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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무궁화'비판(48) 끝없이 조작하고 날조하다(미술과 도자기 그리고 유물) - 조현래

林 山 2021. 1. 30. 13:42

때아닌 무궁화(無窮花)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무궁화는 현재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이며, 나라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이기도 하다. 대통령 휘장(徽章)부터 국회의원 배지, 법원 휘장, 경찰관과 교도관의 계급장 등 나라의 거의 모든 상징은 무궁화이다. 

 

하지만 강효백은 자신의 저서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이런 무궁화의 위상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배척한다. 무궁화가 우리 고서(古書)에서 거의 ‘피어본 적이 없는’ 꽃이며 오히려 ‘일본의 꽃’이라고 주장한다. 강효백의 주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어엎는 것이어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조현래(필명)는 강효백의 주장에 대해 친일파 또는 친일 잔재의 척결이라는 과잉 목적의식이 현실과 실제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그는 박정희 독재정권이 무궁화를 권위주의와 국가의 상징으로 과도하게 선전한 것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강효백만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1956년 당시 일간지에 화훼연구가 조동화와 식물학자 이민재가 나라꽃으로서 무궁화의 부적격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요즘도 사회 일각에서 애국가와 국화를 다시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애국가는 작곡자가 친일파이고, 가사도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국화도 무궁화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조현래-강효백 두 사람의 논쟁이 국민들로 하여금 무궁화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林 山>

<사진1> 무궁화(경기도 안산)

​ ['두 얼굴의 무궁화'에 대한 비판(48)] 끝없이 조작하고 날조하다(미술과 도자기 그리고 유물).

 

 

[두 얼굴의 무궁화] 나치 정권의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한번 말한 거짓말을 부정하지만, 두 번 말하면 의심하게 되고, 세 번 말하면 이내 그것을 믿게 된다.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무궁화는 124년간 누적된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무궁화나무 자체)의 배합으로 만들어진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른 바 '갑툭튀' 나라꽃은 아닐까? 그 답을 이땅의 '괴벨스'들에게 듣고 싶다​(p.78~p.79).


 

 

[두 얼굴의 무궁화] 미술에서도 한국의 무궁화는 구한말 '갑툭튀'지만 일본의 무궁화는 '터줏대감' 겸 '오타쿠(御宅)'이다. <야후 저팬>에 무궁화(木槿) '일본화(日本畵)를 치면 사진만 35만 100장이 나온다. '무궁화 골동품' 2만 8,300장. '무궁화 문화재' 11만장의 사진이 나온다.(p.79)


 

 

[두 얼굴의 무궁화] 현대 미술품은 말할 것도 없고 20세기 이전 일본의 이전 일본이 무궁화 유명 회화 서예 작품이 수는 200점이 넘는다. 모든 서예작품에 '槿'자를 반드시 넣기로 유명한 서예가부터 무궁화 그림만 그리는 현대 전위 화가까지 가히 일본의 무궁화 터줏대감 오타구(御宅)의 세상이다. 위 4점의 사진들이 대표적인 예이다.(p.79)


 

《fact check(1)》 <야후 저팬>을 검색하면?


▶ <야후 저팬>에서 '木槿'과 '日本画'를 검색하면?

 

<사진2> <야후 저팬>에서 '木槿'(목근)과 '日本画'(일본화)를 검색한 상단 화면

<사진3> <야후 저팬>에서 '木槿'(목근)과 '日本画'(일본화)를 검색한 하단 화면

-『두 얼굴의 무궁화』가 말한 바처럼, <야후 저팬>(https://www.yahoo.co.jp)에서 '木槿'과 '日本画'를 검색하면 사진(画像)만 35만100장이 정말로 나올까?

- <야후 저팬>은 사진(画像)으로 검색된 갯수를 나타내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위 사진1 참조)

​- 따라서 <야후 저팬>에서 '木槿'과 '日本画'를 검색한 사진 갯수가 어느 정도를 알려면 사진(画像)만 35만100장인지를 일일이 세어야 할 것이므로 검증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 그럴 염려가 없으니 실제로 한번 검색을 해 보시라. 1,000개의 사진이 되기도 전에 <사진3>의 화면이 뜨고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타면서 사진은 더 이상 검색되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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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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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저팬>에서 '木槿'과 '日本画'를 검색하여 볼 수 있는 사진은 채 1,000장이 되지 못하며, 그나마도 앞의 몇 십 장의 사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미술(繪畵)이 아닌 실제 무궁화 사진이거나 일본에서 그린 무궁화가 아닌 다른 미술(繪畵) 또는 무궁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진도 상당수를 차지한다(야후 저팬의 검색 기능이 그리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 <야후 저팬>에서 '木槿'과 '骨董品'를 검색하면? 

​- 위와 동일한 방식으로 <야후 저팬>에서 '木槿'(목근)과 '骨董品'(골동품)를 검색하여 보시라.

- 검색되는 사진은 2만 8,3000장은 커녕 몇 백 장 되지 않으며, 그나마 의미있는 골동품류는 보이지도 않는다.

 

▶ <야후 저팬>에서 '木槿'과 '文化財'를 검색하면? 

​- 위와 동일한 방식으로 <야후 저팬>에서 '木槿'(목근)과 '文化財'(문화재)를 검색하여 보시라.

- 검색되는 사진은 11만 장은 커녕 채 1,000장이 않으며, 그나마 무궁화와 직접 연관된 문화재를 찾기도 어렵다.

​- 검색하다 사진을 자세히 살피면,『두 얼굴의 무궁화』에 대한 보도 자료도 보인다. 헐~.

 

《fact check(2)》 4점 사진이 대표적인 예라고?

<사진4> 『두 얼굴의 무궁화』, p.79에서 대표적 예로 지칭된 사진들

어쨌든 일본의 미술(繪畵), 골동품 그리고 문화재에서 무궁화가 '터줏대감' 겸 '오타쿠'라고 주장하는 대표적 예가 위 4점의 사진이라고 하므로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 무궁화 회화; 카호타치의 작품?

- 館霞舫(다치카호우, ?~1853; 카호타치라고 읽지 않음)은 에도시대의 화가이다.

​-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는 니카타시(新潟市) 역사박물관(http://www.nchm.jp/)을 검색하고, <야후 저팬>에서 館霞舫(다치카호우)의 작품을 검색하였으나, 『두 얼굴의 무궁화』, p.79에 있는 그림을 찾을 수는 없었다.

- 그런데『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수십만 장의 사진이 나온다며 언급한 검색어를 넣어 사진(画像) 검색을 했더니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사진5> 「주식회사 Tazuart」의 누리집 중 카와시마 와타루(川嶋 涉)의 작품 소개

- 카와시마 와타루(川嶋涉)는 교토 출신으로 1966년에 태어났으므로 그가 그린 무궁화 그림은 최근작일 수밖에 없다.

- <야후 저팬>에서 그럴싸한 무궁화 그림 하나를 찾은 다음에 에도시대의 그리 유명하지 않은 화가를 찾아 그의 그림으로 둔갑시켜 놓은 것이 비밀이라면 비밀인 셈이다.

- 이쯤되면 완전히 날조(捏造) 아닌가?


▶ 에이메현(愛媛県)의 무궁화나무 화석?

 

-『두 얼굴의 무궁화』, p.78의 2번째 사진은 "무궁화나무 화석, 일본 시코쿠 북서부의 에이메현(愛媛県)의 현 천연기념물"이라고 해안가의 화석 사진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 일본에서 무궁화나무의 화석이 발견되었다면 목본성 Hibiscus속 식물의 원산지에 대해 식물학적 차원의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木槿'(목근), '化石'(화석)으로 열심히 검색했으나 내용을 발견할 수 없었다.

- 이것에도 어떤 거짓과 왜곡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검색어를 바꾸어 검색을 했더니 어렵지 않게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6> 일본 에이메현(​ 愛媛県) 에이메시(伊矛市)의 '扶桑木'(부상목)으로 부르는 나무 화석

 

 

1,800メートルにわたって第三紀層に属する粘土質岩が露出し、その中に扶桑木と呼ばれてきた埋れ木(遺体植物)の露頭が見られる。

 

その樹種は、メタセコイヤ、トガサワラ、オオバラモミ、ハンノキ、マンサクなどで、約100万年以前に繁茂した古代植物である。その他にカエデ類、ミズキ類、ヤナギ類などの葉や実、淡水産や汽水域産の貝殻の化石も発見され、学術上貴重なものである。 

 ○ 번역

 

1,800미터에 달하는 제3기층에 속하는 점토질암이 노출되어 그 안에 '扶桑木'(부상목)이라 불리워 온 매목(유체식물)*1)의 노두*2)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수종은 메타세콰이아, 미송나무 종류, 가문비나무 종류, 오리나무, 풍년화 등으로 약 100만년 이전에 무성하게 자란 고대식물입니다.그 밖에 단풍나무류, 물푸레나무류, 버드나무류 등의 잎과 열매, 민물과 기수*3)에서 나는 조개껍질 화석도 발견되어 학술적으로 귀중한 것입니다.

*1) 매목(埋木) : 오랫동안 흙이나 물속에 파묻혀서 화석(化石)과 같이 된 나무를 말하며, 유체식물(遺體植物)이라고도 한다.

*2) 노두(露頭) : 암석이나 지층이 토양이나 식생 등으로 덮여 있지 않고 직접 지표에 드러나 있는 곳을 말한다.

*3) 기수(汽水) :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염분이 적은 물로 강어귀에 있는 바닷물을 말한다.

 

  

- 에이메현(​愛媛県)의 에이메시(伊矛市)의 해안가에서 매목(埋木)이 발견되었는데 그 이름을 '扶桑木'(부상목)이라고 불러 왔다는 것이다,

- 扶桑(부상)은 무궁화가 아니라 하와이무궁화(Hibiscus rosa-sinensis)를 일컫는 말이며, 그나마 매목의 수종은 메타세콰이아 등 다양한 식물이었지만 하와이무궁화는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 扶桑(부상)은 동북아에서 (i) 신비한 땅, (ii) 신비한 나무, (iii) 하와이무궁화 또는 (iv) 일본을 지칭하는 말로 혼용되어 온 것인데, 이러한 경우에는 신비한 나무의 뜻으로 불리웠을 가능성이 높다.

- 무궁화와 관련하여 일본의 대표적 유물로 소개된 위 화석 사진은 일본 자료에 따르더라도, 고대식물 메타세콰이아 등이 포함된 매목으로 무궁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 결국 비밀은 무궁화와 扶桑(부상)이 같은 속(Hibiscus) 식물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이름으로만 부상목으로 불리우는 매목(埋木)을 '무궁화나무 화석'으로 둔갑시켜 놓은 것이었다. 

- 왜곡과 조작의 솜씨가 참으로 신묘하지 않은가?

▶ 에도시대의 도자기?

 

<사진7> 'Jchere Store'의 누리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현대식 도자기 사진

-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도자기로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여 그와 관련된 검색어로 수십 차례 검색을 했으나 도무지 해당 도자기의 사진을 찾을 수가 없었다.​

- 이것도 조작·날조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그가 검색어로 사용했을 법한​ 단어('木槿'과 '陶磁器')를 추적하여 검색을 했더니 바로 찾을 수 있었다.

- Jchere Store라는 이름의 누리집에서 가토죠수이(加藤如水, かとうじょすい; 1948~ )라는 작가가 만든 현대식 도자기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였다.

- 일본 작가가 만든 도자기를 일본 인터넷에서 판매하고 있었지만, 그 주된 고객이 중국인들인지 판매가격은 위안회 2106.47위안(元, 한화로 35만원 상당)로 표시하고 있었다.

- 가토죠수(加藤如水, かとうじょすい)는 1948년(소화 23년)에 교토에서 태어난 현대 공예작가로, <야후 저팬>에서 그의 이름으로 검색을 했더니 무수한 꽃을 도안으로 하여 만든 도자기 작품들이 검색되었는데, 무궁화 그림은 그가 도안한 수많은 꽃그림 중의 하나였다. 

​- 이게 일본을 대표하는 무궁화 관련 골동품이라는 말인가?

 

▶ 무궁화 전문화가?

<사진8> <야후 저팬>에서 柳瀬正夢(야나세 마사무)로 검색한 결과의 사진(画像)들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무궁화 전문 화가'로 소개된 야나세 마사무(柳瀬正夢, 1900~1945)를 검색하면, 『두 얼굴의 무궁화』에 소개된 '槿の画家'라고 표현된 미술 전시회 포스터를 제외하면, 무궁화 전문 화가는 커녕 무궁화의 '무'자도 찾을 수가 없었고, 언뜻 공산주의의 선전 문구 같은 만화들만 보일 뿐이었다.

- 야나세 마사무(柳瀬正夢)는 1900년에 에이메현(​愛媛県) 마츠야마시(松山市)에서 출생하여 미술가, 화가, 디자이너 및 무대미술가 등으로 활동했으나, 1920년에 요미우리 신문사에서 시사만화가로 활동한 이래 만화를 주로 그렸던 예술가이다. 1925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예연맹 결성에 참여하고, 1931년 일본 공산당원이 되는 등 그의 작품 대부분은 계급주의 운동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5년에 미군의 폭격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 15세의 나이에 미술전에서 입선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천재작가로 이름이 높아 그의 사후에도 수차례 그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두 얼굴의 무궁화』에 소개된 그림의 '槿の画家'라고 표현된 것은 무사시노미술대학의 미술자료도서관(武蔵野美術大学美術資料図書館)에서 개최된 그를 기리는 작품 전시회의 제목이고, 그림은 이 미술전시회 홍보를 위한 포스터이다[이에 대해서는  https://mauml.musabi.ac.jp/museum/events/12793/ 참조].

- 야나세 마사무(柳瀬正夢)는 생전에 무궁화를 소재하여 그린 그림이 없고, 2008년 전시회의 포스터에도 무궁화 그림이 없는 것을 고려할 때, 소개된 '槿の画家'(무궁화의 화가)라는 제목은 무궁화 전문화가라는 뜻이 아니라, '무궁화처럼 순간을 살다간 화가'라는 뜻에서 사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참고 일본은 무궁화에 대해 중국과 마찬가지로 순간 피었다가 지는 특성을 중요시한다. 당나라 시인인 백거이(白居易)의 '勤花一日榮'(근화일일영, 무궁화 꽃은 하루의 영화를 이룬다)이라는 시구는 이러한 관념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일본의 차모임(茶会)에서 꽂꽂이용 꽃(茶花)으로 무궁화를 사용하는 이유도 이러한 인식과 직접 관련된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옛부터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계속적 특징을 중요시하는 독특한 문화적 인식이 있어 왔으며, 그래서  무궁화에 대해 일본과 중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無窮花'(무궁화)라는 한자를 사용해 오기도 했다.    

 

​- 프로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다 요절한 화가(만화가)를 느닷없이 사후 기념 전시회의 포스터 문구 하나로 '무궁화 전문 화가'로 둔갑시키는 이 신묘한 재주와 기술은 참으로로 놀랍지 않은가?

 

 

《결론》 괴벨스 그리고 거짓선동

 

▶ 아무말 대잔치

 

-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믿게 된다” 거나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라는 말을 실제 나치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가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한다.

- 그러나『두 얼굴의 무궁화』가 행하는 신묘한 재주와 기술을 보고 있노라니 괴벨스가 했다고 오해된 문구가 정확히 그대로 떠오르지 아니한가? 누가 누구를 괴벨스라고 비난하는가?​

 

▶ 괴벨스와 거짓선동

 

​- “거짓말은 언젠가 무너지고, 그 위에서 진실이 승리할 것이다. 우리가 순수하고 흠집 하나 없이 모든 것 위에 서게 될 순간이 올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추구가 늘 그랬던 것처럼"[랄프 게오르크 로이드 저, 김태희 역,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교양인(2006), p.910 참조.
- 실제 괴벨스가 했다는 말의 내용을 살피면, 상대방은 거짓이고 자신은 순수하고 흠집 하나 없이 진실하다는 신념과 믿음은 오히려 스스로 행하는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정당화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 더불어 오늘날에도 '괴벨스' 같은 이들이 왜 발생하고 난동하는지 알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