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하고도 연수동에 가면 '각기우동'이라는 간판이 붙은 우동집이 있다. 제법 큰 느티나무 몇 그루가 둘러싸고 있는 '시인의 공원' 바로 옆에 있는 집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탁자가 네 개 달랑 놓인 그야말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예술인들을 비롯해서 명사들이 드나드는 충주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각기우동'집의 벽이나 천장은 손님들이 쓴 글들로 빈틈이 없다. 심지어는 화장실 벽에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연도 가지가지요, 형식도 가지가지다. 유명한 사람의 글이 있는가 하면 이름없는 사람들의 글도 나란히 붙어 있다. 어른의 글도 있고 어린아이의 글도 있다. 행복한 사연이 있는가 하면 슬프기 그지없는 사연도 있다.
'각기우동'집에 갈 때는 우동만을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분위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란 다름아닌 내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데서 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 이집에는 있다. 단돈 3천원짜리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켜놓고 새벽 세 시까지 죽치고 앉아 있어도 주인은 눈치 한 번 주는 법이 없다. 오히려 안주삼아 먹으라고 우동국물까지 갖다 준다. 나같은 빈털털이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인 집이다.
이 집 주인인 우동을 끓이는 아줌마 강순희 씨가 이번에 '행복한 우동가게'(하늘연못출판사)라는 소설책을 냈다. 소설의 소재는 우동집에 들른 손님들과 그들이 써서 벽에 붙여 놓은 사연들이다. 나는 이 소설을 무려 세 번이나 읽었다. 그만큼 나는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소설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각기우동'집에 드나드는 온갖 사람들의 사연을 강순희 씨는 구슬을 꿰듯 잘 엮어 놓았다.
'행복한 각기우동'은 자전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손에 물도 안 묻히고 살아왔던 그녀는 남편의 사업실패로 하루아침에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우동가게다. 그 때의 절망감과 낙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심경이 이 소설의 구석구석에 잘 드러나 있다.
술취한 손님에게 시달리거나 상실감에 젖을 때마다 그녀는 우동집 앞 시인의 공원을 말없이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를 찾는다. 느티나무는 그런 그녀에게 많은 위로를 준다. 또 하소연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훌륭한 대화상대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느티나무는 이 소설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행복한 우동가게'는 옴니버스 소설형식을 띠고 있다. 사연 하나하나를 우동가락을 뽑아내듯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야기 차례도 '한 가락', '두 가락'으로 마치 우동가락을 세듯이 붙여 놓았다. 이 소설은 총 마흔한 가락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 가락은 모두 독립된 이야기다. 그러나 각각의 이야기가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이 소설에는 유명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이름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나온다. 각 가락의 이야기에서 이름없는 사람들은 또한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도 구구절절한 사연을 하나씩은 가슴에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행복한 우동가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점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행복한 우동가게'는 픽션 소설을 뛰어넘는 논픽션 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필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주인공과 우동가게를 드나든 손님들의 사연을 마치 우동가락을 뽑아내듯이 쓴 이 소설은 '우동소설'이라 이름붙일 수 있을 듯 하다. 이제 우리 문학사에는 '우동소설'이라는 장르가 하나 더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 못지 않은 중요한 인물이 있다. 주인공과 함께 우동을 끓이는 '미범'이라는 여인이다. '열 가락'째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미범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범은 자신의 목욕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본 15년 연상의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미범은 바로 현대판 '나무꾼과 선녀'의 주인공이다. '각기우동'집에 가면 언제든지 미범이라는 선녀를 만날 수 있다.
'행복한 우동가게'에는 내가 쓴 글도 하나 등장한다. '서른세 가락'째 '행주치마'라는 제목의 이야기에서다.
어떤 놈이 퍼드러지게 편하면
어떤 년은 행주치마 움켜쥐고
눈물 펑펑 쏟는다.
이 글은 내가 전교조 활동과 관련하여 학교에서 해직이 되고, 더군다나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뒤 그 때까지 13년간 말단공무원인 아내의 뒷바라지로 살아온 나의 착잡한 심경을 각기우동집 막걸리 한 잔에 실어서 써 본 것이다. 그런데 우동가게 앞 골목에서 해장국집을 하는 아줌마가 내 글을 보고는 꼭 자기자신에게 해당하는 글이라고 하면서 떼어버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아줌마는 힘들게 해장국집을 해서 무능한 남편에게 다방을 차려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다방아가씨와 눈이 맞아 제주도로 도망을 쳤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도박에 손을 대 엄청난 빚까지 떠넘겨 주었다. 이렇게 해서 해장국집 아줌마는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에는 시커멓게 멍이 들어버렸다.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의 심금을 울리게 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처럼 '행복한 우동가게'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논픽션 소설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연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나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그 이야기들은 가슴속을 잔잔하게 파고드는 감동을 준다.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2003년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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