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1월 25일 같은 당 비례대표 출신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당 대표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정의당 배복주 부대표는 '김종철 대표가 1월 15일 저녁 여의도에서 장혜영 의원과 당무 면담을 위해 식사 자리를 가진 뒤 나오는 길에서 성추행을 하였다'고 발표했다. 장 의원은 1월 18일 젠더인권 본부장인 배 부대표에게 해당 사건을 알렸고, 김 전 대표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김종철 전 대표와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동지적 관계였고, 더구나 지난 정의당 대표 선거 때에는 후원금까지 보내줬다. 그런 그였기에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들었다. '김종철은 절대로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과 '김종철 너마저!'라는 생각이었다. 어째든 김 전 대표는 이번 사건으로 수십 년 동안 진보 외길을 걸었던 소중한 경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진보 진영도 김종철이라는 또 한 사람의 소중한 자산을 잃었다.
김종철 사건은 한국 페미니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특정 페미니스트들은 또 한 부류의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명 꼴페미라 불리는 그런 특정 페미니스트들의 유별난 행태는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국 페미니즘 무엇이 문제인가? 자유기고가 홍기표는 '한국 페미니즘의 3대 위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 페미니즘의 문제점들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다음은 홍기표의 글 전문이다.<林 山>
한국 페미니즘의 3대 위기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가 피해자로서 확정되면 그 뒤로는 이 문제에 일체의 토를 달면 안된다는 노선(?)으로 페미니즘의 주요 무기(?)쯤 된다. 혹은 그쯤 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페미니즘을 자처하면서 스스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약화시키는 현상이 최근 계속되고 있다.
1. 페미니즘이 당파성을 만나다
박원순 사건에서 남인순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상 피해자 중심주의를 포기하는 행위였다. 서 모 검사의 경우에도 이 문제는 별 의견 표명을 안한다고 비판받았다.
물론 어느 동네에서 내 입을 열 것인지, 닫을 것인지는 개인의 자유다. 히지만, '피해자'를 당파성이라는 잣대로 바라보고 '선별'할 경우 피해자 중심주의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어느 정파 계열이냐에 따라 피해자 여부가 좌우된다고 생각되는 순간 동일사건, 동일잣대 기준에서 이탈하게 되어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당파성에 눈이 멀어서 피해자를 선별적으로 부정하면 결국 피해자 중심주의는 당원 중심주의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2. 페미니즘의 권력화 현상
김종철 사건의 경우 특이한 점이 있다. 대개의 경우 폭로는 구체성을 무기로 한다. 미투운동의 사례들 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종철 사건의 경우, 성추행이라고 자기들끼리 다 정리해 놓고도 사건의 내용이 뭔지 알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형법상 범죄 개념을 적용해 놓고 경찰에 고발하지 않은 이유도 생각해보면 사건의 내용을 대중적으로 공개하지 않기 위한 전략같다. '폭로'란 사실 적시를 통해서 대중의 자발적인 판단을 구하는 것이지, 권위가 부여된 개념을 던져주고 그냥 수용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자기사례를 공개해서 '다음 사례'에 대한 사회적 자제와 절제심을 요구하는 것이고, 이 부분에서 피해자의 '헌신'이 성립한다. 그런데 이 부분을 '묻지마' 식으로 처리하면 헌신과 '운동'의 의미도 사라진다.
구체성에 대한 대중적 전달 없이 어떤 개념상 권위만으로 모든 관점을 차단하고 문제를 재단하는 것은 전형적인 권력화 현상이기도하다. 이 경우 오히려 무용론이 확산되면서 장기적으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약화시킨다.
3. 민족주의의 포로가 된 페미니즘
윤미향 사건은 한국 페미니즘이 피해자 중심주의를 스스로 박살낸 대표적 사례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오랫동안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을 결합시켜 발달해왔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민족주의의 만남은 사실상 페미니즘을 민족주의의 하위에 배치한 것이다. 바보들은 이 두 가지의 결합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양자는 크게 충돌했다.
실제로도 이른바 위안부 운동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요구와 다른 짓도 많이 했고, 심지어는 여성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저질스런 욕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들은 알고 보니 그들의 사적 이익 추구와 관련이 있었다는 점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너무 근시안적이거나 정파적, 사적 이익 추구와의 관련성 속에서 페미니즘 스스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뭐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필자 - 홍기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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