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며칠 전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지방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소백산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설악산, 태백산과 함께 소백산은 설경이 아름다운 산이다.
*소백산 등산지도
설악산은 저번 주에 다녀왔으니 오늘은 소백산 설경을 보기 위해서 죽령으로 향한다. 눈덮힌 소백산맥의 환상적인 설경을 본다는 생각에 마음은 벌써 기대감으로 설레인다.
*죽령 정상
날씨는 포근하고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아서 등산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다. 따스한 햇볕을 받아서 눈이 벌써 녹고 있다. 죽령에서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연화봉과 비로봉에 오른 다음 천동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소백산 설경은 백두대간 마룻금을 밟으면서 바라보는 경치가 으뜸이다. 죽령에서 비로봉까지는 백두대간에 속한다.
*제2연화봉의 중계소. 구연화봉이라고도 함.
눈을 밟으며 걸을 때 발밑에 전해져 오는 감촉이 폭신하다. 그러나 군데군데 빙판이 져 있어 미끄러운 곳도 있다. 얼마나 올랐을까 제2연화봉의 중계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2연화봉은 구연화봉이라고도 부른다. 지도에는 제2연화봉으로 나와 있다. 죽령에서 중계소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눈 속에 피어난 버들강아지
눈 속에 피어난 버들강아지가 봄이 왔음을 알려 주고 있다. 그 모습이 앙징맞으면서도 귀엽다. 깊은 산 속에서도 가장 먼저 피어나 봄이 왔음을 알려 주는 버들강아지는 봄의 전령사라고나 할까! 폭설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세월의 흐름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노라고 외치고 있는 듯 하다.
*제2연화봉에서 바라본 연화봉과 천문대
제2연화봉(해발 1357m)에 올라서니 연화봉 천문대가 저만치 다가선다. 천문대를 향해서 가는 산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다. 우리네 인생길도 저 산길처럼 확실히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겪게 되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리라.
*제2연화봉에서 바라본 연화봉과 제1연화봉(맨 뒤 왼쪽 봉우리). 맨 뒤 오른쪽 봉우리가 비로봉
제2연화봉 전망대는 단체산행을 온 산악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과 제1연화봉을 거쳐 비로봉을 향해서 치달려 가는 백두대간 마룻금을 하염없이 바라다 본다. 하얀 눈에 덮힌 비로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소백산 천문대와 연화봉
제2연화봉을 떠나 연화봉으로 향한다. 연화봉이 가깝게 다가선다. 산을 높이 오를수록 눈이 더 많이 쌓여 있다. 하얀 눈을 보면 왜 그리도 가슴이 설레이는 것일까! 마술처럼 온 세상을 온통 하얀색으로 뒤바꾸어 놓는 눈..... 은색의 바다..... 나는 어쩌면 흰색이 상징하는 그 순수를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화봉에 있는 소백산 천문대.
소백산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에 올라선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천문대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천문대 마당에도 눈천지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흘러가고 바람도 잔잔하다. 마음마저 느긋하면서도 한가로와진다. 이런 한가와 여유를 얼마만에 가져보는 것일까!
*연화봉에서 바라본 도솔봉과 삼형제봉. 맨 왼쪽 봉우리가 도솔봉이고 그 오른쪽이 삼형제봉과 1286m봉. 백두대간은 1286m봉에서 죽령으로 이어진다.
연화봉은 전망이 참 좋은 곳이다. 죽령 너머로 도솔봉과 삼형제봉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백두대간은 저 도솔봉과 삼형제봉, 1286m봉을 지나 죽령을 넘어서 여기까지 이어진다. 소백산맥의 봉우리 이름들은 불교신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묘적봉과 도솔봉,연화봉, 비로봉이 다 불교적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희방사 계곡
희방사 계곡이 바로 아래로 한눈에 들어온다. 계곡 앞으로 곧게 벋은 도로는 죽령터널을 빠져나온 중앙고속도로이다. 연화봉에서 희방사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다. 전에 몇 번 다녀봐서 낯익은 길이다.
*연화봉 정상 표지석
연화봉 정상에는 단양군에서 세운 표지석이 있다. 연화봉의 높이는 해발 1421m. 소백산에서는 비로봉에 이어 국망봉과 함께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연화봉 정상에도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백두대간 주능선과 희방사계곡을 잘 조망할 수 있다. 제1연화봉과 비로봉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연화봉에서 제1연화봉으로 가는 눈길
연화봉을 떠나 제1연화봉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자 폭신폭신한 눈길이 이어진다.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걷는 느낌이 참 좋다. 눈을 좋아하는 것은 강아지나 사람이나 매 한 가지다. 눈이 내릴 때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 않던가! 사람들은 설경을 보러 산으로 들로 다니고.....
*제1연화봉
숲속으로 난 오솔길을 벗어나자 제1연화봉이 바로 앞에 있다. 정상까지는 식생을 보호하기 위해서 목재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계단길을 오르는 것은 보기보다는 힘이 든다. 계단길을 거의 다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지나온 제2연화봉과 연화봉
제1연화봉(해발 1394m)에 올라 지나온 산길을 되돌아 본다. 거쳐 온 봉우리들이 제법 멀어 보인다. 내 두 다리로 한 발자욱씩 걸어서 온 길이다. 우리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가끔씩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길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지나온 나날들을 돌이켜 살펴보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제1연화봉에서 바라본 비로봉
제1연화봉을 지나 조금만 가면 전망이 아주 뛰어난 바위가 있다. 바위 바로 밑은 절벽이다. 지금은 눈이 쌓여 있어서 위험하다. 바위에 올라서니 짜릿한 느낌이 온몸에 전해져 온다. 비로봉이 바로 앞에 다가선다. 소백산은 의젓하면서도 점잖은 산이다. 산세가 급하지 않아서 넉넉하고 후덕한 느낌을 준다.
비로사계곡 쪽으로 눈을 돌린다. 삼가리에서 비로사를 지나 월천계곡으로 해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계곡의 끝자락에 보이는 저수지가 금계호다. 비로사계곡 골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저 금계호로 모여 든다.
*비로봉
목재로 만든 계단길을 따라서 비로봉으로 오른다. 어떤 곳은 눈에 파묻혀 버린 곳도 있다. 동쪽 사면에도 바람에 날린 눈이 깊이를 모를 만큼 쌓여 있다. 비로봉은 강풍으로 유명한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잠잠하다. 몇 년 전에 비로봉을 오르려다가 엄청난 강풍으로 인해 중도에서 포기하고 도로 내려간 적도 있다.
*비로봉 정상 표지석
나무계단길이 길고도 멀다. 그러나 아무리 먼 길이라 하더라도 한 걸음 두 걸음 걷다가 보면 언젠가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마침내 소백산 제일봉 비로봉 정상에 오르다. 1439.5m.....
표지석의 뒷면에는 '소백산'이란 시가 음각되어 있다. 시를 쓴 사람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이다. 소백산을 보고 느낀 감흥이 잘 나타나 있는 시다. 시를 읽으면서 서거정이 느꼈을 감흥에 젖어 본다.
小白山連太白山 태백산에서 치달려 온 소백산
他百里押雲間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分明畵盡東南界 또렷이 동남방의 경계를 그어
地設天成鬼破 하늘과 땅이 만든 형국 귀신도 울었소.
*제2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제2연화봉과 연화봉, 제1연화봉이 다 보인다.
비로봉에서 제2연화봉을 향해서 백두대간이 꿈틀거리며 달려 간다. 거침없이 유유히 뻗어가는 백두대간..... 내 마음은 어느덧 저 거침없는 백두대간을 닮아가고 있다. 산은 언제나 무언의 깨우침을 주곤 한다. 땀을 흘려서 얻은 깨달음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다. 나의 인생길이 자주 산으로 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백두대간.
국망봉으로 가는 백두대간의 동쪽 사면에도 눈이 많이 쌓여 있다. 서쪽 사면은 강한 북동풍으로 말미암아 눈이 다 날려가서 맨땅이 드러나 있다. 바람 때문에 나무도 자라지 못해서 큰 나무를 거의 볼 수가 없는 곳이다. 지금은 주목나무 묘목을 심어 놓았는데 과연 잘 자랄 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비로봉 바로 앞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어의곡리가 나온다.
*비로봉에서 바라본 국망봉
비로봉에서 눈덮힌 국망봉을 바라본다. 마의태자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는 국망봉.....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은 고려에 나라를 잃고 조상과 백성들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명산대찰을 찾아서 제천시 백운면 방화리 궁터에 동경저(東京邸)라는 궁을 짓고 머물렀다. 경순의 왕자인 마의태자는 신라의 국권을 되찾으려 백방으로 애를 쓰다가 실패하자 엄동설한에 베옷 한 벌만 걸치고 저 봉우리에 올라 망국의 한을 달래며 옛 도읍인 경주를 바라보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 이후 사람들은 저 봉우리를 국망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신선봉
국망봉 왼쪽으로 신선봉 능선이 뻗어 있다. 신선봉은 상월봉 지난 다음 늦은맥이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된다. 오른쪽으로 가면 백두대간으로 고치령에 닿는다. 상월봉은 지금 국망봉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구인사 쪽으로 가려면 저 신선봉을 넘어서 가야 한다.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바둑판이 있다고 전해지는 신선봉..... 하지만 내가 저 봉우리에 올랐을 때 바둑판을 보지는 못 했다.
*소백산 주목관리소와 주목군락지
산을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 해도 이젠 서산에 기울고 있다. 천동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주목관리소 뒤로 보이는 안부에서 천동계곡으로 내려가면 된다. 주목관리소는 비로봉 바로 아래 평평한 언덕에 세워져 있는데, 북쪽 사면은 드넓은 주목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주목군락지 주변에는 철책을 쳐서 주목을 보호 관리하고 있다. 양지 바른 곳을 찾아서 새참을 먹고 가기로 한다.
천동계곡길은 힘든 곳이 별로 없다. 눈이 녹아서 미끄럽기는 하지만..... 스키를 타는 식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니 재미있기도 하고 스릴도 있다. 야영장부터는 우마차 길이라 산보를 하는 기분이다. 소백산관리사무소 건물을 지나면 다리안 폭포가 나온다.
다리안폭포는 제법 수량이 많다. 물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귀에 시원하다. 다리안폭포 입구에는 산악인 허영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다리안폭포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다 내려온 것이다.
오늘은 소백산 비로봉으로 나 있는 나의 인생길을 밟으면서 예까지 왔다. 소백산을 가슴에 품고 귀로에 오르다.
2006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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