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100대 명산 대야산 포토기행

林 山 2006. 8. 24. 19:24

오늘은 한국의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 대야산을 오르기로 한 날이다. 충북 괴산의 유명한 계곡인 쌍곡으로 들어서자 피서객들이 타고온 차량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 사이로 햇빛이 따갑게 쏟아진다.   

 

*대야산 등산지도

 

길가에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차량들로 인해 쌍곡에서 관평으로 넘어가는 제수리재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피서객들도 얼마나 많이 왔는지 계곡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제수리재에 거의 다 올라가서야 차량과 사람들이 한산해진다.

 

*제수리재에서 바라본 대야산

 

제수리재는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와 청천면 관평리의 경계가 된다. 제수리재를 넘어 관평으로 내려가다가 보면 대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중관평에 있는 '학생야영장' 지킴이 황대섭씨와 함께 대야산을 오르기로 했다. 야영장에 도착하니 황대섭씨 부부가 반갑게 맞아 준다. 그는 카톨릭농민회의 일원으로 얼마 전 홍콩에서 열린 FTA 반대집회에 참가했다가 홍콩경찰에 체포되어 한달간이나 유치장살이를 하다가 돌아왔다고 하면서 껄껄 웃는다. 홍콩 사법당국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람들 모두를 무죄 석방했다고 한다.


*학생야영장이 있는 중관평 마을

 

황대섭씨가 오늘은 산악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등산로를 타자고 제안한다. 그의 안내로 중관평 마을 바로 앞에 있는 능선으로 올라선다. 전망이 좋은 바위에 올라 떠나온 중관평 마을을 뒤돌아 본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빨간색 지붕의 건물이 학생양영장이다. 


*원추리꽃

 

소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난 등산로는 최근에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듯 낙엽이 쌓여 있다. 산길을 오르다가 외로이 피어 있는 한 송이 원추리꽃을 만난다. 노란색으로 활짝 핀 꽃이 반갑게 맞아 주는 듯 하다. 원추리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


*등골나물꽃

 

등골나물꽃은 이제 막 시들고 있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등골나물은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으며, 정원이나 공원에 관상용으로도 심는다. 꽃은 7~10월에 피며 원줄기 끝의 산방화서에 달린다. 유사종으로 골등골나물, 향등골나물, 벌등골나물이 있다. 등골나물의 전초를 한벙에서 칭간초(秤杆草)라고 하는데  산한발표투진(散寒發表透疹)의 효능이 있어 탈항(脫肛), 발진(發疹)하지 않는 홍역, 류머티性의 요통, 감기로 인한 기침 등 증을 치료한다. 실제 임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중대봉으로 이어진 능선

 

중대봉(846m)이 바로 앞에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전망이 뛰어난 암릉이 나타난다. 거대하고 평평한 바위 위에 한 30명 정도는 거뜬히 앉을 수 있겠다. 이곳에서는 대야산 정상은 물론 사방으로 뻗어가는 능선들과 계곡이 아주 잘 보인다. 여기서 중대봉을 거쳐 대야산 정상에 이르는 능선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가 된다. 능선의 왼쪽은 경북 땅이고 오른쪽은 충북 땅이다.

 

*통천문

 

중대봉을 오르려면 통천문(通天門)을 통과해야 한다. 통천문이란 곧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저 문을 지나면 하늘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늘에 오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경건하고 깨끗이 해야만 하는 법! 경건한 마음으로 통천문을 지나 하늘에 오른다. 하늘에 오르니 여기도 이승이라..... 사람 사는 자리 어딘들 속세가 아니리오!



*중대봉 능선에서 바라본 대야산 정상

 

통천문을 지나 대야산과 중대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야 한다. 삼거리는 중대봉 거의 정상 9부 능선쯤에 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중대봉을 오르지 않고 바로 대야산으로 가는 능선길에 오른다. 멋진 산봉우리 하나쯤은 남겨 두어야 다음에 또 오게 되리라. 중대봉 능선은 바위와 소나무가 잘 어우러져 웅장하고 멋진 경치를 연출하고 있다. 거침없이 뻗어내린 산세 또한 우렁차고 늠름하다.  



*기름나물꽃

 

날이 더운데다가 암릉지대를 통과하느라 힘이 들고 땀도 많이 흐른다. 중대봉 능선에는 기름나물꽃이 한창이다.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기름나물은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 유사종으로 줄기에 털이 없고 근생엽의 잎자루가 긴 가는기름나물, 줄기의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는 백운기름나물, 작은잎이 기름나물에 비해 넓은 산기름나물, 원줄기가 자줏빛이고 근생엽이 3출겹잎인 두메기름나물 등이 있다. 흰색 꽃이 7~9월에 피는데 복산형화서로 원줄기 끝과 가지 끝에 달린다. 

 

기름나물의 뿌리를 한방에서 석방풍(石防風)이라고 하는데 감기, 기관지염, 기침, 두풍현통(頭風眩痛), 흉협창만(胸脇脹滿), 천식 등 증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임상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약재다. 중국에서는 인삼 대용 약재로도 쓴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약재로 석방풍이 인삼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대봉과 대야산, 밀재로 갈라지는 삼거리 표지판.

 

한동안 땀을 흘린 끝에 중대봉과 대야산, 그리고 밀재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는 암봉에 올라선다. 이 봉우리부터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백두대간이다. 여기서 대야산 정상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한달음에 갈 수 있다. 중대봉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약 30분 정도 걸린다.


*중대봉

 

삼거리 암봉에 서서 지나온 중대봉 능선을 바라본다. 능선의 끝에 솟아 있는 암봉이 중대봉이다. 산을 오를 때 가끔 지나온 능선들을 뒤돌아 보면 어떻게 저런 험준하고 기나긴 산길을 걸어서 왔을까 하고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한 발자욱 두 발자욱 오랜 시간 쉬지 않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여정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저 길을 걸어오는 동안 나는 다른 길을 갈 수가 없다. 오늘 내가 가는 길은 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그러기에 이 길은 나에게 있어 최상의 또는 최선의 길이어야 한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고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떤 길이든 한 가지는 선택해야만 한다. 마지막 숨을 놓을 때까지 걸어가야만 하는..... 그런 의미에서 길은 곧 도(道)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도에 이르는 길일 때 진정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야산

 

대야산 산마루가 바로 앞에 보인다. 거대한 바위봉우리인 대야산 정상부는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다. 이제 저 암릉지대만 지나면 대야산 꼭대기에 오르게 된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누구나 정상을 밟아보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정상을 오르지는 못 한다. 산이 높을수록 더 그렇다. 인간의 생존한계로 알려진 높이 5천5백 미터 이상 되는 산들은 산소도 부족하고 험준해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런 산들을 오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세계의 최고봉인 히말라야 8천 미터급 봉우리들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정상에 올랐을 뿐이다. 인간의 생존한계를 뛰어넘는 높은 산에서는 오래 머물 수가 없다. 그건 내가 대야산 정상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도 한 사람의 산길 나그네로서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

 

*대야산 정상에서 황대섭씨와 함께. 오른쪽이 필자

 

삼거리 암봉을 떠나 대야산 정상으로 향한다. 바위능선길을 올라 마침내 백두대간 대야산(白頭大幹 大耶山, 931m) 정상에 올라선다. 대야산은 일명 상대봉이라고도 한다. 2001년 백두대간을 순례할 때 대야산을 지나간 이후 실로 5년만에 다시 다시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정상 바위봉우리에 서서 일망무제로 뻗어가는 산맥들을 바라본다. 백두대간은 남쪽의 속리산에서 청화산, 조항산을 거쳐 지금 내가 서 있는 대야산을 지난 다음 장성봉과 희양산을 향해서 장엄한 기세로 치달려 간다. 저토록 거침없이 뻗어가는 백두대간은 휴전선을 넘고 개마고원을 지나 마침내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이르게 되리라. 사악하고 탐욕스런 인간들과 외세에 의해 국토는 비록 분단되었지만 백두대간은 이미 하나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대야산 정상에서 바라본 속리산맥

 

저 멀리 남쪽으로 장성처럼 가로질러 간 속리산맥을 바라본다. 형제봉에서 천황봉으로, 천황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속리산맥이 아스라이 보인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흘러가고 바람은 잠잠하다. 8월의 태양은 바로 머리 위에서 뜨겁게 작열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이대로 정지한다면 나는 속세를 떠나는 산 속리산을 바라보며 화석이 되리라.

 

*속리산에서 대야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대야산에서 조항산과 청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속리산을 향해 힘차게 뻗어간다. 백두대간은 삼거리 암봉에서 바위능선을 따라서 밀재로 내려갔다가 무명봉으로 올라선 다음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867m봉으로 이어진다. 암릉에서 내려가는 안부가 밀재다. 867m봉에서 왼쪽으로 계속 가면 둔덕산이 나오고, 867m봉에서 고모치를 지나 그 건너편에 있는 산이 바로 조항산(鳥項山, 951.2m)이다. 맨 뒤에 가로로 뻗어가는 산줄기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청화산(靑華山, 984.2m)이다. 청화산 뒤로 속리산 끝자락이 아스라이 보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고추잠자리 떼가 어지러이 날고 있다. 이제 가을도 머지 않았나 보다. 봄은 남에서 북으로 오지만 가을은 북에서 남으로 온다. 가을은 지금 어디메쯤 오고 있을까?


*대야산에서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남쪽에서 달려온 백두대간은 대야산에서 동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백두대간은 촛대봉과 곰넘이봉을 넘어서 버리미기재로 내려선 다음 장성봉으로 올라 구왕봉과 희양산을 향해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듯 치달려 간다. 희양산을 지난 백두대간은 이만봉을 거쳐서 백화산으로 이어진다. 맨 뒤에 보이는 거대한 암봉이 희양산이고, 그 오른쪽으로 봉긋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가 이만봉(二萬峰, 991m)이다. 구왕봉은 희양산 바로 왼쪽에 있는 봉우리다. 촛대봉(668m)은 암봉으로 오른쪽 바로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촛대봉에서 블란치재를 지나 능선을 따라가면 두 개의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보이는데 뒤에 있는 봉우리가 곰넘이봉(721m)이다. 곰넘이봉을 내려서면 관평에서 가은으로 넘어가는 버리미기재가 나온다. 곰넘이봉 앞을 가로질러 가는 산줄기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곰넘이봉 건너편 봉우리)가 장성봉(916m)이다. 장성봉에서 왼쪽으로는 막장봉(868m), 오른쪽으로는 애기암봉(731m)과 원통봉(668,5m)으로 연결된다. 원통봉은 희양산(曦陽山, 998m), 애기암봉은 구왕봉(九王峰, 898m)과 각각 마주보고 있다.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며 남북으로 뻗어가는 백두대간은 저토록 의연하구나.    


*용추골과 피아골

 

대야산 동쪽으로 피아골과 용추골의 깊은 계곡이 바로 앞에 내려다 보인다. 오른쪽으로 뻗어내려간 능선의 끝에 있는 월영대로부터 대야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계곡이 피아골이고, 피아골 아래가 용추골이다. 용추계곡은 기암괴석과 폭포, 그리고 울창한 숲이 아름다워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둔덕산

 

용추계곡 건너편에 둔덕산(969.6m)이 우뚝 솟아 있다. 우묵하게 들어간 안부 왼쪽의 삼각형 봉우리가 둔덕산이다. 밀재와 고모치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867m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능선의 끝부분에 있다. 둔덕산은 희양산과 대야산의 명성에 가려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등산객들의 발길도 뜸한 편이다.


 

*대야산 정상에서 바라본 제수리재

 

정북방향으로 보이는 잘록하게 들어간 안부가 바로 제수리재다. 쌍곡계곡은 이 재 너머에 있다. 제수리재의 왼쪽 능선은 695m봉에서 칠일봉, 남군자산(南君子山, 827m), 830m봉, 846m봉을 지나 군자산(君子山, 일명 큰군자산, 948.2m)으로 이어진다. 바로 앞에 보이는 평평한 봉우리가 695m봉이고 맨 뒤에 솟은 높은 봉우리가 군자산이다. 칠보산(七寶山, 778m)은 쌍곡계곡을 사이에 두고 군자산과 마주 보고 있다. 제수리재 오른쪽 능선은 투구봉과 막장봉(幕場峰, 868m)으로 이어지는데, 막장봉에서 조금 더 가면 장성봉에서 올라오는 백두대간과 만나게 된다. 

 

*대야산 정상에 세워진 이정표

 

정상에 머무르면서 대야산을 비롯한 주변 산들의 지형과 지세를 살펴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겠다. 해는 어느덧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이제는 산을 내려가야 할 때. 우주 삼라만상 모든 존재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다. 인연이란 한 번 만나면 죽어서나 살아서나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는 법. 대야산과 무언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백두대간을 따라 촛대재로 향한다.

 

*대야산 정상 부근의 수직암벽 길

 

대야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수십 미터에 이르는 수직암벽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 구간은 밧줄이 매어져 있어도 매우 위험하다. 밧줄을 놓치기라도 하는 날엔 수십 미터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게 된다. 두 손에 힘을 주어 밧줄을 잡고 천천히 암벽길을 내려간다. 백두대간 일시종주자들에게 이 구간은 마의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산행으로 지친 데다가 30킬로그람 이상 되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수직암벽을 오르내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순례할 당시 나도 이 구간을 내려가느라 기진맥진했던 기억이 난다.  


*촛대봉

 

수직암벽길을 다 내려오면 경사가 완만한 능선길로 변한다. 촛대재 조금 못 미친 곳에 전망이 좋은 바위가 있기에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촛대봉으로 가는 백두대간과 피아골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숲속의 고요한 정적을 깨고 어디선가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매미는 분명 수컷이다. 수컷 매미는 제 짝을 찾을 때까지 저렇게 쉬지 않고 울어댈 것이다. 매미는 땅속에서 굼벵이로 살다가 7년만에 땅위로 나와서는 단 2주일만 살다가 죽는다. 수컷 매미는 2주일 안에 암컷 매미를 찾아서 교미를 해야만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할 수 있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처절한 사랑의 세레나데인 것이다. 매미가 아름다운 배우자를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기를 바라면서 촛대재로 향한다.  



*촛대재의 이정표

 

잠깐만에 촛대재로 내려왔다. 촛대재는 대야산과 촛대봉 사이에 있는데 상관평에서 용추계곡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이 재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곧장 가면 촛대봉과 곰넘이봉을 거쳐 버리미기재에 이르고, 오른쪽 피아골로 내려가면 월령대에 이르게 된다. 왼쪽 길로 접어들면 상관평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문경시에서 설치한 이정표에는 상관평에 대한 표지판이 없다. 촛대재를 떠나 상관평으로 가는 길에 오른다.   


*짚신나물꽃


*골등골나물꽃

 

상관평 계곡은 최근에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은 듯 풀숲이 우거져 있다. 저만치 노오란 짚신나물꽃이 홀로 피어 있다. 물이 졸졸졸 흐르는 작은 시냇가에는 골등골나물꽃이 한창 피고 있는 중이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초본인 골등골나물은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으며, 유사종으로 등골나물이 있다. 백색 또는 홍자색이 도는 꽃이 7~10월에 피는데 원줄기 끝의 산방화서에 달린다. 골등골나물의 뿌리를 한방에서 칭간승마(秤杆升麻)라고 하는데 감기, 말라리아, 장내 기생충병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또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일사병과 기관지염, 고혈압, 신장염, 당뇨병, 월경불순, 산후수종(産後水腫), 감모, 장내기생충, 학질, 급성위장염, 외상을 치료하는 데 쓰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임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약재다.

 

*이질풀꽃

 

계곡을 벗어나자 길이 넓어진다. 길가 풀섶에 홍자색 이질풀꽃이 한 송이 피어 있다. 쥐손이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이질풀은 이질에 특효가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는다. 유사종에 산쥐손이, 부전쥐손이, 흰털쥐손이, 꽃쥐손이, 털쥐손이, 갈미쥐손이 등이 있다. 꽃은 8~9월에 연한 홍색, 홍자색 또는 백색으로 핀다. 잎겨드랑이에서 꽃줄기가 나와 다시 두 개의 작은 꽃줄기로 갈라져 그 끝에서 꽃이 피어난다.

 

쥐손이풀 및 이질풀의 동속근연식물(同屬近緣植物)의 과실이 달린 전초를 한방에서 노관초라고 하는데 활혈거풍(活血祛風), 청열해독의 효능이 있어 류머티즘에 의한 동통, 경련, 마비, 옹저(癰疽, 화농성종양), 타박상, 장염, 이질 등 증을 치료할 수 있다. 임상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민간에서는 이질이나 복통, 변비, 대하증, 방광염, 피부염, 종창, 위궤양 등을 치료하는 데 쓰기도 한다. 양계농가에서 병아리 때부터 이질풀을 달인 물을 먹이면 닭의 백리병(白痢病) 등 위장병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질풀을 영약으로 여긴다. 그것은 일본인들이 이질에 특히 잘 걸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흰이질풀꽃

 

이질풀꽃 바로 옆에는 흰이질풀꽃도 피었다. 이질풀과 쥐손이풀은 너무나 비슷해서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둘 다 쥐손이풀과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쥐손이풀과에 속하는 식물을 만나면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두 종은 잎 끝쪽의 톱니모양과 털이 나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이질풀은 잎의 끝쪽에만 톱니가 있고, 쥐손이풀은 전체적으로 톱니가 있다. 또 이질풀은 줄기의 털이 옆을 향해서 나고, 쥐손이풀은 줄기의 털이 아래를 향한다.

 

흰이질풀의 잎은 대생한다. 근생엽은 엽병이 길고 경생엽은 엽병이 짧으며 얕게 3~5개로 갈라져 장상을 이룬다. 열편은 긴 타원형 또는 난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윗부분에 톱니가 있으며, 잎면에 검은 자색의 반점이 있다. 꽃은 8~9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윗부분의 잎 사이에 긴 화경을 내어 그 끝에 1~3송이씩 달린다. 이질풀과 마찬가지로 흰이질풀의 과실이 달린 전초도 노관초라고 한다. 즉 이질풀과 같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 민간에서는 사용하는지 몰라도 임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사위질빵꽃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는 밭둑에는 사위질빵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밭둑을 온통 사위질빵의 하얀꽃이 뒤덮고 있다. 그런 이름을 얻은 내력은 조금만 힘을 주어 잡아당기면 툭 끊어져 버리는 줄기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사위를 생각하는 장모님의 애틋한 정이 담겨 있는 꽃.....

 

오랜만에 시집간 딸부부가 친정에 다니러 왔다. 착하고 성실한 사위는 농사를 짓는 처갓집을 위해 뙤약볕 아래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하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운 장모님..... 그렇다고 다른 식구들과 일꾼들은 다 밭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사위에게만 쉬라고 할 수도 없는 일. 그 때 문득 장모님의 머리에 한 가지 꾀가 떠오른다. 그녀는 ‘사위가 메는 지게의 질빵을 이걸로 만들어 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밭둑에 무성하게 자라는 사위질빵 덩굴로 지게의 질빵을 만들어 사위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사위가 무거운 짐을 지기만 하면 지게의 질빵이 끊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본 식구들과 일꾼들은 영문도 모르고 '사위가 오랜만에 왔는데 무거운 짐만 지게 한다.'고 하면서 가벼운 짐만 지게 했다는 이야기.....

 

사위질빵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활엽 덩굴성 나무로 돌이나 나무를 기어오르는 습성이 있다. 유사종으로 할미밀빵과 좀사위질빵이 있다. 꽃은 7~9월에 피고 액생하는 짧은 취산화서 또는 원추화서에 달린다. 꽃잎은 네 장으로 십자형이고, 암술과 수술은 각각 여러 개이다. 유독성 식물로 식용, 관상용, 약용, 염료용으로 이용된다. 나물로 먹을 때는 데쳐서 맑은 물에 여러 번 우려내야 한다. 사위질빵과 좀사위질빵의 줄기를 한방에서 여위(女萎)라고 하는데 설사, 이질, 탈항, 경간한열(驚癎寒熱), 말라리아, 임신부종, 근골동통, 콜레라성 이질 등 증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실제 임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나도 아직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약재다.


*무릇꽃

 

주인을 잃은 무덤가에는 무릇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꽃대 밑에서부터 연보라색 작은 꽃이 차례로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무릇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물곳, 또는 물구지라고도 한다. 유사종으로 흰색 꽃이 피며 수원 근처에서 자생하는 흰무릇이 있다. 작고 둥근 구슬처럼 생긴 땅속 비늘줄기에서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두 장의 잎이 나오는데, 봄에 나오는 잎은 여름에 말라버린다. 꽃은 7~9월에 피고 꽃줄기 끝에 총상화서가 달린다. 

 

봄철에 잎과 비늘줄기를 캐서 나물로 먹으며, 비늘줄기는 둥굴레나 참쑥과 함께 고아서 물엿처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나물로 이용할 때는 끓는 물에 데쳐서 아린 맛을 우려내야 한다. 보릿고개 시절 무릇은 배고픔을 잊게 해주는 훌륭한 구황식물이었다. 나도 어린 시절 무릇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무릇의 비늘줄기를 포함한 전초를 한방에서 면조아(綿棗兒)라고 하는데 활혈해독, 소종지통(消腫止痛)의 효능이 있어 유선염, 충수염, 타박상, 요퇴통, 근골통, 옹저 등 증을 치료한다. 실제 임상에서는 쓰이지 않는 약재다.


*칡꽃

 

산초나무를 휘감고 올라간 칡덩굴에는 홍자색 꽃이 포도송이처럼 피어나고 있다. 붉은빛이 감도는 자주색 꽃이 길다랗게 총상(總狀)꽃차례로 피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콩과의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인 칡은 녹말을 저장하는 뿌리가 땅속으로 뻗는다. 액생하는 총상화서는 곧추서며 짧은 화경이 있는 많은 꽃이 핀다. 꽃은 접형화로 8월에 홍자색으로 핀다. 기판은 홍색, 중앙은 황색, 익판은 적자색이다.  

 

오래전부터 중국과 일본에서는 뿌리에서 녹말을 얻고, 줄기에서 섬유를 얻기 위해 칡을 재배해 왔다. 한국에서도 칡은 아주 옛날부터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줄기로는 밧줄이나 섬유를 만들었으며, 꽃과 뿌리는 약재로, 뿌리는 구황식품으로, 또 잎은 가축의 사료나 퇴비로 널리 써왔다. 칡으로 만든 밧줄은 매우 질겨서 다리를 놓는 데 쓰이거나 닻줄 및 주낙줄로 사용되었으며, 삼태기나 바구니를 만들기도 했다. 칡 줄기를 삶은 다음 껍질을 벗겨내고 뽑아낸 하얀 섬유로 짠 옷감을 갈포라고 하는데, 갈포는 한때 최상품의 옷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어린 잎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뿌리에서 추출한 녹말인 갈분으로는 과자나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한편 칡은 생육이 왕성해서 토양침식을 막기 위해 황폐지에 심기도 한다. 그러나 칡덩굴이 주위에 있는 식물들을 감아 올라가 생장을 막거나 고사시키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산에 다니다 보면 칡덩굴로 인해 망가진 숲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한방에서 칡의 꽃을 말린 것을 갈화(葛花), 뿌리를 말린 것을 갈근(葛根)이라고 한다. 갈화는 주독(酒毒)을 풀어주어 술을 깨게 하는 효능이 있어 과음으로 인한 발열, 번갈, 오심, 식욕부진, 구토, 토혈, 내치(內痔), 장풍하혈(腸風下血)을 치료한다. 갈근은 해표약으로 발산풍열약에 속한다. 승양해기(升陽解肌), 투진지사(透疹止瀉), 제번지갈(除煩止渴)의 효능이 있어 상한온열(傷寒溫熱), 두통항강(頭痛項强), 소갈, 설사, 이질, 고혈압으로 인한 두통항강증, 협심증, 난청 등을 치료한다. 갈근은 임상에서 많이 사용되는 약재다.

 

*패랭이꽃

 

길가 풀섶에는 분홍색 패랭이꽃이 수줍은 듯 피어 있다. 패랭이꽃은 내가 좋아하는 들꽃 가운데 하나다. 가녀린 듯 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지녔기 때문이다. 꽃을 뒤집어 놓으면 조선시대 천민이나 역졸들이 쓰던 댓개비로 만든 패랭이와 흡사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이 꽃은 잎과 줄기가 대나무와 비슷해서 석죽화(石竹花)라고도 부른다. 패랭이꽃의 유사종에는 수염패랭이꽃, 바닷가에서 자라는 갯패랭이꽃, 백두산의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난장이패랭이꽃, 꽃잎에 술이 달리는 술패랭이꽃 등이 있다. 꽃은 6~8월에 연한 붉은색으로 피는데, 줄기 끝부분에서 약간의 가지가 갈라져서 그 끝에서 한 개씩 핀다. 꽃이 아름다워 화분에 심어도 좋고 정원이나 공원에 관상용으로 심어도 좋다.

 

한방에서 패랭이꽃과 술패랭이꽃의 전초를 말린 것을 구맥(瞿麥)이라고 한다. 구맥은 이수삼습약(利水渗濕藥) 중에서 이뇨통림약(利尿通淋藥)으로 분류된다. 이수통림(利水通淋), 파혈통경(破血通經)의 효능이 있어 소변불통, 신염, 열림(熱淋), 혈림(血淋), 석림(石淋), 수종, 무월경을 치료한다. 임상에서 종종 사용되는 약재다.

 

*쉽싸리꽃

 

상관평으로 내려오는 계곡에는 여러 가지 풀꽃들이 피어 있다. 오늘도 이렇게 많은 들꽃들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기 그지없다. 쉽싸리는 작고 하얀 꽃들이 층층마다 피어 있다. 곤충 한 마리가 내가 다가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꿀을 빨고 있다.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쉽싸리는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 잎은 대생하는데 엽병이 거의 없고 옆으로 퍼지며 광피침형이다. 양끝이 좁고 둔두이며 밑으로 좁아져서 날개가 있는 엽병처럼 된다. 자웅이주인 꽃은 7~8월에 작고 흰색으로 피며 윤산화서로서 엽액에 속생한다.

 

쉽싸리와 애기쉽싸리, 개쉽싸리의 전초를 한방에서 택란(澤蘭)이라고 하는데 활혈거어약(活血祛瘀藥)이다. 활혈거어, 행수퇴종(行水退腫)의 효능이 있어 생리불순, 경폐(經閉), 월경통, 징가(뱃속에 단단하게 뭉친 것), 산후어혈복통, 수종, 부종, 타박상을 치료한다. 부인과의 상용약재로 실제 임상에서 종종 쓰인다. 

 


*벌개미취꽃

 

개울가 풀섶에 들국화인 연한 자주색의 벌개미취꽃이 활짝 피어 있다. 들판에서 자라는 개미취라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벌개미취의 꽃은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끊임없이 피고 진다. 들국화가 피면 가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고산지대인 태백은 지금쯤 활짝 핀 벌개미취꽃으로 장관일 것이다. 벌개미취는 꽃이 아름다워 화단이나 도로변에 조경용으로 많이 심는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초본인 벌개미취는 제주도와 경기도 이남의 산간 계곡이나 습지에서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로 종속명도 koreansis이다. 별개미취라고도 하며 유사종으로 개미취, 갯개미취, 좀개미취가 있다. 개미취는 벌개미취보다 키는 크지만 꽃이 작다. 갯개미취는 원예종으로 바닷가 습지에서 자라는 두해살이 초본이다. 좀개미취는 오대산 계곡 정선 냇가 근처에 자생하며 개미취에 비해 잎이 좁고 키도 작으면서 꽃은 개미취보다 크고 화려하며 희귀식물이다.

 

이른 봄에 벌개미취의 어린 순을 데쳐서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개미취와 좀개미취, 벌개미취의 전초를 한방에서 자원(紫苑)이라고 한다. 자원은 본초학에서 화담지해평천약(化痰止咳平喘藥) 중 지해평천약으로 분류된다. 윤폐하기(潤肺下氣), 화담지해의 효능이 있어 가래가 끓는 기침, 각종 기침, 천식, 노수해혈(勞嗽咳血) 등 증을 치료한다. 자원은 임상에서 종종 쓰이는 약재다.

 

*상관평 등산로 입구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들을 보면서 산을 내려오니 어느덧 상관평 등산로 입구에 다다랐다. 저 멀리 촛대봉이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듯 하다. 대야산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귀로에 오른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잘 있거라 대야산아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다시 보자 대야산아

 

2006년 8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