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5일 광복절 75주년을 맞아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 소재 최응성고가(崔應聖古家, 최함월고택,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7호)에 들렀다. 이 고가는 조선 숙종 때 문장가였던 함월(涵月) 최응성(崔應聖, 1655∼1727)의 생가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살미면 무릉리에 있었는데, 1983년 충주댐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복원하였다. 고가에는 안채와 사랑채인 염선재(念善齋), 사당인 무릉사(武陵祠), 함월정(涵月亭)이라는 정자가 남아 있다. 고가의 주인이 고등학교 동창생이고, 또 야생화를 많이 기르고 있어 종종 들르는 곳이다.
고가에는 때마침 해오라비난초와 함께 붉은 보라색의 예쁜 사프란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소나기가 한차례 내린 뒤라 물기를 흠뻑 머금은 사프란 꽃이 한층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름부터 이국적인 사프란의 꽃말은 '후회없는 청춘, 환희, 지나간 행복'이다. 사프란은 또 9월 21일의 탄생화이기도 하다.

사프란은 백합목 붓꽃과 크로커스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크로커스 사티부스 엘(Crocus sativus L.)이다. 크로커스 종류는 봄에 피는 것과 가을에 피는 것이 있는데, 가을에 피는 것을 사프란이라 부른다. 네덜란드어명은 사프란(Saffraan), 영어명은 새프런(Saffron)이다, 사프란이란 이름은 '구약성서(舊約聖書)'의 <아가서(雅歌書)> 4장 14절에 나오는 향기가 좋은 풀들 가운데에서 따온 것이다. 사프란의 중국어명은 짱홍화(藏红花) 또는 판홍화(蕃红花), 지푸란(洎夫藍)이다. 특히 티베트에서 나는 사프란을 짱홍화라고 한다. 일본어명은 사프란(サフラン, 洎夫藍)이다. 사프란을 번홍화(蕃紅花)라고도 한다.
사프란은 지중해 연안, 소아시아, 이란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부터 이란과 카슈미르에서 재배된 사프란은 몽골족의 침입 때 중국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사프란 주요 재배지는 오늘날 터키 남부 해안의 킬리키아(Cilicia) 지방이었다. 961년경에는 스페인에서 아랍인들이 사프란을 재배했다. 사프란은 10세기에 쓰여진 영국 의서(English leechbook, healing manual)에도 등장한다. 사프란은 그뒤 유럽의 서부에서 사라졌다가 십자군들에 의해 다시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16세기 중국 밍(明)나라 때 리싀젠(李時珍)이 편찬한 유명한 약학서 '뻰차오강무(本草綱目)'에도 사프란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사프란은 전 세계적으로 약 80종이 분포한다. 사프란의 주요 재배지는 현재 스페인, 프랑스, 아펜니노 산맥 저지대의 이탈리아, 시실리, 이란, 카슈미르 등이다. 한국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전국 각지에서 재배한다.

사프란의 뿌리는 구근이다. 납작한 구형인 구근은 직경이 3cm 내외이고 가을에 발아한다. 줄기는 15cm 정도까지 자란다. 잎은 모여나기하고 가느다란 선형이다. 꽃핀 후 충분히 성장하여 월동하고 이듬해 초여름에 시들어 버린다.
꽃은 엷은 자색으로 8~11월에 피며 짧은 잎 사이에서 여러 송이가 벌어져 나온다. 흰색 꽃도 있다. 깔때기모양의 꽃은 판통이 매우 길고 가늘며, 윗부분이 6개로 갈라져서 비스듬히 퍼진다. 화경은 짧고 잎과 더불어 밑부분이 엽초로 싸여 있다. 화개편은 6개이다. 수술은 6개이고 곧게 서며 밖으로 향한 꽃밥이 있다. 암술대는 길고 상부에서 3갈래로 갈라지며 선황적색이다. 암술머리의 끝은 뾰족하고 항금색이며 다육질이다. 꽃은 피지만 종자는 맺히지 않는다.
향신료 사프란은 암술대의 암술머리를 말린 것이다. 사프란은 한때 금보다 비쌌으며,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 가운데 하나다. 향신료로 쓰기 위해서는 손으로 각 꽃에서 3개의 암술머리를 뽑은 뒤 쟁반에 펼쳐 숯불에 말린다. 사프란 1파운드(약 450g)을 얻으려면 7만 5,000송이의 꽃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사프란은 10만 배로 희석해도 노란색을 띨 정도로 색소가 짙다.
사프란은 음식 맛이나 색을 내는 향신료로 쓰기도 하고, 염료로도 귀중하게 쓰인다. 지중해와 동양의 쌀이나 생선요리, 영국식이나 스칸디나비아식, 발칸식 빵요리 등에 따뜻한 느낌의 노란색을 내고 맛을 첨가하는 데 쓰인다. 또한 부야베이(bouillabaisse) 요리의 중요한 재료이기도 하다. 아이스크림, 버터, 치즈, 비스켓 등에 독특한 냄새와 색깔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고대 인도에서는 사프란의 암술머리를 증류하여 황금색의 수용성 직물염료를 얻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열반에 든 후 그의 제자들은 사프란으로 가사의 물을 들였다. 몇몇 나라에서도 사프란 염료를 왕가 복식의 염색에 사용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집회장이나 궁정, 극장, 목욕탕 등에 사프란 향수를 뿌렸다. 특히 그리스의 고급 창녀 계층인 히티어리(hetaerae)들도 사프란 향수를 썼다. 황제 네로가 로마로 들어갈 때 로마 시내의 거리에는 사프란 꽃이 뿌려졌다.
사프란은 꽃이 아름다워서 관상용으로 정원에 많이 심는다. 분화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향신료를 얻기 위해서 또는 약용으로 심기도 한다. 사프란의 주성분은 피크로크로신(picrocrocin)이고, 크로신(crocin)이 색깔을 띠게 한다. 정유(精油)는 0.5~1% 함유되어 있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따 즙을 짜내어 약으로 쓰거나 암술대 윗부분을 잘라 말려 약으로 쓴다.

사프란의 꽃 말린 것을 본초명 번홍화(蕃紅花), 암술대의 암술머리를 말린 것을 장홍화(藏紅花), 꽃을 따서 주두를 적출하여 불에 쬐어 건조한 것을 건홍화(乾紅花), 재가공하기 위해 기름으로 광택을 낸 것을 습홍화(濕紅花)라고 한다. 건홍화가 품질이 좋다. 그늘의 건조한 곳에 두고 밀폐보존한다.
건홍화는 활혈거어(活血祛瘀), 산울개결(散鬱開結)의 효능이 있어 우울증, 흉막비민, 토혈, 상한, 발광, 공포황홀(恐怖恍惚), 무월경, 산후어혈(産後瘀血)에 의한 복통, 타박에 의한 종통(腫痛) 등을 치료한다. 달여서 복용하거나 술에 담가 복용한다.
'향신료백과'에는 사프란에 대해 '맛은 달고 성질은 평(平)하다. 혈 운행을 활발히 하여 어혈(瘀血)을 없앤다. 혈열을 식히고 해독한다. 막힌 것을 풀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진정시킨다. 통경작용이 있다. 갱년기장애 개선에 도움이 된다. 기억장애 개선에 도움이 된다. 가슴이 답답하고 잘 놀라는 증상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사프란은 대한민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한의사들은 서프란을 거의 쓰지 않는다.
2020. 11. 4.
'야생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뚝갈 '야성미(野性美), 생명력(生命力)' (0) | 2020.11.09 |
---|---|
구절초(九節草) '어머니의 사랑, 가을 여인, 순수(純粹)' (1) | 2020.11.06 |
해오라비난초 (0) | 2020.11.04 |
벌개미취 '너를 잊지 않으리' (0) | 2020.11.03 |
겹삼잎국화(키다리노랑꽃) (0) | 2020.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