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반하(半夏) '일편단심, 비밀'

林 山 2022. 6. 13. 11:21

독성(毒性)을 가졌지만 법제(法製)를 잘하면 천하명약(天下名藥)이 되는 식물이 있다. 바로 반하(半夏)다. 반하는 한의(韓醫) 임상가들이 빈번하게 처방하면서도 정작 그 기원 식물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반하는 시골의 밭둑이나 공터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한의사들이 워낙 많이 처방하는 한약재였기에 반하는 약재상들이 언제든지 비싼 값에 사들이는 환금식물(換金植物)이었다. 한때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반하를 캐서 파는 바람에 시골에서도 보기 어려운 식물이 되기도 했다.    

 

반하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처방에는 이진탕(二陳湯), 반하사심탕(半夏瀉心湯), 반하후박탕(半夏厚朴湯), 반하백출천마탕(半夏白朮天麻湯), 소청룡탕(小靑龍湯), 맥문동탕(麥門冬湯) 등이 있다. 이진탕은 담음(痰飮) 등 체내의 비정상적인 생리물질을 제거하는 대표적인 처방이다. 반하사심탕은 담음으로 인한 복부 팽만감과 딸꾹질,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을 다스린다. 반하후박탕은 우울증과 불안신경증, 불면증, 공황장애에 매핵기(梅核氣, globus hystericus) 등 인후부 이물감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반하백출천마탕은 비위허약으로 생긴 담궐두통(痰厥頭痛), 가슴이 답답하고 메스꺼우며 구역질이 나는 증상을 다스리는 명방이다. 소청룡탕은 표한(表寒)을 겸하는 한담해수(寒痰咳嗽), 호흡곤란, 백일해(百日咳), 기관지염 등을 다스리고, 맥문동탕은 가래가 끊이지 않는 기침, 기관지염, 기관지천식을 치료한다.    

 

반하(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창골, 2022. 4. 30)

반하(半夏)는 천남성목 천남성과 반하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반하의 유래는 여름(夏)이 반(半) 정도 지나간 6~7월경에 꽃이 많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이 설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반하는 4월말에도 꽃이 피기 때문이다. 또, 여름에 온도가 높아지면 잎이 말라 죽으므로 여름의 절반밖에 살지 않아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고려 시대에는 반하를 이두 향명으로 치의모립(雉矣毛立), 치의모자읍(雉矣毛者邑)이라고 했다. 조선 초기에는 치모읍(雉毛邑)으로 불리다가, 1600년대에 와서는 ○물웃이 되었고, 다시 끼무릇으로 정착되었다. 반하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들어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반하의 학명은 피넬리아 테르나타 (툰베리) 브리텐바흐[Pinellia ternata (Thunb.) Breitenb.]이다. 속명 'Pinellia'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식물학자 피넬리(Pinelli)를 기념한 것이고, 종소명 'ternata'는 성숙한 개체의 잎이 세 장임을 나타내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반하는 1784년 칼 페테르 툰베리(Karl Peter Thunberg)에 의해 처음 기술되었다. 반하를 끼무릇이라고도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서는 반하를 끼무릇이라고 한다. 

 

반하의 영어명은 크로우 디퍼(Crow dipper)이다. 'crow'는 까마귀, 'dipper'는 물까마귀류를 말하는데, 불염포(佛焰苞)가 검은색이 도는 것에서 유래한 듯하다. 일어명은 가라스비샤쿠(カラスビシャク, からすびしゃく, 烏柄杓)이다. 검은색(烏)이 도는 불염포가 긴 국자(柄杓)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명에는 한게(ハンゲ, はんげ, 半夏), 헤소쿠리(ヘソクリ, へそくり, 臍繰り), 헤부스(へブス) 등이 있다. '헤소쿠리(ヘソクリ)'는 옛날 한약에 쓰기 위해 뿌리줄기를 캐서 약방에 팔아 돈을 벌었다는 데서 왔다. 가고시마현(鹿児島県)에서는 반하를 햐쿠쇼우나카세(ヒャクショウナカセ, 百姓泣かせ), 군마현(群馬県)에서는 가라스노오큐(カラスノオキュウ, 烏のお灸)라고 부른다. 

 

중국명은 반샤(半夏)이다. 이명에는 산예반샤(三叶半夏, 山西와 河南, 广西), 산부탸오(三步跳, 湖北과 四川, 贵州, 云南), 마위궈(麻芋果. 贵州), 톈리신(田里心), 우신차이(无心菜), 옌즈웨이(燕子尾), 띠치구(地慈姑), 띠쯔구(地鹧鸪), 띠원(地文), 허구(和姑), 셔우톈(守田, 古称), 베이무(贝母) 등이 있다. 

 

반하는 '리지, 위에링(礼记·月令)'에 '小暑至, 螳蜋生. 鵙始鸣, 反舌无声. …… 是月也,…… 半夏生, 木堇荣.'라고 나온다. '소서(음력 6월, 양력 7월 7일이나 8일경)가 되면 사마귀(螳蜋)가 나오고, 때까치(鵙)가 처음 울며, 개똥지빠귀(反舌)가 울지 않는다. ..... 이 달이다. ..... 반하가 나오고, 무궁화(木堇)가 무성해진다.'는 뜻이다. 옌싀구(颜师古)는 '지쥬피엔주(急就篇注)'에서 '半夏, 五月苗始生, 居夏之半, 故为名也.(반하는 5월에 처음 싹이 나오는데, 여름의 반쯤이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이 설은 '리지, 위에링'과는 부합하지만, 사실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일본의 약학자(藥學者) 모리 타츠유키(森立之)는 '뻰차오징카오주(本草经考注)'에서 '半夏生'에 대해 '结果与采摘,而不是发芽(열매를 맺고 채취를 하는 것이지 싹이 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 식물학자 샤웨이잉(夏纬瑛)도 '지우밍싀자지(植物名释札记)'에서 모리 타츠유키와 같은 관점을 밝혔다. 이 두 학자의 설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반하에 얽힌 전설이 전해 온다. 옛날 옥황상제가 반하를 쓸 일이 생겼다. 그래서 꿩을 시켜 지상에 내려보내 반하를 캐오도록 했다. 옥황상제는 꿩에게 '반하를 캘 때 절대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엄명을 내렸다. 지상에 내려온 꿩은 반하를 캐면서 '반하가 얼마나 중요하고 맛있으면 내게 이런 일을 시켰을까? 그리고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이유가 뭘까?' 하고 궁금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꿩은 반하를 먹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반하는 너무나도 맛이 있었던 것이다. 꿩은 옥황상제의 명령도 까마득히 잊고 반하를 캐는 족족 먹었다. 그때 별안간(瞥眼間)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며 '내가 가져오라고 한 반하를 얼마나 캤느냐?'라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꿩은 '캐거든, 캐거든'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전설에서 보듯이 반하는 옥황상제의 명을 어기면서까지 캐 먹다가 야단을 맞을 만큼 꿩이 좋아하는 먹이로 알려져 있다. '캐거든, 캐거든'은 꿩이 우는 소리 '꿩, 꿩'을 음역한 것이라고 한다. '끼무릇'은 '끼(꿩)'가 좋아하는 '무릇'의 뜻이라는 설이 있다. 꿩은 반하를 캐 먹고 뱃속을 뜨겁게 해서 알을 낳는다는 설이 있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꿩은 반하의 독성에 면역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반하(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창골, 2022. 4. 30)

천남성과 식물은 전 세계에 1,500종이 있으며, 한강토에는 14종이 분포한다. 반하는 한강토를 비롯해서 중국과 일본, 타이완 등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네이멍구(内蒙古)와 칭하이(青海), 신쟝(新疆), 시짱(西藏)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자란다. 일본에서는 홋카이도부터 규슈, 오키나와까지 분포한다. 한강토에서는 전국 각지의 원포(園圃)에서 자란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반하의 뿌리는 땅속에 지름 1cm의 알줄기가 있고 1~2개의 잎이 나온다. 줄기는 없다. 엽병은 길이 10~20cm로서 밑부분 안쪽에 1개의 살눈이 달리며, 위끝에 달리는 수도 있다. 소엽은 3개이고 엽병이 거의 없다. 잎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길이 3~12cm, 나비 1~5cm로서 난상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을 거쳐 선상 피침형으로 되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털은 없다.

 

꽃은 6월에 알줄기에서 솟은 높이 20~40cm의 꽃줄기 끝에 엷은 황백색 꽃이 육수꽃차례를 이루며 달려 핀다. 포는 녹색이며 길이 6~7cm이다. 판통은 길이 1.5~2cm, 판연은 피침형 원두이고, 겉에 털이 없으나 안쪽에는 잔털이 있다. 꽃차례는 밑부분에 암꽃이 달리고 포와 완전히 붙지만 약간 떨어진 윗부분에서는 수꽃이 1cm 정도의 길이에 밀착하며, 그 윗부분은 길이 6~10cm로서 길게 연장되어 비스듬히 선다. 꽃은 가늘어서 가련한 자태를 하고 있다. 수꽃은 대가 없는 꽃밥만으로 되며 연한 황백색이다. 열매는 장과이다. 장과는 녹색이며 작다.

 

반하(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창골, 2022. 4. 30)

반하의 덩이줄기를 본초명 반하(半夏), 또는 수옥(水玉), 치모읍(雉毛邑), 지문(地文), 수전(守田)라고 한다. 수전은 반하를 복용하면 단전(丹田)에 기(氣)를 모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하는 화담지해평천약(化痰止晐平喘藥) 가운데 온화한담약(溫化寒痰藥)에 속한다. 7~8월에 깨서 겉껍질을 벗기고 햇볕이나 약한 불기운에 말린다. 반하는 조습화담(燥濕化痰), 강역지구(降逆止嘔), 소비산결(消痞散結), 진해(鎭咳) 등의 효능이 있어 담다천해(痰多喘咳), 담음현계(痰飮眩悸), 풍담현훈(風痰眩暈), 담궐두통(痰厥頭痛, 痰濁逆上에 의한 두통), 구토반위(嘔吐反胃), 흉완비민(胸脘痞悶), 흉완비민(胸脘痞悶), 매핵기증(梅核氣症) 등을 치료한다. 

 

반하는 또 위부정수(胃部停水), 오심(惡心), 심통(心痛), 흉격장만(胸膈腸滿), 두훈불면(頭暈不眠) 등에도 응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간디스토마와 규폐증, 암에도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옹종담핵(癰腫痰核)에는 반하 날것을 갈아서 환부에 바른다. 생강과 백반으로 법제한 강반하(薑半夏)는 강역지구, 강반하에 석회와 감초를 더 넣어 법제한 법반하(法半夏)는 조습화담에 특장(特長)이 있다. 반하 특히 생반하는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반드시 한의사 등 전문가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 

 

반하는 온화한담약 중에서도 제일로 치는 한약재이다.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가장 많이 처방하는 한약재이기도 하다. 만약에 반하가 없었다면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습담 질환과 소화기 장애 치료에 많은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반하는 한의사뿐만 아니라 인류에게도 참 고마운 식물이다.    

 

반하의 유사종에는 대반하(大半夏, Green dragon)가 있다. 대반하[Pinellia tripartita (Blume) Schott]는 거제도 등 남부 도서지방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땅 속에 덩이줄기가 들어 있고 여기서 두 장의 잎과 한 개의 꽃대가 자란다.

 

2022. 6. 13. 林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