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충주문화회관에서 '신관웅과 재즈 빅 밴드'의 공연이 있는 날. 난생 처음 충주에서 재즈음악 연주실황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인지라 만사 제쳐놓고 공연을 보러가기로 한다. 공연장에 들어가니 관객들이 별로 없다. 다 합쳐도 50여 명이 될까말까.....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재즈 공연의 막이 오른다. 관람석이 텅 비어 있어 연주자들도 흥이 별로 안 날 것도 같은데..... 그나마 신관웅의 유머러스한 사회가 썰렁한 분위기를 덜어준다. 연주자들에게 내가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문화의 고장이라는 충주..... 우리나라의 재즈계의 대부로 불리는 그 유명한 신관웅이 왔는데도..... 충주시민들은 아직 재즈음악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가 보다. 공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람객의 한 사람으로 이렇게까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관웅
신관웅.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라고까지 평가받는 훌륭한 연주가이다. 그는 재즈와 함께 살아온 이 시대의 진정한 재즈뮤지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재즈계의 대부라고 불린다. 어떤 때는 빌 에반스(Bill Evans, 美 작곡가)처럼 내면적이고 서정적인 연주로, 또 어떤 때는 칙 코리아(Chick Corea)처럼 다이내믹하고 파워풀한 피아노 선율로 많은 재즈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전통에 입각한 음악해석을 다양한 연주 스타일로 연주하는 국내 최고의 재즈 뮤지션이다. 또한 고전적이고 서정적인 아르페지오와 다양한 스타일의 즉흥연주로 국내 재즈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한편 그는 국내 재즈클럽 문화를 발전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40여 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재즈 사랑에 매일 밤 라이브 카페에서 멋진 재즈 선율을 선보여 왔다. 그의 이러한 재즈에 대한 고집스런 열정과 사랑이 빅 밴드 무대를 통해 오늘 충주의 재즈 애호가들과 만남의 장을 갖게 된 것이다.
신관웅은 2002년 'Caravan', 'Moon River'가 담긴 'Friends'와 '블루 아리랑', '포시즌 인 서울'이 수록된 'Family' 등 두 장의 음반을 내놓았다. 거의 10년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것이다. '프렌즈'와 '패밀리'는 한국 재즈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설립된 REVE에서 ‘Family& Friends'의 연작으로 내놨다. 이 앨범들은 한국 재즈의 현재를 확인하는 의미있는 작업인 동시에 국내 재즈 뮤지션의 음악성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이 앨범에서는 피아노 솔로에서부터 빅 밴드까지 다양한 재즈 연주를 소화해낸 신관웅의 음악적인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인 드럼주자 김희현, 더블베이스주자 장응규,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 서영은, 이미키와의 협연은 한국 재즈 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신관웅(피아노)과 빅 밴드가 Charlie Parker의 'Now's the time'를 연주하고 있다.
신관웅이 재즈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 것은 음악을 향한 그의 끝없는 실험과 개척정신 때문이다. 트리오, 콰르텟, 퀸텟, 식스텟 등 재즈가 소그룹 앙상블로만 이루어지던 1980년 그는 KBS악단 단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동료, 후배들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초로 빅 밴드를 결성한다. 그리고 전통음악이 홀대받던 시절 '아리랑 블루스'를 발표해 국악과 재즈의 접목을 시도한다.
특히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은 라이브 무대에서 빛을 발한다. 다른 재즈 1세대 재즈인들처럼 그도 역시 재즈 클럽 연주를 통해 성장했다. 그의 클래시컬하고 서정적인 아르페지오와 청중을 압도하는 재즈 라이브는 국내 재즈 클럽 문화를 발전시켜온 견인차 역할을 했다. 소수 애호가들만의 음악이던 재즈는 이제 대중음악이 되었다. 그러나 '재즈는 클래식입니다. 다만 클래식 연주가 작곡자 중심이라면 재즈는 연주자 중심입니다. 작곡자가 일단 테마만 던져 주면 나머지, 리듬을 바꾸고 애드립을 넣고 하는 것은 전부 연주자의 몫입니다'라는 그의 말속에는 재즈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있다. 젊은 재즈인들이 퓨전 재즈에 몰입하는 것과는 달리 신관웅이 전통 재즈를 지켜온 것과 맥을 같이 하는 말이다.
재즈곡의 경우 악보가 없다. 빌 에반스 정도 되면 악보집이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페이크 북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개 멜로디만 적혀있고 애드립부분은 코드만 나와있는 경우가 많다. 재즈라는 것이 악보나 형식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치는 음악이기에 그런 것이다. 우리가 보는 재즈 악보는 음악이 나온 뒤 누군가가 채보를 한 것이다.
*Tequila를 연주하고 있는 신관웅과 조성덕(베이스)
세번째로 들려준 연주곡목은 Chuck Rio의 'Tequila'. 연주 중간에 신관웅이 ‘떼낄라’라고 외치면서 흥을 돋우자 관객들도 재즈 음악의 흥겨움에 빠져든다.
최근 재즈계에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현상은 Big Band Jazz의 본격적인 부활이다. 클래식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하고 장엄한, 그러면서도 감동적인 빅 밴드의 Sound의 출현은 재즈 애호가들의 필연적인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재즈 빅 밴드는 초기의 소편성을 확대하여 수십명으로 편성된 오케스트라 재즈를 말한다. 주로 댄스 홀에서 연주되었기 때문에 댄스 밴드라고도 한다. 빅 밴드는 편곡에 의해 악단이 각기 다른 색깔을 보이기도 하고 뛰어난 솔로 주자가 유명세를 타는 경우가 많다. Fletcher Handerson Band(플레처 핸더슨 밴드), Duke Ellington Band(듀크 엘링턴 밴드), Benny Goodman Band(베니 굿맨 밴드) 등이 빅밴드로 유명한 뮤지션들이다.
빅 밴드가 부활했다고 해서 1930년대 스윙시대의 댄스곡으로 되돌아간 것은 아니다. 반면 의욕적인 편곡과 악단 자신들의 독특한 취향을 담은 감상을 촛점으로 하는 밥 이디엄을 가미해 유럽 현대음악 작곡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1990년대식 빅 밴드이다. 이런 빅 밴드의 부활 열풍을 반영이라도 하듯 Gene Harris, Duke Ellington Jr,Toshiko Akiyoshi, Winton Marsalis, Claude Boling 등의 Big Band가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 한국 재즈음악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신관웅이 이끄는 빅 밴드는 1995년 한국 페스티발 앙상블 창단공연을 계기로 연 20회 이상의 공연과 TV 출연으로 재즈 애호가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신관웅과 재즈 빅 밴드는 단원 모두 한국 재즈음악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정통 재즈곡과 함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재즈곡들도 연주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이어진 재즈 넘버는 Duke Ellington의 Take the 'A' train. 듀크 엘링턴은 미국의 작곡가이며 밴드 리더 겸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재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며 플레처 헨더슨, 돈 레드먼과 더불어 스윙 시대를 열었던 빅 밴드 재즈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재즈의 역사에서 듀크 엘링톤의 위치는 고전음악에 있어서 베토벤이나 모짜르트에 비유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곡은 엘링턴과 함께 일했던 음악가가 쓴 것이다. 피아니스트이자 편곡자였던 빌리 스트레이혼이 바로 이 'Take the 'A' Train'을 쓴 주인공이다.
*신관웅과 빅 밴드가 Sonny Rollins의 'ST. Thomas'를 연주하고 있다.
다음에 들려주는 곡은 Sonny Rollins의 'ST. Thomas'. 이 곡은 테너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스의 1956년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재즈 애호가들이나 평론가들, 권위있는 재즈 잡지로부터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는 명작이다. 하나의 혼과 세 개의 리듬 섹션이 만들어내는 명확한 멜로디의 즉흥연주는 안정적인 느낌을 받는 테너 색소폰 쿼텟의 가장 이상적인 사운드라고 할 수 있다.
재즈 역사에서 큰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을 들자면 Louis Armstrong, Duke Ellington, Thelonious Monk, John Coltrane, Sonny Rollins 등이다. 이들 중 Sonny Rollins만 유일하게 지금도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1930년 New York 출생. 1949년 be-bop vocalist인 Babs Gonzalez의 사이드맨으로 데뷔했다. 1955년까지는 주로 Bud Powell, Charlie Parker, Clifford Brown 등의 사이드맨으로 활동을 한다. 그는 한때 마약중독에 빠지는가 하면, 5개월간에 걸친 인도여행, 자신의 음악에 부족함을 느끼고 세인들로부터 두 번에 걸쳐 잠적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Williamsburg 다리 위에서 섹소폰 연습을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잠적생활 이후 그는 음악의 방향을 Bop스타일로 바꾸게 된다.
다시 신관웅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그는 재즈계의 쇼팽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빌 에반스의 작품 'Waltz For DEBB', 'My Romans', 'Someday My Prince Will Come' 그리고 칙 코리아의 'Spain' 등을 아낀다. 그는 이 두 사람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칙 코리아처럼 다이내믹한 면이 있는가 하면, 빌 에반스처럼 가슴을 울리는 서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명지대 경영학과를 다녔지만, 경제학 서적 대신 음악서적만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미8군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되면서 재즈와 만난다. 재즈는 하모니, 멜로디, 리듬 등 음악의 3요소에 있어서 클래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을 보고 눈이 확 뜨인다. 이때부터 그는 재즈에 몰두한다. 청계천을 구석구석 뒤지며 재즈판을 구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다. 어렵사리 구한 재즈판이 너무 낡아 전축에 걸면 미끄러져 내리곤 했다. 재즈 교본도 없었다. 어쩌다 재즈 교본을 얻게 되면 밤새 일일이 베꼈다. 처음 구한 재즈판은 맹인 피아니스트 조지 셰링의 것이었다. 셰링의 연주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4성(聲)으로 멜로디를 치는 스타일이었다. 이를 일컬어 '셰링 스타일' 또는 '셰링 사운드'라고 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초반 무렵의 국내는 재즈음악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는 연주자, 관객, 무대 등 아무 것도 없었다. 따라서 재즈연주만으론 생활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재즈 뮤지션끼리 만나면 언제나 즐겁고 행복했다. 물론 함께 연주도 했다.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그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동지의식도 생겨났다. 1978년 재즈 카페 '야누스'의 출현은 재즈 뮤지션들에게는 진실로 커다란 경사였다. 재즈 뮤지션들만의 전문 연주무대..... 그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다.
신관웅은 그간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한다.
'빅 밴드에서 가장 큰 문제가 편곡입니다. 과거 카운트 베이시나 듀크 엘링턴 모두 전문 편곡자를 뒀지요. 딱히, 마땅한 편곡자도 없구요.'
세계적 재즈 뮤지션들의 한국 방문소식을 듣고 그는 한국 재즈계의 발전을 보는 것 같아 기쁘다.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 매코이 타이너, 토시키 아키요시, 클렝드 볼링, 트럼펫 연주자 윈톤 마살리스와 히노 데루마사, 섹소폰 연주자 에릭 매리엔탈, 그리고 보컬리스트 다이안 슈어와 토니 베넷 등이 그들이다.
현재 서울예술대 실용음악과와 서울고등 음악원에 출강하고 있는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재즈에 대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재즈 연주는 인생 철학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주자가 인격체라야 합니다.'
*Louis Prima의 Sing sing sing을 연주하고 있는 신관웅과 빅 밴드
오늘 공연의 마지막 재즈 넘버는 Louis Prima의 Sing sing sing. 일본의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만든 영화 'Swing girls'에도 나오는 음악이다. 이 영화는 빅 밴드 재즈를 하게된 여학생들(남학생 한 명이 비록 밴드에 끼어 있지만)의 이야기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여학생들은 어쩔수 없이 재즈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재즈연주를 하면 할수록 재미를 느끼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는다. 빅 밴드를 하면서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되지만 결국 그러한 어려움들을 하나하나 극복해 가면서 진정으로 재즈음악을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마지막 조명이 꺼지면서 드럼연주부터 나오는 재즈음악, 그 음악이 바로 '싱 싱 싱'이다.
1960년대 라디오 프로그램 '한 밤의 음악 편지'의 시그널 음악 'I want Some Loving', 영화 '형사 매드 독'에 자주 나오는 경쾌한 음악 'Just A Gigolo(I Ain't Got Nobody)'도 루이스 프리마의 작품이다.
'싱 싱 싱'을 마지막으로 오늘 재즈공연은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재즈음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어찌 앵콜을 청하지 않을 수 있으랴! 관람석에서 앵콜을 연창하자 신관웅이 재즈 한곡을 더 들려준다. 몇 사람 모이지도 않은 공연에서 신관웅과 빅 밴드는 나름대로 열심히 재즈연주를 들려 주었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또 오리라. 재즈연주의 선율을 가슴에 담은 채 공연장을 나오다.
2005년 9월 8일
I Want Some Lovin - Louis Prima
'문학 예술 영화 오딧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중미술인들과의 만남 (0) | 2006.05.27 |
---|---|
'여보 나 힘들어' 박경남 작가와의 만남 (0) | 2006.01.25 |
충주시립우륵국악단 여름밤의 음악무대 2 (0) | 2005.12.02 |
산내 박정숙(朴貞淑) 서예전 (0) | 2005.11.23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찰나의 거장전' 3 (0) | 2005.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