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경 숙소를 떠났다. 창원 두산중공업으로 가서 노조탄압에 항의하여 분신사망한 배달호씨를 조문하였다. 정문에서 방문수속을 밟고 회사로 들어가는데 곳곳에 조기와 노조탄압을 규탄하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또 전국각지의 노동조합에서 보내온 두산중공업 노동조합의 투쟁에 연대하는 내용의 현수막들도 수없이 보인다. 노동자들이 제 권리를 찾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간의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
빈소는 두산중공업 노조 대의원인 박광용씨가 지키고 있었다. 전국금속노련 두산중공업 지회장인 박방주씨의 안내를 받아서 배달호씨가 분신한 현장도 둘러 보았다. 박지회장으로부터 배달호씨가 분신사망한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받았다.
회사측에서는 아직도 아무런 태도의 변화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회사측은 노조탄압의 강도를 더욱더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댓가를 받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박지회장과 헤어져 두산중공업을 나선다.
12시경 마산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주대환 민주노동당 마산합포지구당 위원장을 만났다. 주위원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온화한 인상이어서 그런지 처음 만나는 사람같지가 않다. 그는 이 땅의 민주화와 진보정치 실현을 위해서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현장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마산에 오면 주위원장을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는데 이 번에 그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주위원장은 민주노동당 지구당 위원장 외에 3.15 의거 기념사업회 이사, 마창환경운동연합 정책자문위원으로 이 지역 시민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또 그는 '진보정당은 비판적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책을 비롯해서 여러 권의 저서를 내기도 했다. 그는 내가 백두대간 종주기를 쓰고 있는 인터넷 웹진 '진보누리'에 '주대환의 독서일기'를 연재하고 있는데 같은 필진의 한 사람으로 만난 인연이다.
주위원장의 안내로 마산시 합포구 구산면 내포리 '전망대횟집'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자연산 생선회를 안주로 소주도 곁들였다. 삶은 홍합이 참 신선하다. 이 집 주인은 어선을 갖고 있어서 직접 잡은 자연산 생선회를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한다. '전망대횟집'은 남해바다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전망이 참 좋은 곳이다.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떠 있다.
이 자리에는 '코리아타코마' 해고노동자인 이성립씨와 박철민씨, 그리고 나현균씨도 합석을 했다. 전주 우석대 한의대 본과 1학년에 편입하게 되어 마산을 떠나는 나현균씨의 송별회도 겸한 자리다. 이들 세 사람은 모두 주위원장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이들은 해고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복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성립씨는 현재 '마산희망연대' 민생민권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자칭 전업주부라고 소개를 한다. 그의 솔직하고 구수한 입담에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래된 지기처럼 느껴진다.
나현균씨는 서울대 공대 출신의 노총각으로 '전해투'시절 독재정권과 악덕기업주를 상대로 투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30일간에 걸쳐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들어갔었는데 단식이 끝나고 그만 조리를 잘못해서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거기다 어머니마저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그는 한의대 편입을 결심하게 되었다. 바로 오늘이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마산을 떠나 고향인 김제로 돌아가는 날이다. 오랜 세월 동지였던 이성립씨와 박철민씨는 나현균씨의 떠남을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다.
박철민씨는 충무가 고향이다. 그도 30일간에 걸친 단식투쟁을 나현균씨와 함께 했다. 당시 그는 노조탄압에 분개하여 분신자살할 결심으로 휘발유통을 항상 옆에 두고 있었다. 그를 아끼는 동료들은 언제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를지 몰라서 그가 잠든 사이에 물통으로 바꿔놓았다고 한다. 지금 여기서 오가는 이야기는 바로 한국노동운동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떠날 때가 되었다. 이들의 따뜻한 환대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진해를 향해 떠난다. 차창너머로 남해바다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진해는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마다 4월초 군항제가 열리는데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벚꽃구경을 하러 몰려든다. 나도 몇 번 군항제에 맞춰서 진해를 찾은 적이 있다. 벚꽃이 활짝 피면 진해는 그야말로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도시로 변한다.
군항제를 찾는 외지 사람들은 바가지요금에 주의해야 한다. 어느 해던가 벚꽃을 보러 진해에 왔다가 바닷가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평소 습관대로 음식값을 묻지 않고 회덮밥을 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음식값을 치루려고 주인에게 물어보니 회덮밥 한 그릇에 5만원이란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틈을 타서 5,6천원 짜리 회덮밥을 10배나 바가지를 씌우고 있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불쾌하기 짝이 없다. 벚꽃구경을 가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미리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부산 강희성씨네 집에서.왼쪽부터 강희성씨,필자,장백 화백.
ⓒ2003 임종헌
진해를 벗어나 재를 하나 넘으면 김해다. 김해의 너른 평야가 끝없이 전개된다. 김해를 지나서 낙동강 하구언에 있는 을숙도에 잠시 들른다. 을숙도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다. 철새들을 관찰하는 곳이 있다는데 어딘지 모르겠다. 포장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키를 넘는 갈대숲이다. 그러나 이곳도 예외없이 개발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중장비를 동원해서 마구 파헤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을숙도 주차장에서 부산에 살고 있는 강희성씨를 만났다. 그는 장 백 화백의 친구로 그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다. 지금은 생활의 여유가 없어 전업화가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뛰어난 작품을 남기리라 믿는다. 그의 안내로 낙동강 하구언을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갔다. 서녘하늘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게 물들어 있다. 저녁노을 배경으로 백사장을 나란히 걷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기에도 정겹다.
해수욕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다대포항 어시장도 구경했다. 퇴근시간이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함지박에는 벼라별 물고기가 다 있다. 생전 처음보는 물고기도 있다. 어시장 뒤 항구에는 작은 배들로 꽉 들어차 있다. 저 멀리 오륙도가 가물가물 바라다 보인다. 날이 이젠 꽤 어두워졌다. 비릿한 바다내음을 뒤로 하고 어시장을 떠난다.
사상구 삼락동에 있는 '할매재첩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강희성씨는 이 집이 TV에도 소개된 적이 있으며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유명세에 걸맞게 재첩국이 참 시원하고 담백하다. 고등어조림과 된장국, 겉저리 김치도 아주 맛있다. 아주머니가 밥 한 그릇과 재첩국 한 그릇을 더 먹으라고 갖다 준다.
오늘은 사상구 모라동 우신아파트 강희성씨네 집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한다. 집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액자에 담겨져 여기저기 걸려 있다. 그중에서 마블링 기법으로 그린 '자유를 찾아서'라는 그림이 참 좋다. 주인부부가 매실을 발효시킨 음료와 매실주를 내온다. 한 잔을 마시자 매실향이 입안 가득히 퍼진다. 매실주는 내가 참 좋아하는 술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일은 동해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동해의 푸른 물결을 볼 생각으로 마음은 벌써 설레어 온다.
2003.2.17.오후 10시 40분. 부산에서
이 날은 '바다로 떠난 여행'에서 5일째 되는 날입니다. 마산 앞바다를 보고 낙동강 하구언에 있는 을숙도에 들른 다음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다대포에서 일몰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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