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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 선언

林 山 2025. 4. 18. 15:22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 선언

오늘 우리는 조선공산당 창립 100주년의 역사를 기념하는 이 자리에서, 항일혁명가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새로운 100년을 꿈꿀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25년 4월 17일 오후 1시, 일제 조선총독부가 똬리를 틀고 있는 식민지 조선의 심장부 경성 시내 한복판에서, 일제 경찰의 삼엄한 경계를 유유히 따돌린 채, 항일혁명의 큰 뜻을 품은 조선인 청년 혁명가들이 하나둘씩 비밀리에 모였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의 탄압과 착취에 맞서 승리의 그날까지 함께 싸울 것을 굳게 맹세하며, 오랫동안 준비하고 꿈꿔왔던 항일혁명의 전위 조선공산당을 창립했다.   

이들이 조선공산당을 통해 추구했던 항일혁명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으며, 이들이 꿈꾼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가?

첫째, 이들은 제국주의 강대국이 식민지 약소국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상, 즉 민족해방을 꿈꾸었다. 그리하여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전 민족이 단결하여 민족해방투쟁을 벌임으로써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독립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둘째, 이들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 평등한 세상, 즉 계급해방을 꿈꾸었다. 그리하여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전 민중이 단결하여 계급해방투쟁을 벌임으로써 일본 자본주의 약탈 세력을 몰아내고 서민 대중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렇듯 항일혁명가들이 추구한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은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인간해방’이라는 하나의 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두 개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비참하고 열악한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목표이자 전략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당시 일제는 그 어떤 독립운동 세력보다도 사회주의 세력의 확산을 두려워했던 것이며, 치안유지법이라고 하는 악랄한 법률을 만들어 수차례에 걸쳐 조선공산당을 파괴하였고, 수많은 항일혁명가들을 체포하여 잔인하게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혁명가들이 목숨을 잃거나 육체와 정신이 파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이러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6·10만세운동, 신간회 창립, 광주학생독립운동, 원산총파업, 적색노동조합운동, 적색농민조합운동 등을 펼쳐가며 항일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일제 말기 대부분의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변절했지만, 살아남은 소수의 항일혁명가들은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일제에 맞서 투쟁의 외길을 걸었다. 그런 점에서 항일혁명가들은 단지 독립운동의 일부였던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주도한 세력이었으며, 독립운동 최후의 보루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항일혁명가들의 희생과 헌신에 힘입어 마침내 1945년 조선은 해방되었다. 살아서 해방을 맞은 혁명투사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도 잠시, 해방된 조국은 분단되었고, 친일파 반민족세력은 미군정의 비호하에 이전보다 더 큰 부와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친일세력이 항일세력을 탄압하고 숙청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일제가 혁명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치안유지법’은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가 ‘국가보안법’으로 이름만 바꿔 부활했다. 혁명가들은 다시 쫓기기 시작했다. 해방된 조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다시 감옥과 사형장이었다. 이 땅에 정의는 사라졌고, 해방은 없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친일 반민족 세력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자를 옹립하며, 그들의 기득권을 더욱 불려 나갔다. 독재자들은 일제와 마찬가지로 불의하게 획득한 권력을 통해 기득권과 이익을 나누며, 민중의 자유를 억압하고 계급적 불평등을 확대시켜 나갔다. 노동자·농민·서민 대중의 삶은 여전히 서글프고 고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라진 혁명가들을 기억하는 사람,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항일혁명가들이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싸운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워나갔다. 독재 세력에 맞서 사상·언론·출판·집회·결사·파업·선거의 자유를 되찾고자 시위를 벌였고, 공장과 농촌으로 들어가 노동자·농민들과 함께 연대하여 계급적 착취를 타파함으로써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주화운동가들이 체포되어 잔인하게 고문, 학살되고 감옥에 갇혔다.

 

그럼에도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힘입어 1987년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및 민주주의 헌법 쟁취로 대표되는 정치적 민주화와 민주노동조합 결성과 노동자 처우 개선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불평등 개선이라는 값진 열매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 항일혁명가들의 비극적 최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들의 꿈은 당대에서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고, 과거가 현재를 돕는” 역사의 기적을 통해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결국 이 땅에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항일혁명가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다. 비록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었다고는 해도, 한국전쟁의 영향과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남북 대치 상황 및 반공 독재 정권의 영향으로 하루아침에 반공주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해방된 지 무려 50년이 지난 1995년에 이르러 대한민국 정부가 이동휘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함으로써 항일혁명가로서는 최초로 독립유공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1996년에는 이병희, 2002년에는 김사국, 2005년에는 권오상, 권오설, 김단야, 김재봉, 김철수, 김한, 여운형, 조동호, 차금봉, 2006년에는 이재유, 이효정 등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다.  
 
만시지탄이지만 일부 항일혁명가들의 공로를 국가가 뒤늦게나마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은 매우 반갑고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서훈을 받지 못한 항일혁명가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에 유념하여 정부는 친일 반공 후예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당당하게 혁명가들의 이름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2025년 조선공산당 창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 조선공산당 창립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항일혁명가 선열들의 삶을 널리 알리는 작업을 전개해야 한다. 

둘째, 조선공산당 항일혁명이 지난 100년간 과거의 역사에서 갖는 의미와 향후 100년간 현재와 미래에 던져주는 의미를 청년 세대와 공유함으로써 구시대의 케케묵은 역사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살아 숨 쉬는 역사로 이어 나가야 한다. 

이에 우리는 조선공산당 창립 100주년을 맞는 오늘, 항일혁명 정신을 계승하여 인간해방이라는 목표하에 우리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극복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다시 사람답게 사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갈 것을 힘차게 선언한다! 

2025년 4월 17일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