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일기예보에서 호우주의보를 내리더니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다. 하늘을 보니 쉽게 그칠 비가 아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려나보다. 충주는 예로부터 홍수피해지역이 아니어서 별로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지방의 상습침수지역은 또 다시 물난리를 겪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대학에서 한의학을 전공하는 딸 선하가 모처럼 집에 다니러 왔다. 방학인데도 제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거의 한 달만에 집에 온 것이다. 공부할 시간을 쪼개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고생하는 선하를 볼 때마다 안쓰럽기 한량없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내 자신이 그저 원망스럽고 미안할 뿐이다.
말단공무원인 아내의 박봉으로 나까지 대학생 두 명과, 고등학생 한 명의 뒷바라지를 하려니 살림은 늘 팍팍하기만 하다. 내가 교단에서 해직된 뒤 지금까지 무려 12년동안이나 아내는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살림을 이끌어왔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용돈이나 제대로 주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 사정을 아는 선하는 대학에 진학하더니 일찌감치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여 생활비를 보탰다. 뿐만 아니라 제 엄마와 동생에게 가끔 옷을 사주기도 한다. 이번에도 제 엄마에게 백화점에서 샀다는 여름옷을 선물하였다. 참 대견한 녀석이다.
지난해 여름방학을 맞아 아내와 선하를 데리고 동해안으로 여행을 갔을 때다. 태백산 화방재를 넘을 때 차안에서 선하가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제가 아빠 딸이 아니고 줏어온 아이인 줄 알았어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랬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제가 어떤 잘못을 해도 아빠는 한번도 저를 꾸짖거나 야단을 치지않으셨잖아요. 그래서 그 때는 어린 마음에, '진짜 아빠라면 어쩜 그렇게 나에게 무관심할 수가 있을까? 아무래도 우리 아빠가 아니야.'라고까지 생각했었던 적이 있어요."
나는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생각을 설명해줄 필요를 느꼈다.
"아, 그 얘기로구나. 내 말을 들어봐라. 내가 볼 때 너는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였다. 그리고 학교생활도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잘하고 있었고. 네가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면 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를 기다렸단다. 그러면 곧 너는 너의 문제를 스스로 잘 해결하더구나. 너는 잔소리가 필요없는 아이였지. 비록 표현은 하지않았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더 관심깊게 너의 성장을 지켜보았단다. 너는 네 엄마와 아빠의 기대이상으로 잘 자라주었어."
선하는 이해했다. 그것이 딸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하얀 종이와도 같은 존재이다. 어른들의 때가 묻은 손으로 자꾸 만지려 들면 흰 백지는 반드시 더러워지게 마련이다. 아이를 자신의 뜻에 따라서만 키우려고 하는 것은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아이의 의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키운다면 그것은 아이를 하나의 소유물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아이도 엄연한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언제나 다정한 친구나 조언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는 또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만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데, 자신들의 능력으로 부족해서 도움을 청하면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을 보면 잘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으면 그만큼 고민이 많은 법이다.
나는 아이들을 너무나도 쉽게 키웠다.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 무슨 고민이 있을 까닭이 없다. 나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무능하기 짝이 없지만 양심이 명하는 바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진리와 정의에 입각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말이 아닌 행동,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대학에서 한의학을 전공하는 딸 선하가 모처럼 집에 다니러 왔다. 방학인데도 제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거의 한 달만에 집에 온 것이다. 공부할 시간을 쪼개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고생하는 선하를 볼 때마다 안쓰럽기 한량없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내 자신이 그저 원망스럽고 미안할 뿐이다.
말단공무원인 아내의 박봉으로 나까지 대학생 두 명과, 고등학생 한 명의 뒷바라지를 하려니 살림은 늘 팍팍하기만 하다. 내가 교단에서 해직된 뒤 지금까지 무려 12년동안이나 아내는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살림을 이끌어왔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용돈이나 제대로 주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 사정을 아는 선하는 대학에 진학하더니 일찌감치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여 생활비를 보탰다. 뿐만 아니라 제 엄마와 동생에게 가끔 옷을 사주기도 한다. 이번에도 제 엄마에게 백화점에서 샀다는 여름옷을 선물하였다. 참 대견한 녀석이다.
지난해 여름방학을 맞아 아내와 선하를 데리고 동해안으로 여행을 갔을 때다. 태백산 화방재를 넘을 때 차안에서 선하가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제가 아빠 딸이 아니고 줏어온 아이인 줄 알았어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랬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제가 어떤 잘못을 해도 아빠는 한번도 저를 꾸짖거나 야단을 치지않으셨잖아요. 그래서 그 때는 어린 마음에, '진짜 아빠라면 어쩜 그렇게 나에게 무관심할 수가 있을까? 아무래도 우리 아빠가 아니야.'라고까지 생각했었던 적이 있어요."
나는 지금까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생각을 설명해줄 필요를 느꼈다.
"아, 그 얘기로구나. 내 말을 들어봐라. 내가 볼 때 너는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였다. 그리고 학교생활도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잘하고 있었고. 네가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면 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를 기다렸단다. 그러면 곧 너는 너의 문제를 스스로 잘 해결하더구나. 너는 잔소리가 필요없는 아이였지. 비록 표현은 하지않았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더 관심깊게 너의 성장을 지켜보았단다. 너는 네 엄마와 아빠의 기대이상으로 잘 자라주었어."
선하는 이해했다. 그것이 딸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하얀 종이와도 같은 존재이다. 어른들의 때가 묻은 손으로 자꾸 만지려 들면 흰 백지는 반드시 더러워지게 마련이다. 아이를 자신의 뜻에 따라서만 키우려고 하는 것은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아이의 의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키운다면 그것은 아이를 하나의 소유물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아이도 엄연한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언제나 다정한 친구나 조언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는 또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만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데, 자신들의 능력으로 부족해서 도움을 청하면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을 보면 잘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으면 그만큼 고민이 많은 법이다.
나는 아이들을 너무나도 쉽게 키웠다.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 무슨 고민이 있을 까닭이 없다. 나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무능하기 짝이 없지만 양심이 명하는 바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진리와 정의에 입각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말이 아닌 행동,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시절 부하를 교도소로 보낸 가슴아픈 이야기 (0) | 2004.12.04 |
---|---|
우리집 비장의 요리 '닭찢어발겨 김치두루치기' (0) | 2004.12.03 |
10년 동안 길러온 수염을 자르다 (0) | 2004.11.18 |
어느 방아대와의 인연 (0) | 2004.09.30 |
세상을 거꾸로 살아보니 (1) | 2004.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