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11시경이나 되어서 늦으막이 일어났다. 아침 겸 점심은 대구뽈찜을 먹기로 했다. 강릉 성산면에 가면 '옛카나리아식당'이라는 대구뽈찜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 대관령 옛길을 따라서 성산으로 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여기는 비가 내리지만 백두대간에는 분명 함박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 강릉 관동대 후문 '재즈보트'에서 필자.
ⓒ2003 임종헌
'옛카나리아식당'에는 벌써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대구뽈찜 대짜 하나를 주문했다. 강릉에 오면 꼭 이 집에 들러 뽈찜을 먹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주문한 뽈찜이 나왔다. 마침 배도 고프던 터라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는다. 담백한 대구와 얼큰하고 매콤한 콩나물이 잘 어우러진 맛이다. 대짜 하나가 금방 동이 난다. 밥을 뽈찜 국물에다가 비벼서 먹는 것도 별미중의 별미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 관동대 캠퍼스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장화백 부인의 작업실이 있는 건물에도 들렀다. 관동대 캠퍼스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인상적이다. 곳곳에 아름드리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소나무중에서도 적송이라 불리는 조선 토종 소나무는 보기에도 품위가 있어 보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장화백 부인과 헤어져 경포대로 향한다.
▲ 카페 '재즈보트' 앞에서.
오른�은 장백 화백.
ⓒ2003 임종헌
비는 이제 진눈깨비로 바뀌어 차창을 때린다. 경포호를 지난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경포호의 물결은 잔잔하기만 하다. 수십만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철새들이 물위에 떠 있다. 수면위로 살짝 드러난 바위섬에도 철새 몇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저 철새들은 때가 되면 또 어디론가 날아가겠지.
경포대 앞바다에 선다. 동해의 검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분다. 넘실거리는 파도가 금방이라도 백사장을 넘어올 것만 같다. 경포대 입구에는 12간지에 해당하는 동물들의 상을 나무에 새겨서 세워 놓았다. 그 한가운데는 솟대가 우뚝 솟아 있다. 바로 앞바다에는 자그마한 돌섬 세 개가 정답게 떠 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데도 백사장을 거니는 사람들이 꽤 많다.
▲ 경포대에서 필자.
ⓒ2003 임종헌
경포대를 떠나 주문진으로 향한다. 주문진 어시장을 지나서 소돌 해수욕장이 있는 아들바위 포구에 들렀다. 진눈깨비를 맞으며 방파제에 서서 동해바다를 가슴에 담는다. 파도가 높아서 그런지 작은 어선들은 방파제 안 내항에 모여 있다. 방파제에서 함지박에 가자미,도다리,돌삼치,놀래미 등을 담아놓고 생선회를 떠 주는 아주머니들도 오늘은 한 사람 밖에 보이지 않는다.
횟감은 놀래미 한 가지 뿐이다. 놀래미 세꼬시회 2만원어치를 달라고 하자 인심좋은 아주머니가 많이도 준다. 생선회를 가지고 근처 '옹심이네집'으로 갔다. 야채와 초고추장을 파는 집이다. 놀래미회가 찰지고 맛있다. 배가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도 금방 회 한 접시를 비워 버렸다. 소주는 딱 세 잔만 마셨다. 회가 있는데 술이 없으면 되겠는가! 그러나 운전을 해야 하는 까닭에 석 잔만 마신 것이다.
회를 다 먹고 비닐로 바람막이를 한 곳으로 나오니 주인 할머니가 숯불에다 도루묵을 굽고 있다. 열 마리에 만원이란다. 도루묵이 모두 알백이다. 알백이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을 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구경하기가 어렵다. 도루묵 굽는 냄새가 구수하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도루묵찜을 맛보는 것인데...... 도루묵은 무우를 밑에 깔고 매콤하게 양념을 해서 찜을 해야 제맛이 난다.
오후 4시 반 쯤 소돌을 떠나 귀로에 오른다. 이제 바닷가를 따라서 가는 여행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소돌에서 양양방면으로 가다가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든다. 갑자기 진눈깨비가 함박눈으로 변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부어 댄다.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다. 도로 위에는 이미 눈이 상당히 쌓여 있다.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 주문진 소돌 아들바위포구 방파제에서 필자.
ⓒ2003 임종헌
장화백과 그냥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차를 돌려서 강릉으로 되돌아 갈 것인가 의논했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니 이대로 대관령을 넘자는 결론이 났다. 전조등을 켜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길고 짧은 터널을 여러 개 지났다. 차들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서 거북이 행렬을 이루고 있다. 빙판이 진 곳에서는 차들이 멈추어 서서는 움직일 줄을 모른다.
내리막길에서다. 갑자기 내 차가 빙판에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는데도 차는 중앙분리대쪽으로 사정없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본능적으로 핸들과 브레이크를 조작해서 충돌만은 간신히 면했다. 등에서는 식은 땀이 흐른다. 저절로 천지신명께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뒤에 따라오는 차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고 내 차를 길가에 댔다.
차는 온통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언뜻 보아도 10cm는 쌓인 것 같다. 차가 굉장히 무거워 보인다. 윈도우 브러쉬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간신히 움직인다. 언젠가 폭설로 차를 세워놓고 사람만 대관령을 걸어서 내려가야만 했다는 신문보도가 실감이 난다. 트렁크에서 체인을 꺼내서 뒷바퀴에 쳤다. 눈은 계속 퍼부어 대고 있다. 체인을 치느라고 밖에 잠시 있는 동안 금방 살아있는 눈사람이 된다.
다시 차에 올라 귀로를 서두른다. 체인을 치자 확실히 차가 덜 미끄러진다. 그러나 체인 때문에 바퀴에서 꼭 탱크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에는 엔진이 자꾸 꺼지는 것이 아닌가! 무엇 때문에 엔진이 꺼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한참 실랑이 끝에 겨우 엔진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워 두어야 하겠다.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는 그런대로 앞이 보였는데 이상한 일이다. 전조등의 전구가 나간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차를 세우고 살펴보니 전조등에 눈이 두껍게 달라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눈을 털어내자 전조등의 밝은 불빛이 드러난다. 다행이다. 한밤중에 더구나 이런 곳에서 전구라도 나갔다면 어쩔 것인가!
마침 휴게소가 보이기에 들러서 가기로 한다. 쉬기도 할 겸 여행안내소에서 교통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횡성에 있는 휴게소에 들러 안내소 직원에게 물으니 원주를 지나면 도로사정이 괜찮다고 한다. 휴게소를 나와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서니 아까보다는 눈이 좀 덜 내린다. 남원주 톨게이트를 지나자 눈길이 사라진다. 여기도 눈이 오긴 했는데 기온이 다른 곳보다 높아서인지 도로위는 다 녹았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체인을 벗겼다.
원주에서 충주로 가는 도로에도 눈이 쌓여 있었지만 그런대로 갈만 했다. 그런데 귀래로 넘어가는 고개를 오르려니 차가 또 미끄러진다. 할 수 없이 차를 길가에 세우고 체인을 다시 쳐야만 했다. 체인을 치고 재를 오르는데 경사가 가파른 곳을 만날 때마다 미끄러지기 일쑤다. 겨우겨우 고개마루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경찰들이 나와서 길위에 모래를 깔고 있다. 정상에 있는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귀래에서 넘어온 사람이 있어 도로사정을 물으니 소태재만 넘으면 눈이 다 녹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좀 안심이 된다.
▲ 영동고속도로에서 폭설을 만난 필자.
ⓒ2003 임종헌
탱크를 몰고 귀래재를 설설 기어 내려간다. 재를 기다시피 넘어서 귀래를 지난다. 귀래읍내는 눈이 다 녹았다. 이제 소태재만 넘으면 된다. 소태재는 초입에서부터 빙판길이다. 조심조심해서 간신히 소태재를 넘는다. 여기서부터는 충주시다. 소태재를 다 내려가서야 눈녹은 길이 나타난다. 얼마나 반가운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체인을 벗겼다.
충주로 가는 길에도 눈은 왔지만 다 녹았다. 일순간 긴장이 탁 풀린다. 밤 12시가 가까와서야 충주에 도착했다. 차를 아파트에 주차시키고나자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해단식도 할 겸 저녁도 먹을 겸 '각기우동'집으로 갔다. '행복한 우동가게'라는 책을 쓴 이 집 주인 강순희 여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오징어덮밥으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강여사가 달고 시원한 생무우와 김장김치 속에 박아놓았던 잘 익은 무우를 내온다.
막걸리도 한 동이 시켜서 6박7일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서 장화백과 함께 자축을 했다. 강여사가 이번에는 잘 삭힌 황석어젓을 안주로 내온다. 황석어젓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면서 여행중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새벽 3시를 훌쩍 넘겨 버렸다. 바다로 떠난 일주일간의 자동차 여행이 벌써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바다를 따라서 간 여행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또한 그들은 삶을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것을 나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들과의 인연을 나는 언제까지나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이들이 언젠가 충주에 온다면 나도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어쩌면 여행자체가 인생공부인 것이다. 바다로 떠난 여행에서 이젠 집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2003.2.19
마침내 바다로 떠난 여행에서 마지막 날입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가운데 경포대 앞바다에 섰습니다. 넘실거리는 동해바다의 검푸른 물결을 보니 가슴마저 울렁거리더군요. 주문진 소돌 아들바위포구에서 동해바다와 이별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대관령을 넘다가 폭설을 만나 죽을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퍼부어 대는 폭설은 난생 처음이었지요. 이제는 여행에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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