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12일, 남아공에 온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일요일을 맞아 오전에는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Pilanesburg National Park)에서 사파리(Safari)를 하고, 오후에는 썬 시티(Sun City)를 돌아보려고 한다. 썬 시티와 산 하나를 두고 붙어 있는 필라네스 국립공원은 조벅(Jo'burg, 요하네스버그의 별칭)의 북서쪽에 있으며, 자동차로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부모님은 매제가 운전하는 차, 조카들과 나는 정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하늘은 맑고 날씨는 화창하다.
*썬 시티로 가는 길
조벅 교외로 나가자 사각형의 작은 양철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한국판 달동네가 나타난다. 저렇게 작은 집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조벅 교외에는 이곳 말고도 이런 달동네가 많이 있다. 조벅 교외의 달동네는 남아공의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벅을 벗어나자 광활한 대평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평원 한가운데로 자로 잰 듯 똑바르게 뚫린 직선도로가 가로질러 간다. 도로가 직선으로 잘 뚫려서 그런지 왕복 2차선인데도 제한속도는 100~120km/hr나 된다. 한국에서 2차선 도로의 제한속도가 대개 60km/hr인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난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은 끝도 보이지 않는다. 아프리카 대륙에 와서 비로소 처음으로 지평선다운 지평선을 보고 있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지평선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남아공의 계절은 아직 겨울의 막바지라 대평원의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삭막한 대평원을 벗어나자 오렌지 농장지대가 나타난다. 농장에는 샛노란 오렌지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노새가 모는 마차
작은 마을 앞을 지나가다가 한국에서는 196,7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노새가 끄는 마차를 만났다. 마차에는 땔감이 실려 있고, 그 위에 마부가 올라탄 채 노새들을 몰고 있다. 이런 풍경은 한국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지라 마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는다.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 정문
2시간 정도 달린 끝에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그 자체가 방대한 자연동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필라네스 국립공원은 남아공에서 네번째로 큰 국립공원으로 사파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사파리'는 원래 '길을 떠나다'라는 뜻의 '싸파르'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제 라이온 파크에서 했던 사파리가 맛보기라면 오늘은 드디어 본격적인 사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차가 도로를 벗어나서도 안 되고, 차에서 사람이 내려서도 안 된다. 전자는 인간으로부터 동물을, 후자는 맹수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차에서 내려야 할 때는 사자나 표범같은 맹수들이 달려드는 것에 대비해서 반드시 차문을 열어놓은 채 재빨리 올라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한편 차량들이 빈번하게 오고가는 도로 근처에는 야생동물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동물들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망원경을 지참하는 것이 좋다.
*얼룩말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뒤 드디어 필라네스 국립공원 안 야생의 세계로 들어간다. 사파리 코스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모든 코스를 다 돌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때로는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에 맞춰서 적당한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길을 건너가고 있는 여러 마리의 영양 무리가 보인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았던 듯도 하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영양의 종류가 많고 또 비슷비슷해서 나같은 문외한은 그 이름을 일일이 구별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필라네스 국립공원은 고원지대에 자리잡고 있어서 키가 큰 나무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관목과 초본식물들이 주로 많이 자라고 있다. 관목들은 대부분 키가 작은 데다가 잎도 거의 다 떨어진 상태라 야생의 동물들을 관찰하기에는 비교적 좋은 조건이다. 관목 숲에 몸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를 동물들을 발견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곳곳에 '절대로 차에서 내리지 말 것!'이라고 쓴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관목 숲이 계속 이어진다. 그때 온몸에 멋진 무늬가 새겨진 얼룩말 세 마리가 바로 옆을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동물들이 이렇게 알맞은 간격으로 나타나 주면 좋겠다. 오늘은 왠지 내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공원 안의 모든 동물들에게 이런 나의 바램을 바람편에 실어 보낸다.
*하마
공원 안으로 좀더 깊숙이 들어가자 호수가 나타난다. 마침 물밖으로 나와서 놀고 있는 하마들이 눈에 들어온다. 좀더 가까운 곳에서 하마를 관찰하고 싶었으나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다. 하마는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사나운 면이 있어서 가까이 있을 때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기대했던 악어는 보이지 않는다.
*사슴영양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한 무리의 사슴영양을 만난다. 사슴영양의 눈은 너무 순하디 순하게 생겼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종일 사파리를 해도 동물을 거의 보지 못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오늘은 알맞은 간격으로 동물들이 나타나 주니 운이 좋으려나 보다. 필라네스 국립공원의 동물들은 내가 머언 한국에서 온 동물애호가인 줄 아는 것일까!
*혹멧돼지
혹멧돼지도 만났다. 혹멧돼지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왠 불청객인가?' 하는 표정이다. 사실 야생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불청객이 아니겠는가! 혹멧돼지 수컷의 얼굴에는 두 쌍의 혹이 달려 있다. 그래서 혹멧돼지라고 부른다. 엄니는 암수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혹멧돼지는 한국에서 서식하는 멧돼지와 비교하면 덩치가 좀 작은 편이다.
필라네스 국립공원은 고원지대인데다가 강수량도 부족해서 기후가 매우 건조하다. 오랫동안 가뭄이 들었는지 계곡은 마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가끔 바람이라도 불면 바싹 마른 땅에서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난다.
*코끼리
관목이 우거진 숲에서 코끼리를 발견했다. 덩치가 엄청나게 큰 코끼리 부부가 아기 코끼리를 데리고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코끼리는 매우 위험해서 절대로 차에서 내리면 안 된다.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인해 난폭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끼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판단되면 어미 코끼리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차를 부숴버릴 수도 있다.
필라네스 국립공원에서는 좁은 차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야생동물들이 훨씬 자유롭다. 이곳은 야생동물들의 땅이고 그들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어디든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코끼리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들소떼
하마가 살고 있는 호수에서 산 하나를 넘어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더 큰 호수가 나타난다. 호숫가 드넓은 초원지대에는 들소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초원지대 여기저기에는 키만큼 자란 풀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곳이 있다. 초식동물이 머무는 곳에는 반드시 사자와 같은 맹수들이 있기 마련이다. 저 풀숲 어딘가에는 들소사냥을 나온 사자들의 무리가 몸을 숨기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분(Baboon) 무리도 만났다. 비비(??)라고도 부르는 개코원숭이다. 풀밭에 앉아서 놀고 있는 새끼 바분을 부모로 보이는 바분 부부가 지켜보고 있다. 새끼 바분이 귀엽고 앙징맞다. 바분은 머리가 크고, 큰 볼주머니가 있으며, 개와 같은 길고 나출된 주둥이의 끝에 콧구멍이 있다. 이들은 지능이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교육도 가능하다고 한다.
*기린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의 키다리 기린 무리를 만났다. 기린은 대개 두 마리가 짝을 이루어서 함께 다니는데, 아마도 이들은 부부가 아닐까 생각된다. 기린을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키가 매우 크다는 느낌이다.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에서의 사파리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난생 처음 접한 야생의 세계...... 살아 있는 야생의 세계를 직접 보고 나니 저으기 마음이 놓인다. 비록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만큼이나마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인간들이 저지른 자연의 파괴와 환경의 오염으로 이미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멸종되었거나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야생동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 다음은 인간들의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
2007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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