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반도 하고도 충청좌도, 충청좌도 하고도 충주, 충주 하고도 교현동에 임 거시기라고 하는 의원이 문을 연 한의원이 있었다. 임 거시기 의원은 허리병을 잘 고친다고 읍내에 소문이 자자했다.
어느 날 근동에 사는 점예라는 이름을 가진 할매가 허리 좀 고쳐달라고 임 의원을 찾아왔다.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없는 살림에 자식들을 키우느라 막노동판에 뛰어들어 온갖 힘든 일을 하느라 허리가 망가졌다고 했다. 허리를 잘 본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니 부디 잘 좀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말투가 어딘가 좀 거시기해서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전라도 하고도 거시기 어디라고 했다. 충주에 와서 산 지가 30~40년 되었다는데 말투는 아직도 고향 남도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요즘은 여자라도 '점'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잘 안 짓는 시대다. 하지만, 옛날에는 몸 어딘가에 점이 있으면 점숙, 점순 점례, 점자, 점동, 점님, 점이 등 '점'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심심치 않게 지어 주었다. '점'자가 들어간 이름은 어딘가 모르게 천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점'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무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점예 할매도 소시적에 이름 때문에 동무들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누가 그런 이름을 지어 주었느냐고 묻자 할매는 점예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을 들려 주었다.
70여년 전 전라도 어느 시골 마을에 여자아기가 태어났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본 엄마와 아빠는 기겁을 했다. 아기의 목에는 손바닥만한 붉은색 점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아기에게 보기 흉한 점이 생긴 것이 자신들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부모들의 근심도 점점 늘어만 갔다. 아기가 자라서 세상물정을 알 때가 되면 점 때문에 낙심하지나 않을까? 엄마, 아빠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에 엄마와 아빠는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부부는 스님을 집으로 모시고 와 극진히 대접하고는 아기의 점을 보여 주었다. 스님은 아기의 점을 한동안 바라보고 나서 부부에게 "'점'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지어 주면 고민이 해결될 것이요" 하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 나서 스님은 "점이 사라지더라도 이름을 바꾸면 아니 되오. 이름을 바꾸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요."라고 이르고는 홀연히 다시 길을 떠났다.
부부는 스님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딸의 이름을 '점 점(點)'자에 '예도 례(禮)'자를 써서 점예라고 지어 주었다. 비록 몸에 점은 있지만 예의범절을 아는 숙녀로 자라나라는 부부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이름이었다.
이름의 신통력 때문이었을까? 스님의 도력 때문이었을까? 점예가 자라나면서 붉은색 점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거짓말처럼 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행히도 점예는 아직 어려서 점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였다. 부부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 년 뒤 점예는 학교에 들어갔다. 동무들은 점예의 이름을 가지고 놀려대기 시작했다. 동무들의 놀림감이 된 점예는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다. 이름을 바꿔 주지 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겠노라고 아빠와 엄마에게 떼를 썼다.
어느 날 아빠는 점예를 불러서 앞에 앉혀 놓고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름의 비밀을 비로소 알게 된 점예는 동무들이 놀려도 이제 더이상 창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점예라는 이름이 싫은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빠는 이름을 바꾸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스님의 말을 수시로 점예에게 상기시켰다. 이름을 바꿔달라고 할 때마다 아빠는 스님의 말을 점예에게 각인시키곤 했다. 아빠의 스님에 대한 믿음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혼기가 차자 점예는 부모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이러구러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점예라는 이름이 정이 들었는지 싫은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 것이었다.
2021. 9. 28.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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