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조형예술의 모든 것

'얼굴'-안창홍 개인展

林 山 2006. 4. 25. 12:42

전시기간:2006년 4월 19일(수) - 6월 7일(수) 50일간

전시장소:사비나미술관[전관]

http://www.savinamuseum.com
주최 - 사비나미술관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문의:사비나미술관 황정인 큐레이터(736-4371, 4410)



자화상 60×110cm 패널 위에 사진꼴라쥬 2006

 

먼저, 자화상 한 점 보세요. 와장창! 깨진 거울(세상)에 비친 것 같고 무엇엔가 홀려 자학하 듯  발라 놓고 끔직하게 잇대고 덧댄 것 같군요.-박건



<봄날은 간다>, 400×207cm, 패널 위에 사진, 아크릴릭 등, 2005


<양귀비 언덕>, 487×186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5

 

양귀비 언덕입니다. 큰 그림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아크릴 물감덩어립니다. 양귀비의 붉은 꽃들을 그렸는데 거대한 화면에 크고 작게, 촘촘하되 순발력 있게 그렸습니다. 몇 발 떨어져서 보면 무수한 꽃들의 아우성이 들립니다. 전쟁이 터지고 환경이 오염되어도 우린 이렇게 살아 있다구..... 너희들이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도 사랑은 멈출 수 없다구..... 사뭇 절규하듯 짙고, 깊고, 넓게, 되풀이 해 무게를 더하며 화면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누구의 귀와 눈에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겠지요.....-박건



<49인의 명상> 연작 : 76×110cm, 패널 위에 사진, 아크릴릭, 잉크, 에폭시, 2004

 

'49인의 명상'에서 숫자는 49제를 뜻합니다. 죽은이가 49일 되는 날 제를 올려 이승의 끈을 놓고 저승으로 편히 가도록 기원하는 제의입니다. 정치 권력과 제도로 알 듯, 모르게 죽은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익명의 민초들이 나라를 다져왔지요. 권력과 폭력에 맞서 촛불처럼 살다 간 영혼들을 달래는 진혼곡같은 그림입니다.-박건



<사이보그> 연작 : 50×70cm, 패널 위에 사진, 아크릴릭, 에폭시, 2006

 

문명국가랍시고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하는 일들이 뭡니까? 그리고 그런 나라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나라들이 하는 일도 한 통속들이지요. 자동차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고 로봇을 만들고 생명을 복제하고..... 편하고 돈되는 일이다 싶어 싸우듯 경쟁하며 인간 마저 복제하려고 야단들입니다. 그나 저나 벌써 조짐이 옵니다. 게임 중독에, 인터넷 중독.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중독 증세를 느껴요..... 내가 왜 이러지.. 컴퓨터 이 별놈에게 엮여 별님을 잊은지 이미 오래죠. 벌써 몇 시간째 잡혀 있어요. 움직여 일하고, 걸어야 하는데..... 그런데, 자꾸 정보화와 과학 기술과 기계의 편리함에 잡혀 있는 거예요..... 홀린거 맞죠! 언젠가, 저도 사이버 인간이나 사이보그가 되지 않겠어요?  아니 이미 되었는지 모르죠! 벌써, 가상 공간에 집을 짓고 댓글이나 기다리고, 영토를 널리고 돈을 쫒으려 바둥거리니까요. 눈보세요 맛이 갔죠!  내장은 바꾼지 얼마 안되 쓸만한데...피부 유효기간은 지났네요. 쯥!-박건

 


<사이보그의 눈물> 연작 : 70×100cm, 종이 위에 연필, 드로잉 잉크, 2006

 

그래서 요즘 걷습니다. 먼 길은 버스를 타거나 기차도 타고, 끼어 타기도 합니다. 승용차 타면 속도를 내게 되고 긴장되요. 어떤 땐 씨발씨발하면서 혼자 고함을 지르기도 하죠. 사방이 유리로 콱맥혔으니 알게 뭐예요... 그러다 안타니까 사람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침에 걸어 다닐라 치면 공기가 너무 더럽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먼지에 매연에 정말 괴롭습니다. 도시를 떠나고 싶어요. 돈, 자동차, 인터넷 없는 원시 자연의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요. 눈물난다니까요... 흑 ㅠ-박건

 


<부서진 얼굴>연작 : 패널 위에 사진 꼴라쥬, 에폭시, 2006

 

신자유주인가 뭔가 하는 안개가 짙게 깔리면서 본성을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 쯤 되겠습니다. '부서진 얼굴'을 하면서 스스로 섬찟함과 대신 싸는 짜릿함을 느꼈음직 합니다. 사진을 베고, 찢고, 옮기고, 나누고 덧붙이면서 예쁘기는 커녕 멀쩡한 인물을 망쳐 놓고 말았습니다. 끔직한 일 아닙니까? 후회막심일까요? 천만에!  대수롭지 않게 가고들 있는걸요..... 막 베여 벌어진 속살엔 아직 핏방울이 맺혀있지도 않습니다. 통증도 없지요. 괜찮을까요? 곧 분홍빛 피가 송글 거리고 피가 철철 흐르지 싶습니다. 인화지의 인물이 누군지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만 권력과 폭력! 무모한 욕망으로  난자되고 짓이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에폭시로 박제해 댔습니다. 다른 '부서진 얼굴'들에서 어느 가족사진의 인물도 이리저리 바꿔치고 해체되고 나눠지고 칼질 당했군요. 저런, 손가락 보세요 12개!..... 요즘, 세상 움켜 쥐려면 저도 모잘라지 싶습니다.

안창홍은 30여년을 일상의 의미를 미끼로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연작으로 낚아 왔어요. 1970년 중반 역사의 상처로 가정이 무너지고 가족이 흩어지는'가족사진' 연작, 시간의 덧없음을 표현한 '봄날은 간다' 연작, 어린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어른의 세계를 풍자한 '위험한 놀이' 연작, 군사독재에 맞서 처절한 투쟁을 해온 우리의 역사 현실을 의인화 시킨 '새' 연작, 그 이후 우리시대의 성 풍속도 '우리도 모델처럼' 연작, 주변부 생명체들의 명멸을 다룬 '자연사 박물관' 연작.......

안창홍의 연작들에 나타난 그림 정신은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생명, 사랑, 죽음 따위들이지요.....-박건



 

여행은 나를 찾고 되돌아보는 거지요. '양귀비 언덕'은 2004년 봄, 그리스 여행에서 만난 풍경이고 '인도 인상'은 지난 해 여름 인도 히말라야 끝자락을 방랑하며 현장에서 그린 그림들입니다. 인도는 가난과 풍요, 과거와 현재, 자연과 문명, 고통과 기쁨, 삶과 죽음이 섞여 여러 신을 모시는 나라죠. 어디로 튈지 모를 긴장과 영감이 함께 하면서 마음과 발길을 끌게 하는 나랍니다. '인도 인상'은 방랑에서 만난 일상의 스케치들입니다. 안창홍은 색을 잘 씁니다. 붓도 잘 놀립니다. 분위기도 잘 살립니다. 춤추는 여인, 바나라시의 뱃사람, 동물, 풍경들이 손끝 붓끝에서 마술처럼 살아납니다. 인도나 여기나 사랑,  생명, 죽음은 삶의 한 여정이고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박건



<인도인상>연작 : 켄트지 위에 과슈, 2005

 

■ 안창홍의 작품세계에서‘죽음’은 생애적 주제(성완경, 미술평론)라고 평할 만큼, 지난 70년대 후반에서 최근 작업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다뤄지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이다. 그에게 죽음의 의미는 단순한 생물학적인 차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성 상실, 영혼의 상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번 전시에서 죽음의 의미는‘시간의 소멸’, ‘인간성의 상실’, ‘작가적 영감의 죽음’으로 집약된다. 특히‘얼굴’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죽음의 의미는 작품 속 인물들의 얼굴표정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그는 오랫동안 사람의 얼굴과 몸을 그려왔다. 오려붙이기 작업은 70년대 말부터 시작했으며 80년부터 82년까지 빛바랜 흑백사진 속 가족의 모습을 종이 위에 유화물감을 통해 재현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퇴색하고 흠집이 난 상처투성이 사진의 표면과 시커멓게 칠해져버린 눈과 입을 지닌 사진 속 얼굴은 죽은 이들에 대한 은유이자 가족으로 표상되는 집안, 혈연, 핏줄에 대한 가혹한 훼손으로 드러난다. 한 개인의 가족사에 대한 추억과 상처들이 범벅진 그 작업은 안창홍이란 작가의 특질을 가장 잘 드러낸 기념비적인 작업으로 기억된다. 최근작은 ...(중략)... 증명사진 속에 박힌 얼굴을 이용한 여러 유희를 통해 인간의 외부와 내부의 간극과 틈, 분열상을 보여주는 한편 날카롭게 자른 부분과 손으로 찢은 부분의 상충과 겹침, 어긋남을 이용하기도 하고 두 장의 사진을 하나로 겹쳐놓으면서 인간 감정의 여러 측면을 보다 풍부하게 드러낸다.” -  박영택 (전시 서문에서 발췌)

■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작가적인 손놀림이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 대거 선보인다. 흑백사진을 오리고, 찢고, 짜깁기하여 부착하고, 빛바랜 듯한 채색을 곁들인 사진 꼴라쥬 작품. 형형색색의 물감들이 두텁게, 때론 투명하게 채색되어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회화와 드로잉 작품이 그것이다. 안창홍은 4미터가 넘는 대작 <봄날은 간다>와 <49인의 명상>연작에서 빛바랜 사진이 지닌 시간성을 토대로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재생을 이야기하고, 버려진 증명사진필름을 확대, 인화한 후 사이보그 이미지로 재가공한 <사이보그>연작에서 ‘현대 기계문명에 의한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화두로 던진다. 한편 사이보그의 눈에 눈물을 그려 넣은 회화작품 <사이보그의 눈물>연작은 기계문명과 인간성의 문제를 한층 심오한 단계로 끌어올린다.

 

아울러 인도 현지를 여행하면서 틈틈이 그린 <인도 인상>연작에서는, 인도의 풍취가 작가의 감각적이고 재빠른 필치를 통해 그대로 전해진다. 여행이 지닌 특별한 의미를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삶의 또 다른 실체를 쫓아가는 창작’으로 연결시킨 작품이다.

  “<봄날은 간다>는 초등학교 시절 능에 소풍가서 찍은 빛바랜 기념사진을 초대형 벽화 크기로 확대해서 그 위에 잉크를 뿌려 채색한 작품이다...(중략)...작품에서는 아이들의 눈이 모두 살아 있고, 나비들 역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죽음에 고착된 시선이 오래된 생명의 기억에 대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변화가 느껴진다. 게다가 이번 작품들은 길이가 4미터 이상이 되는 초대형 작품이라 능에 기념사진을 찍은 수십 명의 아이들이 마치 마주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등신대 크기로 확대되어 있다. 비교적 선명하지만 구겨진 작은 사진이 수십 배로 확대되면서 작은 흔적들이 커다란 균열을 드러내며 마치 회화적 터치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이 사진은 잃어버렸던 시간을 재생하는 것 같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  심광현 (전시 서문에서 발췌)

“이번 전시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탐구의 또 다른 조형적 시도이며 시간의 지평 위에 놓여있는 우리들의 삶과 죽음과 미래에 대한 물음의 새로운 실험이다. 1970년 중반부터 시작한 가족의 와해와 역사의 상처를 그린‘가족사진’`연작, 시간의 덧없음을 표현한‘봄날은 간다’`연작, 어린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어른의 세계를 풍자한‘위험한 놀이`’연작, 인간을 의인화 시킨‘새`’연작, 우리시대의 성 풍속도인`‘우리도 모델처럼’`연작, 주변부 생명체들의 소멸을 다룬 ‘자연사 박물관`’연작, 미래의 슬픈 묵시록인‘사이보그의 눈물’`연작에 이르기 까지, 약 30년 동안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소주제들을 쉼 없이 중첩 혹은 반복 하면서 인간 본질과 삶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 한 작가의 예술 세계는 순간순간 전시 때 마다 종결 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듯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도달해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될 작품들 역시! 완결된 세계임과 동시에 그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 속의 미완의 흔적들이다.” - ‘전시회를 열며’ 작가노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