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중순 백두산(白頭山)에 자생하는 야생화를 만나기 위해 중국 땅을 밟았다. 지린성(吉林省) 옌지(延吉) 공항에 내리기 전부터 좌석의 햇빛 가리개를 닫아야 하는 등 기내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흘렀다. 햇빛 가리개를 닫지 않으면 중국 당국이 착륙을 불허한다는 안내 방송도 있었다. 옌지 공항의 입국 절차도 다른 나라 공항들과는 달리 까다로운 것 같았다. 최근 냉랭해진 한중(韓中) 관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7월 19일 백두산 운동원촌 숙소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북파(北坡) 천문봉(天文峰, 2,620m) 기슭에서 자라는 야생화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소형 버스에 올라천문봉으로 향했다. 여명 직전의 어둠이 아직도 짙게 깔려 있는 천문봉에는 사람도 날려버릴 듯한 강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때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며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새벽의 희미한 햇빛에 천문봉 기슭에 자라는 야생화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키 큰 나무가 단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 초원지대에는 두메양귀비, 바위구절초, 천지괭이눈, 구름송이풀, 두메자운, 좁은잎돌꽃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답고 귀여운 풀꽃들이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는 남한(南韓)에서는 볼 수 없는 풀꽃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천문봉의 풀꽃들은 하나같이 키가 작은 대신 억세고 강인해 보였다. 그러한 모습에서 추운 날씨와 강한 비바람에 적응하기 위한 풀꽃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여러 풀꽃들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좁은잎돌꽃도 그중 하나였다. 좁은잎돌꽃은 채송화 같은 가는 잎에 노란색 꽃(수꽃)과 붉은색 꽃(암꽃)을 한창 피어올리고 있었다. 남한에서는 볼 수 없는 좁은잎돌꽃, 그러기에 더 신비롭고 신기했다. 돌꽃속(Rhodiola) 자생식물은 돌꽃, 가지돌꽃, 좁은잎돌꽃 등 3종이 있는데, 모두 한강토(조선반도, 한반도) 북부 고산지대에서만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국표)에는 식물학자 이창복(李昌福)이 1937년 7월 22일 강원도에서 좁은잎돌꽃의 표본을 채집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표본을 채집한 장소가 강원도 어디인지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국생관)은 좁은잎돌꽃을 피자식물문(被子植物門, Magnoliophyta) 목련강(木蓮綱, Magnoliopsida) 장미아강(薔薇亞綱, Rosidae) 장미목(薔薇目, Rosales) 돌나물과(Crassulaceae) 돌꽃속(Rhodiola)의 여러해살이풀로 분류하고 있다.
국표, 국생관,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생정) 등재(登載) 좁은잎돌꽃의 학명(學名, Scientific name)은 로디올라 안구스타 나카이(Rhodiola angusta Nakai)다. 국생관에는 로디올라 라모사 나카이(Rhodiola ramosa Nakai, 가지돌꽃)가 학명 이명(異名, synonymy)으로 등재되어 있다.
속명(屬名, generic name) '로디올라(Rhodiola)'는 '장미(rose)'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로돈(rhódon)'에 라틴어 지소(指小) 접미사 '-이올라(-iola)'가 붙은 것이다. '로돈(rhódon)'은 뿌리에서 나는 냄새로부터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종명(種名, specific name) '안구스타(angusta)'는 '좁은(narrow, strait)'이라는 뜻의 라틴어 형용사 '안구스투스(angustus)'의 탈격(奪格)/여성/단수형이다. 좁은 잎을 표현한 이름으로 보인다.
'나카이(Nakai)'는 일본 식물 분류학자인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다. 나카이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며 한강토(조선반도)의 식물을 정리하고 소개하였다. 그래서, 제국주의 일본의 강제점령기에 발견된 한강토 자생 식물의 학명에는 대부분 그의 성 'Nakai(中井, 나카이)'가 명명자로 등재되어 있다. 그는 특히 물푸레나무과(Oleaceae)에 속하는 세계 1속 1종의 한강토 특산식물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선나무속(Abeliophyllum)을 최초로 학계에 보고했다. 나카이는 1914년 '쇼쿠부츠가쿠잣시(しょくぶつがくざっし, 植物学雑誌, Botanical Magazine, 東京, Tokyo)'에 세계 최초로 학명 '로디올라 안구스타 나카이(Rhodiola angusta Nakai)'를 출판했다.
국표 등재 로디올라 안구스타 나카이(Rhodiola angusta Nakai)의 추천 국명(國名, common name)은 좁은잎돌꽃이다. 국표 등재 이명에는 가는돌꽃, 가지돌꽃, 각시바위돌꽃, 바위돌꽃 등이 있다.
국표, 국생정 등재 좁은잎돌꽃의 영문명(英文名, English name)은 내로우-립 로디올라(Narrow-leaf rhodiola)다. '좁은잎(Narrow-leaf) 돌꽃(rhodiola)'이라는 뜻이다.
중국어판 바이두백과(百度百科) 등재 좁은잎돌꽃의 중국명(中國名, Chinese name)은 창바이샨훙징톈(长白山红景天)이다. '장백산(长白山, 백두산) 돌꽃(红景天)'이라는 뜻이다. 별명(別名, Synonym)에는 까오샨훙징톈(高山红景天), 쿠예훙징톈(库页红景天, 사할린훙징톈) 등이 있다. 위키백과(維基百科) 등재 중국명은 창바이훙징톈(长白红景天)이다. 별명에는 창바이징톈(长白景天), 우수리징톈(乌苏里景天, 东北植物检索表) 등이 있다.
좁은잎돌꽃은 한반도 북부 지방에 자생하며, 러시아 북부, 중국 북부 등에 분포한다. 높은 산에서 자란다(국생관). 중국, 백두산(표고 2,000m) 지역의 돌밭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나 평안도 및 함경도의 고산대에도 분포한다(국생정).
창바이훙징톈(长白红景天)은 조선(朝鲜, 한강토), 러시아(俄罗斯), 중국 대륙의 헤이룽쟝(黑龙江), 지린(吉林) 등지의 해발 1,700~2,600m 고산지대 초원과 산비탈 바위 위에 분포한다(維基百科).
창바이샨훙징톈(长白山红景天)은 주로 러시아 극동 지방, 일본, 조선(朝鲜, 한강토) 북부, 중국 동북 지방 해발 2,5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분포한다. 분포 범위는 비교적 적다. 창바이샨훙징톈은 중국 정부가 원산지를 인증하는 제품(中国国家地理标志产品)으로서 지린성(吉林省) 린쟝시(临江市)의 특산품이다. 중국 품질검사총국(国家质检总局)은 2006년 7월 12일 창바이샨훙징톈에 대한 지리적 표시 제품 보호 실시를 비준하였다(百度百科).
좁은잎돌꽃의 뿌리는 굵고 선단(先端)이 비늘조각으로 덮여 있다. 뿌리는 황갈색(黄褐色) 또는 회갈색(灰褐色)이며 불규칙한 원추형(不规则的类圆锥形), 길쭉한 형(类长条形), 원형(类圆形) 등이 있다. 줄기는 뿌리 선단에서 모여나기하고, 높이 5cm까지 자란다. 잎은 선상(線狀) 긴 타원형(長楕圓形)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거나 뚜렷하지 않은 톱니가 있다.
꽃은 이가화(二家花, 雌雄異株)로 7~8월에 노란색(수꽃), 붉은색(암꽃)으로 핀다. 원줄기 끝의 취산꽃차례(聚繖花序, cyme)에 달리며, 꽃받침조각은 4개이고 선형이며 길이 2~2.5mm이고 자주색(紫朱色) 반점(斑點)이 있다. 꽃잎은 4개가 서로 마주 닿아 있고 피침형(披針形)이며 길이 4.5mm이다. 수술은 8개이며 꽃잎과 길이가 거의 같다. 꽃밥은 콩팥 모양이다.
열매는 골돌과(蓇葖果)이다. 골돌과는 4개이다. 자홍색(紅紫色)으로 직립하며, 길이는 7~8mm이다. 끝은 약간 구부러져 있다. 열매는 8~9월에 익는다. 종자는 피침형(披針形)이고 양 끝에 날개가 있으며 날개 길이는 2~3mm이다.
좁은잎돌꽃은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약용 가치 여하는 아직 해명되지 않고 있다(국생정). 좁은잎돌꽃이 남한에서는 자생하지 않기 때문인 약용 연구도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창바이샨훙징톈(长白山红景天)은 창바이샨훙징톈은 고대 중국 의학서 '셴눙뻰차오징(神农本草经)'과 '뻰차오강무(本草纲目)'에 최고등급의 한약재로 기재되어 있다. 의서에는 '성질이 차고, 맛은 달고 떫다. 악령을 쫓아내고 모든 부족한 것을 보충한다(祛邪恶气, 补诸不足)'고 나와 있다. 구소련 극동의 추운 산악 지역에서 훙징톈(红景天)은 오랫동안 약용 목적으로 재배되어 왔다. 1960년대 소련 키로프군사연구소가 강장제를 찾던 중 훙징톈에 한의학의 신체강화 효과(扶正固本)와 유사한 자양강장(滋补强壮) 효과가 있으며, 면역증강 작용이 인삼(人参)보다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75년 지린성 중의약연구소(吉林省中醫中藥研究所), 둥베이사범대학(东北师范大学) 생물학과 옌중카이(严仲铠) 연구원과 짱원중(张文仲) 교수는 4년 동안 창바이샨(长白山) 약용식물자원을 조사, 연구한 끝에 '창바이샨식물약지(长白山植物药志, 1982, 지린인민출판사)'를 출판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창바이샨훙징톈은 항저산소증, 항한랭, 항피로, 항마이크로파방사선, 항노화, 신체강건, 면역조절, 노인성 질환 예방 및 치료, 생명 연장의 특수한 효능이 있는 중요한 약용 식물임이 밝혀졌다. 또, 심혈관계, 간(肝), 신장(肾臟) 및 신경 세포를 보호하는 특별한 효능은 심부전, 발기부전, 당뇨병, 저혈압 등을 치료할 수 있어 군사의학, 항공우주의학 및 스포츠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선양약학대학(沈阳药学院) 학자들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창바이샨훙징톈은 항피로, 항저산소증, 항노화, 항마이크로파방사선이 있어 정신노동 효율과 체력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신체 면역력 향상, 혈당 강하, 항바이러스, 진통 등의 효과가 있다. 신체 허약, 숨가쁨 및 피로, 객혈, 폐렴, 기침 및 여성 백대하(妇女白带)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 현대의학에서는 고산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지연시키며 관상동맥성 심장질환, 협심증, 부정맥 및 류마티스 관절염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1995년 중국 보건부는 창바이샨훙징톈을 국가 건강의약품 자원으로 승인했다.
칭(淸)나라 캉시제(康熙帝) 시대에 쵸로스-오이라트의 왕공이자 준가르 칸국의 콩타이지 체왕 랍탄(策妄阿拉布坦, 1665~1727)이 신쟝(新疆)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캉시제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출정했다. 칭나라 장병들은 서부 고원의 가뭄과 열악한 환경, 장거리 이동으로 인해 지쳐서 사기가 떨어지고 전투력이 크게 약화돼 준가르 군대에 번번이 패했다. 캉시제는 군대를 쉬게 하고, 현지 주민들의 말에 따라 장병들의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훙징톈(红景天)으로 술을 담가 먹였다. 훙징톈주를 마신 장병들은 빠르게 체력을 회복하고 사기가 올라 단숨에 준가르 군대를 물리쳤다. 크게 기뻐한 캉시제는 훙징톈의 이름을 신선이 하사한 약초라는 뜻으로 셴츠차오(仙赐草)라고 지었다.
린쟝시(临江市)는 칭나라 이전의 옛 이름이 마오얼샨진(猫耳山镇)이었고, 광시(光绪) 28년(1902)에 설치되었다. 린쟝현지(临江县志, 1902~1934)의 물산편(物产篇)에도 '창바이산 고지대에는 징톈(景天)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린쟝 사람들은 육체 노동에 지쳐 있을 때나 오랫동안 겨울에 야외로 나가 생산 작업을 할 때 훙징톈을 넣어 물을 달이거나 술을 담가서 자주 복용했다고 전해진다. 훙징톈은 벌목꾼들이 피로를 풀고 추위를 쫓는 좋은 한약재다. 린쟝에서는 1960년대 창바이샨훙징톈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百度百科).
국표 등재 좁은잎돌꽃의 유사종(類似種, similarity species) 자생식물(自生植物, indigenous plant)에는 가지돌꽃(Rhodiola ramosa Nakai), 돌꽃[Rhodiola elongata (Ledeb.) Fisch. & C.A.Mey.], 바위돌꽃(Rhodiola rosea L.) 등등 3종이 있다.
가지돌꽃(Branching rhodiola)은 한강토 북부의 깊은 산 정상 근처에 난다. 중국에도 분포한다. 뿌리줄기는 가늘고 길며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꽃은 6~8월에 암수한포기로 피는데, 드물게 암수딴포기로 피기도 한다. 줄기 끝에 여러 개가 취산꽃차례로 달리며 노란색이다. 꽃받침잎과 꽃잎은 보통 4장이다. 돌꽃(Elongate-leaf rhodiola)은 러시아 극동, 일본, 중국 북부, 유럽, 북미, 한강토에 분포한다. 한강토에서는 북부 지방에 난다. 꽃은 7~8월 줄기 끝 취산꽃차례에 연한 노란색으로 핀다. 좁은잎돌꽃에 비해 잎은 도란형 또는 타원형이며, 꽃받침잎에는 자주색 점이 없다. 바위돌꽃(Rose-root rhodiola, イワベンケイ, 岩弁慶, 紅景天)은 한강토 전국 각지의 고산지대에 난다. 잎은 거꿀달걀모양 또는 타원형이고 끝이 둔하며 윗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2가화로서 7~8월 취산꽃차례에 연한 황색으로 핀다. 취산꽃차례는 원줄기 끝에 생기고 많은 꽃이 밀착한다. 수꽃은 퇴화된 암술이 있으며 꽃잎보다 길다. 암꽃은 작으며 흔히 자줏빛이 돈다.
국생정에는 바위솔[Orostachys japonica (Maxim.) A.Berger], 둥근바위솔[Orostachys malacophylla (Pall.) Fisch.], 좀바위솔[Orostachys minuta (Kom.) A.Berger]이 좁은잎돌꽃의 유사종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3종은 바위솔속 식물들이다. 돌꽃속과 바위솔속은 같은 돌나물과이기는 하다. 하지만 속이 다르기에 유사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국표 등재 좁은잎돌꽃의 유사종 재배식물(裁培植物, garden plant, cultivated plant)에는 왕관돌꽃[Rhodiola rhodantha (A.Gray) Jacobsen] 1종이 있다. 왕관돌꽃의 원산지는 로키 산맥 해발 2,700m 지대다. USA 애리조나, 콜로라도, 몬태나, 뉴멕시코, 유타, 와이오밍 주에 분포한다. 키는 45cm까지 자란다. 잎은 잎자루가 없으며, 작고 긴 피침형이다. 식물체의 아랫부분은 녹색, 윗부분은 붉은색이다. 꽃은 양성화이며, 7~8월에 장미색 또는 붉은색으로 핀다.
2024. 10. 2. 林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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