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2일부터 11일까지 일산 호수공원 고양국제꽃박람회장 전시실에서 서예가 산내 박정숙의 개인 전시회가 열렸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박정숙의 생애 첫번째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20여 년간 궁체(宮體)의 멋과 역동성의 아름다움을 붓글씨에 담아왔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동안 오로지 궁체 한 가지만을 연마했던 것이다. 그 20년 동안 각고의 결실이 이번에 그녀의 첫 개인전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경기도 미술대전, 서예대전(월간서예) 초대작가이자 전국휘호대회(국서련), 대구매일서예대전, 세종한글서예대전 우수상에 빛나는 박정숙의 서예작품들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산내 박정숙의 첫 개인전을 축하하는 화분들
궁체는 1446년(세종 28) '훈민정음'이 반포된 뒤 궁중에서 궁녀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발전했기 때문에 궁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궁체란 사전적 의미로 '궁녀체'라는 말이 줄어서 된 것인데, 그 유려함, 곡선적 율동감, 균형감이 넘쳐 한자 서예와는 대비되는 여성서예로서 일반 부녀층 사이에서 유행했기 때문에 내서(內書)라고도 했다. 그러나 궁중의 부녀자들 뿐만 아니라 왕이나 내시들도 궁체로 된 붓글씨를 많이 남겼다. 따라서 궁체가 궁녀체가 줄어서 된 말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궁체의 서체는 정서(正書)와 흘림(반흘림·진흘림)으로, 형식은 등서체(謄書體)와 서한체(書翰體)로 구분된다. 정서는 한자의 해서, 흘림은 행서·초서에 해당된다. 정서는 글씨를 쓰는 속도가 더딘 만큼 정중하고 깊은 맛이 있으며, 흘림은 운필과정에서의 강약·완급의 변화에 따라 뛰어난 시각미를 갖는다. 등서체는 정돈되고 규칙적이며 의식적인 데 비해 서한체는 불규칙적이고 자유분방하며 장식적이다.
궁체는 한글 붓글씨의 가장 아름답고 세련된 서체의 하나로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필맥의 흐름은 필사문자로써 한글서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 또한 붓글씨의 점과 획이 섬세하고 정교하여 글자의 모습이 단아하고 엄정하다. 궁체는 보통 모음의 가로획이나 세로획이 더욱 강조되어 길어지는 특징이 있다. 이 때 세로획의 길어짐은 중심을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쳐 가지런히 맞추어 쓰게 되는데, 이것은 다른 어떤 서체에서도 볼 수 없는 궁체만의 특징적인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궁체는 다른 서체에 비해 양식적인 제약이 있어서 점획의 방향이나 위치, 그리고 접필의 상태나 위치 등을 고려해서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또한 모음에 따라 자음 점획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영·정조 시대 국문학의 융성으로 한글필사가 늘어나면서 궁체는 부흥기를 맞는다. 궁체는 순조·고종대에 최고로 발달하여 서사상궁(書寫尙宮:궁중에서 교서나 봉서 등을 전문으로 쓰는 상궁) 가운데 선발된 지밀나인[至密內人]들의 편지 글씨는 세련미가 넘친다. 순조비 순원왕후, 순조의 딸 덕원공주의 글씨와 상궁 최장희의 〈신정왕후전〉, 상궁 서희순의 〈고종황제전〉 등의 글씨는 매우 아름다우며 특히 조대비전의 서기였던 이씨의 글씨는 궁체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궁체는 글씨의 선이 곧고 맑아 단아한 아름다움과 부드럽고 예의바른 품위가 있으므로 여러 가지 서체로 발달해 폭넓은 예술성을 지닌 한자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한글서체의 여러 가지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현대의 몇몇 서예가들은 한글서예의 새로운 형태화를 시도·연구 중인데 손재형의 한글 전서·예서 글자체화와 고체의 창시자라 불리는 김충현의 훈민정음체는 이러한 탐구작업의 한 성과이다. 현대 궁체의 대표자로는 곱고 부드러우며 단아한 글씨체의 이철경과 밝고 남성다우며 강건한 글씨체의 김충현을 꼽을 수 있다. 세월이 좀더 흐르면 이들과 함께 서예사에 박정숙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보태질 것이다. 아니 지금도 그녀는 충분히 그럴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김해성 '영산강', 18x29cm
이 작품은 김해성 시인이 쓴 '영산강'이란 시를 목판에 흘림체로 쓴 것이다. '한, 산, 단, 강, 학, 날, 잡, 밝'자의 'ㅏ'에서 'ㄴ, ㅇ, ㄹ, ㅂ'으로 운필하는 글씨의 맵시가 날렵하면서도 아름답다. 특히 'ㄷ'자는 乙(새 을)자와 그 모양이 아주 비슷하다. 마치 호수에 조용히 떠있는 한 마리 백조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글자 한 자 한 자가 모두 명필의 솜씨답게 단아하면서도 부드럽다. 날아갈 듯 한 맵시의 글자들이 모여 전체적으로 시냇물이 흐르듯 유려하면서도 날아갈 듯 멋진 흐름을 이루고 있다.
*당신이 최고야, 24x31cm
'당신이 최고야'. 글씨가보기만 해도 힘을 솟구치게 하는 활기찬 글씨다. 자유분방하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6글자를 대략 12번의 운필로 마무리했다. 같은 'ㅇ'자라도 그 모양이 다 다르다. 모음에 따라서 자음의 자획이 달라지는 궁체의 특징 때문이다. 이런 작품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아마도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서예는 단 한 글자만 잘못 써도 버려야만 한다. 아무리 대작이라고 해도 마지막 글자 한 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어버려야 한다. 20여년간 붓글씨를 써왔다면 지금까지 버린 작품만 해도 어마어마한 분량이리라. 그래서 붓글씨는 도를 닦듯이 해야 한다는 뜻에서 서도(書道)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의 산고가 필요하다.
*맑고 고운 기품, 79x35cm
'맑고 고운 기품'은 박정숙이 글씨를 쓰고 권인수 화백이 매화를 그렸다. 즉 두 사람의 공동작품이다. 예술작품을 꼭 혼자서만 해야 한다는 것은 없는 법..... 글씨와 그림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글에는 난초도 나오는데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매화 중에서도 홍매가 으뜸이 아니던가! 매화꽃이 참 아름답다. 매화의 분홍빛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마치 요염한 복사꽃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권인수 화백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화가다.그의 번짐을 이용한 일련의 그림들은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화가와 서예가의 멋진 만남이 이 작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고양시에서 살고 있어 자연스럽게 예술적 교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음의 문이 열려야
'마음의 문이 열려야'는 법정스님의 글을 흘림체로 쓴 것이다. 글의 내용도 좋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붓글씨로 쓰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의 글을 써야 한다. 누구의 글을 선택할 것인가는 작가의 그릇에 달려 있다. 여기서 박정숙이 선택한 글의 주인공들은 모두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인품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박정숙은 글씨 뿐만 아니라 인품에 있어서도 그만한 그릇이 되는 사람이다.
유유상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붓글씨만 잘 쓴다고 해서 서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붓글씨에는 그 사람의 인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나 성격까지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아함경, 46x36cm
아함경의 한 구절을 정서체로 쓴 작품이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공을 들여서 쓴 흔적이 역력하게 보인다. 정서체는 글씨를 쓰는 속도가 다른 서체에 비해서 더딘 서체다. 그러나 그만큼 더 정중하면서도 깊은 느낌이 난다. 정서로 씌어진 붓글씨 앞에 서면 나도 모르는 사이 몸과 마음이 반듯해지는 것 같다.
아함경은 불교 경전 가운데 아함부(部)에 속하는 원시(原始)경전 또는 소승(小乘)경전을 말한다. 아함은 산스크리트 아가마(gama)의 음역으로서, 전승(傳承)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함경은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 살았던 인물인 고타마 싯다르타(후에 사캬무니 붓다가 됨)가 45년간 그 제자들과 나눈 대화와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 비유나 우화가 많이 등장하고 대화체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은 삶의 조건과 질곡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과 해결책 등을 말하고 있다.
이 경전은 싯다르타와 그 제자들의 행적을 담고 있기에 초기 불교의 순수하면서도 질박한 가르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아함경은 대승경전들에 비해 일관되고 순수한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알 수 있는 경전이다. 다시 말해서 싯다르타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근원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함의 주요 사상은 사제(四諦)와 연기(緣起)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사유의 전개방식은 초보적 단계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아함의 팔리어본(本)인 5니카야는 베트남 ·타이완[臺灣]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최상무이(最上無二)의 절대적 성전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역 4아함은 그 번역이 이루어진 지가 매우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한국 ·일본 등 대승불교권에서 이를 묵살하다시피 해왔다. 싯다르타가 열반한 후 그 제자들이 왕사성의 칠엽굴에서 결집한 그의 가르침이 북방으로 전승된 것이 4아함이며, 현재의 스리랑카쪽으로 전승되어 인도의 아쇼카 대왕 이후로 이루어진 것이 팔리 5니카야이다.
*이호우 '님이여 나와 가자오', 48x17cm
이호우의 '님이여 나와 가자오'라는 시조를 흘림체로 쓴 부채글씨다. 이 시조는 모두 4연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두 번째 연에 해당된다. 이 작품은 날렵한 맵시로 흘러내린 글씨들이 방사상으로 배열되어 균형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옛날 선비들은 부채에다가 사군자를 그리거나 좋은 글귀를 붓글씨로 써넣는 풍류가 있었다. 여름철에 사군자를 그린 부채를 늘 가까이 두고 매, 란, 국, 죽이 갖고 있는 덕목을 배우고 익혔으며, 명구들을 쓴 부채를 통해서는 옛성현들을 본받고자 했다.
다시 말해 부채는 더위만을 쫓는 그런 단순한 부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채를 보면 그 주인의 학문과 인품, 그리고 예술의 경지까지도 알 수 있었다.
이호우의 시조 '님이여 나와 가자오'의 전문이다.
남향 따스한 뜰에
꽃이랑 과일 심어 두고
강섶 풀밭에
오리도 길르면서
오로지 너로만
한 폭 그림같이 살자오
원두막에 달이 오면
노래도 불러보고
버레 우는 밤은
추억도 되새기며
외롬이 싸주는 정에
담북 취해도 보자오
찔레꽃 흰 언덕에
벌꿀이 익을 때랑
저무는 백양 숲에
노을이 잠길 때랑
벗이야 오시든 말든
흰 술 빚어 두자오
넓은 하늘 아래
목숨은 푸른 것이요
가슴에 이끼를 가꾸긴
피가 진하지 않으오
사랑이 해처럼 밝은 곳
임이여 나와 가자오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는 1912년 3월 1일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박정숙의 고향에 있는 밀양보통학교를 다녔다. 또 청도는 밀양과 아주 가까운 곳이다. 따라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이호우의 이름과 그의 시조를 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국문학을 전공한 필자도 처음 보는 이 시조를 붓글씨로 옮길 수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이호우는 1940년 이병기의 추천을 받아 시조 〈달밤〉이 〈문장〉에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이어 발표한 〈개화〉·〈휴화산〉·〈바위〉 등은 감상적 서정세계를 넘어서 객관적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노래하고 영탄하던 종래의 시조와는 달리 평범한 제재를 평이하게 노래했으며 후기에는 인간의 욕정을 승화시켜 편안함을 추구하는 시조를 썼다. 이호우가 한국의 고전적 시조를 현대감각이나 생활정서로 전환시켜 독특한 시적 경지를 개척한 것은 시조시단에 남긴 그의 공적이라 할 수 있다. 이호우는 1970년 1월 6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고향 청도에는그를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맑고 고운 기품 2, 51x70cm
'맑고 고운 기품'도 권인수 화백과 박정숙의 공동작품이다. '맑고 고운 기품'이라는 같은 제목하에 연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글 내용은 같으나 그림은 다르다. 고목의 등걸은 번짐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고목을 매화나무 가지가 한 바퀴 휘감아 나가고, 그 위에는 난초가 쳐져 있다. 난초도 매화도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난향이 그윽하게 풍겨나오는 듯 하다.
이 작품을 소장하고 싶었는데..... 누군가가 먼저 구입을 했다고 한다. 글씨체와 난초 그림이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아래를 향해 날씬하게 쳐 내려간 난초잎이 붓글씨의 흘림체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난초를 치듯이 붓글씨를 썼고, 붓글씨를 쓰듯이 난초를 흘려 내렸다는 느낌마저 든다.
*산내 박정숙 작가와 함께
여기 소개한 작품들 외에도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지면 관계상 더 소개를 할 수 없어 아쉽다. 산내 박정숙의 부군인 김기석 군과 나와는 ROTC 17기 동기라는 인연이 있다. 그녀가 오랜 세월 동안 붓글씨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외조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녀의 서예에 대한 외길이 앞으로 더욱 큰 빛을 보기 바란다.
박정숙은 생애 처음 서예 개인전을 열면서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만남을 맛남으로 여기고 깨알만한 인연도 소중하게 여기며 한 순간이라도 소흘함이 없기를..... 아름다운 만남이 향기로운 맛남으로 거듭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墨線에 실어본다.'고.....
2005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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