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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떠난 여행(6)-태종대 간절곶 구룡포 영일만 강구항 울진 강릉

林 山 2004. 9. 24. 01:10

아침 10시경 강희성씨의 아파트를 나와 태종대로 향한다. 태종대로 가는 터널입구에서 강희성씨와 헤어졌다. 상당히 긴 터널 두 곳을 빠져나오자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다. 부산대교를 건넌다. 옛날에 영도다리가 있던 자리에 새로 놓은 다리다. 크고 작은 화물선들이 바다위를 분주하게 오간다.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니 태종대 매표소가 나온다. 입장료는 3천원이란다.

▲ 태종대 전망대에서.

왼쪽은 장백 화백
ⓒ2003 임종헌


일방통행로를 따라 차를 천천히 몰면서 울창한 해송숲을 감상한다. 껍질이 붉으레한 빛이 도는 적송과는 달리 해송은 거무튀튀한 색이다. 잎도 거센 바닷바람을 받아서 그런지 억세어 보인다. 잎의 길이도 적송에 비해서 비교적 짧은 편이다. 그래서 해송을 일명 곰솔이라고도 한다. 바위절벽에는 해송 몇 그루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씨앗이 하필이면 험하디 험한 절벽의 바위틈바구니에 떨어지다니..... 사람으로 치면 사나운 팔자를 타고난 운명인 것이다.

길가에 가로수로 심어진 동백나무에는 빠알간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어떤 나무는 이미 꽃이 지고 있다. 여기도 봄빛이 완연하다. 까마득한 바위절벽 위에 세워진 전망대에서 드넓은 남해바다를 바라다 본다.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이 돌섬사이를 오고간다. 전망대 바로 아래 갯바위에는 낚시꾼들이 바다낚시를 하고 있다. 전망대 주변에도 동백꽃이 한창이다. 동백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관광객들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이다.

태종대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도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태종대를 떠나 해운대로 향한다. 낯선 곳에서 길을 찾느라 애를 먹는다. 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않아 초행길이나 다름없다. 몇 년 전 아내와 남해안을 돌아서 동해안까지 여행을 다닐 때도 여기를 지나쳤는데 도무지 길을 모르겠다.가까스로 해운대에 도착했다. 해운대는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 동백꽃 앞에서 필자.
ⓒ2003 임종헌


해운대를 거쳐 기장을 지난다. 고리원자력발전소를 지날 때 주민들이 원전건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사고를 생각하면 원전지역 주민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는 원자로나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기 전에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해야만 한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처럼 밀어붙이기식의 행정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시장끼를 느껴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1시가 지났다. 마침 시위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길가에 허름한 보리밥집이 보인다. 차를 세우고 식당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손님들이 제법 많다. 식단이 보리밥과 칼국수 단 두 가지 뿐이다. 장화백은 아침을 먹은 것이 아직 내려가지 않았다고 해서 보리밥 한 그릇만 주문한다. 허기가 진 터라 열무김치와 콩나물,미역줄기를 수북하게 넣고 구수한 된장찌개와 고추장으로 썩썩 비벼서 먹으니 꿀맛이다. 보릿고개가 있던 어린 시절에는 보리밥이 그토록 싫더니만 지금은 별미로 먹는다. 입맛도 세월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난다. 간절곶이라는 곳을 지나 온산공단으로 들어선다. 공장의 굴뚝마다 매연을 내뿜고 있다. 대낮인데도 하늘이 부옇다. 악취가 얼마나 심한지 차창을 닫아야만 했다. 온산의 환경문제가 심각함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바다는 또 얼마나 오염이 심할 것인가! 온산을 지나면 바로 울산이다. 울산시내는 퇴근무렵도 아닌데 교통혼잡이 이만저만 심한 것이 아니다.

울산을 벗어나 감포로 향한다. 문무대왕릉이라고 알려진 갯바위를 지난다. 감포에서부터는 해안의 풍경이 참 잘 보인다. 서해안이나 남해안과는 달리 전망이 매우 뛰어나다. 구룡포도 참 아름다운 곳이다. 구룡포에서는 언제라도 고래고기 맛을 볼 수가 있다. 고래는 국제간의 해양협약으로 잡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동해의 바다풍경을 느긋하게 즐기면서 해안도로를 따라서 달린다.

▲ 장기곶에 세워진 '상생의 손' 조형물 앞에서 필자.
ⓒ2003 임종헌


구룡포를 떠나 장기곶에 닿았다. 호미곶이라고도 하는 곳이다. 호미끝처럼 불쑥 튀어나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일 것이다. 호미곶에는 등대공원과 박물관이 있다. 등대 바로 앞 바다에는 사람의 손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바로 화합을 상징하는 '상생의 손'이다. 하나는 공원에서 바다를 향해, 하나는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설치되어 있다. 관광객들이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호미곶에 서서 영일만을 바라다 본다. 검푸른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해안의 바위를 때리고는 하얗게 부서진다. 최백호란 가수가 부른 '영일만 친구'가 문득 떠오른다.

호미곶을 떠나 영일만 해안도로를 따라서 달린다. 길가의 논과 밭에는 한 무리의 아낙네들이 봄나물을 캐고 있다. 아마도 봄냉이를 캐는가 보다. 냉이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는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돈다. 향긋한 냉이향이 코끝에서 맴도는 듯 하다. 새풀옷으로 갈아입은 봄처녀가 하얀 구름을 쓰고 올 날도 이젠 머지 않았다.

해가 어느덧 서녘하늘에 기울었다.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해가 오른쪽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가 동쪽에 떠 있는 듯 한 느낌이 든다. 마치 일출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것은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호미곶을 돌아서 남쪽으로 잠시 내려갈 때 생기는 현상이다. 멀리 바다건너 포항시가지와 항구가 아스라이 보인다. 벌써 경남을 벗어나 경북땅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포항은 도로사정이 좋아서 그런지 금방 지난다.

포항을 벗어나자 날은 이미 저물었다. 약간 기운 달이 바다위에 은은하게 떠 있다. 달빛이 드리운 바다는 마치 금빛 비단을 깔아놓은 듯 하다. 멀지않은 바다위에 오징어잡이를 하는 배들의 불빛이 환하다. 길은 해안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해안으로 밀려온 파도의 물결이 달빛을 받아서 하얗게 빛난다. 끊임없이 밀려와서는 부서지는 파도..... 파도는 무엇을 위해서 제 몸을 저토록 부수는 것인가!

▲ 강릉 관동대 후문 '재즈보트'에서.

장백 화백의 부인과 함께
ⓒ2003 임종헌


해안도로를 벗어나서 영덕으로 들어선다. 영덕군 강구면 소월리에 있는 순대국밥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TV뉴스에서 정신이상자에 의한 대구 지하철 방화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식을 알린다. 오늘 오전 9시 55분에 일어난 참사라고 한다. 44명이 사망하고 140명이 부상했으며, 59명이 실종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끔찍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시신 100여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어찌 이런 일이...... 사고로 숨진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조의를 표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여정에 오른다. 밤길이라 운전하는 데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평해를 거쳐 울진을 지난다. 울진을 지나면 강원도다. 삼척을 지날 때 이 곳에 살고 있는 큰처남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큰처남은 최근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투병중이다. 어서 빨리 완쾌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동해시를 거쳐 강릉시 관동대 후문 장화백 부인이 경영하는 카페 '재즈보트'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재즈보트' 선장인 장화백 부인이 반갑게 맞는다. 카페실내에는 장화백 부인이 직접 만든 도예작품들이 곳곳에 진열되어 있다. 그녀는 각종 대회에서 큰 상도 여러 번 받은 바 있는 도예작가이기도 하다.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벽에는 손님들이 온갖 사연을 적어 놓았다.

밤이 이슥하여 손님들도 다 돌아가고 난 뒤 장화백 부부와 맥주를 마시면서 그간의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카페안에는 케지 지의 연주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Spiro Gyra의 재즈음악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새벽 3시가 훌쩍 넘었다. 버드와이저 병맥주를 세 병이나 마셨다.

장시간 운전으로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일찍 자야겠다.

2003.2.18. 강릉에서



바다로 떠난 여행에서 6일째 되는 날입니다. 태종대에서 활짝 핀 동백꽃을 보니 봄기운이 완연하더군요. 영덕을 지날 때 대구지하철 참사소식을 듣고는 마음이 무거웠답니다. 내친 걸음에 강릉까지 갔습니다. 장백화백의 부인이 선장으로 있는 카페 '재즈보트'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