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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인들과의 만남

林 山 2006. 5. 27. 17:11

오늘은 남양주 덕소에서 장경호 작가와 또 한 사람의 공동 작업실을 여는 날이다. 민중미술계의 중견작가인 이재민 작가로부터 개소식 초대를 받아서 덕소로 향한다. 덕소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때가 다 되었다. 덕소역에는 이재민 작가와 역시 민중미술계의 선두주자 중의 한 사람인 안창홍 작가가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수인사를 나눈 다음 이재민 선생의 안내로 한적한 시골에 자리잡은 작업실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박불똥, 박 건, 최경태 작가도 보인다. 좌중은 이미 질펀한 뒷풀이에 들어가 있다.

 

문화예술인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신선하면서도 즐겁다. 그들은 하나의 주제나 화두를 붙잡고 늘 새로우면서도 의미있는 작업을 해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문화예술인들의 삶을 접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깨달음 이상의 것을 준다. 문화적 충격이라고나 할까? 나아가 그들의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오늘 이 자리에는 한국의 민중미술계의 내노라하는 작가들이 많이 참석한 것 같다. 한국 역사와 사회발전을 위해 미술을 통해서 치열하게 참여했던 민중미술인들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예술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미술은 분명 한국미술사 나아가 한국사에 있어서 커다란 한 획을 그었다. 오늘 모인 이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인 것이다.  

 

마침 작업실 한켠에서는 어느 작가의 미발표 작품들을 슬라이드로 보여주고 있다. 굉장한 내공이 담긴 작품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외설과 예술을 넘나드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은 한국의 현실로 볼 때 공개된 장소에서는 절대로 전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애의 장면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다는 느낌이랄까..... 작가는 한국사회에 드리워진 성에 대한 금기들을 통쾌하게 깨버리려는 의도로 이 작품들을 제작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실정법에 도전하는 이런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크나큰 행운이랄 수 있다.

 

얼마 전 최경태 작가의 전시회에 걸린 작품들이 외설시비에 휘말려 작품들이 검찰에 압수되고 재판까지 받았던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압수한 그의 작품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최경태 작가의 그 작품들을 나는 사진을 통해서 본 적이 있다. 내가 볼 때는 그런 정도의 그림들은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나중에 한국사회가 보다 개방된 사회가 되었을 때 최경태 작가의 그림들은 문제가 전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검찰이 그의 작품들을 소각해 버렸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작품은 일회성이기에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화가들은 생전에 인정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최경태 작가가 나중에 대가로 인정받았을 때, 검찰이 불태워버린 그의 그림들은 크나큰 문화적 손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자리를 파하고 숙소로 향한다. 작가들과 주거나 받거니 마신 술에 취기가 약간 오른다. 마을 앞 국도에서 덕소읍내로 나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그 때 마침 렉스턴 지프차가 다가와 멈춘다. 이곳은 시골이라 택시를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하면서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나중에 혹시 보담할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명함 한 장을 받아둔다. 보성엠아디주식회사에 근무하는 이홍철 부장이란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그는 북한강이 환하게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모텔까지 데려다 주고는 떠났다. 커피 한 잔이나마 대접하려고 했는데 극구 사양하면서.....  

 

*숙소에서 바라본 한강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드넓은 한강..... 피어 오르는 물안개..... 파릇파릇한 강변의 새싹들..... 고려의 시인 정지상의 '雨歇長堤草色多.....'로 시작되는 시가 저절로 떠오른다. 아! 어쩌면 저리도 풀빛이 고울까!
 

*숙소에서 바라본 한강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갯버들 가지에도 연초록색의 잎이 피어나고 있다. 고기잡이 돛단배 한 척만 떠 있으면 그야말로 진경 산수화가 따로 없겠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은 소리없이 흐르고 내 마음도 따라서 속절없이 흐른다.

 

이재민 작가와 덕소역에서 만나 안창홍, 박 건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양평으로 향한다. 이왕 온 김에 두 작가의 작업실을 보려 함이다. 이재민 작가는 나를 위해서 직접 운전을 해주고 여러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들려 준다. 그의 친절하고 따뜻한 환대에 고마운 마음 한량없다.   
 

*양평에 있는 안창홍 작가의 작업실

 

경춘가도는 휴일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의 차량들로 붐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지나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선다. 물이 제법 많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자 아담한 산을 등지고 자리잡은 안창홍 작가의 작업실이 나타난다. 마침 작업실 밖에서 개들을 보살피고 있던 안창홍 작가가 반갑게 맞아준다.  
 

*안창홍 작가와 함께

 

안창홍..... 그는 이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작가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태동한 민중미술계의 대표적인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안창홍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강요배·김호석·박불똥·손장섭·손상기·신학철·오경환·오윤·임옥상·전수천·정복수·홍성담 등과 더불어 민중미술 1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이재민 작가는 안창홍 작가를 한국 최고의 작가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안창홍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이재민 작가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창홍 작, 화가의똥, 천+아크릴릭, 97X194cm,1999

 

안창홍 작가의 작업실로 들어가자 그 유명한 '똥'이라는 그림이 눈에 확 띈다. 그리고 '얼굴' 연작들도 몇 작품 있다. 안창홍 작가의 '얼굴' 연작을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또 무서우면서도 서글프다. 그의 그림은 결코 편안하지가 않다. 그러면서도 아름답다. 어떤 사람은 그의 그림을 두고 '공포스러운 상상력에서 끔찍한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화가다.'라고 평하고 있다. 안창홍 작가가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주제는 아마도 '인간과 죽음'이라는 화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막상 사람을 보면 그림에서 받았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본 안창홍 작가는 점잖고 인자한 사람이다. 그런 만큼 그의 내공이 상당하다는 말이겠다.
 

*이재민 작가와 함께

 

이재민 작가는 동료들로부터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체육선생님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몸이 좋고 건강미가 철철 흘러 넘치기 때문이리라. 이젠 그도 민중미술계의 중진이다. 이재민 작가는 여섯 번의 개인전과 60여회에 이르는 단체전을 통해서 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특히 2005년 12월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던 그의 제6회 개인전은 평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재민 작, 아픔, 2, 2005

 

화가이자 전시기획자인 장경호는 이재민 작가의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들에 대해서 '이재민은 아마도 그 자신 우리 사회의 일면으로 틈입하여 불온한 꿈을 꾸는 분열적(?) 매개자'라고 평하고 있다.
 

*양평에 있는 박 건 작가의 작업실

 

박 건 작가의 작업실은 안창홍 작가의 작업실로부터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전에는 이 마을의 마을회관이었다고 한다. 집 바로 앞에는 실개천이 돌아 나가고, 산발치에는 작고 하이얀 조팝나무꽃이 피어나고 있다. 보라색 자목련꽃도 활짝  피어 있다. 마침 이보영 선생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있던 박 건 작가가 반갑게 맞아 준다.
 

*박 건 작가와 함께

 

박 건 작가는 현재 성암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상업미술과 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박 건 작, 자화상

 

박 건 작가는 1980년대부터 화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지금까지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13회에 걸쳐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이러한 창작활동을 통해서 그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는 '나의 삶, 이웃의 삶, 우리 민족의 삶을 통해 사회구조를 밝혀 나가고 그 속에 드러나는 허상과 모순들을 들추어 내고 개인의 진실된 모습을 이야기하려 한다'는 그의 말 속에 잘 드러나 있다. 화가이자 아트디렉터인 전준엽은 박 건 작가에 대해서 '박 건의 작품에서 우리는 미술의 새로운 세계와 우리 자신의 상실 그리고 웃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확실히 우리 시대의 귀중한 작가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안창홍, 박 건, 이재민 작가와 이보영 선생과 함께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서울로 떠났다. 난타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공연시간이 빠듯해서 서울까지 이재민 작가가 차로 태워다 주었다. 이재민 작가는 일박이일 동안 많은 후의를 베풀어 주었다. 이 고마움을 언제 갚을 수 있을런지..... 난타공연을 보고 약간 실망감을 안은 채 공연장을 떠났다. 타악연주에 코믹한 이야기를 겻들인 형식이었는데,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악연주를 문화적 상품으로 만든 것까지는 좋은데 조금은 가볍다는 느낌이다.

 

충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피곤한 나머지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벌써 충주에 거의 다 왔다. 이틀간에 걸친 예술인들과의 만남과 공연관람을 위한 이번의 여행은 너무나 좋았다. 앞으로 좀더 자주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2006년 4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