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가을에는 아무래도 단풍이 곱게 물든 산을 찾게 마련이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의 100대 명산일 뿐만 아니라 퇴계 이황(李滉)이 산세가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산이라고 극찬한 금수산(錦繡山, 1016m)을 오르기로 한다. 금수산은 충북 제천시 수산면과 단양군 적성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그 맥이 치악산까지 이어진다. 지금으로부터 약 5백년 전까지만 해도 이 산은 백운산(白雲山)으로 불리다가 이황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경치가 아름답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금수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백운동이란 마을이름에서 옛 산이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금수산 등산지도
*상천리 들머리에서 바라본 망덕봉
오늘은 상천리에서 망덕봉(望德峰, 926m)을 거쳐 금수산 정상에 오른 다음 서팽이재, 부처댕이봉(770m)을 지나 알봉(760m) 안부에 있는 쇳고개에서 오래골로 내려올 생각이다.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들머리에서 북쪽으로 망덕봉을 바라본다. 망덕봉 기슭은 단풍이 아직 이른 듯 하다. 금수산은 망덕봉에서 동쪽으로 약 1.5km 정도 거리에 있는데, 망덕봉 정상에서 얼음골재를 지나 늘등을 따라가다가 살바위고개에서 금수산 정상에 이르는 능선으로 연결된다.
*상천리 들머리에서 바라본 금수산
망덕봉 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금수산은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듯 산기슭이 울긋불긋한 기운이 돈다. 금수산을 중심으로 왼쪽 계곡은 어댕이골이고, 오른쪽 계곡은 정낭골이다. 금수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임산부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여, 예로부터 아들을 낳으려는 부인들이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인은 칠거지악이라 하여 소박을 맞기도 하였다. 아들 못낳는 것을 여자의 탓으로 돌린 조선시대는 철저한 남성위주의 봉건사회로 과학적 지식에 눈먼 무지몽매의 시대였다.
상천리 백운동 상천휴게소에서 백운동교를 건너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길에 오른다. 길가에는 산수유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감나무에도 바알간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가을 정취를 물씬 느끼면서 백운산장을 지난다. 이 산장에서는 향토음식을 팔기도 하고 민박도 받는다. 산장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부처댕이봉과 알봉 사이에 있는 오래골로 갈 수 있다.
백운산장에서 5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보문정사가 나온다. 보문정사는 법당과 요사채, 돌탑이 전부인 아담한 절이다. 여기서 다시 5분 정도 오르면 '용담폭포' 표지석이 나타난다. 표지석 바로 오른쪽에 정낭골로 해서 곧바로 금수산으로 오르거나, 어댕이골로 해서 얼음골재로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 망덕봉은 용담폭포쪽으로 가야 한다.
*용담폭포
용담폭포(일명 용추폭포)에 이르니 폭포수가 꼭 어린아이 오줌줄기처럼 가늘게 떨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은 탓이다. 높이 약 30여미터에 이르는 용담폭포는 금수산의 어댕이골과 정낭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폭포다. 이 폭포는 움푹 파인 모습이 흡사 여성의 음부처럼 생겼다. 그래서인지 용담폭포는 민속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는 기도처로도 유명하다. 폭포 바로 위에는 선녀탕이 있다. 선녀탕은 상, 중, 하탕 세 개의 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에는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즐겼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용담폭포와 선녀탕에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해 오는데.....
옛날 주나라 왕이 세수를 하다가 대야의 물에 홀연히 비친 폭포를 보았다. 이에 주왕은 신하들에게 동쪽으로 가서 이 폭포를 찾아보라는 명을 내렸다. 주왕의 명을 받은 신하는 동쪽 나라 조선의 금수산에서 용담폭포와 선녀탕을 찾았다. 그런데 선녀탕에는 금수산을 지키는 청룡이 살고 있었다. 이를 본 주나라 신하는 금수산이 천하의 명산임을 알고 산꼭대기에 묘를 썼다. 그러자 크게 노한 청룡이 선녀탕을 박차올라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용담폭포에서 망덕봉으로 오르는 암릉길
용담폭포를 떠나 망덕봉으로 향한다. 초입부터 사다리와 밧줄이 설치된 바위벼랑이 나타난다. 바위벼랑을 올라서자 가파른 바위계곡이 이어진다. 바위계곡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서면 망덕봉, 선녀탕 삼거리를 만난다. 선녀탕은 백여 미터 정도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선녀탕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망덕봉 능선길에 오른다.
*금수산에서 부처댕이봉으로 이어지는 관음능선과 정낭골
망덕봉으로 오르는 암릉길은 매우 가파르고 험하지만 전망은 매우 좋다. 바위능선에는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잘 어우러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처럼 경치가 뛰어나다. 전망이 좋은 바위에서 금수산에서 부처댕이봉으로 뻗어가는 관음능선을 바라본다. 두 봉우리 사이로 정낭골의 깊은 계곡이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 정낭골 오른쪽에 솟은 봉우리가 부처댕이봉이다.
*부처댕이봉과 알봉
금수산에서 시작되는 관음능선은 부처댕이봉, 알봉, 중계탑 봉우리를 지나 말목산까지 뻗어간다. 정낭골 오른쪽에 솟은 부처댕이봉에서 갈라진 산줄기 하나가 용담폭포를 향해서 달려오고 있다. 부처댕이봉 오른쪽으로 알봉이 보인다. 두 봉우리 사이에 있는 계곡이 오래골이다.
*협곡을 사이에 두고 망덕봉 암릉길 왼쪽에 있는 바위능선
암릉길 왼쪽으로 협곡을 사이에 두고 깎아지른 듯한 바위능선이 망덕봉을 향해 치달아 오르고 있다. 기암절벽과 소나무들이 잘 어우러진 능선은 마치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 그 어떤 화가가 이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은 벌써 저 바위능선에 올라 유유자적하는 신선이 된다. 암릉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저 바위능선과 만나게 되어 있다.
*바위벼랑길
망덕봉 암릉길에서 가장 가파르고 높은 바위벼랑을 만난다. 밧줄을 잡고 바위를 오르는데 구슬같은 땀이 뚝뚝 떨어진다. 머리에 쓴 모자는 이미 흠뻑 젖어버렸다. 땀이 말라붙은 뺨에는 엉긴 소금기가 버석거린다.
*바위능선의 쪽두리바위와 독수리바위
바위벼랑을 올라서면 전망이 탁 트이는면서 바위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능선에는 쪽두리바위와 독수리바위가 멋진 모습으로 솟아 있다. 바위능선 너머로 충주호가 내려다 보인다. 연무(일명 개스)가 햇빛에 반사되어 충주호가 부옇게 보인다. 연무가 낀 날은 시야가 흐려 전망이 좋지 않다.
*용아릉에서 망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서쪽으로 뻗어가는 주능선은 망덕봉에서 용아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용아릉은 맨 끝봉우리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이고, 소용아릉은 망덕봉과 용아릉이 시작되는 봉우리 중간쯤에서 능강계곡을 향해 북서쪽으로 갈라진 능선이다. 용아릉은 마치 용의 이빨처럼 바위가 삐죽삐죽 솟아 있어 깎아지른 듯이 가파르고 험준한 바위능선이다.
*망덕봉 능선에서 바라본 금수산
망덕봉 정상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곳에 이르자 금수산이 바로 앞에 다가와 있다. 정상부 산기슭에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불타는 듯이 화려한 단풍을 기대했었는데 조금은 실망이다.
*망덕봉과 금수산 갈림길
해발 880m 지점의 망덕봉과 금수산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능선길을 곧바로 올라가면 망덕봉에 이르고, 오른쪽으로 산비탈을 횡단하면 금수산으로 가는 길이다. 이제 150m만 더 오르면 망덕봉 정상이다. 150m라면 엎어지면 배꼽 닿을 거리다. 한결 마음이 여유로와진다. 산아래에서 볼 때는 산기슭이 제법 단풍이 든 것처럼 울긋불긋했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나�잎들이 노랗게 혹은 누렇게 말라서 색이 바래가고 있다. 금수산에도 가뭄이 심하게 들었나보다.
*망덕봉 정상 표지판
망덕봉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부는 울창한 참나무숲에 둘러싸여 있어 전망이 전혀 없다. 정상에 있는 참나무에는 수많은 꼬리표와 함께 '망덕봉, 926M, 충북986산악회'라고 쓴 표지판이 걸려 있다. 망덕봉 정상은 산봉우리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펑퍼짐한 구릉이다. 어디서 왔는지 단체산행을 온 등산객 수십 명이 둘러앉아 왁자지껄하면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떼를 지어 몰려 다니면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바람직한 산행은 자연을 통해서 인생을 깨닫고,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생각의 깊이를 키우는데 그 참뜻이 있는 것이다. 고귀한 사상은 고독한 정신에서 나오는 법이다.
*망덕봉 상천리 삼거리
망덕봉을 떠나 금수산으로 가는 능선길에 오른다. 망덕봉에서 경사가 완만한 능선길을 내려오면 상천리로 내려가는 길과 금수산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그런데 망덕봉으로 가는 능선길에는 '등산로 아님'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 표지판을 여기다 세운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등산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세운 것일까? 그러나 산길을 아는 사람들은 이 표지판을 무시하고 다닌다.
*늘등 능선길
'등산로 아님' 표지판에서 조금 더 내려간 안부에 있는 얼음골재 사거리를 지난다. 여기서 왼쪽 길로 가면 여름에도 얼음이 나온다는 그 유명한 능강계곡의 얼음골(일명 한양지)이고, 오른쪽으로 빠지면 어댕이골이다. 얼음골재에도 수십 명의 단체산행객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여기서 늘등 능선을 타고가면 금수산에 이른다. 늘등 능선은 비교적 평탄해서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금수산 정상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마침 시장기가 돌던 터라 밥맛이 꿀맛이다.
*살개바위에서 바라본 북쪽의 암봉
늘등의 끝에 이르면 북쪽의 암봉과 금수산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난다. 삼거리 살개바위(일명 살바위, 단양사람들은 살개바위라고 부름)에서 북쪽 암봉을 바라본다. 암봉 기슭의 나뭇잎들도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고 말라가고 있다. 몇 년 전 청풍면 학현리 제천학생수련장에서 신선봉을 오른 다음 저 암봉까지 왔다가 그만 날이 저물어 금수산을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도로 하산한 적이 있다. 금수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되돌려야만 했을 때는 얼마나 아쉬웠던지..... 세상을 살다가 보면 목표를 바로 앞에 두고도 포기를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무리하게 목표를 이루려고 하다가 낭패를 당하기보다는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좋다.
*살개바위에서 바라본 남쪽의 암봉
살개바위고개 건너 금수산으로 이어지는 남쪽의 암봉에는 기암괴석이 곳곳에 솟아 잇다. 금수산을 처음 오르는 사람들은 대개 저 봉우리를 정상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정상은 저 봉우리 너머에 있다. 남쪽 암봉 산기슭의 활엽수들은 단풍도 들기 전에 거의 낙엽이 진 상태다. 금수산은 벌써 가을이 가고 있다.
*살개바위 정상에 있는 소나무
살개바위 정상에는 바위틈에 뿌리를 박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바위틈으로 뻗어간 뿌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바위벼랑 위에서 온갖 눈비와 풍상을 겪으며 오랜 세월을 견뎌 왔을 소나무..... 저 소나무를 보면 수천 년 동안 외세의 침략과 권력자들의 학정을 견디고 살아남은 조선의 민초들이 생각난다. 아직도 이 땅에는 힘든 나날을 살아가는 민초들이 허다하다.
소나무 가지마다 솔방울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식물은 가뭄이 들거나 환경이 나빠져 생존의 위기가 닥치면 씨앗을 많이 맺는다고 한다. 자신은 죽더라도 후손을 남기기 위한 삶의 지혜에서 나온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 소나무의 씨앗들이 부디 좋은 땅에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살개바위고개로 내려선다.
*살개바위고개의 이정표
살개바위를 내려서면 바로 살개바위고개다. 고개마루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 고개를 동쪽으로 넘으면 절골을 따라서 단양군 적성면 상리 상학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절골길은 금수산을 가장 빠른 시간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다. 여기서 상학마을까지는 2km, 금수산 정상까지는 300m니까 빠른 사람은 1시간 정도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전에 이 길로 두어 번 금수산을 오른 적이 있는데, 정상에 빨리 올라갈 수 있다는 것 밖에는 별 매력이 없는 등산로다. 살개바위고개를 떠나 금수산 정상으로 향한다.
*암봉에서 바라본 칼날같은 바위능선
살개바위고개부터는 가파르고 험한 암릉길이다. 살개바위에서 바라보던 암봉에 올라선다. 칼날같은 바위능선이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금수산 정상은 저 암봉 너머에 있다. 바위능선의 동쪽 기슭에는 제법 곱게 물든 단풍이 더러 보인다.
*금수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길
칼등같은 암릉을 타고 암봉에 올라서면 비로소 금수산 정상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금수산 정상도 커다란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봉 밑에서부터 정상까지는 계단길이다. 저 계단길만 올라가면 정상에 서게 된다.
*금수산 정상 표지석
*금수산 정상에서 필자
계단길을 올라 마침내 금수산 정상에 선다. 정상의 바위봉우리에는 네모진 돌기둥에 '금수산, 해발 1016m)라고 새긴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금수산 정상은 그 명성에 비해 좀 빈약한 모습이다. 정상의 서쪽과 북쪽은 전망이 탁 트여 눈길이 닿는 곳까지 바라보인다. 오늘은 짙은 연무로 인해 시야가 썩 좋지는 않지만..... 그러나 동쪽과 남쪽은 우거진 숲으로 인해 전망이 전혀 없다.
금수산맥은 남동쪽 말목산(720m)에서 795m봉(중계탑), 알봉, 부처댕이봉을 지나 금수산에 이른 다음 암봉, 무명봉(900m), 용바위봉(750m), 동산(일명 성산, 896.2m), 작성산(鵲城山, 848m, 일명 까치성산), 마당재산(661.2m)을 거쳐 제천까지 뻗어간다. 이름난 능선과 계곡은 거의 금수산맥의 서쪽에 있다. 금수산맥은 주능선상의 금수산을 비롯한 산봉우리들과 함께 지능선상의 가은산(575m), 둥지봉(430m), 고사리봉(421m), 망덕봉, 조가리봉(562m), 저승봉(596m), 신선봉(845.3m), 작은동산(545m), 국봉(627.6m), 학강산(564.6m), 당두산(496m) 등의 산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있다. 주능선과 지능선 사이에는 능강계곡, 고무실계곡, 성골, 오래골, 묵석골, 도장골, 절골, 정낭골, 어댕이골, 얼음골, 큰용바위골, 무암골 등 깊은 계곡과 용담폭포, 세 곳의 와폭(능강계곡과 고무실계곡, 학현리), 약물탕폭포, 학현폭포, 선녀탕, 용소 등 폭포와 소가 있다. 또한 능선과 계곡에는 새바위, 벼락바위, 시계바위, 촛대바위, 기와집바위, 얼굴바위, 곰바위, 쪽두리바위, 독수리바위, 상여바위, 산부인과바위, 궁뎅이바위, 말바위, 학바위, 물개바위, 못난이바위, 손바닥바위, 킹콩바위, 전망바위, 봉명바위, 배바위, 낙타바위, 장군바위, 남근석 등 기암괴석이 무수히 많다. 역사 유적으로는 작성산 기슭의 무암사와 저승봉 기슭의 정방사 등의 사찰과 가은산성, 영아치산성, 작은동산성, 작성산성 등의 산성터가 남아 있다.
*금수산 정상에서 바라본 망덕봉
금수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망덕봉을 바라본다. 망덕봉에서 금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인 늘등의 오른쪽 계곡이 능강계곡이다. 망덕봉과 그 바로 앞 봉우리 사이에 얼음골재가 있다. 얼음골재 왼쪽 계곡은 어댕이골이고 오른쪽 계곡은 얼음골이다. 능강계곡 오른쪽 능선은 금수산맥 주능선상의 900m봉에서 서쪽으로 신선봉과 저승봉을 지나 조가리봉으로 이어진 뒤 충주호속으로 산꼬리를 감춘다(사진에는 신선봉이 나오지 않음). 신선봉과 저승봉 사이에는 전망바위와 킹콩바위, 손바닥바위가 나란히 솟아 있다. 신선봉 능선의 끝으로 조가리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정방사는 저승봉 기슭의 전망이 뛰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
*금수산 정상에서 바라본 충주호
상천리 백운동마을과 충주호가 햇빛에 반사된 연무로 인해 마치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희미하게 보인다. 사진은 실루엣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조금 선명한 풍경이다. 연무나 안개가 끼었을 때 역광으로 사진을 찍으면 이처럼 실루엣으로 나타난다.
*금수산 남쪽 능선
금수산 정상의 암봉을 내려와 남쪽의 말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에 오른다. 정상의 암봉을 내려서면 곧바로 정낭골로 하산하는 등산로와 관음능선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다. 능선길에는 '탐방로 아님'이라는 표지판을 매달아 놓았다. 표지판을 무시하고 능선길을 따라가다가 바위벼랑을 만나 우회하려고 내려오니 정낭골길과 다시 만난다.
*상천리와 부처댕이봉 삼거리
상천리와 부처댕이봉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정낭골이다. 부처댕이봉으로 가는 능선길을 따라서 가는데, 이쪽으로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등산객들로 북적대던 늘등과는 달리 관음능선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고 있어 쇳고개까지 가서 오래골로 내려가려면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삼거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부처댕이봉과 상학마을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치성단에서 절마당을 지나 절골을 따라 상학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암봉에서 바라본 상학마을
상학마을과 부처댕이봉 삼거리에서 관음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전망이 뛰어난 암봉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능선 너머 동쪽으로 상학마을과 묵석동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주차장이 보이는 마을이 상학이고, 묵석동은 저수지 바로 아래 동네다.
*암봉에서 바라본 관음능선
남쪽으로 관음능선을 바라보니 앞으로 가야 할 거리가 제법 많이 남았다.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 오른쪽으로 뻗은 능선이 부처댕이봉에 이르는 능선이다. 관음능선을 찍으려다 보니 부처댕이봉을 담지 못했다. 부처댕이봉 능선 너머로 알봉 능선, 790m봉(중계탑), 말목산이 차례로 보인다.
*암봉의 바위벼랑에 설치된 철계단
남쪽이 거의 수직암벽인 암봉에는 철계단을 설치해 놓았는데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다. 철계단이 없었다면 아마 여기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해는 이미 저물고 있고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기 때문이다. 서둘러 철계단길을 내려간다.
*서팽이재
부처댕이봉 조금 못미친 곳에 있는 서팽이고개에 닿았다. 서팽이고개를 동쪽으로 넘으면 곧바로 상학마을 주차장으로 내려갈 수 있다. 서팽이고개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관음능선 쪽으로는 '등산로 아님'이라고 씌어져 있다. 이정표를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관음능선 암릉길
날은 저물고 가야할 길은 먼데 암릉길이 수시로 나타난다. 서팽이고개부터 관음능선길은 사람이 다닌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등산로에는 나뭇잎만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암릉길의 밧줄을 지지하는 철봉은 낡아서 흔들거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예 박힌 곳에서 빠져나와 허공에 매달린 것도 있다. 한번 설치해 놓고는 손보지 않은 채 방치해 둔 것이 분명하다.
*관음능선에서 바라본 금수산
관음능선길을 따라서 가다가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 떠나온 금수산을 되돌아본다. 금수산 정상의 암봉은 동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어 불안정한 모습이다. 금수산맥은 경사가 서쪽보다 동쪽이 더 가파른 서완동급(西緩東急)의 지세를 가지고 있다.
*큰문에 있는 이정표
커다란 두 개의 암봉 사이 안부에 있는 큰문에 이른다. 큰문에는 판자로 만든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지도에는 큰문이라는 지명이 없다. 이정표에는 목탁바위를 지나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확인을 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길에서 이런 이정표를 만나면 몹시 반갑다. 높고 깊은 산의 산길을 홀로 걷다보면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1980년대 초 내가 보름동안 지리산을 헤매고 다닐 때도 그랬고, 2001년 60일동안 백두대간을 순례할 때도 그랬다. 산이 그리워 산에 들지만 막상 산에 들면 도리어 사람이 그리워진다. 속세를 떠난 그곳조차 속세런가!
*암릉을 횡단하는 등산로
길이 조금 편해지는가 싶더니 거대한 암릉이 앞을 가로막는다. 암릉을 통과하려면 중간쯤에 철봉을 박아서 매어놓은 밧줄을 잡고 횡단해야 한다. 이곳의 철봉도 부실하게 박혀 있기는 마찬가지다. 밧줄을 놓치면 수십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으므로 조심해서 바위벼랑을 횡단한다.
*부처댕이봉 능선의 봉우리에서 바라본 알봉
부처댕이봉으로 가는 능선이 시작되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상부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부처댕이봉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앞에 보이는 계곡이 오래골이고, 오래골 왼쪽으로 깎아지른 듯이 솟아 있는 바위봉우리가 알봉이다. 알봉 정상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능선이 가은산에서 상천리 들머리쪽으로 뻗어가는 능선이다.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고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다.
*쇳고개(일명 작은문) 이정표
봉우리를 내려와 묵석동과 상천리, 중계탑 사거리인 쇳고개에 이른다. 판자로 만든 이정표는 삭아서 땅에 떨어져 있다. 지도에는 이곳이 쇳고개로 나와 있는데 이정표에는 작은문으로 표기되어 있다. 쇳고개에서 동쪽으로 묵석골을 따라서 내려가면 묵석동이고, 서쪽으로 오래골을 따라서 내려가면 백운동이다. 이제 오래골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가야할 길은 아직도 2km도 넘게 남았는데, 해는 이미 서산에 지고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다. 오래골 계곡으로 내려선다.
오래골을 따라서 내려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두워진다. 계곡을 중간쯤 내려왔을 때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몇 번이나 길을 잃었다. 숲이 우거진 곳은 하늘빛도 들지 않아 동물적 감각으로 길을 찾아야만 했다. 이럴 때는 산행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문득 몇 년 전 겨울 폭설이 내리던 날 지리산에 들어갔을 때,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키를 넘는 눈을 헤치고 한밤중에 만복대를 넘어서 새벽 한시쯤 온몸이 꽁꽁 언 채 정령치로 내려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만복대에서 정령치로 내려오는 도중 어둠으로 인해 여러 번 길을 잃고 헤매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물적 감각을 살려 길을 다시 찾아내곤 했다. 그때 만약 길을 찾지 못하고 밤새도록 헤매고 다녔으면 추위와 피로, 그리고 배고픔으로 인해 아마 산속에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그런 모험이 없다면 무슨 멋으로 인생을 살아갈까!
얼마쯤 내려왔을까 갑자기 불빛이 보이면서 개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면 분명 반경 300m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조금 더 내려가자 과연 산비탈밭이 나타난다. 사람의 흔적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비탈밭 한가운데로 난 우마차길을 따라 백운산장으로 내려왔다. 상천휴게소에 이르니 저녁 8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오전에는 엄청나게 많던 사람과 차량들이 다 빠져나가고 휴게소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휴게소 주인이 문을 닫으려고 불을 껐다가 인기척을 들었는지 다시 불을 켠다. 휴게소로 들어가 차가운 물로 목마름을 달랜다.
어둠속에 잠긴 백운동을 뒤로 하고 귀로에 오르다.
2006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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