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강하구에 있는 웅포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전북 익산시 웅포면에 속하는 웅포는 금강하구의 남쪽에 있는 곳으로 곰개나루라고도 부른다. 금강하구에는 이미 봄소식이 와 있으리라. 금강의 봄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여행을 떠날 때는 항상 가슴이 설레이는 것은 역마살이 있기 때문일까..... 충주에서 약 세 시간 정도 걸려 웅포 '금강호반'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었다. '금강호반(전북 익산시 웅포면 웅포리 강변선착장, 063-861-6021)' 주인 조경환 씨는 음대에서 음악을 전공했다고 한다.
*웅포 '금강호반'에서 바라본 금강하구
옛날에는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은 군산 장항간 하구둑을 쌓아서 담수호가 되었다. '금강호반'에서 바라보는 금강호가 참 드넓다.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에 물결이 살랑거린다.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웅포대교다. 웅포대교를 건너면 충청남도 부여군이다. 삼국시대 신라가 백제를 칠 때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를 태운 함대가 바로 이곳으로 들어왔다. 외세를 빌어서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 백제의 멸망을 말없이 지켜 보았을 저 금강은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곳 웅포 곰개나루에서 바라보는 서해낙조가 장관이다.
*웅포 금강하구 호반에 자리잡은 '금강호반' 식당
'금강호반'은 2층 집이다. 1층은 살림집이고 2층은 식당이다. 식당 들마루에서는 금강이 시원하게 내다 보인다. 이 집에서는 자연산 민물장어와 황복탕, 붕어찜, 메기탕, 우어회 등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마당에는 모터보트 한 척이 견인차에 실려 있다. 날이 풀리면 저 모터보트를 타고 대청댐이나 경부고속도로에 있는 금강휴게소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언제 다시 한 번 와서 보트여행을 하고 싶다. 또 이 집에는 풍산개가 아주 많다. 대충 헤아려도 수십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인다.
비탈진 강둑에는 매화꽃봉오리가 막 터지려고 하고 있다. 꽃봉오리가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홍매가 아닐까 생각되지만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다. 바야흐로 봄은 봄인가 보다. 목련 꽃봉오리도 벌어지고 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이다.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된다.
*우어회와 홍어회, 쭈꾸미 숙회
'금강호반'으로 들어가자 안주인이 한 상을 차려 놓았다. 우선 이 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우어회와 홍어회 그리고 쭈꾸미 숙회를 담은 접시가 눈에 번쩍 띈다. 쭈꾸미야 충주에서도 맛볼 수 있는 음식이지만 우어회는 여기 와서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우어회 한 점을 초장에 찍어서 맛을 보니 감칠 맛이 난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나 할까. 살이 연하면서도 고소하다. 우어회는 익산 그 중에서도 웅포의 특산 명물이다. 연어와 같은 회귀어로 금강 하구에서만 서식하는 우어의 맛은 산란기인 3~5월이 가장 좋다.
우어는 이 지방 사투리로 표준어는 웅어다. 옛날에는 위어(葦魚)라고 했는데, 갈대밭에 알을 낳는 습성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우어는 큰 입에 아래턱이 짧으며 뒷지느러미가 매우 길어서 꼬리지느러미와 연결되는데 전체적으로 칼과 비슷한 생김새다. 등은 암청색이고 배는 은백색이 난다. 4, 5월에 금강의 하류로 올라와 갈대밭에 산란한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우어는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바다로 내려가서 성장하는데 먹이는 육식성으로 어류가 주식이다. 우어회는 기름기가 많으면서도 담백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우어는 성질이 급해서 그물에 걸리는 즉시 죽어버리기 때문에 신선도를 잘 유지해야 한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우어회를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도 우어회를 먹고 싶어 했으나 그 당시 금강에는 우어가 단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백제에 대한 우어의 충절이었던 것일까.....
싱싱한 홍어회도 오늘이 처음이다. 삭힌 홍어회는 많이 먹어 보았지만..... 묵은 김치에 홍어회 한 점을 싸서 먹자 색다른 맛이 난다. 소주 한 잔에 홍어회 한 점으로 안주를 삼으니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홍어회는 원래 전라도 향토음식이다. 홍어를 삭히는 것은 전라남도식이고, 전라북도식은 삭히지 않는다. 삭힌 홍어회에 삶은 돼지고기를 곁들여 익은 김치에 싸서 먹는 것이 삼합이다. 삭힌 홍어로 찜을 해도 좋다. 같은 홍어라도 찜이 쏘는 맛이 더 강하다. 잘못 하면 입천장이 벗겨질 수도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홍어의 창자를 넣고 된장을 풀어서 끓인 것을 홍어애탕이라고 하는데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다. 홍어애탕에는 반드시 보리싹을 넣어서 끓여야 제맛이 난다.
오늘 갓잡아왔다는 쭈꾸미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먹물주머니를 먹는데 알이 가득 들어 있다. 쭈꾸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세상에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내 입속으로 사라져간 쭈꾸미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산란기에 접어든 물고기를 잡아서는 안 되겠다. 어족자원이 고갈될 테니까. 요즘에는 오징어나 문어, 낙지, 쭈꾸미 등 연체류의 먹물이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서, 먹물도 버리지 않는다. 쭈꾸미는 뭐니뭐니해도 양념고추장을 발라서 숯불구이한 것이 최고다. 쭈꾸미는 영양학상 불포화지방산과 DHA를 함유하고 있다. 쭈꾸미에 많이 들어 있는 타우린 성분은 담석용해, 간장의 해독기능 강화. 혈중콜레스트롤치 감소. 혈압정상화, 당뇨병 예방과 시력회복 및 근육의 피로회복 등에 좋다. 따라서 쭈꾸미는 건강음식으로 매우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어회무침
채를 썬 여러 가지 야채에다가 갖은 양념을 해서 새콤달콤 무친 우어무침회도 맛있다. 우어무침회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우어회와 채로 썬 당근, 오이, 미나리를 준비한다. 여기다가 고추장에 다진 파, 설탕, 물엿, 포도주, 식초, 다진 마늘을 섞어서 만든 초고추장을 넣어서 버무린 다음 참깨를 끼얹으면 완성된다. 우어무침회는 그냥 먹어도 되지만 상추나 김에 싸서 먹으면 더 좋다.
*황복매운탕
붕어찜과 함께 '금강호반'의 주메뉴인 황복탕의 맛은 아마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란..... 안주인의 손맛이 보통이 아니다. 그동안 쌓인 주독이 말끔히 풀리는 듯 한 느낌이다. 술꾼들이 황복탕을 최고로 치는 까닭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그러나 복어는 맹독이 있는 물고기라서 반드시 복어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요리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황복은 다 크면 45cm 쯤 되는데 등쪽은 짙은 갈색이고 배쪽은 흰색을 띈다. 몸은 원통형으로 머리의 앞쪽은 둔하고 둥글며 뒤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등과 배에는 작은 가시가 빽빽하게 나 있다. 황복은 진달래꽃이 필 무렵 산란을 위해 강으로 거슬러 올라올 때 잡는다고 한다. 한강, 금강, 임진강, 영산강, 낙동강 등 서해와 남해로 흐르는 큰 강에만 분포하던 황복은 한강과 만경강 하류에서는 하천 오염으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영산강과 금강에서는 하구언의 건설, 수질오염, 남획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임진강에서는 아직도 황복이 잡히고는 있지만 산란기의 남획으로 그 수가 격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황석어젓
황석어젓을 반찬으로 저녁밥을 먹는다. 짭쪼름하면서도 곰삭은 맛이 일미다. 내가 지금까지 맛본 황석어젓 중에서 가히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석어젓 두세 마리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겠다. '금강호반'에서는 황석어와 소금만으로 젓을 담가서 3년간 발효를 시킨다고 한다. 내가 황석어젓의 맛에 매료되어 감탄사를 연발하자 조경환 씨는 내가 돌아갈 때 먹을 만큼 담아주겠다고 한다.
황석어와 참조기는 같은 것으로 황석어젓은 참조기로 담근다. 그러나 황석어젓을 참조기젓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어떤 책에는 황석어가 참조기의 아류라고 한 곳도 있다. 젓갈공장에서 나오는 황석어젓은 대개 조미료를 많이 써서 빠른 기간에 발효를 시키기 때문에 결코 깊은 맛을 낼 수가 없다. 황석어젓은 12~16cm 정도의 크기로 누런빛이 날 정도로 잘 발효되어야만 좋은 젓갈인데, 황석어의 몸체가 부드럽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이 잘 발효된 것이다.
*갓김치
잘 익은 갓김치의 톡 쏘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호남지방의 음식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홍어회와 갓김치, 잡젓 이 세 가지다. 세 가지 모두 발효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내 고향 충청도에서는 갓을 재배하지도 않거니와 갓김치를 담글 줄도 모른다. 그러니 입맛이 없을 때 문득 생각나는 갓김치를 맛보려면 호남지방을 여행하든가 아니면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수 밖에 없다.
갓은 전라남도 여수의 돌산이 유명하다. 갓은 재래종 갓과 일본에서 들여온 '만생평경대엽' 게통의 갓이 있는데, 나는 재래종 갓으로 담근 갓김치를 더 좋아한다. 재래종 갓은 잔털이 많고 매운 맛과 향이 일본종 갓보다 더 진하다. 잔털은 거칠어서 가시라고도 한다. 재래종 갓으로 담근 갓김치의 맛은 일본종 갓으로 담근 갓김치의 맛이 도저히 따라오지 못 한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갓에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이 들어 있어서 노화방지와 항암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나온 음식은 맑게 끓여낸 백합탕.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데도 국물이 엄청 시원하다. 백합탕의 진수도 여기 와서 처음으로 맛보았다. 백합의 담백하고 시원한 맛과 대파의 향이 잘 조화되어 입맛을 당긴다. 백합은 다른 조개와는 달리 흙이나 모래가 들어있지 않아서 잡아서 바로 요리를 할 수 있다. 이 지방에서는 전복 다음으로 치는 조개가 바로 백합으로 조선시대에는 왕에게 바치는 진상품이기도 했다.
밤 12시가 넘어서 밖으로 나오자 서늘한 바람이 금강을 거슬러 불어온다. '금강호반' 바로 옆에 있는 여외음악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음악회를 열기로 한다. 소프라노 김윤미 선생이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봄에 어울리는 가곡을 들려준다. 조경환 씨도 흥이 났는지 무대로 나가 한 곡조 부른다. 정란숙 여사는 그녀의 영원한 십팔번지 '사랑해'를 부른다. 금강의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바로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2006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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