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100대 명산 주흘산 포토기행

林 山 2006. 10. 10. 18:29

오늘은 주흘산을 오르기로 한 날이다. 주흘산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 있는 산으로 한국의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다. 충주에서 수안보를 거쳐 연풍을 지난다. 연풍을 지나갈 때 희양산에서 조령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니 내 마음속에서도 산맥 하나가 일어나 요동을 치면서 끝없이 달려간다. 이화령 터널을 빠져 나와 좌회전해서 조령 제1관문(주흘관)으로 향한다. 주흘관 조금 못미친 곳에 있는 무료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문경관광호텔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주흘산 산행지도


*문경관광호텔 들머리에서 바라본 관봉

 

문경관광호텔 들머리에서 앞으로 올라갈 관봉을 바라다 본다. 관봉까지 치달아 오르는 능선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흘러간다. 산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다.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능선길에 올라선다. 산기슭에는 아름드리 참나무와 굴참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닭다리버섯

 

능선길을 오르다가 닭다리버섯을 만난다. 생긴 모양이 마치 닭다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 버섯은 언뜻 보면 독버섯같다. 버섯이 하얀색인데다가 갓에 우툴두툴한 것이 돋아나 있어서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버섯을 찢어보면 결따라 찢어지지 않고 뭉게질 뿐만 아니라 크기도 비교적 커서 잘 모르는 사람은 독버섯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닭다리버섯은 보기와는 달리 아주 맛있는 버섯이다. 이 버섯을 넣고 감자찌개를 끓이면 그 맛이 아주 일품이다. 이 때 돼지고기를 넣으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잘 모르는 버섯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 독버섯을 잘못 먹고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조령산(왼쪽 산봉우리)과 신선암봉(오른쪽 바위봉우리)

 

산 중턱쯤 오르자 아름드리 소나무숲이 나타난다. 전망이 좋은 곳에 이르러 뒤를 돌아다보니 백두대간 조령산과 신선암봉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조령산(1026m)은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마루능선에 있는 산이다. 이화령에서 조령산과 신선암봉, 깃대봉(일명 치마바위봉)을 지나 조령(새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암벽지대가 많고 소나무와 기암괴봉이 어우러져 경치가 멋있고 아름답다. 최근에는 제3관문 서쪽에 조령산 자연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주능선 서쪽에는 수옥폭포와 용송골, 절골, 심기골 등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 신선암봉(937m)은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로 전망이 매우 좋다.


*쑥부쟁이꽃


*구절초꽃


*관봉

 

관봉을 바로 앞에 두고 가파른 암릉지대가 나타난다. 바위절벽에는 하얀색 구절초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쑥부쟁이도 연보라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순간 가을이 왔음을 절실히 느낀다. 아, 가을이다! 내가 사바세계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주흘산에는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관봉 정상 표지석

 

로프가 매어져 있는 가파른 암릉길을 올라서 조금만 더 가면 관봉 정상이다. 정상 표지석에는 '聞慶 主屹冠峰 鎭山, 1039.1m)라고 새겨져 있다. 관봉 정상은 전망이 매우 좋다. 관봉에서 주흘산에 이르는 능선의 서쪽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데 비해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으로 되어 있다.

 

정상 표지석 한쪽 옆에는 2004년 11월 7일 문경산들모임 산악회에서 세웠다는 관봉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에는 '주흘관봉(主屹冠峯, 고깔봉): 예로부터 주흘산은 나라의 큰 산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를 올리던 신령스런 산으로 받들어 왔다. 문경의 진산이기도 한 주흘산은 주봉의 기상을 받들어 남쪽에 이 봉을 세워 산세의 웅장함과 장쾌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그동안 이 봉은 이름없이 일부 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주흘주봉의 남쪽에 있다 하여 남봉(南峯)으로 불러왔으나 신라 때 문경의 옛 이름이 관산현(冠山縣) 또는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라 한 것은 아마도 이 산의 생김새가 갓 또는 고깔과 같은 형상을 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며, 이런 연유로 문경 애산인(愛山人)들의 뜻을 빌어 이 봉의 이름을 새로이 주흘관봉 또는 고깔봉으로 명명해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고 씌어져 있다.


*문경읍 전경

 

관봉에서 흘러 내려간 두 지능선과 잣밭산 사이에 문경읍내가 자리잡고 있다. 왼쪽 지능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503m봉이고, 오른쪽 지능선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550.5m봉이다. 오른쪽 지능선 끝에서 몽긋이 솟은 봉우리가 잣밭산(일명 작은 새재, 385.6m))이다. 잣밭산 바로 뒤로 충주와 문경을 잇는 4차선 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백화산

 

중부내륙고속도로 건너 백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화령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온 백두대간이 백화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고는 973m봉에서 다시 북서쪽을 향해 장쾌한 기세로 달려간다. 백화산은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문경읍내에서 보면 남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백두대간은 백화산을 중심으로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안말을 병풍으로 두르듯이 에워싼 채 지나간다.


*운달산

 

주흘산 주봉으로부터 내려온 지능선 너머 동쪽으로 운달산(1097.2m)이 바라다 보인다. 지능선에서 종지봉(598m), 성주봉(891m), 954m봉을 지나 수직으로 뻗어간 능선의 끝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운달산이다. 꽤 오래 전 신라 진평왕 10년(588년)에 운달조사가 세웠다는 김룡사에서 운달산을 오른 적이 있다. 김룡사는 운달산 동남쪽 기슭에 있다.


*관봉에서 바라본 주흘산 주봉

 

관봉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니 주흘주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주흘주봉 오른쪽 맨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월악산국립공원의 문수봉(1162m)이다. 문수봉 앞으로 하늘재에서 포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대미산을 향해서 뻗어간다. 대미산에서 갈라지는 지능선은 문수봉과 매두막을 지나 하설산으로 이어진다.


*관봉에서 주흘산으로 가는 능선에 핀 구절초꽃

 

관봉을 떠나 주흘주봉으로 향한다. 암릉의 바위틈에 피어난 구절초꽃이 청초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구절초는 저리도 아름답게 피었는데..... 높은 산마루 바위틈에서 소담스럽게 피어 오히려 서러운 구절초..... 달빛과 별빛으로 고고하게 피어나 청상의 소복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하이얀 구절초꽃이여! 

 

구절초는 민간에서 여성들의 냉대하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음력 9월 9일에 뜯어 약으로 쓸 때 가장 약효가 뛰어나다고 해서 구절초(九節草) 또는 구일초(九日草)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 오월 단오 때는 다섯 마디가 되고 9월 9일이면 아홉 마디가 된다고 하여 구절초(九折草)라고도 하며, 다른 꽃과 어우러져 피면서도 새하얀 꽃이 선녀보다 아름답다고 해서 선모초(仙母草)라고도 한다.


*주흘산 주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관봉

 

들국화가 활짝 피어 있는 바위능선에 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다. 관봉이 저만치 뒤로 보인다. 바위벼랑 끝에 무리지어 피어난 새하얀 구절초꽃이 하늘빛을 받아서 더욱 아름답다. 

 

주흘주봉으로 가는 산기슭에는 산죽숲이 우거져 있다. 혜국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로 나오자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조령 제1관문에서 출발하여 혜국사를 거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주흘주봉 바로 아래 안부 사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 사거리를 전좌문(殿座門)이라고 하는데 문경읍이 환하게 내려다 보인다. 이 곳에는 '주흘산 0.1Km, 조령 제2관문:4.2Km, 혜국사 2.2km'라고 표기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남쪽 바위협곡으로 내려서면 안모시골로 내려갈 수 있다. 동쪽의 가파른 비탈길로 올라가면 주흘주봉이다. 북서쪽 계곡길은 조곡골로 해서 조령 제2관문으로 내려갈 수 있다.  


*주흘산 주봉 정상 표지석

 

*주흘산 정상에서

 

마침내 주흘산 주봉(主屹山 主峰, 1075m)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 서서 경건한 마음으로 천지신명께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빌어본다. 정상부의 서쪽은 우거진 숲으로 인해 전망이 전혀 없지만 동쪽과 남쪽은 탁 트여 있어서 주변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대미산과 문수봉 너머로 소백산맥의 하늘금이 아스라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운달산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고, 남쪽으로는 관봉 뒤로 백화산이 점잖은 모습으로 앉아 있다. 주봉의 동남쪽으로는 지곡리 계곡과 팔영리 계곡이 환하게 내려다 보인다. 주흘산은 거대한 새가 천리를 날아가기 위해 날개짓을 하며 솟구쳐 오르는 산세를 가졌다.

 

육산과 바위산을 겸비한 주흘산은 영봉(靈峰, 1106m)과 주봉이 있는데, 등산객들은 대부분 영봉보다는 주봉을 찾는다. 주봉의 북쪽에 있는 영봉은 전망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흘산 정상은 어디까지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영봉이다. 영봉은 그 산에서 제일 높고 신령스러운 산봉우리를 말하고, 주봉은 그 산의 산세로 볼 때 높이와는 관계없이 가장 으뜸으로 치는 산봉우리다. 문경읍에서 주흘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주봉의 산세가 가장 뛰어날 뿐만 아니라, 주봉을 중심으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다. 영봉은 주봉의 뒤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흘산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들 가운데 하나이며, 웅장한 산세를 가진 1075m봉이 이 산의 주봉이 되는 것이다.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해동지도에는 주흘산의 모든 산봉우리들을 주흘산으로 표기하면서 특히 주흘주봉인 1075m봉을 잠두봉(蠶頭峯)이라 표기해 놓았다. 아마도 주봉의 정상 바위봉우리가 마치 누에가 머리를 쳐들고 있는 형상이라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쪽의 백두대간에서 산맥 하나가 남쪽으로 뻗어나와 장엄하고 용맹한 기세로 우뚝 솟은 주흘주봉은 예로부터 문경의 진산으로 받들어져 왔다. 문경읍에서 볼 때 주봉의 동쪽과 남쪽 사면은 까마득한 수직절벽을 이루고 있어 문경을 지켜주는 든든한 수호장성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조정에서 해마다 주흘산을 진산으로 받드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주흘산은 조령산과 함께 영남대로의 관문인 문경새재를 지켰던 산이다. 주흘영봉은 주봉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서 3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주흘주봉에서 바라본 관봉과 백화산

 

주봉 정상의 전망이 좋은 곳을 찾아 점심을 먹으면서 주변 산들의 경치를 감상한다. 주봉의 남서쪽으로 뻗어간 능선의 끝에는 관봉이 솟아 있고, 그 너머로 백두대간이 유유히 흘러간다.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남으로 남으로 백화산까지 치달려 내려와서는 다시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서 뻗어가는 백두대간의 모습이 그 얼마나 장한가! 

 

주흘영봉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주봉을 내려간다. 전좌문을 지나 관봉과 혜국사 삼거리에서 대궐터능선으로 방향을 잡는다.



*대궐터능선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

 

대궐터능선 쉼터(981m)에 이르자 단체산행을 온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능선의 왼쪽으로 내려가면 대궐터, 혜국사를 거쳐 조령 제1관문에 닿는다. 대궐터(850m)는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주흘산으로 들어와 행궁을 세웠다고 하는 곳이다. 대궐터에는 샘터가 있어 식수를 구할 수 있다. 

 

대궐터에서 더 내려가면 혜국사(惠國寺)가 나온다. 혜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 신라 문성왕 8년(846년) 체징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창건하여 법흥사(法興寺)라 하였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이 곳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 절에서 의승(義僧)이 많이 나와 나라를 구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므로, 나라에서 절 이름을 혜국사라고 하였다. 혜국사의 부속암자로는 안적암(安寂庵)과 은선암(隱仙庵), 용화암(龍華庵)이 있다.

 

혜국사에서 곡충골을 따라서 내려가다가 보면 조령 제1관문에서 약 0.8km 떨어진 곳에 있는 여궁(女宮)폭포를 만난다. 이 폭포는 높이가 20여미터에 이르는데, 밑에서 바라볼 때 여인의 하체와 비슷하다고 해서 여궁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궁폭포에는 일곱 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곡충골로는 전에 두어 번 주흘주봉을 올랐었다. 그래서 오늘은 곡충골과 조곡골 사이로 조령 제2관문을 향해서 뻗어내린 능선을 타기로 한다. 대궐터능선 쉼터에 있는 이정표에는 등산로 표시도 되어 있지 않다. 능선길은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다. 


*미역취꽃

 

대궐터능선 쉼터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려 1,008.1m봉과 962.5m봉, 792.7m봉을 넘었다. 이 능선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전망이 별로 없다. 능선길을 따라가는데 갑자기 길이 사라지기도 한다. 어떨 때는 한참 내려갔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올라오기도 하였다. 

 

산기슭에 호젓하게 피어 있는 미역취꽃을 만난다. 활짝 핀 노란색의 작은 꽃들이 예쁘다.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가을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고 노래했던 김소월도 이 꽃을 보았을까? 이 능선에도 구절초꽃과 쑥부쟁이꽃이 많이 피어 있다. 

    

*조령 제1관문과 태조왕건 촬영장

 

조금 더 내려오자 암릉지대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수십 명이 둘러 앉아도 될 만큼 널찍한 바위가 있는데 전망이 매우 좋다. 조령 제1관문과 KBS 대하 연속극 태조왕건을 촬영했다는 야외촬영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화산도 가깝게 보인다.

 

*부봉

 

크고 작은 봉우리가 계속 나타난다. 산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앞에 또 하나의 산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다. 이름도 모르는 산봉우리 하나를 다 내려오자 전망이 뛰어난 곳이 있다. 이 곳에서는 험준한 부봉(釜峰, 935m)의 여섯 암봉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맨 오른쪽 봉우리가 부봉 제1봉(915m)이고 그 왼쪽으로 제2봉(935m)과 제3,4,5봉을 지나 맨 왼쪽 봉우리가 부봉 제6봉(916m)이다. 부봉은 조령 제2관문(조곡관) 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이다. 하늘재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백두대간은 960m봉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꾼 다음 부봉 제1봉(915m)에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패봉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은 반드시 저 제1봉을 올라야만 한다. 나도 백두대간을 순례할 때 부봉 제1일봉을 올랐다가 960m봉을 넘어서 하늘재로 내려갔다. 백두대간을 순례할 때를 생각하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깃대봉(왼쪽), 신선봉과 마패봉(가운데), 부봉 제6봉(오른쪽)

 

북서쪽으로 눈을 돌리자 백두대간 조령산맥 깃대봉(일명 치마바위봉, 844m)과 조령 제3관문 건너 마패봉(일명 마역봉, 922m), 부봉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패봉 왼쪽으로는 신선봉(967m)이 우뚝 솟아 있다. 내가 서 있는 능선과 부봉 사이로 조곡골의 깊은 계곡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나온 무명봉

 

넘어온 산봉우리를 되돌아 보니 꽤나 높아 보인다. 산길을 가다가 문득 뒤돌아 보면 어떻게 저 먼 거리를 왔을까 하고 놀랄 때가 있다. 우리네 인생길도 이와 마찬가지리라.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새 상당히 멀리 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가야할 암릉지대

 

다시 가야할 능선을 바라보니 가파르고 좁은 암릉길이 기다리고 있다. 암릉지대를 통과하려면 아무래도 땀을 좀 흘려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암릉길에 올라서니 생각보다 그리 힘이 들지는 않는다.


*아름드리 소나무숲

 

가끔 아름드리 소나무숲이 나타난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올라간 적송들이 위엄이 있어 보인다. 가지를 휘휘 늘어뜨린 낙락장송의 모습에서 굳은 의지와 곧은 절개를 가진 선비의 기상이 느껴진다. 나보다 더 오래 살았을 소나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음의 인사를 건넨다. 나를 깨우치는 모든 존재는 나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상관없이.....  


*바위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소나무

 

커다란 암봉 위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소나무를 만난다. 비록 굵기가 가늘고 키도 작지만 나이만큼은 상당히 오래된 소나무다. 흙 한 줌 없고 물도 부족한 바위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크기와 굵기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극한적인 생존조건에서는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온갖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주어진 환경속에서 생존에 성공한 이 소나무가 정말 존경스럽다. 이 소나무가 앞으로도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지나온 무명봉

 

이름도 없는 무명봉을 또 하나 넘는다. 뒤를 돌아보니 무명봉 뒤로 주흘영봉에서 주흘주봉을 지나 관봉으로 이어지는 주흘산맥이 마치 병풍을 쳐놓은 듯 솟아 있다. 능선길을 내려올수록 전망이 점점 더 좋아진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새하얀 솜털을 깔아놓은 듯 하다.  

 

*백두대간 조령산과 신선암봉

 

무명 암봉을 또 하나 넘기 전에 조령산과 신선암봉이 잘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산세가 험하고 가파른 조령산과 신선암봉이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장검을 빼어든 장수가 올라탄 천리마가 질풍노도처럼 내달리는 듯한 산세다.


*조령 제1관문과 새재길

 

조령 제1관문과 KBS 사극 야외촬영장이 있는 조령계곡을 내려다본다. 백화산은 새재계곡 입구를 가로막듯이 솟아 있다. 전망이 좋은 곳은 아마도 이 곳이 마지막일 듯하다. 능선길을 벗어나서 또 한번 길을 잃고 해매다가 바닥이 드러난 작은 계곡으로 들어선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온 곳에서도 길을 잃다니 어이가 없다. 그만큼 이쪽으로는 등산객들이 거의 다니지 않았다는 증거다. 산길을 가다보면 종종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오감을 동원해서 침착하게 길을 찾아야 한다.

 


*조령 제2관문 바로 밑에 있는 하산로 입구


계곡을 따라서 내려와 조령 제2관문(조곡관) 바로 밑에 있는 새재 오솔길로 내려선다. 하산로 입구에는 표지판도 없고 사람이 다닌 흔적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영남대로라고 불렸던 새재길을 따라서 조령 제1관문으로 향한다. 새재는 고개가 높아서 나는 새도 넘기 힘들었다는 데서, 또는 억새가 많은 고개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조선시대 때만 해도 새재는 영남지방과 한양을 잇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영남지방에서는 이 길을 통하지 않고는 충청과 기호지방을 오르내릴 수 없었다. 영남이나 충청, 기호지방으로 부임하는 관리들,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선비들, 상업에 종사하는 보부상들 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갔다. 새재에는 이 고개를 넘던 수많은 사람들의 온갖 애환과 사연이 서려 있다. 그러기에 새재는 선인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화유적이자 역사적 현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은 오솔길만 남아 관광객들과 등산객들만이 찾는 옛길이 되고 말았지만.....

 

조령(鳥嶺, 642m)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새재 또는 문경새재라고도 한다. 이 재는 백두대간의 조령산, 깃대봉과 그 북쪽에 있는 마패봉 사이의 안부에 위치한다. 조령의 동쪽 사면은 남쪽으로 흐르는 조령천(鳥嶺川)으로 통하고, 서쪽 사면은 남한강의 지류인 팔봉강(八峯江)으로 이어진다. 이 재의 동쪽과 서쪽은 화강암 절벽으로 되어 있어 난공불락의 요새지를 이루고 있다. 조령에는 조선시대에 축성한 제1, 2, 3관문과 부속성벽으로 된 조령관문이 있는데, 1966년 3월 22일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그 뒤 1981년 새재를 포함한 이 일대가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1,2,3관문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제2관문이다. 수문장 출신 충주인 신충원(辛忠元)이 처음 축성한 중성(中城)은 1708년(숙종 34)에 크게 증축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는데, 이것이 제2관문이다. 숙종 때 제2관문에서 3㎞ 떨어진 곳에 남쪽에서 쳐들어오는 외적을 방어할 목적으로 제1관문을 세우고 초곡성(草谷城, 主屹關, 1890년대 중수)이라 하였다. 또 숙종 때 북쪽을 방어하기 위해 고개마루에 조령산성을 쌓았다. 이것이 바로 제3관문(1977년 복원)으로 현재의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조령고개에 위치한다. 이들 세 관문은 마패봉, 깃대봉, 신선암봉, 조령산을 연결하는 서쪽 능선과 부봉, 주흘영봉, 주흘주봉, 관봉을 연결하는 동쪽 능선 사이의 조령천 계곡에 위치하여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조령 제1관문과 제2관문까지는 약 3km(1관문에서 3관문까지는 약 6.5km) 정도 되는데, 이 두 관문 사이에는 역사와 관련된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조령천을 따라서 내려가다 처음 만난 것은 재미있는 전설을 간직한 꾸구리바위다. 옛날에는 이 바위 밑에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꾸구리가 살았는데, 물속의 꾸구리가 움직이면 바위가 들썩들썩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꾸구리는 아가씨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하곤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 꾸구리는 난봉꾼이었던 모양이다. 한편 꾸구리바위에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런 전설 때문인지 물속에는 동전들이 많이 보인다. 꾸구리바위 근처에는 높이 183cm, 너비 75cm의 자연석에 고어체로 '산불됴심비'라고 음각된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사람들로 하여금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조선후기에 세운 것으로 짐작되는데, 자연보호의 선구일 뿐만 아니라 '조심'을 고어인 '됴심'으로 표기한 한글비석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지방문화재 제266호로 지정되었다.

 

교귀정(交龜亭)과 팔왕폭포(八王瀑布)를 지난다. 교귀정은 경상도 관찰사가 교체될 때 서로 만나서 업무와 관인을 인수인계하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팔왕폭포는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던 명승지로 너럭바위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떨어진다. 이곳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팔왕(八王, 하늘과 땅의 모든 신)과 선녀들이 함께 어울려 놀았다는 전설에서 팔왕폭포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또한 이 폭포에는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용추폭포라고도 부른다.

 

교귀정에서 더 내려오면, 조선시대 때 출장중인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던 조령원터가 있다. 원이란 지금으로 말하면 관에서 운영하는 여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2관문과 3관문 사이에는 동화원이 있었다. 실제로 3관문 바로 밑에는 동화원이라는 지명이 있다. 그러나 옛기록을 보면 조령원과 동화원의 위치가 서로 뒤바뀐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증보개정판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는 조령원은 새재의 동쪽에 있으며, 동화원은 문경현의 서북쪽 15리에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16세기로 추정되는 필사본 지리지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이것을 근거로 한다면 옛날의 동화원은 지금의 조령원터이고, 옛날의 조령원은 지금의 동화원터라고 보아야 한다. 

 

조령원터를 지나서 더 내려오면 왼쪽 바위벼랑 위에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지름틀바위가 있다. 바위 모양이 기름을 짜는 기름틀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기름틀바위를 지나면 조령천 건너편으로 KBS 사극 촬영장이 보인다. 대하 연속극 태조 왕건을 찍고나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된 곳이다. 제1관문에 이르면 문경현의 역대 수령들을 비롯한 지방관들의 선정비와 불망비, 송덕비를 세워놓은 곳이 있다. 과연 저들은 비석에 씌어져 있는 대로 선정을 베풀었을까? 백성들에게 가렴주구를 일삼은 탐관오리일수록 자신의 학정을 감추기 위해 선정비를 더 화려하게 세우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가 얼마나 심했으면 백성들이 동학혁명같은 민중항쟁을 일으켰을까! 지방마다 수두룩하게 세워져 있는 선정비들을 볼 때마다 아이러니칼한 생각이 든다.



*조령 제1관문(주흘관)

 

조령 제1관문을 나와 새재를 품에 안은 조령산맥과 주흘산맥을 바라다본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있고 산기슭에는 가을빛이 완연하다. 주흘관 오른쪽 성벽너머로 지나온 능선이 조령계곡을 향해서 힘차게 뻗어내려오고 있다. 이제는 주흘산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주흘산을 뒤로 하고 귀로에 오른다. 주흘산맥의 산등성이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 있던 쑥부쟁이와 구절초꽃이 내내 눈에 선하다.

 

그것은 그리움일까?

 

2006년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