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100대 명산 설악산 대청봉 겨울 포토기행

林 山 2006. 3. 1. 18:24
2년만에 다시 찾은 설악산이다. 지난 2004년 2월에는 공룡능선과 구곡담계곡을 보려고 3박4일간 설악산에 들어왔었다. 소청대피소에서 하룻밤 머물렀을 때 밤새 하얀 눈이 내려 환상적인 설악의 설경에 넋을 놓은 적이 있었는데..... 대청봉, 서북능선, 용아장능선, 화채능선, 공룡능선, 천불동계곡의 장엄화려한 경치를 볼 생각을 하니 마음은 벌써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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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등반안내 지도
 
오늘은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른 다음 중청봉, 소청봉, 희운각 대피소로 해서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갈 계획이다. 오색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한가롭게 떠 있다. 바람도 잠잠하고 날씨도 비교적 푹해서 등산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다. 그러나 대청봉에 올라서면 날씨가 돌변하기 일쑤다. 대청봉에는 태풍수준의 바람이 불어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구름도 변화무쌍해서 순식간에 설악산을 감춰버리곤 한다.
 

*중청봉

 

한동안 땀을 흘린 끝에 중청봉이 바라다보이는 능선에 올라선다. 산기슭에는 하얀 눈이 그대로 있다. 등산로 초입에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던데..... 산을 점점 더 높이 오를수록 눈이 많이 쌓여 있다. 중청봉 중계소의 하얀 천을 씌운 안테나가 뚜렷이 보인다. 중청봉 왼쪽 능선이 끝청봉을 거쳐서 한계령으로 내려가거나 귀때기청봉을 거쳐서 대승령으로 갈 수 있는 서북능선이다. 


*대청봉

 

눈이 많이 쌓인 곳을 걸어갈 때는 마치 양탄자나 스펀지를 밟는 것처럼 폭신폭신한 느낌이 발에 전해져 온다. 빙판이 져 있어서 미끄러운 곳도 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한다. 대청봉이 가깝다는 신호다. 조금 더 올라가자 대청봉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는 5.1km로 대략 4시간 정도 걸린다.


*대청봉 정상 표지석에서

 

마침내 대청봉 정상에 올라서다. 1708m. 한라산과 지리산에 이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정상에는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부는지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다. 하얀 구름이 휙 몰려왔다가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고글을 가지고 왔어야 하는데..... 찬바람을 맞으면 눈이 충혈되어 빨갛게 변하기 십상이므로..... 두터운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시리다. 날씨 때문인지 정상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대청봉은 청봉(靑峯) 또는 봉정(鳳頂)이라고도 부르는데 공룡릉, 화채릉,서북릉 등과 같은 설악산의 주요 능선들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대청봉은 죽음의계곡과 천불동계곡, 가야동 계곡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정상에서 천불동계곡을 따라 비선대까지는 8km의 거리로  약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서북능선

 

대청봉 정상에 서서 눈덮힌 서북능선을 바라본다. 끝청봉과 귀때기청봉, 큰감투봉을 지나 대승령, 안산을 향해서 서북능선이 시원하게 뻗어간다. 한계령에서 끝청, 중청, 대청에 이르는 능선은 백두대간이다. 저 멀리 서북릉 왼쪽으로 가리봉과 주걱봉, 삼형제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점봉산

 

오색리 건너 점봉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사방으로 뻗어내린 능선과 계곡에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몇 년 전 백두대간을 혼자서 종주할 때 점봉산 정상에서 설악산을 바라보며 말문이 막혔던 적이 있다. 점봉산 정상에는 등반을 하다가 죽은 산악인을 기리는 묘비명이 있다. 그 묘비명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 오던 기억이 난다. 나도 나그네가 되어 산길을 걷다가 죽게 된다면 행복할 수가 있을까?

 

'점봉에서

너는

山이 되는구나'

(점봉산 정상에 있는 묘비명)

 

산은 언제나 그 높음과 넓음 그리고 깊음으로 나에게 무한의 깨달음을 주곤 한다. 산은 바라보는 것 자체가 깨달음이다. 그래서 산사람은 늘 히말라야 설산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설산의 품에 안겨 보리라.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이나 수미산 라운드 트레킹을 해보고 싶다. 히말라야산맥을 트레킹할 수 있다면..... 죽기 전에.....


*화채능선

 

동쪽을 바라보니 화채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청봉에서 화채봉과 칠성봉, 집선봉을 지나서 권금성산장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화채능선이다. 화채릉은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갈라진다. 화채능 너머로 속초시와 석호인 영랑호, 청초호가 내려다 보인다.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 하늘을 닮아서 한없이 푸르른 동해바다를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뻥 뚫리면서 시원해져 옴을 느낀다.     


*중청봉과 중청대피소

 

중청봉(1660m)에도 눈이 하얗게 덮혀 있다.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까지는 약 600m의 거리다. 대피소 바로 뒤에서 서북릉과 소청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다. 중청대피소는 진달래가 활짝 필 무렵의 봄철이나 단풍이 울긋불긋 물드는 가을철에는 등산객들로 발을 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등산객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천불동 계곡

 

천불동계곡을 내려다 보니 마치 금강산에 들어와 있는 듯 한 착각이 든다. 수없이 많은 암봉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솟아 있다. 천불동이라는 이름은 수많은 바위봉우리들이 마치 천개의 불상이 늘어서 있는 듯 한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천불동계곡은 중청봉에서 설악동까지 이어지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지리산의 칠선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더불어 한국 3대 계곡 중의 하나다. 계곡의 왼쪽은 공룡능선, 오른쪽은 화채능선이다. 왼쪽에 솟아 있는 암봉이 공룡릉의 신선봉이고, 그 너머로 울산바위가 보인다.


*공룡능선

 

공룡능선에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공룡능선은 무너미고개에서 신선봉, 1275m봉, 나한봉을 거쳐 마등령에 이르는 능선으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암봉들이 연출하는 경치가 아름다우면도 웅장하다. 신선봉과 천화대, 범봉, 1275봉, 마등령, 1326.7m봉, 황철봉까지 한눈에 다 보인다. 동해바다를 향해서 거침없이 뻗어내려간 설악산의 준령들..... 광대무변한 대자연의 기운이 온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용아장성능선

 

중청봉에 잠시 머물러 쉬다가 소청봉으로 내려간다. 용아장성릉의 험준한 암릉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멋지다. 능선에 솟아오른 바위봉우리들이 마치 용의 이빨을 닮았다고 해서 용아장성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용아장성릉의 왼쪽은 구곡담계곡이고 오른쪽은 가야동계곡이다. 두 계곡은 백담계곡에서 합류한다. 보일 듯 말 듯 한 파란 지붕은 소청대피소다. 소창대피소 바로 아래 구곡담계곡이 시작되는 곳에 봉정암이 있다. 내설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소청봉에서 바라본 공룡능선과 백두대간. 바로 앞 봉우리가 소청봉.

 

소청봉(1638m)에서 바라보는 공룡능선과 백두대간이 참으로 장엄하다. 공룡능선으로 해서 황철봉을 지나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백두대간이다. 저 마룻금을 타고 계속 걸어가면 백두산에 이를 수 있는데..... 지금은 삼팔선이 가로막고 있어 오갈 수가 없다. 새들도 자유롭게 오가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멀쩡한 땅에다가 철조망을 쳐놓고 사람들의 왕래를 가로막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통일은 어렵다고 하자. 그러나 사람만이라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소청봉에서 바라본 서북능선

 

소청봉에 서서 안산을 향해서 치달려가는 서북능선을 바라본다. 바로 저 앞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귀때기청봉이다. 서북능선 건너 귀때기청 왼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들은 가리봉과 주걱봉, 삼형제봉이다. 귀때기청 뒤로는 큰감투봉과 작은감투봉, 안산이 차례로 이어진다. 안산은 서북능선이 끝나는 지점이다. 두 개의 암봉 가운데가 마치 말안장처럼 잘룩하게 들어가 있다고 해서 안산(鞍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산은 일명 길마산이라고도 한다.

 

귀때기청봉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귀때기청봉은 자신이 설악산에서 가장 높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귀때기청봉은 대청봉 앞에서 자신이 더 높은 봉우리라고 뽐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대청봉은 느닷없이 귀때기를 한 대 올려 부쳤다. 그 바람에 귀때기청봉은 대청봉에서 멀리 떨어진 지금의 그곳까지 날아와 버렸다는 이야기.....

 


*희운각대피소

 

소청에서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도 가파르고 곳곳에 빙판이 져 있어 위험하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조심조심 비탈길을 내려간다.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해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전에 이곳에서 한 두어 번 묵어간 적이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대피소로 숙소가 좀 좁은 것이 흠이다.  

*신선봉과 공룡능선의 암봉들

 

무너미고개에서 천불동으로 내려가기 전 신선봉과 공룡능선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설악산에 다시 오게 되면 공룡능선을 보리라. 설악산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공룡능선이다. 공룡능선 자체가 경치가 뛰어나거니와 전망도 좋아서 설악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천불동계곡의 기암괴석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오면서 화채릉을 올려다보니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암봉들이 수없이 솟아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기세가 세차고 강하다. 까마득한 암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의 질긴 생명력에는 경외감마저 든다. 극한적인 생존환경을 이겨내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저 소나무들 앞에서 나는 그저 유구무언일 뿐이다.


*천불동 계곡의 천당폭포

 

천불동계곡을 내려가다가 보면 엄청나게 긴 철계단을 자주 만나게 된다. 수십길 낭떠러지 위로 철계단을 설치한 곳도 있다. 계곡을 내려다 보면 아찔아찔하다. 천당폭포에 이르니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다. 무더운 여름철 깊은 계곡 속에 시원한 폭포가 있어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에게 천당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해서 천당폭포란 이름이 붙었다. 천당폭포 바로 위에는 산악인들 사이에 지당폭포라고 알려진 폭포가 있다.

 


*천불동 계곡

 

천불동계곡에는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 있고 물이 흐르던 자리는 얼음이 두껍게 얼어 있다. 천불동은 십여 개에 이르는 폭포와 까마득한 암벽 사이에 생긴 협곡이 절경이다. 


*양폭

 

사람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협곡의 바위절벽 위에 설치된 긴 철계단을 내려와 양폭에 이른다. 양폭도 얼어붙어 빙벽으로 변해 있다. 양폭 왼쪽에 있는 음폭도 얼어붙었다. 음폭과 염주폭이 있는 계곡이 염주골(일명 음폭골)이다. 염주골은 화채능선으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설악산에서 가장 위험한 곳들 중 하나다. 양폭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양폭산장이다.


*금강굴이 있는 미륵봉(일명 장군봉)

 

오련폭포를 지나자 금강굴이 있는 미륵봉이 우뚝 나타난다. 미륵봉 바로 밑이 비선대다. 금강굴은 깎아지른 듯 한 미륵봉의 중간쯤에 있는 자연석굴이다. 7평 정도 되는 금강굴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곳에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행을 했다고 한다. 금강굴은 전망이 뛰어나서 천불동의 아름다운 계곡미를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설악골 삼거리와 마등령 삼거리를 지나 비선대에 이른다. 비선대는 기암절벽 사이에 넓은 바위가 소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와선대에 누워서 주변경관을 구경하던 마고선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비선대라고 부른다. 비선대에서도 미륵봉과 형제봉, 선녀봉을 볼 수가 있다.



*권금성

 

신흥사 대불을 지나 설악산 소공원으로 내려오니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권금성에는 케이블카 두 대가 연신 오르내리고 있다. 오색에서 대청을 넘어서 여기까지 오는데 장장 8시간이 걸렸다.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설악산의 더 멋진 설경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귀로에 오른다.

 

2006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