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계명산을 올랐습니다. 길가에는 찔레꽃과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더군요. 달콤한 꽃향기가 얼마나 진하던지 취할 지경이었답니다. 아카시아는 원래 이름이 '아카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카시보다는 아카시아라는 이름이 어감이 더 좋아서 저는 앞으로도 아카시아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저의 마음이니까요.
산기슭은 온통 5월의 신록으로 더할나위 없이 푸르더군요. 마음마저 초록색으로 물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간혹 큰꽃으아리도 보이더군요. 철쭉꽃은 이미 다 져서 꽃잎이 지고 있었답니다. 진달래와 철쭉을 다시 보려면 내년 봄을 기다려야겠지요. 연분홍색의 백선꽃과 하얀색의 둥글레꽃은 이제 한창 피어나고 있었답니다.
산기슭 숲속에서는 뻐꾹새와 소쩍새, 꾀꼬리, 그리고 이름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지요. 아마도 제 짝을 찾느라고 숲속이 다 온통 시끄럽게 우짖는 것 같았답니다. 날이 좀 더워서 이마에서는 연신 구슬같은 땀이 흘러내리는데도 우거진 숲의 청청한 기운에 동화되었는지 가슴은 도리어 시원하더군요.
2시간쯤 걸려서 계명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에는 빠알간 병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지요. 병꽃은 우리나라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화랍니다. 정상에서 잠시 쉬면서 준비해간 방울토마토를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한가로이 흘러가고 있더군요. 시야가 좋지않아서 월악산 영봉은 희미하게 그림자처럼 보이더군요. 함께 산을 오른 건국대 의대 정두용 박사님과 우리네 인생살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박사님의 제의로 마즈막재로 내려가서 다시 금봉산을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마즈막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똑바로 난 길이어서 좀 지루한 느낌을 주지요. 길가에는 분홍색의 산딸기꽃이 활짝 피어 있더군요. 제가 2년전 이맘 때는 백두대간을 혼자서 종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배가 고프면 산딸기로 배를 채우던 기억이 나더군요.
마즈막재로 내려가는 데에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봉산을 오를 때는 정말이지 몹시 힘들었답니다. 점심을 먹은 것이 다 내려가 배가 고파서 그랬던가 봅니다. 제가 힘든 것을 눈치채셨는지 정박사님이 쵸쿄렛을 몇 개 주시더군요. 쵸코렛을 먹자 기운이 다시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식의 귀중함은 배가 고파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길가에 난 찔레순과 수영꽃대를 꺾어서 먹었습니다. 어릴 때 많이 먹던 것이거든요. 찔레순은 약간 떫은 맛이 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먹을만 하답니다. 수영은 시큼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나지요. 산성에 올라서는 두릅순도 꺾어서 맛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쓰고 떫어서 날것으로 먹기는 곤란했지요.
금봉산 정상에 오르니 해가 서산에 한뼘쯤 남았더군요. 석양이 참 아름다왔습니다. 바알간 태양이 서녘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지요. 가끔 금봉산을 오른 사람들이 '야호!' 소리를 지르더군요. 산에서는 되도록 소리를 질러서는 안된답니다. 왜냐하면 짐승이나 새들이 놀랄 수가 있거든요. 어쩌면 나무나 풀들도 놀랄지 모르고요.
금봉산을 내려오다가 금봉약수에 들러 마른 목을 축였습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요. 약수터에서 아는 목사님을 참 오래간만에 만났습니다. 반갑게 손을 맞잡고 그간의 안부를 서로에게 전했답니다. 충주시내를 내려다보니 벌써 네온사인불빛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더군요. 네온사인이 거리를 밝히면 도시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한답니다. 이상야릇한 유혹의 분위기를 띈다고나 할까요.
산을 다 내려와 논들이 많은 길을 걷노라니 개구리들이 합창을 하더군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니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 때의 추억이 가슴 저편에서 떠올랐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었지요. 별을 볼 때마다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 밤'이라는 시가 생각나곤 합니다.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짧은 생을 살다간 윤동주 시인은 그래서 더 애틋하답니다.
5월이 다 가기 전에 초록빛 바다로 물든 봄산에 한번 올라 보세요. 산을 오르다 보면 우리가 무심코 잊어버리고 살던 것들을 새삼스레 발견하게 된답니다.
200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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