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버그(Johanesburg, 이하 Joburg, 조벅)의 서남쪽 교외 사우스데일(Southdale)에 있는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Apartheid Museum)을 관람하는데 오전 한나절이 다 지나갔다. 사우스데일에서 포웨이스(Fourways) 데인펀 골프촌(Dainfern Golf Estate)으로 돌아와 오후 내내 휴식시간을 가졌다.
저녁 때는 포웨이스에 있는 몬테카지노(Montecasino) '더 떼아트로(The Teatro)'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라이온 킹(Lion King)'을 보려고 예매를 해놓았다. 저녁식사는 여동생 가족을 초대해서 몬테카지노에 있는 중화요리 레스토랑 '마르코 폴로(Marco Polo, 중국명 麗苑)'에서 하기로 하였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그동안 여러 가지로 보살펴 준 여동생 부부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저녁이라도 한 끼 내고 싶었던 것이다.
몬테카지노는 데인펀에서 가까운 거리여서 금방 도착한다. 이탈리아의 고성을 본따서 지은 몬테카지노는 대규모 위락시설로 내부에는 인공 하늘이 조성되어 있다. '일 그란데(Il Grande)' 극장은 전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또 카지노와 스케이트장이 있다. 몬테카지노는 2006년에 남아프리카 최고의 오락단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단지 안에는 6개의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광장이 있으며, 최고급 호텔도 있다. '더 떼아트로'는 현재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극장이다.
웨이트리스의 안내로 카지노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노천 테이블로 안내한다. 먼저 마파두부와 몬테카지노 갈비, 탕수육, 청경채, 시즐링 비프(Sizzling beef), 새우튀김 등 청요리 몇 가지를 맛본 다음 새우볶음밥으로 식사를 하였다. 부모님과 어린 조카들도 맛있게 먹는다. 저녁식사 후 여동생 부부는 부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고, 아들 정하와 함께 떼아트로로 향한다. 극장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 로비에서 프로그램 화보 한 권을 샀다.
몬테카지노 떼아트로
뮤지컬 라이온 킹 포스터
뮤지컬 라이온 킹을 보러 온 관객들
막이 오르기 직전의 극장 풍경
좌석수가 1900석이라는 극장은 관객들로 이미 꽉 찼다. 관객들의 대부분은 백인들이다. 흑인들도 더러 보이는데, 나같은 황인은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무대 바로 앞에는 오케스트라 연주석이 마련되어 있고, 그 양쪽 옆 2층에는 타악기 연주석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이 뮤지컬에서는 타악기 연주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프리카 음악 하면 '둥둥둥둥둥.....' 소리와 함께 먼저 타악기가 떠오르지 않던가!
조명이 꺼지면서 무대의 막이 천천히 오른다. 아프리카 전통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객석 뒤쪽에서 나와 장대에 매달린 새의 인형을 휘날리며 객석 사이를 휘젓고 다니다가 무대로 올라간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면서 뮤지컬 '라이온 킹'의 세계로 빠져든다. 무대는 아침 해가 떠오르는 아프리카 대륙의 광대한 사바나다.
Circle of Life(생명의 순환)
라피키
프라이드 록으로 모여드는 동물들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프라이드 록의 동물들
프라이드 록에 올라가 무파사와 사라비 앞에서 심바를 들어올리는 라피키
눈부신 태양이 장엄하게 떠오르는 사바나의 아침에 현명하고 나이 많은 원숭이 라피키(Rafiki)는 '난~츠 잉고냐마~바키씨 바바(Nants ingonyama bakithi Baba=Here comes a lion)'로 시작되는 생명의 순환을 찬미하는 노래(Circle of Life)를 부르면서 프라이드 록(Pride Rock)의 동물들을 불러 모은다. 그녀는 사자왕 무파사(Mufasa)와 왕비 사라비(Sarabi)에게 경의를 표하고, 큰 바위에 올라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새로 태어난 왕자 심바(Simba)를 들어 올린다. 모든 동물들은 미래의 왕의 탄생을 축하한다.
스카
그러나 무파사의 동생 스카(Scar)는 심바의 탄생을 달가와하지 않고 불만을 품는다. 그는 새 왕자에 대한 적개심을 품은 채 무파사의 참모인 코뿔새 자주(Zazu)를 공격한다.
라피키의 나무
한편 라피키의 나무(Rafiki's Tree) 나무 밑에서 라피키는 정령들을 불러 모아 새 왕자의 이름인 심바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나무 줄기에다가 심바의 그림을 그린다.
빛으로 넘치는 사자왕국 프라이드랜드(Prideland)에 평화로운 시간이 흐른다. 심바가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덧 개구장이 새끼 사자가 되었을 때, 무파사는 아들을 데리고 프라이드 록으로 올라간다. 거기서 두 부자는 장차 심바가 다스릴 프라이드랜드 왕국을 내려다 본다. 무파사는 모든 생명은 절묘한 자연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명의 순환(the Circle of Life)' 철학을 가르친다. 그는 심바에게 '사자도 죽으면 풀로 돌아가고, 그 풀을 초식동물이 먹으며, 그 초식동물을 사자가 먹는다. 모든 생명은 이와 같이 돌고 도는 위대한 순환의 연속이다. 왕은 생명의 순환원리를 이해하고,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심바에게 절대로 프라이드랜드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자주
자주는 무파사에게 프라이드랜드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보고(The Morning Report)하러 온다. 그러나 심바는 장난만 치려고 한다. 하이에나들이 프라이드랜드 국경을 넘어서 가로질러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자 무파사는 즉시 그곳을 떠난다.
스카는 호기심이 많은 조카에게 프라이드랜드 국경 너머에 있는 금지된 땅인 코끼리 묘지(Elephant Graveyard)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Lioness Hunt(암사자의 사냥)
암사자의 사냥 장면
프라이드랜드의 암사자들 속에서 장난을 치다가 쫓겨난 심바(Lioness Hunt)는 가장 친한 친구인 나라(Nala)를 찾아가 숙부 스카로부터 들은 미지의 신비한 장소를 탐험하자고 제안한다. 엄마 사자들은 자주를 보호자로 삼아서 함께 가도록 허락한다.
심바는 나라와 함께 마침내 금단의 장소에 발을 들여 놓는다. 심바가 나라에게 장차 그의 왕국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대해 너무나도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바람에 그들은 자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잠이 든다.
심바와 나라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코끼리 묘지를 탐험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자의 지배를 달가와하지 않는 반자이(Banzai), 셴지(Shenzi), 그리고 에드(Ed)라는 세 마리의 하이에나! 자주는 심바와 나라에게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렇지만 너무 늦었다! 그들을 빙 둘러싼 세 마리의 굶주린 하이에나들은 먹이감을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본다(Chow Down). 위기일발의 순간 무파사가 나타나 하이에나들을 물리치고 아들을 구한다. 사자왕은 심바를 데리고 나라, 자주와 함께 프라이드랜드로 돌아온다.
They Live In You(그들은 네 안에 살아 있다) |
나라를 위험에 처하게 하고 그 자신도 잡아먹힐 뻔했던 심바에게 실망한 무파사는 미래의 왕으로서 해서는 안될 행동을 했다고 꾸짖는다. 의기소침해진 심바는 무파사에게 자신도 아버지처럼 용감한 사자가 되려고 노력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무파사는 아들에게 용감한 것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가르친다.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살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무파사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과거의 위대했던 왕들이 저 별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저 별들은 언제나 너를 인도해 줄 것이다. 그들은 너의 마음 속에 살아 있다.'고 말해 준다(They Live In You).
Be Prepared(대비하라)
코끼리 묘지로부터 물러난 세 마리의 하이에나들은 무파사의 공격으로 입은 상처를 핥고 있다. 그때 스카가 나타나 무파사가 죽은 뒤 스카가 새로운 사자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한다(Be Prepared). 스카의 명령을 받은 하이에나들은 무파사의 왕국을 빼앗으려는 음모를 세운다.
한편 자주는 무파사에게 심바의 행동에 대해서 어릴 때는 누구나 다 그런 것이라고 두둔을 하면서, 사자왕도 어린 시절에는 고집불통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어느 날 스카는 '아버지가 너에게 줄 선물이 있다.'는 거짓말로 심바를 협곡으로 유인한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심바를 홀로 남겨 놓은 채 몰래 자리를 뜨면서 스카는 하이에나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스카의 신호에 따라 하이에나 세 마리는 누우떼를 몰아대기 시작한다. 누우떼가 번개처럼 협곡으로 들이닥치자 심바는 온 힘을 다해 도망친다.
심바가 함정에 빠졌다고 스카가 알려 주자 무파사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협곡으로 달려간다. 무파사는 한달음에 협곡으로 뛰어올라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던 심바를 구하고 자신은 누우떼에 깔리고 만다. 부상을 입은 무파사는 안전한 곳으로 피하기 위해 바위벼랑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스카는 벼랑에 매달려 도움을 청하는 무파사의 팔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찌르면서 귓속말로 '왕이여, 만수무강하소서(Long live the king).' 하고 속삭인다. 그리고는 무파사를 누우떼 속으로 던져버린다.
먼지가 사라지고 나서 심바는 무파사의 시체를 발견한다. 이때 스카가 나타나 '너만 이곳에 없었다면 네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차갑게 말하면서 무파사의 죽음이 심바의 잘못 때문이라고 믿게 한다. 그는 심바에게 프라이드랜드를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심바는 슬퍼하면서 프라이드랜드를 떠난다. 스카는 세 마리의 하이에나에게 심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게으른 하이에나들은 심바를 놓치고 스카에게는 그 사실을 비밀로 한다.
프라이드 록의 라피키와 암사자들은 사자왕의 죽음을 애도한다(Eulogy). 그들은 또 심바도 죽었다고 믿는다. 스카는 하이에나들과 함께 프라이드 록에 올라가 거만한 태도로 왕좌에 앉는다(Be Prepared Reprise).
라피키의 나무에서 라피키, 사라비, 그리고 나라는 외로이 남겨진 채 애도의 노래를 부른다. 라피키는 나무에 그려진 심바의 그림을 지운다. 어린 왕자와 함께 희망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Hakuna Matata(하쿠나 마타타)
심바와 품바, 티몬
프라이드랜드로부터 도망치다가 지친 심바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에 쓰러지자 대머리수리들이 그를 먹으려고 달려든다. 이때 재치있는 미어캣 티몬(Timon)과 대범한 혹멧돼지 품바(Pumbaa)가 나타나 새들을 하늘로 쫓아 버린다. 티몬과 품바는 심바를 정글로 데려와 친구로 맞아들인다. 티몬과 품바는 그들의 낙관론적인 삶의 철학인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no worries=걱정할 것 없어)', 즉 골치아픈 지난 일들일랑 모두 잊고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로 심바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이렇게 셋은 기묘한 공동생활을 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심바는 새로운 친구들과 정글에 머물면서 새끼 사자에서 젊은 사자로 성장한다.
One By one(한 사람씩 차례로)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기 전의 막간. 합창단이 객석 뒤로부터 희망에 가득찬 노래(One By one)를 부르며 무대로 나오면서 관객들을 환영한다. 아름다운 새들은 프라이드랜드 하늘 높이 날아다닌다. 그러나 노래가 끝날 때쯤 가젤의 해골과 대머리수리가 나타나자 새들은 사라진다. 스카의 통치하에 있는 프라이드랜드는 점점 무미건조하고 활기가 사라진다. 그가 생명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탓이다.
스카는 죄수로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된 자주에게 왕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백성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한다고 불평한다. 그는 무파사에 대한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늘 불안해 한다. 그래서 그의 자식을 가짐으로써 영원한 왕국을 보장받으리라는 결심을 한다. 프라이드랜드가 점차 황폐화되어 가고 있는 것에 대해 항의하려고 온 나라를 본 스카는 그녀가 아름다운 처녀 암사자로 성장했음을 알아차린다. 스카가 강제로 나라를 취하려고 하자 그녀는 도망친다.
Shadowlands(미지의 땅) |
나라는 스카에게 순종하기보다는 차라리 집과 프라이드랜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길을 떠나면서 그녀는 그녀의 가족과 프라이드랜드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Shadowlands). 그녀는 황폐해진 프라이드랜드를 예전의 평화로운 왕국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도움을 구하려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라피키는 떠나는 나라에게 행운을 빌어 준다.
한편, 심바는 티몬과 품바를 이끌고 쉴 곳을 찾아 온 정글을 헤맨다. 티몬과 품바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자기를 원하지만 심바는 계속 이동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젊은 심바는 두 친구에게 장난조로 껑충껑충 뛰어오르면서 혈기방창한 청춘을 느끼기 시작한다. 심바가 강으로 뛰어들자 티몬도 그를 뒤따른다. 미어캣은 물살이 빠른 강에 빠져 떠내려가다가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 위의 나뭇가지에 걸린다. 밑에는 악어들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바는 그의 친구가 위험에 처한 광경을 보고는 갑자기 그 옛날 무파사가 떨어져 죽는 광경이 떠올라 꼼짝도 할 수 없다. 티몬은 손에 힘이 빠져서 그만 강물로 떨어지고 만다. 심바는 악몽을 떨쳐내고 티몬을 돕기 위해 강가로 달려간다. 티몬은 젊은 사자의 무모함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
Endless Night(끝없는 밤) |
어느 날 티몬과 품바, 심바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심바는 과거의 위대한 왕들이 하늘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무파사의 말을 기억해낸다. 물론 티몬과 품바는 그 이야기를 알 리 없다. 심바는 홀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의 아버지 무파사가 언제나 그를 위해 거기에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떠올린다(Endless Night).
라피키의 나무 뒤에서 라피키는 바람에 실려오는 심바의 노래소리를 듣고 '그가 살아 있다(He's alive!).'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나무에 주술을 걸어서 심바의 영을 불러내자 나무등걸에 갈기가 긴 성년 사자의 상이 나타난다.
심바와 나라
품바가 정글로 들어오자 낯선 암사자 한 마리가 그를 뒤쫓는다. 심바가 그들 사이에 나타나자 두 사자는 서로 싸운다. 암사자가 심바를 톡톡 쳤을 때, 그는 어렸을 적 소꿉친구였던 나라를 금방 알아본다. 나라는 심바가 살아 있음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충격에서 깨어난 나라는 프라이드랜드가 스카의 악정으로 황폐해졌다는 소식을 심바에게 전한다. 그녀는 또 티몬과 품바에게 심바야말로 진짜 사자왕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심바와 나라는 단둘이 있게 되자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깊이 깨닫는다(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티몬과 품바는 사랑에 빠진 심바를 보고 친구를 잃은 것 같아 안타까와 한다.
나라는 심바에게 반드시 그가 돌아와 프라이그랜드의 왕좌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버지를 죽게 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심바는 프라이드랜드로 돌아갈 결심이 서지 않는다. |
심바에게 소식을 전하는 라피키
무파사의 망령
무파사의 망령을 바라보는 심바
라피키도 정글로 심바를 찾아온다. 라파키로부터 그의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다(He Lives In You)는 말을 듣고 믿지 못하는 심바에게 무파사의 망령이 나타난다. 무파사의 망령은 '너는 나의 피를 물려받은 정당한 왕이다. 너는 너의 왕국에서 생명의 순환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말로 심바를 격려한다. 무파사의 모습이 사라지자 심바는 그의 실수를 알게 되고 프라이드랜드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심바의 출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은 심바는 나라, 티몬, 품바와 함께 황폐하고 헐벗은 프라이드 록으로 돌아온다. 티몬과 품바가 하이에나들의 주의를 끄는 동안 심바는 스카를 찾는다. 스카는 암사자들에게 사냥감을 더 잡아오도록 명령하기 위해 사라비를 부른다. 사라비는 더 이상 사냥감도 물도 없으며, 그래서 프라이드 록을 떠나야 한다고 권한다. 스카는 그 말을 무시하고 사라비를 때린다. 이때 심바가 전광석화처럼 나타난다. 스카는 어린 새끼 사자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두 눈을 의심한다.
스카와 대결하는 심바
심바와 나라, 그리고 암사자들이 스카와 하이에나들을 막아서자, 스카는 심바의 잘못으로 사자왕이 죽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자들 앞에서 실토하라고 강요한다. 스카는 벼랑 끝에 있는 심바의 뒤로 돌아가 귓속말로 '무파사는 내가 죽였다.'고 속삭인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심바는 스카의 목을 움켜쥐고 다른 사자들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다그친다. 한편 나라와 라피키, 티몬, 품바는 힘을 합쳐 하이에나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마침내 심바는 프라이드 록 정상에서 심바와 맞대결을 벌인다. 스카는 심바에게 모든 일은 하이에나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변명하면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걸한다. 심바는 스카에게 이곳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 마지막 순간 스카는 비열하게도 심바를 다시 공격한다. 용케도 공격을 잘 피한 심바는 스카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프라이드 록 밑으로 떨어진 스카를 굶주린 하이에나들이 둘러싼다.
동녘에서 찬란한 해가 떠오를 때, 심바의 친구들은 새로운 왕의 등극을 선포하면서 앞으로 나온다. 라피키는 심바와 포옹을 한 뒤 왕의 망토를 입혀서 위엄을 갖추게 한다. 프라이드 록 정상에 올라간 심바의 우렁찬 포효가 온 천지에 울려 퍼진다. 프라이드 록에 모인 모든 동물들은 심바의 승리를 축하하면서 그의 부름에 화답한다(King of Pride Rock).
The Circle of Life(생명의 순환)
나라도 심바의 옆에 나란히 선다. 라피키는 심바와 나라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 사자를 들어올려 모두에게 보여 준다. 모든 동물들은 축하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The Circle of Life).
Musical Lion King Finale(피날레)
질서와 평화를 되찾은 심바의 왕국에는 생명의 힘이 넘친다. 프라이드랜드의 동물들은 모두가 함께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 노래와 춤이 끝나면서 막이 내리고.....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Musical Lion King Curtain Call(커튼 콜)
커튼 콜
막이 다시 올라가면서 출연자들이 한 사람씩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그럴 때마다 박수와 함께 함성소리가 터져나온다. 마침내 막이 내리고..... 뮤지컬 '라이온 킹'은 끝이 났다.
'라이온 킹'은 동물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에게 어떤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뮤지컬은 아버지의 지혜가 대를 이어 아들에게 전달되는 생명의 순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라는 인류 역사 이래의 보편적 가치도 보여 준다. 그러나 주제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라이온 킹'은 은근슬쩍 전제왕조정권 시대의 봉건적 가부장제의 낡은 가치관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바로 이것이 이 뮤지컬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작품의 주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 '햄릿'처럼 '라이온 킹'도 '외디푸스 컴플렉스'라는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라이온 킹'은 일본의 데즈카 오사무 원작 애니메이션 '정글대제(국내명=밀림의 왕자 레오)'를 표절했다고 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표절논란과 모티브의 차용, 진부하고 상투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라이온 킹'은 재미있다. 이 뮤지컬을 재미있게 만드는 캐릭터는 바로 혹멧돼지 품바와 미어캣 티몬이다. 이 두 캐릭터의 철학인 '하쿠나 마타타'는 뮤지컬에 코메디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한다. 화려하고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코러스, 현란한 타악기 연주, 정교한 무대장치, 실감나게 재현한 각종 동물의 가면과 인형도 재미를 더해 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라이온 킹'이 아프리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공연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것은 '라이온 킹'이 아프리카 대륙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라이온 킹'은 미국의 디즈니사에 의해 애니메이션과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디즈니가 누군가! 만드는 작품마다 재미와 감동으로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는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아니던가! 디즈니나 헐리우드의 흥행공식은 한 마디로 현란한 볼거리, 강렬한 사운드, 잔잔한 감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흥행공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것도 불사한다. 따라서 그들이 만든 작품의 밑바닥에는 철저하게 자본주의가 관철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반 서민들은 엄두도 못낼 비싼 입장료가 바로 그 증거다.
아이린 메키
'라이온 킹'은 사실 뮤지컬보다 1994년에 애니매이션이 먼저 만들어졌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32번째 작품인 이 영화의 각본은 조나단 로버츠(Jonathan Roberts)와 아이린 메키(Irene Mecchi)가 함께 썼다. 조나단 로버츠는 미국의 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TV 프로듀서이다. 그가 쓴 작품에는 '라이온 킹', '몬스터 주식회사(Monsters, Inc. 2001)' 등이 있다.
아이린 메키는 미국의 TV와 영화, 신문, 브로드웨이 등에서 종횡무진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다. 그녀는 1992년 3월 하워드 베이커(Howard Baker)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리사이클 렉스(Recycle Rex)'의 대본을 쓰면서 디즈니와 작업하기 시작했는데, 이 단편은 1994년 환경매체상(Environmental Media Award)을 받았다. 아이린은 퓰리처상 수상 컬럼니스트인 허브 케인( Herb Caen)의 저작들을 작업하기도 했으며, 그 후 '라이온 킹', '노틀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 '헤라클레스(Hercules)' 등과 같은 디즈니 영화의 협력작가로 일해 왔다. 그녀는 1999년 ABC TV 방영작 '애니(Annie)'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로저 앨러스 롭 민코프
감독은 로저 앨러스(Roger Allers)와 롭 민코프(Rob Minkoff, 본명 Robert Minkoff)가 공동으로 맡았다. 로저 앨러스는 라이온 킹' 이전에 '애니멀림픽스(Animalympics, 1980)'를 비롯해서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 1989)',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rast , 1991)', '알라딘(Aladdin, 1992)'과 후에 나온 '라이온 킹3(2004)'을 감독했다. 그는 원래 디즈니의 스토리보드 아티스트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이었지만 디즈니와는 별도로 소니사의 애니메이션 '부그와 엘리엇(Open Season, 2006)'을 감독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애니메이션 '올리버와 친구들(Oliver & Company, 1988), '인어공주'의 각본을 썼으며, 또 '미녀와 야수'의 스토리 감독을 맡기도 했다. 2007년 그는 안데르센의 고전동화 '성냥팔이 소녀(The Little Match Girl)'에 대한 해설로 애초부터 짧게 기획된 '판타지아 2006(Fantasia 2006)'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롭 민코프는 만화영화 제작자, 작가, 영화감독 겸 제작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라이온 킹' 이전에 그는 디즈니에서 1988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누가 로저 래비트를 모함했는가(Who Framed Roger Rabbit)'의 단편들 중 '터미 트러블(Tummy Trouble, 1989)'과 '롤러 코스터 래빗(Roller Coaster Rabbit, 1990)'을 포함한 여러 편의 영화에서 감독을 맡았다. 로저 앨러스와 공동으로 '라이온 킹'의 감독을 맡은 이후 그는 '스튜어트 리틀(Stuart Little, 1999)', '스튜어트 리틀 2(Stuart Little 2, 2002)' 등 두 편의 애니메이션과 코미디 판타지 공포영화 '헌티드 맨션(The Haunted Mansion, 2003)'을 만들었다.
민코프는 2008년 3월에 개봉될 예정인 영화 '겟 퍼지'와 4월에 개봉될 예정인 '금지된 왕국: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The Forbidden Kingdom, 중국명 功夫之王)'의 감독을 맡고 있다. '금지된 왕국'은 성룡과 이연걸의 주연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액션물이다.
디즈니사 최초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사용한 '라이온 킹'의 제작에는 무려 6백 명의 애니메이터가 참여하였으며, 기획팀이 3년 동안 아프리카 현지에 가서 자연과 동물을 관찰하고 돌아와 현실감이 넘치는 영상을 만들어 냈다. 이 작품의 압권은 3차원 컴퓨터 그래픽이 빚어낸 수천 마리의 들소떼가 돌진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편을 통해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장면으로 꼽힌다. 목소리 출연도 매튜 브로데릭(Matthew Broderick, 어른 심바)를 비롯해서 제레미 아이언스((Jeremy John Irons, 스카),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 본명 Caryn Elaine Johnson, 하이에나 셴지), 제임스 얼 존스(James Earl Jones, 본명 Todd Jones, 무파사), 모이라 켈리(Moira Kelly, 어른 나라) 등 헐리우드 유명배우들이 동원되었다. 특히 제레미 아이언스는 'Be Prepared(대비하라)'는 노래까지 불렀다. 그 결과 '라이온 킹'은 1994년 LA 비평가협회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으며, 디즈니 & 픽사가 제작한 '니모를 찾아서'가 개봉되기 전까지 최고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기록되었다.
음악은 엘튼 존(Elton John, 주제가 작곡)과 팀 라이스(Tim Rice, 주제가 작사), 한스 짐머(Hans Florian Zimmer), 레보 엠(Lebo M), 마크 맨시나(Mark Mancina), 마틴 어스킨(Martin Erskine) 등 쟁쟁한 실력파들이 맡았다. 한스 짐머는 1995년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팀 라이스와 엘튼 존이 작사 작곡을 맡은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도 1995년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았다. 엘튼 존은 이 곡 외에 'Circle of Life', 'I Just Can't Wait to Be King', 'Be Prepared', 'Hakuna Matata'도 작곡하였다. 그는 이 중 세 곡을 팝 버전으로 편곡해서 직접 부르기도 했다. 싱글로 나온 두 곡 가운데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는 빌보드 싱글 챠트에 23주간 머물며 4위까지 올랐다. 또 이 영화는 1995년 골든글로브 최우수 코미디 음악상도 수상했다.
엘튼 존
'예술적 개인 개성주의'를 대표하는 싱어 송 라이터의 대명사 엘튼 존은 팝 역사상 1970년대 최고의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1947년 영국 미들섹스 주 피너에서 태어난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Reginald Kenneth Dwight)는 4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11살 때는 런던 왕립 음악 아카데미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아카데미에서 클래식 음악교육을 받으면서도 그의 관심을 끈 것은 로큰롤이었다. 레이 찰스를 비롯해서 버디 홀리, 척 베리, 제리 리 루이스 등 초기 미국 흑인 로큰롤 뮤지션들에게 매료된 그는 그룹 블루솔로지(Bluesology)의 멤버로 흑인 소울음악을 연주하면서 10대 나이에 벌써 지방 순회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뛰어난 보컬리스트 롱 존 볼드리(Long John Baldry)가 작곡한 발라드 'Let The Heartaches Begin'은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블루솔로지는 1969년에 해산되고 말았다. 그룹이 해산되자 레지널드는 솔로로 활동하기 위해 이름을 바꾼다. 당시 블루솔로지에는 롱 존 볼드리 외에도 뛰어난 색소폰 연주자 엘튼 딘(Elton Dean)이 있었다. 당시 16살이었던 레지널드는 그보다 나이가 많고 프로 정신이 뛰어났던 이들 두 사람을 존경한 나머지 그들의 이름을 따서 엘튼 존(Elton John)이라는 예명을 만들었다. 1967년 엘튼 존은 리버티 레코드(Liberty Record)사가 낸 광고를 보고 작사가 버니 터핀(Bernie Taupin)을 처음 만나게 된다. 이후 파트너가 된 두 사람은 지금까지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면서 함께 음악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들 콤비는 1970년대 다른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향과 영감을 주었다.
블루솔로지의 해산은 엘튼 존에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는 1969년 1집 앨범 'Empty Sky'를 가지고 솔로로 데뷔한 이후 2집 'Elton John(1970)'을 들고 미국으로 진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2위, 앨범 차트 4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앨범 수록곡 'Your Song'은 영국 대학가 순회공연을 통해서 큰 성공을 거둔 불후의 명곡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노래를 듣고 감동한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은 엘튼 존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는 일화도 있다.
엘튼 존은 1971년 한해동안 'Tumbleweed Connection(앨범 차트 5위)', 뉴욕 실황 앨범 '11-17-70 Live!(앨범 차트 11위)', 싱글 히트곡 'Tiny Dancer'가 실린 'Madman Across the Water', 'Friends(앨범 차트 36위)' 등 넉 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열정을 과시했다. 버니 터핀 등과 공동으로 설립한 자신의 레이블인 로케트 레코드사(Rocket Records)를 통해서 1972년부터 그는 담백한 멜로디를 담은 다소 팝적인 노래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72년에 나온 'Honky Chateau'에 실린 'Rocket Man'과 'Honky Cat'가 각각 싱글 차트 6, 8위에 오르면서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5주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973년에 발표한 앨범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는 앨범 차트 2주간 1위에 오르고, 수록곡 'Crocodile Rock'은 싱글 차트 3주간 1위, 'Daniel'은 싱글 차트 2위를 차지하였다. 같은 해 발표한 앨범 'Goodbye Yellow Brick Road'에 수록된 'Bennie And The Jets'와 타이틀곡 'Goodbye Yellow Brick Road'는 싱글 차트에서 각각 1,2위에 올랐다. 이 앨범 타이틀곡은 아직도 세인들의 사랑을 받는 명곡이다.
1974년에는 엘튼 존이 비치 보이스와 함께 만든 앨범 'Caribou'의 수록곡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와 'The Bitch Is Back'는 싱글 차트에서 각각 2,4위에 올랐다. 같은 해 그는 프로축구팀 워트포트 풋볼 클럽(the Watford Football Club)의 대주주가 되어 이사로 취임하였다. 또 그해 11월의 추수감사절에 은둔생활을 하던 비틀즈(The Beatles)의 멤버 존 레넌을 설득하여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공연에서 3곡을 함께 부르기도 했다. 이 공연은 존 레넌 생전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1975년에 나온 앨범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는 미국 팝뮤직 역사상 최초로 발매 1주일만에 앨범 차트 1위로 핫샷 데뷔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앨범에 수록되어 히트한 'We're Fall In Love Sometimes'는 버니 터핀과의 동성애를 담은 노래라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같은 해 발표한 앨범 'Rock Of The Westies'도 앨범 차트 3주간 1위, 수록곡 'Island Girl'도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또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와 'Philadelphia Freedom'도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성공을 이어갔다.
1976년 엘튼 존은 라이브 앨범 'Here And There'와 4집 앨범 'Blue Moves'를 잇따라 내놓았다. 앨범 '블루 무브스'에 수록된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는 싱글 차트 6위에 올랐으며,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키키 디(Kiki Dee)와 듀엣으로 부른 노래 'Don't Go Breakin My Heart'는 싱글 차트 4주간 1위를 달렸다. 1978년 발표한 앨범 'A Single Man'은 연말의 앨범 차트 15위에 올랐다. 1979년에는 앨범 'The Thom Bell Sessions'의 타이틀 곡 'Mama Can't Buy You Love'가 싱글 차트 9위에 올랐다. 1979년에는 5집 앨범 'Victim Of Love'를 내놓았다.
엘튼 존은 1972년부터 1977년까지 6년 동안 비틀즈 이래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당시 발표한 7장의 앨범은 모두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39주 동안 계속해서 정상을 지키는 기록을 세웠다. 앨범 판매에 있어서도 2억장이 넘게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70년대 영국 최고의 세션맨들로 구성된 엘튼 존 밴드(Elton John Band)와 5천 달러짜리 선그라스, 타조 깃털과 같은 엽기적인 악세서리, 조명이 들어오는 의상 등 파격적인 의상과 역동적인 무대 매너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으며, 때로는 메시지가 담긴 음악과 무대로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비젼과 이상을 전해 주기도 했다. 또 무대에 자유의 여신상이 등장하는가 하면, 자신이 도널드 덕이나 모짜르트로 분장하고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는 엘튼 존의 기발하고 자유분방한 공연 매너는 대중들을 열광시켰다. 한마디로 그는 70년대를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1980년 12월 8일 엘튼 존은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존 레넌을 위한 추모곡 'Empty Garden'을 부르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존은 앨범 '21 At 33(1980)', 'Jump Up(1982)', 'Breaking Hearts(1984)', 'Ice on Fire(1985)', 'Leather Jackets(1986)'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음악활동을 펼쳤다. 1980년대 중반에 불거진 마약문제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음악활동을 계속하여, 1988년에는 앨범 'Reg Strikes Back'의 수록곡 'I Don't Wanna Go on With You Like That'이 빌보드 차트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Reg'는 존의 본명인 'Reginald'에서 따온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 앨범 제작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1989년 9월에 발표한 앨범 'Sleeping With The Past'에서 히트한 'Sacrifice'는 그의 데뷔 20년만에 조국인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엘튼 존은 열정적인 음악작업을 하는 동시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도 열심히 실천했다. 그는 자선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거액을 기부하는 한편 자신의 친구와 지인들이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91년 '엘튼 존 에이즈 재단(Elton John AIDS Foundation)'을 설립하였다. 재단을 통해서 그는 에이즈에 대한 계몽과 치료, 그리고 보균자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같은 해 그는 자신과 버니 터핀의 음악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앨범 'Two Rooms:Celebrating the Songs of Elton John & Bernie Taupin'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자신의 히트곡들을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불러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1992년에는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과 함께 부른 자신의 히트곡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가 싱글 차트 4위를 기록했다.
1993년에는 레오나드 코헨, 폴 영, 돈 헨리, 글래디스 나잇 등의 가수들과 듀엣으로 부른 노래들을 수록한 앨범 'Duets'을 발표하였다. 이어 1994년에는 팀 라이스와 콤비를 이루어 만든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주제가를 비롯해 5개의 곡을 만들었는데, 주제가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는 아카데미 최고 사운드트랙상과 그래미 최우수 남자 팝보컬상을 수상했다. 1995년에는 'Love Songs'과 'Made In England' 등 두 장의 앨범을 낸 뒤, 1996년에도 'Honkey Chateau', 'Rock Of The Westies' 등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1997년에는 팀 라이스와 함께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을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앨범 'The Big Picture'를 발표한 1997년은 그에게 슬프고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그 해 7월 15일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가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데 이어 8월 31일에는 다이애너 영국 황태자비가 파리에서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이에 그는 미국 여배우 마릴린 몬로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던 'Candle In The Wind'의 가사를 고친 'Candle In The Wind 97(Goodbye England's Rose)'를 장례식에서 불렀다. 비틀즈의 전 매니저이자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 제작한 다이애너 황태자비 추모 싱글 'Candle In The Wind 97(Goodbye England's Rose)'가 나모자마자 미국과 영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3천3백만장이나 팔려나가는 폭발적인 반응으로 그 해 10월 11일부터 무려 14주간이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동시에 현존 최고의 싱글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판매 수익금 3천만 달러는 전액 다이아나 황태자비 추모기금에 기부되었다.
엘튼 존과 팀 라이스 콤비는 1998년 9월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초연된 베르디 원작의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Aida)'의 음악작업에도 참여하였다. 1998년 말 미국 음반협회가 발표한 북미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한 솔로 아티스트들 중에서 엘튼 존은 총 6천6백만장으로 미국 컨트리 가수 가스 브룩스(Garth Brooks)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듬해 그는 앨버트 브룩스(Albert Brooks) 감독의 영화 '뮤즈(The Muse)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 작업에 참여하였다.
두 친구와의 비극적인 이별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는 아마 엘튼 존 생애 최고의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1991년 그는 제34회 그래미상 최우수 작곡상을 수상하였고, 1992년에는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1994년에는 제37회 그래미상 최우수 남성 팝보컬상을 받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95년에는 오스카상 최우수 음악상과 골든 글러브 최우수 애니메이션 주제곡상, 폴라 음악상 등 세 가지 상을 동시에 받는 영광을 안았다. 1997년에는 제40회 그래미상 최우수 남성 팝보컬상을 받았으며, 와트포드 FC 평생명예구단주가 되었다. 1998년에는 클리프 리차드, 폴 매카트니에 이어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영국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기사작위를 받아 영국의 음악적 자존심으로 우뚝 섰다.
2000년 히트곡 모음집 'one Night only-The Greatest Hits'를 발표한 엘튼 존은 제43회 미국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뮤지컬 앨범상을 받는 등 화려한 음악경력을 이어갔으며, 그 해 팀 라이스와 다시 한 번 콤비가 되어 드림웍스의 신작 애니메이션 'The Road To El Dorado'의 음악작업을 했다. 같은 해 3월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진 뮤지컬 '아이다'는 최우수 오리지널 뮤직 스코어상(Best Original Musical Score)을 포함 4개의 토니상을 휩쓸었다.
2001년 늦여름 그가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끝낸 후에 나온 실황앨범 'one Night only'는 DVD로도 발매되었다. 10월에는 버니 터핀과 콤비로 27번째 스튜디오 앨범 'Songs From The West Coast'를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의 'I Want Love'는 싱글로 그래미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다. 'Original Sin'과 'This Train Don't Stop There Anymore' 두 곡도 히트했다. 이어 2002년에 히트곡 모음집 'The Very Best Of Elton John', 2003년에 히트곡 모음집 'Greatest Hits 1970-2002', 2004년에 'Peachtree Road'를 연달아 발표하였다. 엘튼 존은 2000년대 들어와서는 90년대처럼 왕성한 창작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힙합이 대중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나이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 세계 투어에 나서는 등 활발한 공연활동으로 2004년 공연예술 평생공로상을 수상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57세였다.
엘튼 존의 노래 ‘Goodbye Yellow Brick Road’와 ‘Sorry Seems To Be Hardest World’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힘입어 그는 2004년 9월 잠실 메인스타디움에서 최초의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 홍콩, 대만, 한국, 중국 등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내한공연에서 그가 어디를 가든지 따라다니는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 2대, 그와 30여년을 같이 연주해온 8명의 밴드를 포함한 30여명의 스탭도 함께 왔으며, 공연에 쓰인 25톤의 장비도 공수되었다.
2005년 3월 엘튼 존과 리 홀(Lee Hall)이 콤비로 음악작업을 한 뮤지컬 '빌리 엘리엇(Billy Elliot)'이 런던의 웨스트 엔드(West End)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같은 해 그는 'Captain Fantastic And The Brown Dirt Cowboy(Deluxe Edition)'와 'Peachtree Road(Collector's Edition)'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 해 12월 영국에서 시민동반자법이 제정되자 그는 캐나다 출신의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퍼니시(David Furnish)와 동성결혼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존은 2006년에 앨범 'The Bridge', 'The Captain & The Kid', 2007년에 앨범 'Act Of War', 'Rocket Man-The Definitive Hits'을 발표하는 등 2007년까지 나온 그의 앨범은 총 46집에 이른다.
1969년 데뷔 후 30년이 넘도록 30여장의 정규 앨범과 9개의 넘버원 히트곡, 27개의 Top 10 히트곡을 남기고, 매년 자신의 노래를 빌보드 싱글 차트 Top 40에 올린 엘튼 존의 기록은 세계 팝계의 전설이 되었다. 아마 이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50년대, 비틀즈가 60년대를 풍미했다면, 70년대는 엘튼 존의 시대였으며, 수퍼 스타로서의 그의 인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팀 라이스
1944년 영국 버킹엄셔 애머샴에서 태어난 팀 라이스(Sir Timothy Miles Bindon Rice, 1944~) 경은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상, 토니상, 그래미상에 빛나는 작사가이자 작가, 라디오 음악프로 진행자, TV 게임쇼 패널리스트이다.
그는 올드위키베리(Aldwickbury)와 세인트 올번즈(St Albans) 학교, 랜싱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와 콤비를 이루어 1973년 영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의 각본, 1988년 뮤지컬 '요셉과 놀라운 색동저고리(Joseph and the Amazing Technicolor Dreamcoat)'의 가사, 그리고 1996년 영화 '에비타(Evita)'의 각본을 썼을 뿐만 아니라 디즈니에서 알란 맨킨(Alan Menken), 엘튼 존과 함께 작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에비타'로 1996년 토니상 극본상과 가사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또 그는 1988년 뮤지컬 '체스(Chess)'에서 그룹 아바(ABBA)의 비요른 울바에스(Björn Ulvaeus), 베니 안데르손(Benny Andersson)과 공동작업을 했으며, 콘셉트 앨범 '1984'와 '생존의 비용(Cost of Living)'에서 릭 웨이크먼(Rick Wakeman)과도 함께 작업했다.
프랑스 파리 소로본느 대학에서 1년간 공부한 뒤, 1966년에 그는 EMI 레코드사(EMI Records)의 인턴사원(management trainee)으로 들어갔다. 1968년 전설적인 프로듀서 노리 파라모(Norrie Paramor)가 자신의 프로덕션을 설립하기 위해 EMI를 떠날 때, 그의 제작보로 함께 따라갔다. 거기서 그는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 등과 함께 작업을 했다.
1977년부터 1996년까지는 라이스의 형 조 라이스(Jo Rice), 라디오 진행자 마이크 리드(Mike Read), 폴 감바치니(Paul Gambaccini)와 더불어 영국 히트 싱글 기네스 북을 공동창업하고 편집자로 일했다. 그는 또 수년간 라디오 패널 게임 '잠깐만(Just a Minute)'과 '트리비아 테스트 매치(Trivia Test Match)'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라이스는 영화 '어떤 소년에 대하여(About a Boy)'에 출연하는 동안 미국에서 가장 인정을 받은 농담을 자주 사용했다. 이 영화는 그가 게스트 심판을 보았던 게임 쇼 '카운트다운(Countdown)'의 이디션(edition) 중 여러 개의 클립스(clips)들을 포함하고 있다.
라이스는 2002년 MCC(Marylebone Cricket Club)의 총재를 맡았을 정도로 크리켓광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름을 딴 아마추어 크리켓 클럽 '하트에익스(Heartaches)' 팀도 운영하고 있다. 또 수학에도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던 그는 롭 이스터웨이(Rob Eastaway)와 제레미 윈덤(Jeremy Wyndham)의 공저 '왜 버스는 한꺼번에 오는 것일까?(Why Do Buses Come In Threes?)'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작가, 박애주의자인 토니 호크스(Tony Hawks)의 저서 '원 히트 원더랜드(One Hit Wonderland)'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는 호크스에게 주어 알바니아에서 '탑 20'에 오른 노래를 함께 만들었다.
라이스는 1998년에 자서전 'Oh What a Circus-The Autobiography of Tim Rice'를 출판했다. 그의 자서전에는 어린 시절부터 1978년 '에비타'가 오리지널로 런던에서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인생역정이 담겨 있다. 그는 후속 자서전도 쓰고 있다. 라이스는 1999년 작사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00년에는 그의 4개 작품이 동시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2002년에는 디즈니 리젠드 어워드(Disney Legend Award)에 지명되었다.
라이스는 1974년 제인 매킨토시(Jane McIntosh)와 결혼했으나, 영국 타블로이드판 신문에 배우 겸 가수인 일레인 페이지(Elaine Paige)와의 스캔들이 폭로되자 파경을 맞았다. 그럼에도 제인은 라이스 부인이라는 호칭을 계속 보유했다. 그들 사이에는 에바(Eva)와 도널드(Donald) 두 자녀를 두었다. '에비타'의 주인공에서 이름을 딴 에바 라이스는 소설 'The Lost Art of Keeping Secrets'의 저자로 영국 출판상 '올해의 최다 독자상'의 결선에 오르기도 했다.
라이스는 2005년 8월부터 서울 엘지아트센터에서 장기 공연된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 10만 관객 돌파를 기념하여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라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선더랜드 대학으로부터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그는 프로축구 선더랜드 A.F.C.(Sunderland A.F.C.)와 영국 보수당의 후원자이기도 하다.
한스 짐머
'라이온 킹'이 아프리카풍을 띠게 된 것은 디즈니가 영입한 한스 짐머와 레보 엠의 참여에 힘입은 바 크다. 195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한스 짐머는 3살 때 처음 연주회를 보고 음악에 눈을 떴다. 바로 그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피아노 교사는 몇 주일 가르치고는 그만두고 말았다. 짐머가 자신의 실력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익힌 그는 우연한 기회에 전자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1979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79년 짐머는 영국의 가수 겸 작곡가 트레버 혼(Trevor Charles Horn)의 뉴 웨이브 밴드인 '버글스(The Buggles)'가 발표한 싱글 'Video Killed Radio Star'의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 곡은 영국의 444번째 넘버 1 싱글로 1주간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는 또 영국의 뉴 웨이브 그룹인 울트라복스(Ultravox)의 라이브 무대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으며, 이탈리아의 뉴 웨이브 밴드인 크리스마(Krisma)와도 함께 활동하면서 실험정신이 담긴 뛰어난 음악을 만들었다.
한스 짐머는 마이클 치미노(Michael Cimino) 감독의 영화 '디어 헌터(The Deer Hunter, 1978)'에서 음악을 맡았던 스탠리 마이어스(Stanley Myers, 1934~1993)를 만나면서 영화음악에 입문하게 된다. 저지 스콜리모우스키(Jerzy Skolimowski) 감독의 '달빛 아래서(Moonlighting, 1982)와 '성공은 최고의 복수(Success Is the Best Revenge, 1984), 니콜라스 뢰그(Nicolas Roeg) 감독의 '사랑의 상대성(Insignificance, 1985)', 스티븐 프리어스(Stephen Frears)가 감독한 영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My Beautiful Laundrette, 1986)'의 음악을 스탠리 마이어스와 함께 만들었다. 그는 스탠리 마이어스와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통해 기존의 영화음악과 TV 배경음악들에서 오케스트라 편곡을 사용하던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컴퓨터와 디지털 신디사이저, 전자 키보드 등을 도입하여 영화음악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짐머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1987)'에서 데이비드 번(David Byrne),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와 공동으로 음악을 맡았으며, 연주가로도 참여하였다. 그가 처음 단독으로 배경음악을 맡은 영화는 크리스 멘지스(Chris Menges) 감독의 '갈라진 세계(A World Apart, 1988)'였다. 이어 버나드 로즈(Bernard Rose) 감독의 '페이퍼하우스(Paperhouse, 1988)'의 음악을 맡아서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 마침내 짐머는 배리 레빈슨(Barry Levinson) 감독의 '레인 맨(Rain Man, 1988)'의 주제곡을 작곡하여 오스카 작곡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한스 짐머는 '레인 맨'의 성공 이후 계속해서 리들리 스콧(Sir Ridley Scott) 감독의 '블랙 레인(Black Rain, 1989)', 브루스 베레스포드(Bruce Beresford) 감독의 '드라이빙 미스 테이지(Driving Miss Daisy, 1989)', 토니 스콧(Anthony D. L. Scott) 감독의 '폭풍의 질주(Days of Thunder, 1990)'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또 존 바담(John Badham) 감독의 '전선 위의 참새(Bird on a Wire, 1990)', 존 슐레진저(John Schlesinger) 감독의 '퍼시픽 하이츠(Pacific Heights, 1990)', 피터 위어(Peter Lindsay Weir) 감독의 '그린 카드(Green Card, 1990)' 등의 영화에서도 배경음악을 맡았다.
론 하워드(Ronald William Howard) 감독의 '분노의 역류(Backdraft, 1991)'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 페니 마샬(Penny Marshall) 감독의 '그들만의 리그(A League Of Their Own, 1992)', 존 아빌드슨(John G. Avildsen) 감독의 '파워 오브 원(The Power of one, 1992)'에서도 짐머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그에게 최고의 성공을 가져다 준 영화음악은 바로 1994년 월트 디즈니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었다.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으로 그는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상, 그래미상 2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이 영화를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 1998년에는 토니상 최우수 음악상을 거머쥐었다.
이듬해 짐머는 1995년 토니 스콧 감독의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로 그래미상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상을 받은데 이어 1996년에는 페니 마샬 감독의 '프리쳐스 와이프(The Preacher's Wife)'로 또 한 번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1996년 한 해 동안 그는 '프리쳐스 와이프'를 비롯해서 오우삼(吳宇森) 감독의 '브로큰 애로우(Broken Arrow)', 마이클 베이(Michael Benjamin Bay) 감독의 '더 록(The Rock)', 토니 스콧 감독의 '더 팬(The Fan)', 니콜라스 뢰그 감독의 '두 죽음(Two deaths)', 댄 아일랜드(Dan Ireland) 감독의 '세상의 모든 사랑(The Whole Wide World)', 브라이언 헨슨(Brian Henson) 감독의 '머펫의 보물섬(Muppet Treasure Island)'까지 무려 7편의 영화에서 배경음악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주었다.
1997년 한스 짐머는 제임스 엘 브룩스(James L. Brooks) 감독의 코메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As Good as It Gets)'의 사운드 트랙으로 또 한 번의 오스카상을 받았고, 1998년에는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1999)에 빛나는 테렌스 멀릭(Terence Malick) 감독의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의 배경음악을 맡았다. 이어서 그는 아카데미 영화음악상과 주제가상(스테픈 슈왈츠, Stphen Schwarts, 1999)에 빛나는 브렌다 챔프먼(Brenda Champman-Lima), 스티브 히크너(Steve Hickner), 사이먼 웰스(Simon Wells) 공동감독의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The Prince of Egypt)'의 사운드 트랙으로 최고의 영화음악 작곡가로 떠올랐다.
1999년 짐머는 톰 귄터(Tom Günther), 마이클 크라인들(Michael Kreindl) 공동감독의 '파워캅(Motorrad-Cops:Hart am Limit, Die)'의 배경음악을 만들었다. 이어 2000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Gladiator)'를 위해 작곡한 배경음악으로 그는 또 한 번의 골든 글로브 영화음악상을 가슴에 안았다. 같은 해 오우삼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퍼서블2(Mission:Impossible2)'의 배경음악을 맡은 이후 그는 2001년 숀 펜(Sean Justin Penn) 감독의 '플레지(The Pledge)',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한니발(Hannibal)'과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 페니 마샬 감독의 '라이딩 위드 보이즈(Riding In Cars With Boys)', 마이클 베이 감독의 '진주만(Pearl Harbor)'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계속해서 한스 짐머는 2002년 로나 쿡(Lorna Cook)과 켈리 애스베리(Kelly Asbury) 공동감독의 애니메이션 '스피릿(Spirit:Stallion of the Cimarron)', 츠루타 노리오(鶴田法男) 감독의 '링(The Ring)', 2003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매치스틱 맨(Matchstick Men)', 안톤 후쿠아(Antoine Fuqua) 감독의 '태양의 눈물(Tears of the Sun)' 등의 영화에서 발군의 영화음악 실력을 발휘하였다. 이처럼 그는 수많은 영화에서 주옥같은 영화음악을 작곡함으로써 90년대 이후 헐리우드 영화음악계에 거대한 산맥으로 자리잡으며 영화음악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한마디로 한스 짐머는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와 더불어 현존하는 최고의 영화음악 작곡가라고 할 수 있다.
한스 짐머는 남아공을 배경으로 한 영화 '파워 오브 원'의 음악작업에 레보 엠과 함께 참여해서 웅장한 스케일의 음악을 보여 준 바 있다. 역시 아프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제작하려던 디즈니는 배경음악을 맡을 적임자는 바로 한스 짐머와 레보 엠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레보 엠
영화와 뮤지컬을 통해서 웅장하고 아름다우면서도 토속적인 음악으로 아프리카 문화를 전 세계에 알려 온 레보 엠(본명 Lebohang Morake)은 '라이온 킹'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남아공 출신의 가수 겸 작곡가다. 그는 오프닝 곡 '생명의 순환'을 부른 아프리칸 보컬(여성 보컬은 카르멘 트윌리)의 주인공이자 이 작품의 모든 아프리칸 보컬을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또 뮤지컬 '라이온 킹'에서는 'one by one'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리듬과 보컬이 강렬한 '생명의 순환'이 첫 트랙에 실린 '라이온 킹' 사운드 트랙은 미국에서 천만 장, 전 세계적으로 2천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빌보드 차트에서 10주 동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레보 엠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악명을 떨치던 1964년 남아공의 소웨토에서 태어나 흑인해방운동 지도자 넬슨 만델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는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어릴 때부터 남아공의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찌기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여러 해 동안 슬럼가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로스엔젤레스에서는 심지어 구걸도 하고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흑인 영화음악의 대부 퀸시 존스와 한스 짐머를 만나 그들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게 된다.
'파워 오브 원'과 볼프강 피터슨(Wolfgang Petersen) 감독의 '아웃브레이크(Outbreak, 1995)', 프랭크 마샬(Frank Marshall) 감독의 '콩고(Congo, 1995)' 등의 영화에서 아프리카 특유의 토속적 리듬과 선율을 살린 음악으로 주목을 받은 레보 엠은 한스 짐머의 추천으로 디즈니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던 '라이온 킹'의 음악작업을 맡게 되는 행운을 얻는다. 그는 '라이온 킹'의 음악작업을 할 때, 넬슨 만델라가 백인정권에 의해 27년간의 감옥살이 끝에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키고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역사적 사건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스카의 음모에 의해 쫓겨난 심바가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돌아와 왕위를 되찾고 프라이드랜드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줄거리는 그대로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듯 아프리카에 대한 애정과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긍지는 레보 엠의 음악에 있어서 원초적인 힘이 되고 있다.
1994년에 '라이온 킹'이 개봉되자 영화의 폭발적인 인기와 더불어 사운드트랙도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장이 판매되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게 되자, 레보 엠은 1995년 2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후속편인 'Rhythm of the Pride Lands'를 오디오 CD로 발표한다. 백만 장이 넘게 팔린 이 CD에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서 빠진 곡들을 비롯해 아프리카의 민요와 토속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편곡해서 다양한 아프리카 언어로 노래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2000년에는 디즈니의 야심작 어드벤처 애니메이션 '다이너소어(Dinosaur)'의 음악작업에도 참여하여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을 들려 주었다. 이제 레보 엠이라는 이름은 아프리카 음악이 들어가는 영화나 뮤지컬, 광고 등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03년에 그는 남아공 민주정부 수립 10주년 기념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레보 엠은 1979년 남아공에서 추방되어 20년이 지나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가족과 함께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와 미국의 로스엔젤레스를 오가면서 살고 있다. '틸 돈 엔터테인먼트사(Till Dawn Entertainment)'와 '레보 엠 재단'을 설립한 그는 음악을 통해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가난하고 핍박받는 흑인 동포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쓰고 있다. '레보 엠 재단'은 핍박받는 아프리카인의 인권신장,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의 치료와 보호, 빈곤층 어린이들의 복지증진, 가난한 흑인들의 주거환경 개선 등의 목적을 위해 설립된 것이다. 이처럼 레보 엠은 예술가인 동시에 행동하는 양심으로서의 모습도 보여 주고 있다.
마크 맨시나
1957년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에서 태어난 마크 맨시나는 비틀즈의 초기 음악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그는 기타와 희귀한 악기들을 열광적으로 수집하는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맨시나는 많은 프로그레시브 락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그는 남아공 출신의 미국인 뮤지션으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인 예스(Yes, 1983~1994)의 가장 유명한 기타리스트이자 송라이터인 트레버 라빈(Trevor Rabin)의 앨범 'Can't Look Away(1989)'를 홍보하기 위해 함께 투어를 하기도 하고, 예스의 앨범 '유니온(Union)'의 트랙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또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락 수퍼그룹인 ELP(Emerson, Lake & Palmer)와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
마크 맨시나는 1994년 얀 드 봉(Jan de Bont) 감독의 '스피드(Speed, 1994)'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5년에 재제작된 TV 시리즈 '제3의 눈(The Outer Limits)'에서 그는 존 밴 통게렌(John Van Tongeren)과 함께 주제가를 작곡했다. 그들은 '제3의 눈' 첫 시즌에서 열 개의 에피소드에 들어가는 스코어를 만들었다. 영화에 스릴 넘치는 속도감을 느끼게 해 준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은 '스피드'의 성공 이후 그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나쁜 녀석들(Bad Boys, 1995)', 얀 드 봉 감독의 스릴러물 '트위스터(Twister, 1996)', 사이먼 웨스트(Simon West) 감독의 '콘 에어(Con Air, 1997)' 등 주로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에서 배경음악을 맡았다. '콘 에어'에서는 트레버 라빈과 공동으로 음악작업을 하였다.
마크 맨시나는 애니메이션과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온 킹'에서 한스 짐머와 레보 엠이 아프리칸 보컬을 위한 오케스트라 스코어를 작곡하는 동안 작품에 쓰일 여러 노래들의 편곡을 담당했다. 그는 또 케빈 리마(Kevin Lima), 크리스 벅(Chris Buck) 감독의 '타잔(Tarzan, 1999)'과 애론 블레이즈(Aaron Blaise), 로버트 워커(Robert Walker) 감독의 '브라더 베어(Brother Bear, 2003)' 등 영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음악작업에 필 콜린스(Phil Collins)와 공동으로 참여했다. '타잔'에서 들려준 장대한 스케일의 스코어 음악으로 그는 2000년 그래미상 최우수 영화음악상을 수상하면서 헐리우드 최고의 음악감독으로 떠올랐다. 그는 또 한스 짐머가 음악을 맡은 2005~2006년 쥬니치 후지사쿠(藤咲淳一) 감독의 인기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블러드 플러스(BLOOD+)에서 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2001년 '트레이닝 데이(Training Day)'에서 콤비를 이루었던 안톤 후쿠아 감독의 '더블 타겟(Shooter, 2007)'에서도 음악감독을 맡음으로써 액션 영화음악의 진수를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이제 그는 명실골히 엔니오 모리꼬네,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를 잇는 차세대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켄터키 주 루이스빌에서 태어난 마틴 어스킨은 9살에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83년 뉴욕으로 가자마자 브로드웨이에서 작사가 겸 대본작가 알란 제이 러너(Alan Jay Lerner), 작곡가 겸 작사가 찰스 스트라우스(Charles Strouse)와 함께 음악작업을 하였다. 그는 작곡가 존 칸더(John Kander)와 함께 라이자 미넬리(Liza Minnelli), 치타 리베라(Chita Rivera) 주연의 뮤지컬 'The Rink'의 곡을 쓴 다음,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가 감독하고 제레미 아이언스와 글렌 클로스(Glenn Close)가 주연한 토니상 수상 연극 'The Real Thing'의 음악에 대한 조사를 담당했다. 이후 그는 지역의 극장에서 '피터 팬(Peter Pan), 존 돈 파소스(John Don Pasos)의 'U.S.A.', 그리고 'Cold Comfort Farm' 등의 스코어 음악을 만들었다. 그는 몇 년 동안 알란 멘켄(Alan Menken), 스티븐 슈워츠(Stephen Schwartz),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 그리고 한스 짐머 등의 편곡자로 일하면서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Pocahontas)'가 1995년 오스카에서 최우수 주제가상과 음악상을 받고, 또 '이집트 왕자'가 1998년 오스카에서 최우수 주제가상을 수상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디즈니(the Wonderful World of Disney)의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dgers)와 오스카 해머스타인(Osca Hammerstein) 2세 듀오 작곡가가 만들고, 휘트니 휴스턴(Whitney Huston), 브랜디(Brandy) 주연의 '신데렐라(Cinderella)'에서 편곡자, 오케스트레이터(작곡가가 만든 스코어를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수도 있도록 편곡하는 전문가), 애디셔널 콤포우저로써 일한 경력은 어스킨을 로스 엔젤레스로 오게 했다. 거기서 짐 헨슨 영화사(Jim Henson Picture)의 애니메이션 '앨모의 대모험(The Adventures of Elmo in Grouchland)'에서 그가 작곡하고 맨디 파틴킨(Mandy Patinkin)이 부른 두 개의 노래 가운데 하나가 1999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어린이 앨범상을 받았다.
디즈니 영화사(Walt Disney Pictures)의 애니메이션 '티거 무비(The Tigger Movie)'에서 노래들의 편곡과 각색을 맡은 뒤, 마틴은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와 코미디 판타지 뮤지컬 '제페토(Geppetto)'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숙녀와 건달(Lady and the Tramp II, Scamp's Adventure)'의 오리지널 음악을 작곡했다. 그는 또 가수 겸 작곡가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 배우 겸 가수 버나뎃 피터스(Bernadette Peters), 영화배우 캐시 베이츠(Kathy Bates), 드류 카레이(Drew Carey), 몰리 샤논(Molly Shannon), 줄리아 루이스 드레퓌스(Julia Louis-Dreyfuss), 크리스틴 바란스키(Christine Baranski), 바브라 스트라이센드(Barbra Streisand) 등과 함께 수많은 다른 프로젝트에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어스킨은 2002년 캐스린 제타 존스(Cathrine Zeta-Jones), 르네 젤위거(Renee Zellweger), 리차드 기어(Richard Gere) 주연의 영화 '시카고(Chicago)', 2003년 존 굿맨(John Goodman), 할리 조엘 오스먼트(Haley Joel Osment) 목소리 주연의 '정글 북 2(Jungle Book II)'와 매튜 브로데릭과 크리스틴 체노웨스(Christin Chenoweth) 주연의 TV 영화 '뮤직 맨(The Music Man)'의 음악작업을 하였다. 그는 또 2004년 나단 레인(Nathan Lane), 어니 사벨라(Ernie Sabella) 목소리 주연의 'Lion King I 1/2', '뮬란 2(Mulan II)의 음악작업도 하였다. 그밖에도 애니메이션 '미키의 크리스마스 선물(Mickey's Twice Upon a Christmas, 2004)', 영화 '하이츠(Heights, 2005)',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의 헤팔럼 무비(Pooh's Heffalump Movie, 2005)', '화이트 카운티스(The White Countess, 2005)', '원스 어폰 어 매트리스(Once Upon a Mattress, 2005)', '조디악(Zodiac, 2007)'의 음악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줄리 테이머
디즈니는 에니메이션의 대성공에 고무되어 '라이온 킹'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면서 줄리 테이머(Julie Taymor, 1952~)에게 연출을 맡겼다.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야생의 아프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연출자로서는 색다른 경력과 새로운 감각을 가진 사람이 적합하다고 디즈니는 판단했다. 디즈니로부터 감독 제안을 받은 테이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레보 엠의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후속편 'Rhythm of the Pride Lands'를 들은 뒤 '아직까지 브로드웨이가 경험한 적이 없는 리듬'이라고 느낀 그녀는 기꺼이 디즈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릴 때부터 아동극단에서 연극을 하였고, 16세에 마임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에 유학했으며, 뉴욕대학을 졸업한 뒤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4년이나 머물며 다국적극단을 만들어 활동한 경력을 가진 테이머는 뮤지컬 '라이온 킹'의 적임자였다. 게다가 그녀는 그림자 인형극과 가면무도극의 경험을 가진 작곡가이기도 했으니 뮤지컬 감독으로서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테이머는 감독 뿐만 아니라 음악과 대본, 의상, 가면과 인형의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역할을 맡았다.
줄리 테이머는 매사추세츠 보스톤 교외의 뉴턴에서 유태인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 멜빈 레스터 테이머(Melvin Lester Taymor)와 정치적 성향이 강한 과학교사인 어머니 엘리자베스 번스타인(Elizabeth Bernstein)의 딸로 태어났다. 테이머는 어려서부터 세계 여러 나라의 민속과 신화를 좋아하였다. 또 연극에 대한 열정도 많아서 불과 7살의 나이에 그녀의 언니를 부모님를 위한 아동극의 무대에 서게 했으며, 9살 무렵에는 보스턴 아동극단에 들어갔다.
10대 때 테이머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고등학교 시절인 1960년대 그녀는 국제문화교류기구인 EIL(Experiment in International Living)의 프로그램에 따라 아시아의 스리랑카와 인도에서 살기도 하였다. 귀국후 극단에서 가장 나이도 어리고 평범했던 그녀는 15살에 보스턴의 줄리 포트만(Julie Portman) 극단 워크샵에 참가하였다. 더 깊은 공부를 위해 파리로 건너간 그녀는 자크 르콕(Jacques Lecoq)의 마임학교(L'Ecole de Mime)에 들어갔다. 마임에 대한 공부는 그녀의 감수성 발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70년에 테이머는 오하이오의 오벌린 대학에서 신화학과 연극을 공부하면서 조셉 차이킨(Joseph Chaikin)의 실험극단 오픈 씨어터(Open Theatre) 등의 극단에서 경험을 쌓았다. 허버트 블라우(Herbert Blau) 감독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오벌린으로 돌아와 오디션에 합격하고, 다시 한 번 극단의 최연소 단원이 되었다. 1973년에 테이머는 시애틀에 있는 미국 동양예술학회(the American Society for Eastern Arts)의 여름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는데, 거기서 만난 강사는 인도네시아의 가면무용극 토펑(Topeng)과 그림자 인형극 와양 쿨릿(Wayang kulit)의 연기자였다. 이런 경험은 훗날의 테이머에게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1974년 테이머는 신화학과 민속학 전공으로 오벌린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 미국 대학 최우수 졸업생들의 모임)에 입회하는 영예를 누린다.
대학 졸업 후 실험극과 인형극, 무언극을 더 배우기 위해 테이머는 토마스 왓슨 장학금(Thomas J. Watson Fellowship)을 받아 일본의 아와지섬(淡路島)으로 갔다. 그녀는 1970년대를 일본에서 살았다. 거기서 그녀는 실물 크기의 인형들이 작은 사미센(三味線) 반주로 부르는 조루리(淨瑠璃, 사설)에 맞추어 연기하는 전통 인형극인 분라쿠(文樂)를 공부했다. 그 후 5년은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아, 유럽, 미국의 배우들로 구성된 다국적 극단의 감독으로 일했다. 인도네시아와 일본에서의 경험은 테이머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뛰어난 시각적 효과를 연출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테이머는 브로드웨이를 넘나들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녀는 동화 '킹 스태그(The King Stag)'를 무대에 올려 첫 성공을 거둔 뒤 로스 엔젤레스, 베니스, 도쿄, 모스크바 등 세계 여러 나라의 66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하였다. 1990년대 테이머는 몇 개의 고전 오페라에서 감독을 맡았다. 1992년 그녀는 일본에서 소포클레스가 쓴 고전 비극을 바탕으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가 1927년에 작곡한 오페라 '외디푸스 왕(Oedipus Rex)'의 연출로 에미상을 받았다.
테이머는 1993년 플로렌스에서 주빈 메타(Zubin Mehta)가 지휘하는 모짜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The Magic Flute, 魔笛)'를 감독했으며, 1994년에는 러시아의 상페테르부르크에서 발레리 게르기에프(Valeri Gergiev)가 지휘하는 리하르트 스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오페라 '살로메(Salome)'의 연출을 맡아 극찬을 받았다. 테이머는 뉴욕의 링컨 센터에서 세익스피어의 비극 '타이투스 앤드로니커스(Titus Titus Andronicus)'와 '쥬앙 다리엔(Juan Darien)'의 연출로 그녀의 화려한 무대경력을 이어갔다. '쥬앙 다리엔'으로 그녀는 최우수 뮤지컬 감독상 후보, 그녀와 콤비를 이룬 메르시에(G. W. Mercier)는 최우수 무대디자인상 후보에 지명되었다.
연출자로서 테이머에게 최고의 찬사를 안겨준 것은 1997년 10월 15일 뉴욕 42번지 뉴 암스테르담 극장에서 초연되자마자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디즈니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온 킹'이었다. 연출 외에도 그녀는 100가지가 넘는 동물의 가면과 인형, 의상 등을 마이클 커리(Michael Curry)와 함께 디자인하였다. 이 작품에는 인도네시아의 토펑과 와양 쿨릿, 일본의 가부키와 분라쿠 등 아시아의 인형극이나 그림자극에서 받은 영감이 곳곳에 반영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 동물의 마스크와 인형, 배우의 얼굴을 모두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획기적인 시도였다. 관객들에게 마스크와 인형, 배우의 연기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동물과 인간간의 일체성과 동질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연기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테이머가 '애니메이션의 단순한 무대화가 아니라 새롭게 쓴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 말처럼 이 작품에서 그녀는 놀라운 시각적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뮤지컬의 대성공에 힘입어 그녀는 1998년의 토니상 시상식에서 여성 뮤지컬 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최우수 감독상과 최우수 의상디자인상 등 두 개 부문을 수상했다. 또 '라이온 킹'의 작곡가, 작사가들과 함께 최우수 오리지널 뮤직 스코어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그녀는 1999년 런던 비평가협회 의상상, 2000년 로렌스 올리비에 의상상도 받았다.
뮤지컬 '라이온 킹'을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린 뒤, 테이머는 영화쪽으로 옮겨갔다. 1999년에는 영화 '타이투스', 2002년에는 불꽃처럼 살다간 멕시코의 세계적인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와 천재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운명적인 사랑을 토대로 만든 영화 '프리다'를 감독했다. 두 영화 모두 뛰어난 시각적 효과와 스타일리쉬한 영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프리다'는 아카데미에서 6개 부문에 올라 최우수 분장상과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상 등 두 개 부문을 수상했는데, 오리지널 스코어는 테이머의 파트너 엘리엇 골덴탈(Elliot Goldenthal)이 만든 것이었다. 테이머와 골덴탈은 최우수 오리지널 송 부문에서 공동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또 그녀는 200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영화는 불꽃처럼 살다간 프리다와 천재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2004년 10월 테이머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마술피리'를 감독하여 연출가로서의 성공을 이어갔다. 이 작품은 공휴일에 어린이들도 볼 수 있도록 100분짜리로 각색하여 재제작되기도 했다. 이 버전은 북미와 유럽 전역의 극장으로 위성중계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빅 스크린(Big Screen) 공연의 NCM 패솜 라이브(Fathom Live)의 첫번째 시리즈였다. 또 2006년 6월에는 또 뉴욕 링컨 센터 축제의 일환으로 제작된 LA 오페라단을 위한 오페라 '그렌델(Grendel=Beowulf)'의 감독을 맡았다.
장르와 문화를 뛰어넘는 테이머의 작품활동은 1960년대 영국과 베트남, 미국을 넘나드는 러브 스토리와 사회적 저항을 비틀즈 불후의 음악 30여 곡과 함께 영상으로 재현해 낸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에서 절정에 달했다. 로맨스 뮤지컬인 이 영화는 짐 스터지스(Jim Sturgess)와 에반 레이첼 우드(Evan Rachel Wood)가 주연했으며, 테이머의 조카인 다니아 테이머(Danya Taymor)도 출연했다. 이 영화는 테이모어의 편집을 거친 뒤, 그녀의 동의도 없이 레볼루션 스튜디오(Revolution Studios)에 의해 좀더 짧은 버전으로 재편집되었다. 여러 달의 논쟁끝에 이 영화는 테이머 버전으로 복원되어 2007년 9월에 개봉되었다. 다른 뮤지컬 영화처럼 스튜디오 녹음이 아니라 현장 올 라이브로 녹음된 이 영화의 곡들은 훨씬 더 생동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도 살아 있어 특별한 감동을 준다.
2007년 4월 마블 스튜디오(Marvel Studios)는 '스파이더 맨(Spider-Man)'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뮤지컬 각본을 만드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테이머는 '스파이더 맨'의 감독을 맡아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들려 주었던 노래 두 곡을 위해 그룹 유투(U2)의 보노(Bono)와 디 에지(The Edge)를 참여시켰다. 이 뮤지컬에 쓰일 노래들은 단 2주일만에 완성되었다. 2008년 9월 테이머는 세익스피어 원작의 '템페스트(The Tempest)'를 영화로 만드는 프로젝트에서도 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1980년 이래 그녀는 현재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수상자인 작곡가 엘리엇 골덴탈과 함께 뉴욕의 맨하탄에서 2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
뮤지컬의 각본은 로저 앨러스와 아이린 메키가 공동으로 썼는데, 이들은 나란히 1998년 토니상 각본상 후보로 지명을 받았다. 음악은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했다. 뮤지컬에서는 마틴 어스킨만 빠지고 대신 테이머, 그래미와 토니상 수상자인 음악감독 제이 리프킨(Jay Rifkin)이 가세했다.
리프킨은 한스 짐머와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짐머와 미디어 벤처스(Media Ventures)를 설립한 리프킨은 그와 파트너로 작곡과 제작을 해왔다. 미디어 벤처스는 음악과 뉴 미디어, 영화, 텔레비젼 등 다양한 방면을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그룹이다. 이들 콤비는 '라이온 킹'과 '레인 맨',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등의 영화 스코어 음악으로 아카데미 등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받았으며, 또 수상후보에도 올랐다. '라이온 킹'이 성공한 뒤 리프킨은 골드 셀링을 기록한 후속 앨범 'Rhythm of the Pride Lands'를 기획하고 제작했다.
리프킨은 또 1977년 설립된 우량 미디어 기업 미디어 레볼루션(Media Revolution)의 회장이다. 이 회사는 사이베리아 홀딩스사(Cyberia Holdings)의 자회사로 짐머가 부회장으로 있다. 그는 또 코미디 '웨이팅(Waiting)' 등을 제작한 미디어 벤처스 영화사(Media Ventures Pictures)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리프킨은 그의 회사 모조 뮤직사(Mojo Music)를 통한 미디어 벤처스의 경영 파트너였다. 그는 1995년에 설립한 모조 레코드사(Mojo Records)를 1996년 유니버설 레코드사(Universal Records)와 합작회사로 만들었는데, 이 회사는 2001년 좀바/비엠지사(Zomba/BMG)에 매각되었다. 리프킨은 현재 유스 마케팅으로 중국에서 화제가 된 미디어 회사 디지코프사(Digicorp Inc.)의 회장 겸 CEO다.
뮤지컬 '라이온 킹'의 몬테카지노 떼아트로 버전의 출연진은 영국 런던 출신의 Mark Rayment(스카 역)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아공 출신의 배우들로 짜여져 있다. 나머지 주요 배역인 무파사 역의 Selle Maake-kaNcube, 라피키 역의 Buyisile Zama(Buyi), 자주 역의 Lyall Ramsden, 티몬 역의 Peter Mashigo, 품바 역의 Pierre van Heerden, 심바 역의 Andile Gumbi, 나라 역의 Tsholofelo Monedi, 셴지 역의 Candida Mosoma, 반자이 역의 Simon Gwala, 에드 역의 Michael Bagg 등은 남아공 출신이다.
애니메이션이 나온 지 벌써 15년, 뮤지컬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라이온 킹'은 여전히 사랑을 받으면서 전 세계의 극장에서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
2007년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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