해본 적은 있다.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작품상을 받는다는 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에 변화를 주는 자극이라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생충'은 편집상과 미술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편집상은 '포드 V 페라리'의 앤드루 버클런드와 마이클 매커스커가 수상했다. 미술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게 돌아갔다.
남우주연상 수상자 호아킨 피닉스
여우주연상 수상자 러네이 젤위거
남우주연상은 '조커'에서 조커역을 맡아 열연한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가 받았다. 피닉스는 골든글로브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도 수상한 바 있다. 여우주연상은 '주디'에서 주디 갈란드 역을 맡은 러네이 젤위거(Renee Kathleen Zellweger)가 수상했다. 젤위거는 생애 처음 오스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남우조연상 수상자 브래드 피트
남우조연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클리프 부스 역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Brad Pitt)가 수상했다. 여우조연상은 '결혼 이야기'에서 노라 팬쇼 역을 맡아 열연한 로라 던(Laura Dern)이 받았다.
여우조연상 수상자 로라 던
각색상은 '조조 래빗'의 타이카 와이티티가 수상했고,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은 '토이 스토리 4'의 조시 쿨리, 조나스 리베라, 마크 닐슨이 받았다.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상은 '아메리칸 팩토리'의 스티븐 보그나, 줄리아 라이카트, 제프 라이카트가 수상했다.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상은 'Learning to Skateboard in a Warzone'의 캐럴 다이싱어, 엘레나 안드레이체바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단편 영화상은 '더 네이버스 윈도우'의 마셜 커리가 받았고,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은 '헤어 러브'의 매슈 A. 체리와 캐런 루퍼트 톨리버가 수상했다.
음악상은 '조커'의 음악감독 힐뒤르 그뷔드나도티르, 주제가상은 '로켓맨'의 '(I'm Gonna) Love Me Again'(엘튼 존, 버니 토핀)에게 돌아갔다. 음향편집상은 '포드 V 페라리', 음향효과상은 '1917', 촬영상은 '1917'의 로저 디킨스, 분장상은 '밤쉘', 의상상은 '작은 아씨들'의 재클린 더런, 시각효과상은 '1917'이 각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2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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