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요일이라 아내가 쉬는 날이다. 오후 늦으막하게 모처럼 둘이서 함께 남산으로 향한다. 남산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종합운동장과 동아아파트, 갱고개, 충일중학교, 엘지아파트 뚝방길, 안림사거리, 체육공원을 차례로 지나 남산 산성까지 갔다가 되밟아 오는 길이다. 별일이 없는 한 나는 이 노정을 바꾸지 않는다. 이제는 습관처럼 몸에 배어 버렸기 때문이다.
갱고개 건널목 조금 못미친 곳에는 오래된 집이 한 채 있다. 앞마당 대신에 손바닥만한 텃밭을 가진 집이다. 인도옆에 돌을 쌓아서 밭둑을 만들었는데, 그 돌틈바구니에서는 어느 때부터인가 방아대 한 포기가 자라나고 있었다. 방아대는 그 생김새가 흡사 들깨와 비슷한데, 특이한 향을 가지고 있어서 생선매운탕이나 추어탕을 끓일 때 몇 잎 따서 넣으면 비린내가 감쪽같이 없어진다. 그러나 충청도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경상도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향신료다.
이 방아대와의 인연은 그러니까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해직이 되어 1989년 교단에서 쫒겨나고, 더군다나 전교조관련으로 1심공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자 나는 쫒겨나듯이 고향을 떠나야만 했었다. 고향인 천등산기슭 산척에서 충주로 이사를 나온 뒤, 무료함을 달래기도 할 겸 내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이 남산이다.
남산을 처음으로 오를 때 여기를 지나면서 나는 이 방아대가 들깨인 줄 알았다. 어느날 우연히 잎을 뜯어 냄새를 맡고 나서야 방아대인 것을 알고 비로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 향초를 충주의 다른 곳에서는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집주인도 자기네 밭둑에 있는 이 향초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풀은 사람에게 유용하지 않으면 잡초로 취급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이 방아대가 언제 뽑혀 버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이 향초는 매년 그 자리에서 꼭 한 포기만 자라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를 더 걱정스럽게 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먼저 이 방아대의 새싹이 돋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며칠 전이다. 남산을 오르려고 이 곳을 지나는데 방아대가 보이지 않는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누군가 낫으로 밑둥을 싹둑 자른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12년간이나 인연을 맺어온 방아대가 이렇게 사라지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집주인을 원망하면서 그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집주인에게 이 향초의 이름이 방아대이며, 훌륭한 향신료라는 것을 그토록 설명을 해주었건만..... 방아대는 집주인과는 인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오늘 보니 밑둥이 잘려나간 그 자리에 방아대의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분명 방아대는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얼마나 눈물겹도록 반가운지 모르겠다. 방아대도 나를 반기는 것 같다. 꼭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흥겨운 마음이 되어 발걸음도 가볍게 남산으로 향한다.
남산전망대에 올라 서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를 바라본다. 저녁노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인연이란 무엇인지.....
200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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