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중순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국립수목원을 찾았다. 수목원에는 분홍색 술패랭이꽃들이 저마다 빼어난 자태를 뽐내듯 활짝 피어 있었다. 술패랭이꽃은 꽃잎 가장자리가 깊게 갈라져 마치 장식용 술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패랭이꽃은 옛날 천민계급(賤民階級)이나 상제(喪制)가 쓰던 갓인 패랭이라는 모자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패랭이꽃이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술패랭이꽃은 화려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술패랭이꽃은 중심자목(中心子目) 석죽과(石竹科) 패랭이꽃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디안투스 롱기칼릭스 미쿠엘(Dianthus longicalyx Miq.)이다. 속명 '디안투스(Dianthus)'는 그리스 신화의 주신(主神) '제우스(Zeus, 로마 신화의 쥬피터)'를 뜻하는 그리스어 소유격 '디오스(Dios)'와 '꽃(flower)'을 뜻하는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다. 즉 '제우스의 꽃'이라는 뜻이다. 종소명 '롱기칼릭스(longicalyx)'는 '가늘고 긴 꽃받침(elongated calyx)을 뜻한다. 꽃잎이 깊고 잘게 갈라진 모양을 표현한 이름이다. '미쿠엘(Miq.)'은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프리드리히 안톤 빌헬름 미쿠엘 (Friedrich Anton Wilhelm Miquel, 1811~1871)이다. 그는 로테르담과 암스테르담, 위트레흐트 식물원 관장을 지냈다. 1862년부터는 레이던에 있는 네덜란드 국립 식물 표본실을 이끌었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정)의 술패랭이꽃 영어명은 프린지드 핑크(Fringed Pink)이다. '프린지드(Fringed)'는 '가두리 장식이 달린, (꽃잎 등이) 톱니처럼 째진', '핑크(Pink)'는 '(영국) 패랭이꽃'이다. 국가표준식물목록(국표)의 추천 영어명은 롱-케일릭스 핑크(Long-calyx pink)이다. '긴 꽃받침 패랭이꽃'이란 뜻이다.
국표의 추천 일본명은 가와라나데시코(カワラナデシコ, 川原撫子·河原撫子·磧撫子)이다. 네이버 일본어 사전에는 가와라나데시코(河原撫子)는 나데시코(ナデシコ(撫子, 패랭이꽃)의 별명(別名)이라고 나와 있다. 네이버 일본어 사전에 등재된 술패랭이꽃은 에조가와라나데시코(エゾカワラナデシコ, 蝦夷川原撫子·蝦夷河原撫子·蝦夷磧撫子)이다.
일어판 Flora of Mikawa(三河の植物観察, 미카와의 식물 관찰)에는 술패랭이꽃이 가와라나데시코(川原撫子·河原撫子·磧撫子), 별명이 나데시코(撫子)로 등재되어 있다. '가와라(川原·河原·磧)'는 '강가의 모래밭이나 자갈밭, 바닥이 드러난 강변'을 뜻한다. 본종이 일본의 강변에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에조가와라나데시코(蝦夷河原撫子, Dianthus superbus var. superbus)는 꽃받침통이 2~3cm로 약간 짧고, 포는 2쌍이며, 십자로 대생(對生)한다. 다카네나데시코[タカネナデシコ, 高嶺撫子, Dianthus superbus var. speciosus(=subsp. alpestris)]는 에조가와라나데시코(蝦夷河原撫子)의 고산형(高山型) 변종이다.
술패랭이꽃의 중국명은 창어취마이(长萼瞿麦, 台湾植物志)이다. '창어(长萼)'는 '긴 꽃받침', '취마이(瞿麦)'는 '술패랭이꽃'이다. 이명에는 창어싀주(长萼石竹, 海南植物志), 창통취마이(长筒瞿麦, 东北草本植物志) 등이 있다. 술패랭이꽃을 수패랭이꽃, 흰술패랭이꽃, 석죽(石竹), 대란(大蘭), 사시미(四時美), 장통구맥(長筒瞿麦), 낙양화(洛陽花)라고도 한다. 본초명은 거구맥(巨句麥), 구맥(瞿麥), 석죽(石竹)이다. 꽃말은 '무욕(無欲), 평정(平靜)'이다.
술패랭이꽃은 한강토(조선반도)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타이완(台湾) 등지에 분포한다. 한강토에서는 제주, 전남(지리산), 전북(덕유산), 경남, 경북, 충남, 강원, 경기, 황해, 함북, 한라산(해발 1,500~2,000m) 주변에 야생한다. 일본에서는 혼슈(本州), 시코쿠(四国), 규슈(九州) 등지에 분포한다. 중국에서는 동베이(东北, 랴오닝, 헤이롱쟝, 지린), 화베이(华北), 화동(华东), 화중(华中), 화난(华南), 쓰촨(四川), 꾸이저우(贵州) 등지에 자란다.
술패랭이꽃의 키는 30~100cm 정도까지 자란다. 밑부분이 비스듬히 자라면서 가지를 치며, 윗부분은 곧게 자라고, 여러 대가 한 포기에서 나온다. 전체에 분백색이 돈다. 잎은 마주나기하며 선형 또는 선상 피침형이다. 잎 양끝이 좁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녹색이거나 흰색을 띤다. 잎 길이는 4~10cm, 너비는 2~10mm로서 밑부분이 서로 합쳐져서 마디를 둘러싼다.
꽃은 6-8월에 연한 홍색으로 가지 끝과 원줄기 끝에 취산꽃차례로 달린다. 포는 3~4쌍이고, 밑부분의 것일수록 보다 길고 뾰족하다. 꽃받침통은 길이 2.5~4cm로서 포보다 3~4배 길다. 꽃잎은 5개로 밑부분이 가늘고 길며, 끝이 깊이 잘게 갈라지고, 그 밑에 털이 있다. 수술은 10개, 암술대는 2개이다. 열매는 삭과(蒴果)이다. 삭과는 원주형으로 끝이 4개로 갈라지고, 꽃받침통 안에 들어 있다.
술패랭이꽃은 공원이나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는다. 키가 작고 다화성(多花性)이며, 꽃의 향기가 좋으므로 공원이나 가로(街路)의 화단, 광장 등지에 무리지어 심으면 매우 좋다. 성질이 강건하므로 절개지 등에 심어도 효과적이다. 화분에 심어 초물분재(草物盆栽)로 감상할 수 있다.
국생정에는 '술패랭이꽃의 꽃을 포함한 전초(全草)를 구맥(瞿麥)이라 하며 약용한다. 소염, 청열이수(淸熱利水), 파혈통경(破血通經)의 효능이 있다. 소변불통(小便不通), 혈뇨, 신염(腎炎), 임병(淋病), 수종(水腫), 무월경, 옹종(癰腫), 목적장예(目赤障翳), 침음창독(浸淫瘡毒) 등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
전국 한의과대학 본초학 교과서에는 술패랭이꽃(구맥)과 패랭이꽃(석죽)의 꽃을 포함한 지상부 전초를 구맥이라고 한다. 본초명 이명에는 거구맥(巨句麥), 대란(大蘭), 산구맥(山瞿麥), 남천축초(南天竺草) 등이 있다. 이수통림(利水通淋), 파혈통경의 효능이 있어 열림(熱淋, 요도염), 혈림(血淋, 혈뇨), 석림(石淋, 尿路結石), 소변불통, 임력삽통(淋瀝澁痛, 배뇨통), 월경폐지(月經閉止) 등을 치료한다. 심경(心經)에 들어가 파혈통경하는 효능이 있으므로 임신부는 복용 금기약이다.
'동의보감' <탕액편 : 풀>에는 구맥(瞿麥, 패랭이꽃)에 대해 '성질은 차며[寒], 맛은 쓰고 맵다[苦辛]. 달다[甘]고도 한다. 독이 없다. 관격(關格)된 것을 낫게 하고, 여러 가지 융폐[癃閉, 소변불리]와 오줌이 나가지 않는 데 쓰며, 가시를 나오게 한다. 옹종을 삭이고 눈을 밝게 하며, 예막[瞖膜]을 없애고, 유산시킨다. 심경(心經)을 통하게 하며 소장(小腸)을 순조롭게 하는 데 매우 좋다. ○ 일명 석죽(石竹)이라고 하는데 곳곳에 다 있다. 입추 후에 씨와 잎을 함께 뜯어 그늘에서 말린다. 씨는 보리(麥)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구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본초]. ○ 줄기와 잎은 쓰지 않고 다만 씨의 껍질을 쓴다[입문]. ○ 관격과 여러 가지로 오줌이 막혀 나가지 않는 병을 낫게 한다. 오줌이 나가지 않는 것을 잘 나가게 하며 방광의 사열(邪熱)을 몰아내는 데 주약[主之劑]으로 쓰인다[탕액].'고 나와 있다.
구맥자(瞿麥子, 패랭이꽃씨)에 대해서는 '월경을 하지 않는 것을 치료하며, 혈괴(血塊)를 헤치고, 고름을 빨아낸다[排][본초].', 구맥엽(瞿麥葉, 패랭이꽃잎)에 대해서는 '회충을 죽이고 치질, 눈이 붓고 아픈 것, 침음창(浸淫瘡), 부인의 음부에 헌데가 생긴 것을 낫게 한다[본초].'고 되어 있다.
술패랭이꽃의 유사종에는 패랭이꽃(石竹花, 南天竺草, 꽃패랭이, 참대풀이, 枝如竹), 흰패랭이꽃, 흰술패랭이꽃, 섬패랭이꽃, 구름패랭이꽃(Alpine pink, 홍구표, 구표, 大石竹, 구름술패랭이꽃, 참대나물), 수염패랭이꽃(Asian pink), 갯패랭이꽃(Seashore dianthus), 난쟁이패랭이꽃(Dwarf rainbow pink), 카네이션(Carnation), 아메리카패랭이꽃(sweet William) 등이 있다.
패랭이꽃(Dianthus chinensis L.)은 키가 30cm 정도이다. 꽃은 6~8월에 피며, 줄기 끝부분에서 약간의 가지가 갈라져 그 끝에서 한 개씩 핀다. 흰패랭이꽃(Dianthus chinensis f. albiflora T.B.Lee)은 흰 꽃이 피는 패랭이꽃이다. 흰술패랭이꽃(Dianthus superbus var. longicalycinus f. albiflorus Y.N.Lee)은 흰색 꽃이 피는 술패랭이꽃이다. 섬패랭이꽃(Dianthus littorosus Makino ex Nakai)은 꽃의 목 부분까지 고루 분홍색이다. 꽃잎이 술패랭이꽃에 비해 덜 갈라진다. 구름패랭이꽃( Dianthus superbus var. alpestris Kablik. ex Celak.)은 술패랭이꽃에 비하여 왜소하다. 줄기는 서고, 잎은 선형 또는 선상 피침형, 끝이 날카롭고, 밑부분은 줄기를 둘러싼다. 꽃술이 있는 곳이 금색인 것이 특징이다. 수염패랭이꽃(Dianthus barbatus var. asiaticus Nakai)은 6~8월에 피며, 향기가 없고, 흔히 적색 바탕에 짙은 무늬가 있지만 색이 여러 가지다. 작은 포는 가늘고 수염 모양이므로 수염패랭이꽃이라고 한다. 꽃받침을 둘러싼 부분이 수염처럼 생겼다.
갯패랭이꽃(Dianthus japonicus Thunb.)은 바닷가에 자란다. 키는 20~50cm이다. 꽃은 7~8월에 홍자색으로 피며, 줄기 끝이나 근처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가지끝에 모여 달린다. 난쟁이패랭이꽃[Dianthus chinensis var. morii (Nakai) Y.C.Chu]은 백두산 지역의 고산 지대에 분포한다. 키는 10cm 정도이다. 꽃은 8~9월에 엷은 자색으로 피며, 줄기 끝에 1개씩 달린다. 카네이션(Dianthus caryophyllus L.)은 전체가 분백색이고, 줄기가 곧게 선다. 잎은 선형이고, 꽃은 향기가 있다. 원예품종이 많고 대개 만첩꽃이다. 아메리카패랭이꽃(Dianthus barbatus)은 남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이 원산지다. 꽃잎 가장자리에 톱니 모양이 있다. 꽃은 흰색, 분홍색, 빨간색, 보라색 등 다양하다.
2022. 11. 29.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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