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100대 명산 한라산 포토기행

林 山 2006. 2. 2. 13:36

서귀포에서 아침을 맞이합니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서 서둘러 길을 떠납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네요. 날씨는 화창하고 포근합니다. 등산하기에 아주 좋은 날입니다.

 

 

*서귀포에서 성판악을 오르다가 바라본 한라산

 

친구의 차로 서귀포를 떠나 성판악을 넘습니다. 한라산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 나타납니다. 한라산의 모습이 참으로 웅장하고 장엄하네요. 제주도의 한가운데 솟아오른 한라산을 중심으로 완만한 능선들이 사방으로 뻗어가고 있습니다. 한라산은 이번에 세 번째 오르는데요. 몇 년 전 한라산에 폭설이 내렸을 때 이틀 연속으로 성판악-백록담-관음사, 어리목-윗새오름-영실 코스를 오르내린 적이 있지요. 오늘은 한라산이 어떤 모습일지 사뭇 궁금하네요.

 

성판악을 넘어서 관음사 매표소에 도착합니다. 이제 친구와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군요. 다음에 또 만날 기약을 하고 친구를 먼저 떠나보냅니다. 친구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고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매표소 직원이 12시까지 용진각을 통과하지 못 하면 거기서 바로 하산해야 한다고 그러네요. 지금이 10시니까 용진각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산을 올라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관음사에서 출발해서 탐라계곡과 능선을 타고 한라산 백록담으로 오를 생각인데요. 백록담에서는 성판악으로 하산하려고 합니다. 관음사 매표소에서 한라산 정상까지는 약 8.7km 거리고요<관음사야영장 매표소-1.5km-구린굴-1.7km-탐라계곡대피소-1.7km-개미목-1.9km-용진각대피소-700m-왕관릉-1.2km-동능 정상. 소요시간 약 5시간>. 백록담에서 성판악까지는 약 9.6km입니다<성판악 매표소-3.5km-속밭(잔디밭)-1.7km-사라악약수터-400m-사라악대피소-1.7km-진달래밭대피소-1.8km-공터-500m-동능 정상. 소요시간 약 4시간 30분>. 그러니까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총 18.3km가 되겠군요. 1시간당 2km를 갈 수 있다고 계산하면 산행시간은 9시간에서 10시간 정도 걸리겠네요. 

 

관음사 코스는 성판악, 어리목, 영실(돈네코 코스는 휴식년제에 들어가 있음)과 더불어 현재 한라산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등산기점의 하나인데요. 관음사 매표소의 위치는 제1횡단도로(일명 5.16도로)와 1100도로(제2횡단도로(일명 1100도로)를 잇는 제주시 방향 산록도로 중간지점으로서 제주시 공동묘지 서쪽에 있지요. 관음사 코스라고 해서 관음사에서 등산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요. 실제로 관음사는 등산로 입구에서 동쪽으로 약 1.2㎞ 지점에 있습니다. 이 등산로는 탐라계곡과 삼각봉 사이에 마치 개미의 등처럼 생긴 능선이 있어서 개미목 또는 개미등 코스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이 코스에는 95년 5월에 개장한 야영장이 있습니다. 텐트 임대와 매점 이용도 가능하다네요. 


 

*탐라계곡로 합류하는 작은 계곡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숲이 점점 더 울창해지기 시작합니다. 가끔 나타나는 계곡은 물이 말라서 바닥이 드러나 있네요. 우거진 숲으로 인해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계곡바닥의 바위돌에는 파란 이끼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산길에도 바위나 자갈이 많이 박혀 있네요. 한라산의 돌들은 대개가 검은 색을 띠고 있습니다. 그것은 화산이 분출할 때 용암이 굳어져서 된 화산암이기 때문이지요. 제주도에는 특히 화산암 중에서도 현무암이 많은데요. 현무암은 구멍이 많은 다공질의 암석이어서 비가 내려도 금방 스며들어서 깊은 계곡에도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것을 보기가 힘들지요. 그래서 한라산의 계곡들은 대부분이 건천입니다.


 

*한라산의 원시림


한동안 완만한 산길이 이어집니다. 가끔 사람의 손길을 전혀 타지 않은 울창한 원시림이 나타납니다. 원시림 속에 섞여 자라고 있는 어린 상록수들도 보이네요. 생김새를 보면 굴거리나무와 그 모양이 비슷하군요. 관음사 매표소에서 탐라계곡까지는 전망이 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울창한 숲 사이로 등산로가 나있으니까요. 


 

*탐라계곡

 

완만한 능선길이 끝나면서 탐라계곡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탐라계곡도 물이 말랐네요. 탐라계곡은 지리산의 칠선계곡, 설악산의 천불동계곡과 더불어 한국의 3대 계곡 중 하나인데요. 아름다운 계곡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계곡은 백록담 화구벽의 서북벽 바로 밑에서 발원하여 용진각과 개미목, 관음사 서록을 지나 제주시 용연으로 흘러드는데요. 예전에는 한천 곧 큰 내라고 불렸을 만큼 깊고, 넓고 큰 계곡이지요.

탐라계곡을 건너면서 바로 소나무와 조릿대가 우거진 개미등이 시작되는데요. 개미목을 바라보면서 왼쪽 계곡은 탐라계곡, 오른쪽 계곡은 개미계곡이지요. 탐라계곡을 건너는 지점은 동탐라계곡과 서탐라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인데요. 이곳까지는 참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림이 울창한 숲길입니다. 또 평탄한 길이고요. 이 계곡을 건너면 탐라계곡 대피소가 있습니다. 갑작스런 폭우나 폭설로 조난의 위험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지어놓은 무인대피소지요. 한라산의 계곡은 대부분 평상시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지만 비가 내리기만 하면 갑자기 물이 불어나 급류로 변하기 일쑤입니다. 특히 이곳은 여름철 우기에 급류에 휩쓸려 조난을 당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한라산 기슭의 조릿대(보통 산죽이라고도 함)

 

개미등을 타면서부터 울창한 산죽숲이 끊임없이 나타나네요. 이곳만 보아도 산죽의 자생지가 한라산의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짐작이 듭니다. 조릿대를 보통 산죽이라고도 하는데요. 조릿대는 벼과(─科 Poaceae)에 속하는 상록성 관목으로 키는 1~2m, 지름은 3~6㎜로서 가지를 많이 치는 식물입니다. 평안남도와 함경남도 이남지역의 숲속에서 많이 자라고요. 산죽은 관상용으로 쓰거나 조리나 대바구니 등을 만드는 데 쓰이지요. 산죽잎을 한방에서는 죽엽(竹葉)이라고 하는데요. 죽엽은 진정제나 치열제, 이뇨제, 청심제로 사용하며 번열, 구토, 갈증을 치료하는 데 쓰기도 합니다. 민간요법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조릿대가 인삼을 능가할 만큼 놀라운 약성을 지닌 약초라서, 조릿대 한 가지만 써도 당뇨병이나 고혈압, 위염, 위궤양, 만성 간염, 암과 같은 난치병을 완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글쎄요. 좀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죽엽이 좋은 한약재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한국에는 한라산에 자생하는 제주조릿대 말고도 이삭 끝이 까락처럼 되는 갓대, 이보다 작은 섬대가 있고, 울릉도에 자생하는 섬조릿대, 함경북도 명천에 자생하는 신이대 등이 있는데 모두 비슷한 용도로 쓰이지요.

 

최근 한라산연구소는 제주조릿대의 급속한 확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한라산 해발 400∼1800m 사이의 소나무림, 낙엽활엽수림, 관목림 등 6개 지역을 선정해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고 하네요. 한라산연구소 고정군 책임연구원은 '제주조릿대가 한라산 토양침식을 방지하는 순기능도 갖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한라산의 다양한 식물상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있다.'면서 '한라산 희귀식물 종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인공으로 이식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산죽이 밀생하는 곳에는 다른 나무나 풀이 자라기 어려운가 봅니다. 산죽 밀생지에는 다른 나무나 풀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네요.


 

*개미목에서 탐라계곡 너머로 바라본 왕관릉의 산록. 

 

개미등에 올라서자 비로소 전망이 탁 트이면서 한라산의 비경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개미등은 두 골짜기 사이에 툭 튀어나온 능선의 모양이 마치 개미의 등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지요. 가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송림도 나타납니다. 역시 한국의 산에는 소나무가 있어야 제멋이 나는 법이지요.

 

일본에 가면 한국에서 소나무를 만나듯 '스기'라고 하는 삼나무가 흔한데요. 그런데 큐슈의 남쪽 미야자키 현 기리시마에 가면 한국악(가라쿠니다케, 韓國岳)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이 산은 일본인들이 일본의 발상지로 신성시하는 산이지요. '고사기'에 의하면, 한국악에는 일본 초대왕 신무천왕의 증조부이자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 제 7왕자의 화신(化身)으로 알려진 니니 기노미코토가 이 산 정상에 올라 김수로왕이 강림한 김해의 구지봉을 향하여 조국을 불렀다고 하는 전설이 서려 있습니다. 2005년 1월인가 한국악에 올랐을 때 일본의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보고는 마치 한국에 있는 산에 오른 듯 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요. 그만큼 소나무는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나무라고 할 수 있지요.


 

*장구목 오름과 연결된 북쪽 봉우리인 삼각봉(1695m)

 

개미등 능선의 정상에 오르자 삼각봉이 사람의 앞을 가로막듯이 우뚝 서 있습니다. 수림의 식생상태도 변해서 이제는 구상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기세도 등등하게 서 있는 삼각봉을 올려다 보노라니 위압감마저 느껴지는군요. 이 봉우리는 장구목오름과 연결된 북쪽 봉우리인데요. 위쪽에서 보면 장구목오름의 연장으로 보이지만, 지금의 위치인 북쪽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치솟은 거대한 암봉입니다. 그래서 삼각봉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삼각봉의 남사면쪽으로는 진달래 군락지가 있고, 시로미, 누운향나무 등 고산식물이 자생하고 있다네요. 삼각봉의 높이는 1,695.5m입니다.  


 

*개미목에서 바라본 백록담 북벽과 오른쪽의 장구목. 탐라계곡이 여기서 시작됨 

 

한라산 최고봉인 부악의 거므스름한 외벽이 손에 잡힐 듯 바라다 보입니다. 부악의 오른쪽으로는 장구목능선이 서쪽을 향해서 달려가고요. 백록담의 북벽과 왼쪽의 왕관릉, 오른쪽의 장구목과 삼각봉 사이로는 깊은 탐라계곡이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는 듯 합니다. 태양을 등진 채 그 모습을 드러낸 한라산..... 시간이 갑자기 정지한 듯 한 느낌입니다.

 

 

*한라산의 북동쪽으로 뻗어가는 왕관릉

 

왕관릉의 거대한 암봉도 웅장한 모습입니다. 금방이라도 우르르 무너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기상이 우렁차네요. 왕관릉은 백록담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위치한 오름인데요. 능선의 북쪽에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흡사 왕관처럼 생긴 깍아지른 듯 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왕관릉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용진각에서 왕관릉까지는 경사가 몹시 가파라서 백록담을 오르기 위한 마지막 고비가 되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왕관릉 남사면에는 구상나무가 군락지가 있고요. 북쪽의 평탄한 지역에는 진달래, 시로미, 제주조릿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지요. 조선시대의 어떤 지도를 보면 왕관릉을 연대(烟臺)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름으로 보아 봉수대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왕관릉의 높이는 1,666.3m입니다.

 

 

*탐라계곡 최상류에 있는 샘터. 용진각 바로 못 미처 있음.

 

삼각봉에서부터 탐라계곡까지는 내리막길입니다. 삼각봉 자락을 끼고 내리막길을 거의 다 내려오면 졸졸졸 흐르는 샘터를 만나게 되는데요. 지금처럼 갈수기에는 목마른 등산객들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고마운 샘입니다. 누군가 작은 플라스틱 물바가지를 가져다 놓았네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의 따스한 마음을 생각하면서 샘물을 한 모금 마셔 봅니다. 목이 말랐던 터라 물맛이 그처럼 달고 시원할 수가 없네요. 


 

*용진각에서 바라본 장구목 북벽사면의 산죽군락지

 

샘터를 떠나 탐라계곡을 횡단한 뒤 조금 더 올라가면 용진각입니다. 용진각에는 무인대피소가 지어져 있네요.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합니다. 용진각은 삼각봉과 왕관릉 사이의 움푹 꺼진 골짜기를 말하는데요. 예전에는 용진굴이라고 불렸던 곳입니다. 굴이라고 해서 동굴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사방이 높은 산능선에 둘러싸여 신비스런 기운이 서려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입니다. 용진각의 동북편 언덕은 장구목이라는 고원평지인데요. 왕관릉에서 바라보면 장고와 똑같은 형상으로 보인답니다. 장구목 북벽사면에는 수만 평의 산죽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네요. 삼각봉, 장구목, 부악, 분화구 북벽 그리고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경치가 기괴하면서도 웅장합니다. 정말 장관입니다.  

 

용진각 원형대피소에는 1964년부터 40대 부부가 흰둥이 개 한 마리와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원래 이들 부부는 1959년부터 한라산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1963년에 등산객을 위한 몽고식 대피소를 세우자 그 한 켠에 단칸방을 꾸미고 이사를 했다는데요. 이들이 이곳에 살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어느날 남편 김씨가 중병으로 쓰러지자 부인은 그를 업고 탐라계곡 웃머리 양지쪽으로 데려갑니다. 부인은 그 자리에 움막을 짓고는 진시황이 사자를 보내 구해갔다는 시로미 열매를 따다가 정성껏 달여 먹입니다. 10년 가까이 부인은 오로지 남편을 위해 정성을 기울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부인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남편의 병은 기적처럼 깨끗이 낫게 됩니다. 마침내 그들은 한라산에서 내려오게 되는데요. 그 뒤 남편은 등산객을 위한 가이드를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1968년 7월16일. 남편 김씨는 한양공대생 5명을 인솔하여 등산안내를 하던 중 저녁 무렵 한라산 개미등 중간 지점에서 물을 구하려고 탐라계곡으로 가다가 그만 20여m 깊은 계곡으로 추락하여 사망하고 맙니다. (제민일보 2004년 12월 23일자 참조)

 

관음사 매표소를 지날 때 한라산 관리사무소 직원이 용진각에 12시까지 도착해야지만 백록담 등반을 허가한다고 그랬는데요. 시간을 보니 12시가 다 되었네요. 하마터면 백록담은 보지도 못할 뻔 했습니다. 


 

*왕관릉 안부

 

용진각에서부터는 경사가 몹시 가파르네요. 가파른 왕관릉 서북록을 오르다보니 구슬같은 땀이 흘러내립니다. 한참을 힘들게 오른 끝에 왕관릉 안부에 올라섭니다. 왕관릉 안부에는 구상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네요. 안부는 제법 넓고 평평한데요. 등산객들이 오고가면서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하나 있습니다. 

 

왕관릉 안부는 전망이 상당히 좋으네요. 삼각봉과 장구목, 부악, 백록담 북벽, 동릉이 바로 앞에 건너다 보이는군요. 성판악쪽으로 뻗어간 동북릉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한라산 북사면 산기슭에는 밀림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네요. 그야말로 광대한 랜드스케이프의 파노라마입니다. 


 

*왕관릉 바위에 새겨진 표지판

 

왕관릉 안부에서부터는 경사가 완만해서 별로 힘이 들지 않네요. '해발 1700m'라고 새겨놓은 바위를 지납니다. 표지암 주위로는 산죽이 우거져 있습니다. 산길 위에 살짝 쌓인 눈도 보이네요. 지대가 높은 곳이라서 녹지 않고 남아 있는가 봅니다. 가끔 빙판이 진 곳도 나타납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서 발걸음을 옮겨 놓습니다.


 

*백록담 동쪽 기슭의 구상나무 군락지와 고사목

 

구상나무 군락지가 계속 이어집니다. 나무로 만든 계단길 바닥에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무판을 깔아 놓았군요. 이젠 동릉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자 구상나무 고사목 지대가 나타나네요.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산다는 구상나무..... 한라산의 높은 고지대에서 온갖 풍상을 겪었을 테지요.

 

구상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전세계에서 한국의 제주도, 지리산 노고단 임걸령, 전라북도 덕유산 등지에서만 자라고 있습니다. 키는 18m까지 자라고요. 오래 묵은 나무의 껍질은 매우 거칠지요. 어린 가지에는 털이 약간 있으며 황록색을 띠지만, 좀더 자라면서 털이 없어지고 갈색으로 변합니다. 녹갈색 또는 자갈색을 띠는 열매는 구과(毬果)로 원통처럼 생겼는데 밑으로 처지지 않고 위로 곧추서는 특징이 있지요. 때때로 구과의 색깔이 파란색, 흑자색 또는 약간 붉은색이 되기도 하여 이들을 각각 푸른구상, 검은구상, 붉은구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구상나무는 젓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이 빽빽하게 달리며 잎 끝이 오목하게 갈라진 점과 구과에 달린 포편의 끝이 뒤로 젖혀지는 점이 다르지요.

 

*구상나무(출처:식품의약품안전청)

 

제주도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는 해발 1,500m에서부터 산꼭대기 근처까지 군락을 이루며 자랍니다. 구상나무의 잎 속에는 기름기가 많이 들어 있어서 안개나 빗물에 젖은 잎과 가지라도 쉽게 불이 붙는데요. 그래서 나무를 연료로 쓰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구상나무를 불쏘시개로 이용하여 많은 피해를 입은 적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지요. 그러나 겨울철 폭설로 인해 큰 구상나무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구상나무의 잎 뒤에 기공(氣孔)이 나란히 나 있는 기공선은 매우 흰데요. 그런 까닭에 멀리서 보면 나무 전체가 은녹색으로 보이지요. 구상나무는 똑바로 자라는 매우 아름다운 상록수로 정원수로도 많이 심고 있습니다. 목재는 건축재나 구재로 사용하고, 상자 또는 널판을 만드는 재료로 쓰기도 합니다.


 

*한라산 정상에 있는 백록담

 

마침내 한라산 동쪽의 정상인 동릉에 올라 섭니다. 정상에는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불고 있네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입니다. 배낭에서 방한모를 급하게 꺼내어 쓰고 장갑도 낍니다. 분화구를 내려다보니 꽁꽁 얼어붙어 있네요. 백록담의 실제 모습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군요. 전에 두 번이나 왔을 때는 안개가 짙게 끼어서 보지 못했었는데..... 

 

한라산은 1950m로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입니다. 은하수를 잡아 당길 수 있을 정도로 높다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예로부터 부악(釜嶽), 원산(圓山), 선산(仙山), 두무악(頭無嶽), 영주산(瀛州山), 부라산(浮羅山), 혈망봉(穴望峰), 여장군 등으로 불려왔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1002, 1007년에 화산이 폭발했다는 기록과 1455, 1670년에 지진이 발생하여 큰 피해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그로 인해 한라산 정상에는 지름이 약 500m에 이르는 화구호인 백록담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 한라산 기슭에는 360여 개의 기생화산이 있고요. 용암으로 인해 해안지대의 폭포와 주상절리, 동굴과 같은 화산지형이 발달해 있습니다다. 한라산은 난대성기후의 희귀식물이 많고 해안에서 정상까지 식생변화가 매우 다양하고 경관이 수려하여 1970년 3월 24일 한라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바 있지요. 조선시대 때는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내기도 했다는데요. 그러다가 조선시대 후기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백록담을 오르다가 얼어죽는 사람도 생겨나게 되면서 지금의 골소산봉에 있는 산천단으로 제터를 옮겼다고 합니다.        

 

한라산 정상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완도와 보길도, 지리산 천왕봉까지 보인다고 하는데요. 더 멀리는 일본의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하네요. 오늘은 하늘은 맑지만 해무가 옅게 끼어 있어서 볼 수가 없습니다. 동릉에서 화구벽 능선을 따라 조금 서쪽으로 내려가면 움푹 들어간 곳에 한라산 개방비가 서있다는데요. 이 비는 1956년 한라산에 일반인 출입이 허용되면서 세워진 기념비라고 하네요. 1948년 제주 4.3민중항쟁 당시 한라산에서 무장투쟁에 나선 인민유격대가 미군과 미군의 지휘를 받는 토벌대에 의해 모두 토벌된 직후입니다. 당시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양민들이 토벌대에 의해 무수히 학살되었지요.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한 살인마 원흉들은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죄없는 국민들을 학살한 군대는 더 이상 국민의 군대가 아닙니다. 중국의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학살한 중국인민해방군이 더 이상 인민해방군이 아닌 것처럼..... 한라산 정상에 서서 4.3민중항쟁 당시 희생된 제주도 양민들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백록담에서 필자

 

백록담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 장을 촬영합니다.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코끝이 얼어붙는 느낌입니다. 분화구 아래까지 내려가보고 싶지만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네요. 백록담 분화구 남사면에는 나무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한라산 남쪽 기슭으로는 밀림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네요. 광활한 원시림의 바다.....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가없는 바다의 수평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엔 태양이 빛나고..... 우뚝 솟은 부악과 장구목, 삼각봉, 왕관릉..... 그 사이로 깊고도 깊은 탐라계곡..... 말문이 닫히는군요. 자연의 위대함을 몸으로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현재의 제주도의 윤곽과 한라산의 형태는 신생대 제3기 플라이오세에 화산활동이 시작된 이후 제4기에 이르는 수많은 용암분출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크게 제5기에 걸친 화산분출로 형성되었는데, 제1기 화산분출은 기저현무암과 서귀포층을 형성하여 해저기반을 이룬다고 하고요. 제2기 화산분출은 유동성이 매우 큰 표선현무암이 대량으로 흘러나와 형성되었으며, 서귀포와 중문에 좁게 나타나는 서귀포조면암과 중문조면암은 표선현무암을 덮고 육상지형을 이룬다고 하네요. 그밖에 성산일출봉을 이루는 화산쇄설물의 퇴적암층인 성산층과 남제주 서남부의 송악산과 화순 사이에 넓게 나타나는 화산쇄설물의 퇴적암층인 화순층도 이들 조면암과 같은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모두 수중에서 쌓인 것이라고 합니다. 제3기 화산분출은 제2기의 용암층위에서 한라산을 중심한 중심분화로 진행되었다고 하고요. 남북해안의 저지대와 중산간지대를 덮고 있는 제주현무암, 하효리현무암, 법정리조면암은 각각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시기에 분출된 것이며, 이로써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순상화산체의 윤곽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제4기 화산분출은 시흥리·성판악·한라산현무암 등을 형성하고 대체로 해발 500m 이상의 산악지대에 분포한다네요. 마지막에는 유동성이 적은 한라산조면암질 안산암이 분출하여 1,750~1,950m에 걸친 한라산 산정부의 종상화산체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제5기 화산분출은 백록담 화구를 만든 화산폭발과 함께 백록담현무암이 분출했고, 후화산작용으로 '오름'이라는 기생화산의 대부분이 형성되었다고 하네요.

 

한라산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 빨리 내려가야 한다고 성화네요. 벌써 오후 2시가 넘었군요. 비행기 시간이  촉박해서 하산을 서두릅니다. 백록담에서 성판악까지는 약 9.6km니까 4시간 30분 정도 걸릴 텐데요. 예약해 놓은 비행기를 탈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길마저 바위투성이의 길이라서 빨리 걸을 수도 없네요. 동릉에서 공터까지는 계단길이어서 무릎에 무리가 많이 옵니다. 무릎관절이 시큰거리기 시작하네요. 진달래밭 대피소에 잠시 쉬어가기로 합니다. 아시아나항공 제주공항지점에 전화를 하니 20분 전까지 오라고 합니다. 6시 30분 비행기니까 6시 10분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성판악에 도착했을 때 바로 공항으로 타고 갈 수 있도록 콜택시를 예약해 놓았습니다. 이제는 거의 뛰다시피 산을 내려갑니다.

 

속밭을 지나 성판악으로 내려오니 택시가 와서 기다리고 있네요. 얼마나 서둘러 내려왔던지 땀이 흥건합니다. 얼굴에는 땀이 말라붙은 소금기가 버석거리는군요. 택시기사에게 제주공항으로 가능한한 빨리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택시기사는 아무래도 제시간에 도착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하네요. 다시 아시아나항공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비행기를 20분만 붙들어 달라고 사정을 해봅니다. 무리한 부탁인 줄 뻔히 알면서도..... 역시 그건 안된다네요.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는 방금 전에 이륙했더군요. 이럴 때 생각나는 노래가 바로 사이먼과 가펑클이 부른 엘콘도 파사(철새는 날아가고)지요.

 

다음 비행기표를 알아보니 항공사 직원이 남아 있는 좌석이 하나도 없다고 하네요. 대한항공이나 한성항공 등 다른 항공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자 예약도 끝난 상태라고 하네요. 가까스로 아시아나항공 8시 30분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청주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랍니다.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오르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어 봅니다. 하마터면 제주에서 하루 더 묵을 뻔 했지요. 

 

비행기 안에서 오늘 하루종일 걸었던 한라산의 풍경들을 머릿속에 그려 봅니다. 관음사, 탐라계곡, 개미등, 삼각봉, 용진각, 왕관릉, 장구목, 동릉, 백록담, 부악..... 그리고 수많은 오름들..... 드넓은 산죽숲과 구상나무 밀림들....... 한라산 기슭의 원시림..... 한라산의 장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군요. 한라산 백록담에 진달래꽃이 만발할 때 쯤 다시 한 번 제주를 찾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5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