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산 가는 길. 속리산과 더불어 충북알프스의 백미라 일컫는 구병산은 처음 가는 산이라 맞선을 보러가는 총각처럼 마음이 설렌다. 구병산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까? 요즘은 네비게이션이라는 게 있어서 초행길도 그리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네비게이션에 구병산이 있는 충북 보은군 마로면 적암리 사기막을 입력시키자 세 가지 길을 알려 준다. 유료도로, 무료도로, 최단축로 등. 그래서 갈 때는 무료도로, 돌아올 때는 최단축로를 택하기로 한다. 길안내를 네비게이션에 맡기고 느긋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수안보와 연풍 사이에 뚫린 소조령터널 근처 응달진 곳에는 며칠 전 내린 눈으로 빙판이 져 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왼쪽으로 하얀 눈으로 뒤덮힌 백두대간 조령산맥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눈앞으로는 구왕봉에서 희양산을 지나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늠름하게 다가오고..... 이화령터널도 곳곳에 빙판길이 도사리고 있다. 이화령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경북 문경시다. 왼쪽으로 우뚝 솟은 주흘산이 바라보인다. 문경시 가은읍을 지나 농암면 쌍룡계곡으로 들어선다. 문경에도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계곡이 있다니..... 쌍룡계곡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도장산(827m)과 청화산(970m)을 좌우에 두고 흐르면서 쌍룡폭포, 심원폭포를 만들고 있다. 골이 깊고 물이 맑아 청룡, 황룡이 놀다 간 곳이라는 전설에서 쌍룡계곡이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상주시 화북면 갈령은 초입부터 빙판길이다. 오른쪽으로 봉황산에서 형제봉을 향해 꿈틀대며 치달려가는 백두대간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갈령을 넘자 왼쪽으로는 청계산과 견훤산성이 있는 대궐터산, 오른쪽으로는 백두대간 봉황산이 솟아 있다. 봉황산을 빙 돌아서 상주시 화서면과 화남면을 지나면 청주 상주간 도로 바로 오른쪽에 시루봉(甑峰, 일명 속봉, 417m)이 보인다. 충북과 경북의 도계를 이루는 시루봉은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은 형상으로 보은의 사증팔항(四甑八項) 중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증(東甑)이라고도 한다.
시루봉의 중턱 절벽에는 쌀바위라는 구멍이 뚫린 바위가 있다고 한다. 이 쌀바위에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 옛날 신라시대 이 바위 앞에 있던 작은 암자에서 한 스님이 불도에 정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암자가 너무 작다 보니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도 없고 시주를 하는 사람도 없어 스님은 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겨우 지내는 형편이었다. 가끔 이 암자에 손님이 찾아올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바위에서 손님을 대접할 만큼 쌀이 나왔기에 스님은 쌀걱정을 하지 않았다. 손님이 한 사람 오면 한 사람이 먹을 만큼, 두 사람이 오면 두 사람이 먹을 만큼 쌀이 더 나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문득 '이 바위 밑에는 쌀이 무진장 들어 있는데, 구멍이 너무 작아서 쌀이 적게 나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밥을 짓다 말고 부지깽이로 구멍을 후벼서 크게 파 놓았다. 스님은 큰 바가지를 바위구멍 앞에 놓고 쌀이 한꺼번에 많이 쏟아져 나올 것을 기대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쌀은 한 톨도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스님의 터무니없는 욕심으로 인해 하늘이 노한 것이었다. 그 뒤로는 쌀이 나오지 않아 자연히 암자도 없어지고 이 바위만 남았다는 이야기..... 쓸데없는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교훈이렷다.
시루봉 아래 사기막마을에서 약 5백미터 떨어진 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사용되었다고 추정되는 '말구시'라는 바위도 있다고 한다. 돌로 만들어진 말구시에는 말에게 먹일 물을 담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 사기막마을 진입로 오른쪽, 시루봉으로 오르는 언덕에는 '군(軍)밭' 이라고 불리는 밭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는 전설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시루봉은 보은에서 상주로 통하는 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도계마을인 보은군(報恩郡) 마로면(馬老面) 적암리(赤岩里) 주막뜸마을에 있는 적암휴게소에서 우회전하면 구병산 나들목인 사기막에 이른다. 적암리 사기막(士氣幕)마을에는 감나무가 상당히 많다. 감나무에는 더러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이 홍시가 되어 매달려 있다. 감나무 너머로 적암리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구병산의 웅장한 모습이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보은은 조선조 세조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보은군의 유래..... 영월로 귀양보낸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인 뒤 어느 날 세조가 낮잠을 자는데, 꿈속에 단종의 모친 현덕왕후가 나타나 그를 노려보더니 '네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네 아들을 잡아가겠다.'고 말한 뒤 곧 맏아들인 도원대군이 죽었다. 또 어느날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를 노려보다가 침을 뱉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이튿날부터 침자국이 곪기 시작하더니 온몸에 악창이 생겨 고통이 극에 달하여 전국의 명의를 다 데려다가 온갖 명약을 써보았으나 낫지를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부처의 도움으로 병을 고치기 위해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다가 속리산 법주사에 이르게 되었다. 이곳에 온 세조가 어느 날 시내에서 목욕을 하는데, 미소년이 보살의 화신으로 나타나 '곧 병이 완치될 것입니다.' 하고는 사라졌다. 세조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과연 악창이 씻은 듯이 나았다. 속리산에 와서 피부병을 고친 은혜를 갚는다는 뜻에서 세조는 이곳을 보은이라 하였다고 한다. 세조가 목욕하던 곳은 지금도 목욕소라 부르고 있다. 왕위가 탐이 나 어린 조카를 죽인 자 세조.....
마로면은 조선시대 역마를 먹이던 곳이라는 데서, 적암리는 남쪽 도계에 있는 적(赤)바위라고 하는 두 개의 붉은 바위에서 각각 그 이름이 유래한다. 두 개의 적바위 중에서 보은쪽에 있는 바위를 보은바위, 상주쪽에 있는 바위를 상주바위라 부르고 있다. 즉 붉은 바위가 있는 동네라고 해서 적암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적암리는 사기막이라는 안말과 옛날 주막이 있던 곳인 주막뜸이라는 마을로 구성돼 있다. 사기막은 조선 선조 때 조헌(趙憲)의 문하인 의병장 이명백(李命百, 1552∼1593)이 상주와 중모, 화령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안동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른 뒤, 이곳으로 들어와 왜군의 진로를 막으며 전투를 벌이다 장렬하게 전사한 곳이다. 당시 이명백이 여기서 의병들의 사기를 드높인 곳이라고 해서 그 뒤 이곳을 사기막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 이곳은 예전에 사기를 굽는 가마터가 있어서 사기막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기막은 시루봉 능선과 구병산맥에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사기막에서 바라본 구병산 주능선
*사기막에서 바라본 795.2m봉(왼쪽)과 853봉(동봉, 가운데)
사기막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어가는 구병산 바위봉우리들이 설악의 공룡능선을 보는 듯하다. 산맥의 왼쪽 끝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구병산 정상이고, 그 바로 오른쪽에 874봉, 좀 떨어져서 795.2봉, 정상부가 가장 긴 853봉(동봉), 봉학대, 참샘골 정상 순으로 자리잡고 있다. 구병산맥 위로 맑고 푸른 하늘이 떠 있다. 오늘은 정수암지가 있는 토골을 타고 853봉과 그 오른쪽 암봉 사이에 있는 안부로 올라 주능선을 따라서 구병산 정상에 이른 다음, 구병산 정상과 874봉 사이에 있는 수무골(일명 물골)로 내려올 예정이다.
구병산은 호서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속리산맥의 형제봉에서 서쪽으로 뻗어나와 남쪽으로는 보은군 마로면 적암리와 북쪽으로는 보은군 내속리면 구병리의 경계에 웅장하고 수려한 아홉개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동쪽으로는 상주시 화남면과 경계를 이룬다.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가을단풍이 아름다와 가을산행지로 유명한 산인 구병산(九屛山, 876m)은 아홉 개의 봉우리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옛 문헌에는 구봉산(九峯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로부터 보은지방에서는 속리산의 천황봉을 지아비산, 구병산을 지어미산, 금적산을 아들산이라 하여 이 세 산을 삼산이라 일컫는다.
*사기막에서 해상골로 오르는 계곡길
*해상골과 토골 갈림길
사기막을 지나 해상골을 따라서 한참 올라가면 853m봉과 구병산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만난다. 여기가 정수암지가 있는 토골입구다. 계곡의 응달진 곳에는 눈이 희끗희끗하다. 이제부터 토골을 따라서 오르는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날씨는 비록 쌀쌀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다행이다.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감나무
얼마쯤 올랐을까..... 아름드리 감나무를 만난다. 파아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아마 저 감들은 지금쯤 홍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저렇게 나무에 매달린 감들은 겨우내 밤에는 얼었다가 낮에는 녹는 것을 반복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맛좋은 홍시가 된다. 저 홍시를 맛보고 싶지만 감나무가 너무 높다.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겨울철 날짐승들에게는 요긴한 먹이가 될 것이다.
*정수암지 옹달샘터
*정수암지 갈림길
감나무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정수암지를 만난다. 절터로 보이는 작은 공터의 축대에는 정수암지 옹달샘의 전설을 새긴 돌판이 있다. 옛날 정수암에서 수도를 하던 스님들은 여섯달을 못 채우고 암자를 떠나 속세로 내려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곳에 있는 옹달샘의 물을 마시면서부터 넘치는 정력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또 이 샘의 물을 한모금 마시면 칠일간 생명이 연장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음수대의 축대 위에는 오랜 세월 옹달샘을 지켜온 두꺼비 석상이 앉아 있다. 이끼가 낀 두꺼비 다리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고..... 물이 고여 있던 돌확은 바짝 마른 채 플라스틱 바가지만 덩그렇게 걸려 있다. 정수암지 바위밑에 있는 옹달샘터에는 낙엽만 수북하게 쌓여 있다. 바위에 새겨진 '정수암샘터'라는 글씨만 아니라면 이곳이 옹달샘터인지도 모르겠다.
정수암지는 853봉과 구병산 갈림길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절터에서 똑바로 오르는 길은 853봉을 거쳐 구병산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 길은 곧바로 구병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853봉으로 돌아서 가는 구병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3.3 km, 왼쪽 길로 곧바로 구병산 정상에 이르는 거리는 2.3 km이다. 853봉을 거쳐서 구병산 정상에 오르려면 정수암지에서 오른쪽 길로 올라가야 한다.
*봉학대로 오르는 토골의 계곡길
*봉학대로 오르는 능선길
*봉학대 안부
*봉학대 안부의 이정표
토골의 계곡길은 바위와 돌투성이 길이다. 산기슭에는 느티나무와 참나무, 굴참나무, 단풍나무 등 활엽수가 많이 보인다. 계곡길을 벗어나 능선으로 오르는 산기슭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흰눈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이 정겹다. 아리랑길..... 그러고보니 눈산행은 오늘이 처음이다. 산을 내려오는 한 무리의 산행객들을 만난다. 853봉으로 가려다가 빙판길을 만나 산행을 포기하고 도로 내려오는 것이란다. 토골 정상의 안부에 거의 다 올랐을 때 능선 너머로 보이는 딥 블루의 하늘...... 어쩌면 하늘이 저렇게 깊고 푸를 수 있을까!
토골의 정상 안부 충북알프스 구병산맥 주능선에 올라선다. 눈이 하얗게 쌓인 안부에 올라서자 문장대에서 천황봉을 지나 형제봉에 이르는 백두대간 속리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속리산맥 형제봉을 지나 못재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진 충북알프스가 구병산을 향해서 치달려 오는 산맥의 마룻금에 서서 속리산 제일봉 천황봉을 바라본다. 가슴속을 벅차게 채우는 천황봉..... 안부에는 구병산과 853봉, 갈림길, 절터의 방향과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 있다. 853봉은 여기서 서쪽으로 300m, 구병산 정상은 1.8km의 거리다.
*안부 동쪽의 암봉
안부에서 전망이 좋은 바위에 오른다. 정상부가 평평한 이 바위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소나무와 기암절벽이 잘 어우러진 암봉이 솟아 있다. 지도를 보면 저 암봉이 봉화재가 있는 참샘골 정상인 듯한데..... 그 앞에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는 뾰족한 바위봉우리는 봉학대(鳳鶴臺)로 보이고..... 저 봉우리를 넘어서 충북알프스 마룻금을 따라서 가면 못재에서 백두대간과 만난다. 언젠가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에 다시 와서 저 봉우리들을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전망대 바위에서는 지나온 계곡과 시루봉, 사기막마을, 주막뜸마을이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안부 서쪽의 암봉
전망바위에서 구병산 방향인 서쪽을 바라본다. 바로 앞에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작은 암봉이 있다. 가파르고 험한 암릉을 올라야 저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 산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저 봉우리가 봉학대인 듯도 하고...... 봉학대는 지도를 봐도 명확하지 않고 사람마다 말이 다르니 훗날 구병산을 잘 아는 사람과 동행하면서 하나하나 확인을 해봐야겠다. 전망대 바위를 내려서면 '추락위험'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오늘처럼 눈이 쌓여 있고 빙판이 져 있으면 더 위험하다.
*전망대 바위와 암봉 사이에 있는 암릉길
*853봉의 바위봉우리
*853봉 암릉에서 바라본 853봉과 874봉, 구병산 정상.
전망대 바위를 내려가는 암릉길은 눈이 다져져서 미끄럽기 짝이 없다. 암봉을 지나면 바로 853봉으로 이어진다. 칼등같은 암릉길 초입에도 '추락위험'이란 팻말이 보인다. 853봉으로 오르는 깎아지른 듯한 암릉에 올라서자 온몸에 짜릿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암릉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매우 뛰어나다. 853봉의 남쪽은 까마득한 수직절벽이다. 지도에는 신선대와 853봉이 동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천길단애 853봉의 암봉에도 소나무들은 자라고..... 송죽고절(松竹孤節)이란 말이 공연히 생긴 말이 아님을 여기서 깨닫는다. 신선대에서 853봉을 지나 795.2봉, 874봉, 구병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사나운 기세로 뻗어간다.
동봉을 우회하여 853봉과 구병산 삼거리에 이른다. 853봉은 여기서 백미터 거리다. 853봉에 오르려면 조금 전에 지나온 암릉을 타던가, 아니면 돌아오는 길로 이곳까지 온 뒤 여기서 올라야 한다.
*853봉을 내려가는 암릉길
*853봉과 구병산, 절터 삼거리
853봉을 내려가는 수직암벽길에서 서원리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남녀 두쌍을 만난다. 그들을 먼저 통과시킨 다음 암릉길을 내려간다. 밧줄을 놓치지 않고 내려가려니 힘이 좀 든다. 암릉길을 다 내려가면 안부에 853봉과 구병산, 절터 삼거리가 있다. 토골의 정수암지에서 왼쪽길로 접어들면 이리로 올라오게 되어 있다. 구병산이 구백미터 남았다.
*구병산과 내속리면 구병리 삼거리
795.2봉을 지난다. 이 봉우리를 넘으면 구병산과 내속리면 구병리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구병산이 이제 팔백미터 남았다. 오른쪽 갈림길은 내속리면 구병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874봉에서 바라본 구병산
*구병산과 적암리 위성지국 삼거리
874봉이 바로 앞에 보인다. 874봉의 북쪽 사면에는 눈이 하얗게 덮혀 있다. 874봉 바로 뒤로 구병산 정상 봉우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874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가파른 암릉도 없어서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874봉에서는 구병산이 바로 앞에 보인다. 874봉을 내려오면 구병산과 적암리 위성지국 삼거리 안부가 나온다. 여기서 구병산은 백미터.
*구병산 정상 표지석
*구병산 정상에서 필자
구병산 정상에 거의 다 올라가서 마지막 암벽을 만난다. 암벽에는 빙판이 깔려 있다. 다행히도 밧줄이 매어져 있어 마지막 힘을 다해 암벽을 오른다. 구병산 정상에 올라서자 주변의 산맥들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묘봉(왼쪽)에서 문장대를 지나 천황봉(오른쪽)에 이르는 속리산맥
구병산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웅장한 속리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에 속리산 제일봉 천황봉이 우람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 봉황산에서 천황봉과 형제봉을 지나 문장대로 뻗어가는 백두대간이 장엄하다. 충북알프스는 보은군 내속리면과 상주시 화북면의 경계지점에 있는 활목고개로부터 시작해서 동남방으로 상학봉과 묘봉, 관음봉을 지나 문장대에 이른 다음 청법대, 신선대, 입석대, 비로봉, 천황봉 등 백두대간 속리산맥을 따라서 형제봉과 갈령삼거리를 거쳐 못재에 이르러 백두대간과 갈라진다. 못재에서 잠시 남서쪽으로 방향을 튼 충북알프스는 690봉과 동관음, 장재를 지나 620봉에 이른 다음 다시 서쪽으로 구병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구병산에서 서원리로 뻗어간다. 보은군에서는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km구간을 '충북알프스'로 업무표장 등록(1999년 5월 17일)을 하여 관광상품으로 널리 홍보하고 있다.
구병산 자락에 있는 삼가저수지와 피앗재에서 삼가저수지에 이르는 만수계곡, 구병리 마을도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몇년 전 내가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형제봉을 지나 피앗재에서 만수리 만수동으로 내려와 하룻밤 묵어간 적이 있다. 당시에는 가뭄이 심하여 산중에서 물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만수동에서 심창환이란 청년을 만나 후한 대접을 받았었다. 그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구병산 정상에서 삼가 그의 명복을 빌어본다.
*구병산에서 서원리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의 연봉들
구병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충북알프스의 연봉들이 서원리를 향해서 뻗어간다. 845봉, 830봉, 730봉, 735봉, 670봉, 665봉..... 충북알프스는 서원리에서 끝이 난다. '까악 깍'.....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마귀 우짖는 소리..... 845봉 산기슭에 까마귀떼가 날고 있다.
까마귀를 보면 재수가 없다는 근거도 없는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고구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까마귀는 삼족오라 해서 신성시되던 새였는데, 요즘은 재수없는 새가 되어 버렸다. 까치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해서 길조(吉鳥)로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고 해서 나쁜 새가 되어 버렸다. 충주시의 상징새는 처음에 까치였으나 지금은 슬그머니 원앙으로 바뀌었다. 농민들의 원성을 사는 까치를 시조(市鳥)로 삼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새가 무슨 죄가 있을까. 사람들의 호불호에 따라 좋은 새 나쁜 새로 나뉘는 것일 뿐.....
*구병산 정상에서 적암리 위성지국으로 뻗어내린 능선
구병산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끝으로 마로면 갈평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이 산줄기를 타고 가다가 적암리 능선으로 내려서면 위성지국에 이른다. 능선의 끝, 지금 한창 건설중인 청주와 상주간 고속도로 건너편에 306봉이 아담하게 앉아 있다. 갈평마을 윗쪽에 있는 갈평소류지와 갈평저수지의 수면이 서쪽으로 기울어진 햇빛을 받아서 눈부시게 빛난다.
*구병산 정상에서 바라본 적암리와 시루봉
오른쪽 갈평리로 뻗어간 능선과 그 왼쪽의 위성지국으로 뻗어내린 능선 사이에 있는 협곡이 수무골이다. 이따가 저 수무골로 해서 산을 내려갈 것이다. 사기막마을 남동쪽에 시루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시루봉이고, 청주 상주간 도로 건너편으로 상주시 화남면 임곡리에 솟아 있는 산이 천택산(川擇山, 683m)이다. 산의 정상에 있었다는 연못에서 산이름이 유래한다. 천택산은 하늘의 탁자라는 뜻으로 천탁산(天卓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택산 밑에는 지금도 우복길지(牛腹吉地)의 비결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조선후기의 술사였던 이량박이라는 사람이 임실 즉 임곡 안골을 우복동(牛腹洞)이라 칭하였기 때문이란다. 이 일대에는 우복동과 관련된 태조산, 대모산, 용굴, 시루봉, 적바위 등이 있는데, 남자의 얼굴 형상이라는 태조산은 바로 구병산을 가리키며, 안골 바로 앞산은 여인이 누워있는 형상으로 대모산(大母山)이라고 부른다. 두 개의 적바위 중에서 상주바위는 바로 저 대모산에 있다.
*지나온 874봉과 795.2봉, 동봉
이번에는 동쪽으로 지나온 구병산맥을 바라본다. 바로 앞의 874봉에서 795.2봉을 지나 853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산세가 사납고 험하다. 저 멀리 853봉 너머로 보이는 산이 백두대간 봉황산이고, 874봉 왼쪽에 솟은 봉우리는 두로봉이다. 정상에서 서원계곡 방향으로 약 30m 떨어진 지점에는 풍혈(風穴)이 있어 여름철에는 냉풍이 겨울철에는 훈풍이 나온다고 한다. 구병산 풍혈은 전북 진안군 대두산 풍혈과 울릉도 도동 풍혈과 더불어 한국의 3대 풍혈로 일컬어지고 있다. 날이 이미 저물고 있어서 풍혈을 찾아보는 것을 포기하고 하산길에 오른다.
*구병산과 874봉 사이의 안부 삼거리에서 위성지국으로 내려가는 수무골 계곡길
*수무골 협곡
*수무골의 철계단길
지나온 삼거리로 도로 내려와 수무골로 내려선다. 협곡을 내려가는 길이 상당히 가파르고 험하다. 수무골은 진달래가 피는 봄이나 단풍이 붉게 물드는 가을에 경치가 매우 아름다울 것 같다. 철계단이 놓여 있는 바위절벽을 만난다. 흔들거리는 철계단을 내려와 지나온 협곡을 되돌아보니 까마득한 암봉이 우뚝 솟아 있다. 어떤 지도에는 저 봉우리쯤을 신선대라 표기하고 있다. 수무골 위쪽에 솟은 신선대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터가 있는데,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던 곳이라고 한다.
수무골의 중간쯤 내려왔을까? 해가 지면서 서녘하늘에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다. 저녁노을 위로 황혼이 점점 엷어지면서 하늘이 높아짐에 따라 파아란 색이 짙어간다. 어두워지기 전에 협곡을 내려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른다. 암벽 밑에 바위굴이 뚫려 있고, 흙으로 벽을 쌓은 흔적이 있는 치성터를 지난다. 이 바위굴은 옛날에 쌀이 나왔다고 하여 쌀난바위 또는 쌀바위라 하는 곳이다. 시루봉에도 쌀바위가 있는데.....
쌀난바위를 지나 위성지국으로 내려오니 동산에 밝은 달이 떠 있다. 달빛을 받으며 사기막으로 돌아오는 산길이 호젓하다. 사기막마을은 개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고요하다. 막상 구병산을 떠나려고 하니 무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모든 존재는 한번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는 법이다. 달빛에 젖은 구병산을 뒤로 하고 귀로에 오른다.
2006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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