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떠난 여행(4)-해남 땅끝마을 남창 장흥 벌교 순천 하동 창원

아침에 일어나보니 전대윤 회장과 오옥현씨는 벌써 산행을 떠나고 보이지 않는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세수를 한 다음 아파트를 나선다. 오늘은 목포를 떠나 마산까지 갈 생각이다. 이제 서해안 여행은 끝이 나고 오늘부터 남해안을 따라가는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후 1시경 목포를 떠났다. 영산강 하구언에서 잠시 차를 세워놓고 목포 앞바다를 바라다 본다. 바다바람이 제법 거세게 불어온다. 목포항 바로 앞바다에는 커다란 화물선이 몇 척 정박해 있다. 여기서 보니 유달산이 작은 언덕처럼 보인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떠올리면서 다시 차를 몰아 영암땅으로 들어선다. 월출산이 왼편으로 보인다.

▲ 해남 땅끝마을 전망대에서 필자.
ⓒ2003 임종헌

해남 땅끝마을을 들러서 가기로 한다. 김남주 시인의 생가를 지난다. 그는 엄혹한 군부독재정권 시절에 치열한 저항시를 남긴 시인이다. 그는 결국 독재정권에 의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 했다.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의 자유나마 누리는 것은 김남주 시인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한참을 달려서 마침내 땅끝마을에 닿았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동산에 세워진 전망대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자그마한 포구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인다. 땅끝마을 앞바다에는 작은 어선들이 양식장 사이를 오간다. 양식장의 구조물들이 마치 거대한 설치 미술품과도 같다. 어쩌면 저리도 물결이 잔잔한지….

땅끝마을을 떠나 남창으로 향한다. 완도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남창까지는 해안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완도가 손에 잡힐 듯 건너다 보인다. 길가의 논과 밭에는 보리싹이 파릇파릇하다. 마치 파란 빌로드를 깔아놓은 것 같다. 마늘밭에는 마늘이 손가락 길이만큼 자랐다. 이 곳에는 봄소식이 완연하다. '하사와 병장'의 '해남아가씨'란 노래를 장화백과 듀엣으로 불러본다.

▲ 해남 땅끝마을 앞바다에서 필자.
ⓒ2003 임종헌

남창을 지나 강진땅으로 들어선다. 강진은 옛날 라디오밖에 없던 시절 법창야화인 '강진 갈가리사건'으로 유명한 곳이다. 라디오 밖에 없던 시절 우리집에는 동네 아낙네들이 법창야화를 들으려고 저녁마다 모이곤 했었다. 왼쪽으로 산세도 좋은 사자산이 바라다 보인다. 남쪽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기기묘묘한 바위봉우리가 우뚝우뚝 솟아 있다.

장흥을 지난다. 꽤 오래전에 후배 누나의 결혼식 초대를 받아 장흥땅에 와본 적이 있다. 그 때 난생 처음 홍어회를 맛보았다. 귀한 것이라고 하면서 주기에 한 처럼을 입에 넣자마자 눈물이 찡하고 나오면서 코가 뻥 뚫리는 듯한 자극적인 맛과 냄새에 기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나는 톡 쏘는 홍어회의 맛을 잊을 수 없어 매니아가 되고 말았다.

보성과 벌교를 지나 순천으로 들어선다. 벌교에서는 주먹자랑을 하지말고 순천에서는 인물자랑인가 돈자랑인가를 하지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째서 그런 말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해는 이미 저물어 밤이 되었다. 차창으로 전개되는 풍광을 더 이상 볼 수 없기에 광양에서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선다. 보름을 하루 지난 둥그런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다.

하동과 진주를 지나 창원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가 넘었다. 대학 동창으로 창원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 이진우군과 만났다. 거의 1년만에 만나는 것이다. 이군의 안내로 창원역 바로 앞에 있는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도다리 세꼬시와 우럭회를 안주로 소주도 한 잔 걸쳤다. 반가운 마음에 근처 '가야금 민속주점'이라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산사춘을 마시면서 정담을 나누다가 밤 12시가 넘어서야 친구와 헤어졌다.

내일은 부산까지 갈 예정이다. 시간을 보니 새벽 1시 반이 넘었다. 창원역 앞 '제일장여관'에 숙소를 잡았다. 피곤한 몸을 뉘어야겠다.

2003.2.16 새벽 1시 35분. 창원에서

'바다로 떠난 여행' 4일째 기록입니다. 이 날은 목포를 떠나 해남 땅끝마을을 거쳐 창원까지 갔습니다. 남해안에는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