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100대 명산 치악산 포토기행

林 山 2006. 10. 17. 18:39

추석연휴를 맞아서 치악산(雉嶽山)을 찾았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은 치악산이다. 오늘은 구룡사(龜龍寺)로 해서 사다리병창 능선길을 따라 비로봉(飛蘆峰, 1,288m)에 오른 다음 사다리골로 내려올 생각이다. 상당히 오래전 남대봉(南臺峰, 1,182m)과 향로봉(香爐峰, 1,043m)을 오른 적은 있었지만 비로봉은 오늘이 처음이다.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무쇠점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서 신흥동 등산로 입구로 향한다. 추석명절인데도 등산객들이 상당히 많다.

 

*치악산 등산지도

 

치악산은 원주의 진산으로 예로부터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赤嶽山)이라 했는데,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한 꿩을 구해준 나그네가 그 꿩의 보은으로 죽을 뻔한 위기에서 목숨을 건졌다는 보은전설에 따라 꿩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오악신앙의 하나로 치악산에 동악단을 쌓고 원주와 횡성, 영월, 평창, 정선 등 인근 5개 고을의 수령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치악산 기슭에는 옛날부터 절이 많아서 현재 남아 있는 절터만 해도 백 군데가 넘는다. 지금은 구룡사와 상원사를 비롯해서 석경사(石逕寺), 국향사(國亨寺), 보문사(普文寺), 입석사(立石寺) 등 여덟 군데의 사찰만 남아 있다. 치악산에는 또 선비들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사적도 많다.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유적이 있는 치악산은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이인직의 신소설 '치악산'은 바로 이 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치악산에는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 층암절벽이 잘 어우러진 큰골, 영원골, 신막골, 사다리골, 상원골, 산성골, 범골, 입석골 등의 아름다운 계곡과 비로봉, 남대봉, 매화산, 삼봉, 천지봉, 투구봉, 토끼봉, 향로봉 등 멋진 산세를 자랑하는 산봉우리들 뿐만 아니라 곳곳에 입석대(立石臺), 신선대(神仙臺), 태종대(太宗臺), 세존대(世尊臺), 만경대(萬景臺), 사다리병창, 노고소(老姑沼), 구룡소(九龍沼), 할미소, 문바위, 아들바위, 창대바위, 거북바위, 용바위, 범바위, 용마바위, 세렴폭포, 영원폭포 등의 명승지가 있다. 험준한 산세를 가진 치악산은 천혜의 요새지로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지금도 영원산성과 금두산성, 해미산성이 남아 있다. 치악산 등산로는 종주코스와 횡단코스 등 매우 다양하다.   

 

*황장금표

 

신흥동 매표소를 지난다. 매표소 맞은편 상점 뒤에는 '황장금표(黃腸禁標)'라는 글자를 음각한 바위가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여기서 백여 미터 떨어진 도로 아래쪽에 또 하나의 표석이 있다는데 보지는 못했다. 황장금표는 황장목(黃腸木)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들의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 국가지정 보호국유림)의 경계 표지로서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일대가 황장목 보호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황장목이란 나무의 중심 부분이 누런 색깔을 띠는 금강송으로 목재의 질이 매우 좋고 단단하여 임금의 관을 짜거나 궁궐을 짓는 데 쓰였다. 조선시대에는 품질이 뛰어난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황장목 관리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치악산에는 좋은 소나무가 많을 뿐만 아니라 강원감영이 가까워 황장목을 관리하기가 쉬었다. 또한 벌채한 황장목을 뗏목으로 만들어 섬강과 남한강을 통해 한양으로 운송하기에도 편리하여 치악산은 조선초기 전국 60개소의 황장목 봉산 가운데서도 이름난 곳이었다. 큰골을 올라가면서 보니 산기슭에는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산국

 

산기슭에는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들꽃 가운데 하나인 산국꽃이 피어 있다. 10월의 치악산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와 있었다. 바람에 날려온 산국의 진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구룡사 원통문

 

계곡으로 난 길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는다. 구룡사 원통문(圓通門)을 지난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원통문은 구룡사의 일주문에 해당한다. 돌기둥 일주문에 단청을 입히지 않은 지붕이 특이하다.


*구룡사 사리탑

 

원통문에서 걸어서 약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구룡사 사리탑에 이른다. 여러 기의 사리탑 중에서 구한말 항일승병장으로 활약한 무총(武總)대선사의 사리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무총대선사는 1895년 원주 안창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군량미를 제공하고 구룡사를 독립운동가들의 회합장소로 제공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한 스님이다. 구룡사에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한 사명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구룡사는 무총스님을 비롯한 원주권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위패를 모시는 전각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아마도 구룡사를 호국사찰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구룡사 사천왕문과 보광루

 

구룡사 앞마당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사천왕문 앞에 서서 구룡사를 바라본다. 풍수지리적으로 치악산은 천년 묵은 신령스러운 거북이 연꽃을 토하고 있고, 영험한 아홉바다의 용이 구름을 풀어 놓는 형상을 한 천하의 승지로 알려진 곳이다. 구룡사는 치악산 기슭의 급경사지에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문무왕 8년(668년)에 창건한 사찰이다.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 말사인 구룡사는 라말려초 도선국사의 비보사찰 중 하나로 자초(自超), 휴정(休靜) 등 수많은 고승들의 발자취가 서려 있다. 구룡사에는 의상대사와 아홉 마리의 용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의상대사는 치악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절터를 찾아서 큰골까지 왔다.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던 연못이 있었다. 그런데 이 연못이 절터로서는 천하의 명당자리였다. 대사는 연못을 메워서 절을 지으려고 아홉 마리의 용과 도술시합을 했다. 먼저 용들이 도술을 부려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뇌성벽력이 치더니 장대비가 한없이 쏟아져 치악산의 봉우리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용들은 이만하면 대사를 이겼다고 생각하고 주변을 살피니, 대사는 비로봉과 천지봉에 밧줄로 배를 매어놓고 그 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의상대사 차례였다. 대사는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에 던져 넣었다. 그러자 연못이 부글부글 끓더니 용들이 뜨거워 날뛰기 시작했다. 대사의 도술에 놀란 용 여덟 마리는 절 앞산을 여덟 조각낸 뒤 동해로 도망쳤으나, 한 마리는 눈이 멀어 계곡의 못에 머물렀다. 연못을 메우고 절을 완성한 뒤 의상대사는 절 이름을 구룡사(九龍寺)라 지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 절이 퇴락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로 인해 절의 기운이 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 하였다. 노인의 말대로 했더니 절은 더 어려워지고 문을 닫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 도승이 나타나 거북의 혈맥을 끊어서 절이 망한 것이니 그 혈맥을 다시 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절 이름을 아홉 구(九)자 대신 거북구(龜)자를 써서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구룡사의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보광루(普光樓), 사천왕문(四天王門), 삼성각(三聖閣), 심검당(尋劍堂), 설선당(說禪堂) 등이 있다. 대웅전은 여러 번 중수하였음에도 그 안에 있는 닫집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구룡사로 들어가려면 사천왕문을 지나 보광루 아래부분의 트여 있는 가운데 칸을 거쳐 대웅전 앞으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다. 이것을 누하진입방식(樓下進入方式)이라고 하는데, 경사진 지형에 건축된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사천왕문은 사찰로 들어서는 세 개의 문 중 일주문 다음에 위치하는 대문으로 천왕문이라고도 한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시는 곳으로, 이 문 안에는 사천왕의 그림이나 조상(彫像)을 봉안하게 된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신화적인 존자들로서,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본래 이들은 고대 인도의 신이었다. 이들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부처의 교화를 받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천왕(護法天王)의 구실을 맡게 되었다. 한국의 천왕문에는 동방 지국천(持國天)이 검(劍)을, 북방 다문천(多聞天)이 비파(琵琶)를, 서방 광목천(廣目天)이 탑을, 남방 증장천(增長天)이 용을 쥐고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천왕상을 봉안한 천왕문을 세우는 목적은 절을 외호하기 위한 뜻도 있지만, 드나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수호신들에 의해 도량 안의 모든 악귀가 물러난 청정도량이라는 신성관념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사천왕문을 통과한다는 것은 수행과정상의 상징적인 의미로 볼 때 일심(一心)의 일주문을 거쳐 이제 수미산 중턱의 청정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천왕문 전에 금강문(金剛門)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개 천왕문의 입구 문에 금강역사(金剛力士)의 모습을 그리거나 따로 금강역사상을 봉안하여 금강문의 기능을 대신하기도 한다. 간혹 인왕역사(仁王力士)를 봉안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가람수호를 위한 제일 관문의 신이다.

보광루는 구룡사의 가람배치에서 불이문(不二門)의 구실을 하는 건물로 공간의 위계(位階)를 구분함과 동시에 누각 아래를 통한 드나듦으로 전이공간(轉移空間)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익공집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있는 둥근기둥을 세운 뒤 그 위로 누각형 건물을 올렸다. 누각층은 대웅전 앞마당을 향해 개방되어 있으며, 기둥은 아래층보다 빈약한 배흘림이 없는 원형기둥을 사용하였다. 출입통로로 사용되는 가운데 한 칸을 제외한 나머지 옆칸은 판벽으로 막아 창고 공간으로 쓰고 있는데, 창고 안쪽으로도 기둥을 세워 놓았으며, 각 칸마다 두 줄씩 가로, 세로로 보를 놓았다. 천장은 우물반자이며, 누마루는 우물마루인데, 한때 마루에는 한국에서 제일 큰 멍석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구룡소

 

구룡사에서 조금 더 걸어서 올라가면 구룡소(일명 용소, 구룡폭포)를 만난다. 암반 사이로 흐르는 물이 고여 작은 소를 이루고 있다. 구룡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쪽빛을 띠고 있다. 구룡사 창건 전설에 나오는 아홉 마리의 용 중에서 도망을 가지 못한 용이 머물러 살다가 일제시대 때 승천했다는 용소가 바로 이 구룡소다. 용이 살던 소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좀 작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렴폭포

 

구룡소를 떠나 세렴폭포로 향한다. 경사가 완만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세렴통제소가 나오는데, 세렴폭포는 여기서 계곡쪽으로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오랜 기간 비가 오지 않은 탓인지 수량이 매우 적다. 높이도 낮고 떨어지는 물도 오줌줄기처럼 가늘어서 폭포라기 하기에는 좀 그렇다. 비가 내리면 폭포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사다리병창길

 

세렴통제소를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길이 가파라지기 시작한다. 통제소 바로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사다리병창 능선길과 사다리골 계곡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사다리골이다. 사다리병창 능선길 초입부터 상당히 긴 계단이 놓여 있다. 병창은 벼랑이란 뜻의 강원도 방언이다. 그러니까 사다리병창은  양쪽이 깍아지른 듯한 바위능선에 사다리처럼 계단을 설치하여 등산로를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암릉길과 계단길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난다. 계속 오르막길이어서 몹시 힘이 든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말라붙어 뺨에는 소금기가 버석거린다.


*사다리병창 능선의 단풍

 

사다리병창 능선을 오르다가 빨간색으로 곱게 물든 단풍나무를 만난다. 올해 처음으로 단풍다운 단풍을 보는 것 같다. 가뭄탓인지 산기슭의 활엽수들은 단풍도 들지않은 채 잎이 바싹 말라 있다. 멀리서 보면 울긋불긋 단풍이 든 것 같은데 막상 가까이 가서 보면 나뭇잎들이 시들어 말라버린 것들 뿐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사다리병창 능선

 

두 시간 정도 땀을 흘린 끝에 비로봉 정상부 바로 밑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선다. 지나온 사다리병창 능선을 내려다본다. 경사가 매우 급한 능선이 큰골을 향해서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사다리병창 능선 바로 왼쪽에 있는 계곡이 큰골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사다리골이다. 오른쪽 계곡은 배너미재에서 시작되어 세렴통제소 바로 밑에서 큰골과 만난다. 세렴폭포 건너 동북쪽으로 천지봉(1,087m)이 솟아 있다. 천지봉 정상부는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풍이 물들고 있다. 천지봉에서 세렴폭포로 이어진 계곡이 세렴골이다.


*비로봉 정상의 석탑

 

전망대에서 몇 발자욱만 더 올라가면 비로봉 정상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마침내 비로봉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은 전망이 매우 좋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치달려 가는 웅장한 치악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으로 굽이치는 산줄기와 깊은 계곡들을 바라보면서 장엄한 치악산맥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는다. 속세의 일일랑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어느덧 몸과 마음이 텅 비어서 가벼워짐을 느낀다. 비로봉과의 첫 인연이 이토록 기쁠 수가 없다.  

 

비로봉 정상에는 작은 돌을 원추형으로 쌓아서 만든 소박한 석탑 세 기가 있고, 가운데 석탑 바로 앞에는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남북방향으로 나란히 세워진 세 기의 석탑을 일명 미륵석탑이라고 하는데, 가운데 석탑은 산신탑, 양쪽 옆의 탑은 각각 칠성탑, 용왕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미륵석탑은 원주시 봉산동에 거주하는 용진수라는 사람이 1962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쌓았다고 한다. 탑을 쌓은 그의 정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과연 무엇을 기원하면서 이 탑들을 쌓았을까? 그는 미래세계에 중생을 구제하러 온다는 미륵불의 출현을 바랐던 것일까?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륵불은 기독교 신앙에서의 메시야와 같은 존재다. 미륵불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56억7000만 년이 지나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는 부처다. 미륵불이 출현하면 이 세계는 이상사회로 변하여 땅은 유리와 같이 평평하고 깨끗하며 꽃과 향이 뒤덮여 있다고 한다. 또한 인간의 수명은 8만4000세나 되고, 지혜와 덕이 갖추어져 있으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이 된다. 도탄에 빠져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미륵불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미륵신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미륵불이 나타나 자신들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륵불에 대한 깊은 신앙심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정치적 목적으로 자칭 미륵불 행세를 한 후삼국 때의 궁예(弓裔)나, 미륵불이라 자칭하면서 혹세무민한 고려 우왕 때의 이금(伊金), 자칭 미륵이라 하면서 왕권을 넘보던 조선 숙종 때의 승려 여환(呂還) 등이 바로 그들이다.

 

미래에 미륵불이나 메시야가 출현하기를 바라지 말고 스스로 미륵불, 메시야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궁예나 이금, 여환 등과 같은 무리의 사이비 미륵불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또 자칭 예수,  메시야를 칭하면서 신도들을 성폭행하고 재물을 갈취하며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이비 목사들이나 신흥종교 교주는 더더욱 아니다. 이런 사탄보다도 못한 무리들이 날뛰는 것은 사람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을 다른 존재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개척하고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미래세계에 미륵불이나 메시야가 출현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다. 나의 운명을 미륵불이나 메시야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양심이 명하는 바 대로 내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면 될 뿐. 


*치악산 비로봉 정상 표지석


*비로봉 정상에서 필자

 

남북으로 웅장하게 뻗어가는 치악산맥은 강원도 원주시(소초면, 행구동, 판부면, 신림면)와 횡성군(안흥면, 강림면), 그리고 영월군(수주면)에 걸쳐 있다. 치악산은 백두대간 영춘지맥(永春支脈)에 속하는 산으로 영서지방의 명산이며 한국의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다. 영춘지맥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의 태화산(1027.4m)에서 시작하여 삼태산(875.8m), 용두산(871m), 감악산(885.9m), 치악산 비로봉(1282m), 매화산(梅花山, 1084m), 태기산(1261.4m), 응봉산(1103m), 백암산(1099.1m), 소뿔산(1118m), 매봉(800.3m), 가리산(1050.7m), 대룡산(899.4m), 연엽산(850m), 봉화산(486.8m)을 지나 춘천의 춘성대교까지 한강기맥의 11km를 포함하여 총 272km에 이르는 산맥이다. 치악산도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어 치악산맥이라 칭한다. 치악산맥은 북쪽의 매화산과 천지봉(1,087m)을 지나 주봉인 비로봉에 이른 다음 남쪽으로 향로봉, 남대봉, 시명봉(1,187m)으로 뻗어가서 가리파재(치악재)로 내려선다. 치악지맥(가칭)은 가리파재에서 시작해서 백운산과 십자봉을 지나 옥녀봉, 시루봉, 오청산,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에 이른 다음 충주호를 만나면서 끝난다. 비로봉의 서쪽에서 북쪽으로 뻗어내려간 지능선에는 삼봉(三峰, 1,073m), 투구봉(1,002m), 토끼봉(887m)이 솟아 있다.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는 주능선과 지능선 사이에는 깊은 계곡이 많이 있다.

 

치악산맥의 주능선은 서쪽이 급경사를 이루는데 비해 동쪽은 비교적 완경사를 이룬다. 비로봉에서 학곡리를 향해서 뻗어내려간 북쪽의 능선과 계곡은 매우 가파르다. 반면에 고둔치 동쪽인 부곡리의 신막골 일대는 완만한 경사를 가진 고위평탄면 지대를 이루고 있다. 주능선의 서쪽 계곡에서 흐르는 물은 섬강(蟾江), 동쪽 계곡에서 흐르는 물은 주천천(酒泉川)으로 각각 흘러든다.


*비로봉의 동쪽에서 북쪽으로 뻗어가는 능선

 

치악산맥은 비로봉에서 잠시 동쪽으로 봉우리 하나와 배너미재를 넘어 무명봉에 이른 다음 북쪽을 향해서 뻗어간다. 무명봉에서 1,111m봉을 지나 천지봉에서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매화산으로 달려가는 북쪽 능선이 장쾌하다. 능선 너머로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 일대의 마을들이 보인다.


*비로봉의 남쪽 능선과 계곡

 

미륵석탑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석탑 앞에서 비로봉의 정남쪽 능선과 계곡들을 바라본다. 남쪽 능선의 산기슭에도 가을 단풍이 물들고 있다. 비로봉에서 고둔치골 쪽으로 능선 하나가 뻗어간다.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횡성군 강림면 부곡리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능선 오른쪽 계곡은 비로봉에서 시작해서 고둔치골로 이어지는 다리골이다. 고둔치골 건너 동쪽에서 서쪽으로 치달아 오르는 능선은 남대봉으로 이어진다. 원주시 행구동에서 고둔치(일명 곧은치)를 넘으면 부곡리 신막골 계곡이다. 신막골은 원통재에서 내려오는 원통골과 만난 다음 동쪽으로 흘러내려 다리골과 합류한다. 다리골이 끝나는 지점에서 고둔치골이 시작되는데, 고둔치골의 물은 부석리에서 부석골, 산성골, 가마골의 물과 합쳐져서 주천강으로 흘러든다. 오른쪽 다리골 계곡의 끝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고둔치골이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신막골과 원통골이다. 부석골은 다리골 앞을 가로막은 능선 즉 향로봉에서 뻗어내린 능선 너머에 있는 계곡이다. 


*비로봉의 서쪽에서 남쪽으로 뻗어가는 능선에 솟은 향로봉과 남대봉

 

저 멀리 남쪽으로 향로봉과 남대봉이 솟아 있다. 가리파재에서 시명봉을 거쳐 남대봉에 이른 치악산맥이 향로봉을 지나 고둔치와 원통재를 넘어 비로봉을 향해서 꿈틀대며 달려온다. 남대봉에서 비로봉을 지나 천지봉, 매화산에 이르는 산줄기는 하나의 거대한 맥을 형성하고 있다. 맥(脈)이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심장의 운동으로 동맥에 일어나는 혈액의 주기적인 고동 즉 맥박(脈搏)을 가리킨다. 그러나 풍수지리학에서 맥은 지세에 정기가 흐르는 줄기 즉 지맥(地脈)을 뜻하므로 산맥(山脈)이란 산세에 정기가 흐르는 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치악산맥이라 할 때는 치악산의 산세에 정기가 흐르는 주능선을 말하는 것이다.

 

지리학에서 산맥은 '산악들이 선상이나 맥상(脈狀)으로 줄지어 솟아 있는 형태의 산지 지형'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산령(山嶺), 산봉(山峰), 산정(山頂)이 계곡과 배열되어 거의 선상 또는 맥상일 때의 총칭'이다. 세계 각국의 지리학 사전에도 산맥에 대해 '형성 요인과는 상관없는 지형으로, 일정한 규모와 연속성을 가진 산봉우리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산계는 보다 상위개념으로 산맥들의 모임을 말하며, 산맥에 따라서는 여러 개의 작은 산맥을 포함하기도 한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산맥의 구분과 명칭은 구한말 일본의 고토 분지로를 비롯한 일본의 지질학자 또는 지리학자에 의해 정리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산맥을 산경(山經)이라고 하였는데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구체적인 산경이 표기되지 않았으며,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고 김정호(金正浩)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산맥을 산경이라고 표기하였다. 한국의 산맥은 지질구조와 산맥방향에 따라 중국방향산계와 요동방향산계 그리고 한국방향산계 등으로 크게 구분된다.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중국방향산계에는 차령산맥과 노령산맥이 있다.

 

차령산맥은 백두대간 태백산맥의 오대산 부근에서 분기하여 남서쪽으로 뻗어 충청남도의 중앙부를 거쳐 서해안의 금강 하구에 이르는 중국 방향의 산맥으로 길이가 약 250㎞에 달한다. 오대산으로부터 강원도와 충청북도가 경계를 이루는 지점까지는 계방산(桂芳山, 1,577m)과 회령봉(會靈峰, 1,309m), 흥정산(興亭山, 1,277m), 태기산(泰岐山, 1,261m), 매화산, 치악산 비로봉, 향로봉, 남대봉, 시명봉 등의 높은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이 산맥은 충주 부근에서 남한강에 의해 그 맥이 끊긴다. 맥이 한 번 끊어진 차령산맥은 다시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오갑산(梧甲山, 609m)과 국망산(國望山, 770m), 덕성산(德城山, 521m), 서운산(瑞雲山, 547m)으로 이어진다. 충청남도를 남동부와 북서부로 가르면서 이 산맥은 광덕산(廣德山, 699m)과 칠갑산(七甲山, 561m), 무성산(武城山, 614m), 성주산(聖住山, 680m), 금계산(金鷄山, 575m)으로 뻗어간다. 차령산맥은 서해안에 이르러 대천과 군산 사이의 작은 섬들에까지 이어진다. 또 지맥인 가야산맥(伽倻山脈)은 남북으로 뻗어 예당평야와 태안반도로 나눈다. 이 산맥은 북부의 천안분지와 예산분지, 청양분지, 덕산구릉 등과 남부의 음성분지, 진천분지, 계룡구릉 등으로 구분한다. 구릉성 잔구인 계룡산(828m)은 충청남도의 최고봉이다.

 

남한강에 의해 그 맥이 끊어진 차령산맥은 엄밀한 의미에서 산맥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차령산맥은 없는 것이다. 강남산맥이나 적유령산맥, 묘향산맥도 차령산맥과 마찬가지로 산맥 자체가 아예 없거나 방향, 위치가 잘못되었다. 최근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한반도에는 모두 48개의 크고 작은 산맥 가운데 가장 높고 긴 1차 산맥(백두대간)이 1개, 여기에서 뻗어나온 2차 산맥(장백정간과 13정맥 포함)이 20개, 3차 산맥이 24개, 그리고 이와 무관한 독립산맥이 3개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비로봉의 서쪽 능선의 산불감시초소와 헬기장, 그리고 삼거리 북쪽 능선의 삼봉과 투구봉


남대봉에서 향로봉을 지나 북쪽으로 내달리는 치악산맥은 토끼봉에서 투구봉, 삼봉을 거쳐 남쪽으로 치달아 오르는 산맥과 쥐너미재, 원통재 삼거리 봉우리에서 만나 동쪽으로 비로봉에 이른다. 비로봉 서쪽 능선은 사다리골 안부를 지나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서 쥐너미재, 원통재 삼거리 봉우리로 연결된다.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 바로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삼봉이고, 그 오른쪽으로 투구봉이 솟아 있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비로봉 정상

 

비로봉 정상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 하산길에 오른다. 사다리골 안부에 있는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비탈길을 오르면 몽긋한 봉우리에 닦아놓은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에서 배낭을 벗어놓고 비로봉 정상을 바라본다. 사다리병창 능선길을 오를 때는 볼 수 없었던 비로봉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 기의 미륵석탑도 또렷이 보인다. 비로봉 남쪽 기슭에도 단풍이 들었다. 여기서 삼봉 능선으로 내려가고 싶었으나 등산로가 폐쇄되었다는 말을 듣고 사다리골로 내려가기로 한다.

 

*사다리골 안부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헬기장에서 되돌아와 사다리골 안부 산불감시초소에 이르러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바로 내려가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서다. 언제 기회가 되면 가리파재에서 남대봉과 향로봉을 지나 비로봉에 오른 다음 천지봉을 넘어서 매화산까지 종주를 해보았으면 좋겠다. 다음 날을 기약하면서 사다리골을 내려간다.



*사다리골 하산길

 

사다리골은 바위투성이길이다. 바위가 많은 길에서는 발목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리막길은 아무래도 오르막길보다는 힘이 들지 않아서 좋다. 세상만사 오르막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다. 우리네 인생도 그와 마찬가지다. 아무리 삶이 힘들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다가 보면 좋은 날도 오게 마련이다.

 

사다리골을 다 내려오면 사다리병창 능선길 입구와 다시 만난다. 산행은 사실상 여기서 끝나게 된다. 다리를 건너 세렴통제소부터는 경사가 완만하고 편한 길이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서녘 하늘에는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다. 치악산맥의 정기를 온몸에 느끼면서 귀로에 오르다.

 

2006년 10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