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이슈 화제

[제40차 온라인 수요시위] 윤석열 정부는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하라!

林 山 2022. 8. 17. 21:57

윤석열 정부는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제정하라!

 

윤석열 정부는 국가폭력 희생 해직교사 즉시 원상회복하라!

국민의힘당은 전교조 해직교사 명예 당장 원상회복시켜라!!

 

충주시 연수동 체육관 사거리 임종헌

국민의힘당은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특별법 앞장서라!!

전교조 해직교사는 모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해직교사 원상회복 위한 특별법 제정 33년 이상 기다렸다!!!

 

전교조 해직교사는 교육민주화동지회와 함께 합시다!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외면한 문재인정권 규탄한다!!!!!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나몰라라 민주당은 각성하라!!!!!

 

광주광역시교육청 앞 홍성국 선생

 

전라남도교육청 앞 민경선, 문형채, 최기종 선생

 

전라남도교육청 앞 민경선 선생

 

전라남도교육청 앞 문형채 선생

 

전라남도교육청 앞 최기종 선생

 

성남교육지원청 앞 정양희 선생

 

성남교육지원청 앞 정양희 선생

 

성남교육지원청 앞 정양희 선생

 

성남교육지원청 앞 정양희 선생

 

대전광역시교육청 앞 김복희 선생

 

전라북도교육청 앞 변병기 선생

[1인 시위 230 일차 단상] 지식인의 사명! -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 양운신

 

오늘은 시위차 경기도고양교육지원청으로 햇볕을 뚫고 걸어가며 매천 황현 선생의 유작(遺作)인 ‘절명시(絶命詩)’를 떠올렸다. 나는 33년 전, 1989년 뜨겁던 여름! 명동성당에서 열하루 동안 전교조 사수 단식농성을 끝내고 바로 개학하여 교무실 책상에 앉았다.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더 많은 앞자리의 강◯◯ 선생님이 핼쑥해진 내 모습을 보고 몹시 안쓰러워하셨다. 모습도 몰골이려니와 교사 신분이 바람 앞의 등불 같던 때였다. 더구나 나는 명동성당 뒤편 성모 동산에서 내 첫애의 백일을 맞았고 동지들이 축하해주는 장면이 중앙 일간지에 사진과 기사로 실리면서 나의 소속 학교도 밝혀졌다. 이래저래 학교에서 신경이 쓰이는 상황이었다. 

 

강 선생님 이름에는 별을 뜻하는 글자가 있고 여성이어서 나는 그를 ‘별녀’라고 부르곤 했다. 물론 강 선생님도 그 별명을 좋아했다. 별녀는 전교조 조합원은 아니었지만 나를 걱정해주고 지지해주고 있었다.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았고 평소 소통이 잘되던 사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늘 정 많은 누나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별녀가 주변의 눈길을 피해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에게 슬쩍 묻는 것이었다. 단식농성 후에 몸은 어떤지? 앞으로 닥칠 탄압은 어떤지? 등등. 나는 그때 백지에 멋들어지게 붓펜으로 매천 선생의 ‘절명시’를 옮겨쓰고 사색에 잠겨 있던 때였다. 나는 그 종이를 건네며 “지식인 노릇 하기 어렵네요.”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1989년, 나의 마음은 비장했었다.

 

鳥獸哀鳴海嶽嚬(조수애명해악빈)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이 나라가 이미 침몰(망)하고 말았네.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가을밤 등잔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보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 글 아는 사람(지식인) 노릇하기 어렵구나.

-(절명시 4수 중, 제3수.)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 9. 10.)

 

매천 선생은 공직에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1910년 국권피탈 소식을 듣고, 선비로서 책임을 통감한 것이다. “나는 꼭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그렇지만 500년 동안 나라에서 선비를 길렀는데도 그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순절(殉節)하는 자가 없다면 어찌 비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말을 남기고 음독 자결했다. 

 

매천 선생의 시를 떠올리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부터 오늘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운운하며 말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20% 대의 대통령 지지율을 놓고도 국정 쇄신에 대한 비전은 제시되지 않는다. 아니, 공감되는 게 없다. 매천 선생처럼 우국의 마음을 보여주는 집권당 책임자도 없다. 공직자도 아닌 시민이 노심초사하며 나라를 걱정해야 한다. 슬프지 아니한가!

 

고양교육지원청 앞 양운신 선생

33년 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하며 학생들이 한 해 200명이나 목숨을 버리던 암울한 시대가 떠오른다. 독재 정권은, 기득권층은 학생들의 행복에는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뜻있는 교사들이 나섰었다. 교육을 제대로 해보자고 생존권을 걸고 싸우던, 그러다가 교단에서 쫓겨나야 했던, 그리고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했던 통한의 시대가 속칭 지금의 시행령 정권에서도 언뜻언뜻 비친다. 그러니 매천 선생의 ‘난작인간식자인’ 시구가 머리에 맴돌 수밖에 없다. 이제 공직자도 아닌, 시민인 일개 퇴직자인 내가 걱정해야만 하는가? 33년 전의 피해는 아직도 오롯이 이어지고 있는데.

33년 전 사람들은 그랬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앞에 나서지 마라.”, “눈치껏 해라. 어째 눈치가 없냐? 쯧쯧.” 그래, 소신 따위는 필요 없었다. 적당히 눈치 보며 기회주의자로 살아야 현명한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당장 사는 것도 중요했으니까. 그러나 일부 교사들이 그러지 못하고 소신껏 전교조에 가입하고 행동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전교조 교사는 교육을 살리는 한 줄기 빛이요 생명수의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정부는 그 점을 인정하여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들에게 2007년 7월 31일 「민주화운동관련자증서」를 수여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명기되어 있다. 【『귀하는 대한민국의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켰으므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이 증서를 드립니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도 후속 조치도 없고, 약속을 지키고 있지도 않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이란 말이 있다.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국민도 잘살 수 없다.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라도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조치를 단행하라! 그게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러면 지지율도 금방 오를 것이다. 아니다. 말은 바로 하자. 지지율 때문에 원상회복을 단행하는 게 아니다. 옳은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게 공정과 상식이다. 정자정야(政者正也)! 정치라는 것은 바르게 하는 것이다. 정치의 핵심은 올바른 도리가 지켜지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공자의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며 마무리 한다. 「“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는 것, 병력을 넉넉하게 하는 것, 백성들이 신뢰하는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부득이한 상황에서 반드시 없애야 한다면 이 세가지 중에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병력을 없앤다."자공이 말했다. "부득이한 상황에서 반드시 없애야 한다면, 이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을 먼저해야 합니까?" "먹는 것을 버린다. 예로부터 누구나 죽는 일은 있었다.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정치가 성립되지 아니한다.”(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논어(論語), 〈안연(顔淵) 7장〉》 <이기동 번역>

지연된 정의는 거부된 정의다. 정부는 지금 당장 1989년 국가폭력 사과하고, 1989년 전교조 해직교사 원상회복 조치하라.
그때까지 우리는 투쟁이다. 투쟁!!!

 

2022. 8. 17. 수. 교육민주화동지회(교민동) 양운신 올림

 

인천광역시교육청 앞 장영호 선생
순천 신근홍, 김종훈 선생

2022년 8월 17일 수요일

전국민주화운동동지회/교육민주화동지회/참교육동지회/전교조원상회복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