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공화국(Republic of Uganda)은 적도에 위치한 동아프리카 내륙국으로 남동쪽으로 빅토리아 호(Victoria Lake)에 면해 있으며, 남쪽은 탄자니아와 르완다, 서쪽은 콩고민주공화국, 북쪽은 수단, 동쪽은 케냐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빅토리아 호는 북아메리카의 슈피리어 호(Lake Superior)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이다.
우간다 지도
우간다의 국기는 1962년 10월 9일에 제정되었다. 검정색, 노란색, 빨간색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된 여섯 개의 가로 줄무늬 바탕 가운데에 그려진 하얀색 원 안에는 우간다의 국조인 잿빛왕관두루미(grey crowned crane, Balearica regulorum)가 그려져 있다. 검정색은 아프리카인, 노란색은 빛나는 태양, 빨간색은 아프리카의 형제애를 의미한다.
우간다 국기
잿빛왕관두루미(grey crowned crane, Balearica regulorum)
우간다의 수도는 캄팔라(Kampala)이다. 인구는 2018년 7월 기준 4,085만 명이다. 면적은 241,038㎢로 남한의 2.4배이다. 우간다에는 34개 정도의 종족이 있다. 민족 구성은 반투족(Bantu, 바간다족 포함) 17%, 바냐콜레족(Banyakole) 9.5%, 바소가족(Basoga) 8.4%, 바키가족(Bakiga) 6.9%, 테소족(Teso) 6.4%, 랑기족(Langi) 6.1%, 아촐리족(Acholi) 4.7% 등이다.
우간다 수도 캄팔라(Kampala)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반투어계 종족은 주로 남부지역에 분포한다. 반투어계 종족은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반투족을 비롯해서, 바간다족, 바소가족, 은콜레족(Nkole), 바키가족, 기수족(Gisu), 후투족(Hutu), 니오로족(Nyoro) 등이 있다. 나일제어계나 나일-함어계 종족들은 주로 북부 지역에 분포하며, 이들 가운데 규모가 큰 종족은 아촐리족, 랑기족, 테소족, 카라모종족(Karamojong) 등이다. 소수지만 영향력 있는 아시아인 사회가 존재한다.
우간다는 1995년 헌법에 영어를 공용어로 규정했으며, 2005년의 개정헌법에는 스와힐리어(Swahili)를 제2의 공식어로 규정하였다. 루간다어(Luganda)도 일상언어로 사용된다. 우간다는 영연방 회원국이다.
우간다의 종교 분포는 로마 카톨릭 41.9%, 성공회 42%, 이슬람 12.1% 등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간다인들은 전통신앙을 유지하거나, 전통신앙에 기독교 또는 이슬람교를 혼합한 신앙 형태를 가지고 있다. 우간다는 1980~1990년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만연으로 심각한 보건상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우간다의 정부 형태는 대통령 중심제이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입법권은 단원제의 의회에 있다. 의원 정원은 451석이며, 임기는 7년이다. 사법부는 최고법원과 상소법원, 고등법원, 그외 다양한 하급법원들로 구성된다. 법관은 입법부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쿠미 대학교(Kumi University)
우간다는 정부가 교육제도 전반을 관할한다. 우간다에는 마케레레 대학교(Makerere University), 키암보고 대학교(Kyambogo University), 캄팔라 대학교(Kampala University), 아가 칸 대학교(Aga Khan University), 쿠미 대학교(Kumi University) 등 14개 대학이 있다. 마케레레 대학에는 의과대학을 비롯해서 예술, 사회사업, 과학, 법학, 공학, 수의학, 농학, 교육학 등의 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쿠미 대학교는 한국인이 설립한 대학이다.
우간다는 국내외 언론에 대해 많은 규제를 하고 있어 수도 캄팔라에서 일간지와 정기간행물들이 발행될 뿐 언론의 자유가 거의 없는 나라다. 주요 방송사인 라디오 우간다와 우간다 텔레비전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우간다의 GDP는 2018년 기준 274억 달러, 1인당 GDP는 643달러다. 교역 규모는 2018년 기준 111억 달러였다. 수출품은 주로 커피, 시멘트, 면화 등이고, 수출액은 43억 달러다. 수입품은 주로 기계장비나 자동차이고, 수입액은 68억 달러다. 화폐단위는 우간다 실링(Uganda Shilling, UGX)이다. 2020년 1월 기준 미화 1달러는 3,684UGX였다. 우간다는 지질 탐사 결과 65억 배럴의 원유 매장량이 확인되었다. 우간다는 2022년 이후 원유생산을 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간다의 외교정책은 중도중립의 비동맹 중립노선을 표방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문제에 있어서는 민족해방노선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반식민주의 표방에 따라 중국, 쿠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리비아, 알제리, 탄자니아 등 사회주의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우간다는 그동안 소원한 관계에 있던 자이르, 케냐와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고 있다.
한국과 우간다는 1963년 3월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이듬해 상주공관을 개설했다. 1983년 12월에는 재우간다 한인회가 발족하였다. 그러나 1984년 9월 오보테 정권이 한국 언론의 비우호적인 보도를 이유로 주우간다 대사를 추방한 이래 2년 동안 대사가 공석이었다. 그후 무세베니 정부 수립 후 1986년 10월 한국 대사가 신임장을 제정함으로써 양국 관계는 다시 정상화되었다. 우간다는 주일본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1986년 11월 한국은 우간다와 의료협력협정을 체결하고 의료단을 파견한 바 있다. 우간다는 비동맹 외교노선에 따라 외세의 간섭없는 남-북한 당사자 간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을 지지하고 있으며, 주한 미군의 주둔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우간다에는 545명의 한국인이 체류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 오보테 정권을 군사적으로 지원해 왔으며, NRA군의 대 오보테 항쟁시 북한의 군사요원이 NRA와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북한과 우간다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북한-우간다 간 군사협력, NRA 핵심 청년장교들과 NRC 주요 인사들의 사회주의적 성향 등은 북한의 우간다 진출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북한을 1988년과 1990년, 1992년 등 3차례나 방문하기도 하였다. 북한은 1963년 3월 우간다와 국교를 수립했으나 1964년 한때 단교했다가 1972년 국교를 재개하고 상주공관을 개설했다. 그러나 북한은 1994년 10월 다시 공관을 폐쇄했다가 2011년 12월 상주공관을 개설했다. 우간다는 주중국대사가 북한대사를 겸임하고 있다.
비룽가 산맥(Virunga Mountains) 무하부라 산(Mount Muhavura)
평균 해발 1000~12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우간다는 산과 계곡, 호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서쪽 경계는 화산지대인 비룽가 산맥(Virunga Mountains)과 루웬조리 산맥(Rwenzori Mountains),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갈라져 나온 서부지구대로 이루어져 있다. 앨버트 호(Lake Albert)와 앨버트 나일 강(Albert Nile River)은 서부지구대에 속한다.
루웬조리 산맥(Rwenzori Mountains) 마르게리타 봉(Margherita Peak0
비룽가 산맥의 무하부라 산(Mount Muhavura, 4126m)과 루웬조리 산맥의 최고봉인 마르게리타 봉(Margherita Peak, 5109m) 정상부에는 만년설이 있다. 동쪽 경계는 화산지대로 가장 높은 산은 음발레(Mbale) 동쪽에 있는 엘곤 산(Mount Elgon, 4321m)이다.
우간다 빅토리아 호(Victoria Lake)
우간다에는 빅토리아 호를 비롯해서 앨버트 호, 키오가 호(Kyoga Lake), 에드워드 호(Lake Edward, 이디아민다다 호), 조지아 호(Lake Georgia), 비시나 호(Lake Bisina) 호 등의 거대한 호수들이 있다. 우간다 남동부 지역은 69,485㎢에 이르는 빅토리아 호의 일부가 차지하고 있다. 빅토리아 호의 북서부에서 발원한 빅토리아 나일 강은 키오가 호를 지나 앨버트 호까지 이어지고, 다시 앨버트 나일 강으로 이어진다.
머치슨 폭포 국립공원(Murchison Falls National Park)
우간다는 적도에 걸쳐 있지만 고원지대와 큰 호수들에 면한 지리적 특성으로 온화한 아열대 기후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20~22℃이며, 남부보다 북부지역의 기온이 좀더 높다. 빅토리아 호 일대의 연평균 강수량은 1500㎜, 북동부 국경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500㎜ 미만이다. 중북부는 숲이 우거진 사바나 지대이고, 농지화된 남부에는 군데군데 숲과 목초지(elephant grass)가 있다. 우간다에는 7천2백 평방 킬로미터가 넘는 국립공원과 금렵구가 있는데, 그중 머치슨 폭포 국립공원(Murchison Falls National Park)이 가장 크다. 우간다에는 사자, 코뿔소, 표범, 코끼리, 하마, 물소, 말(콥종), 토피영양, 원숭이 등 많은 종류의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머치슨 폭포 국립공원(Murchison Falls National Park)의 야생동물들
우간다 최초의 거주민은 반투어계 종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간다는 14, 15세기경 오늘날의 국민을 이루고 있는 부족들이 이주해왔다. 그후 17세기말 나일-햄어계 종족이 우간다 북부로 이동해왔으며, 18세기에는 남부까지 이주해왔다. 1840년대 아랍인은 상아와 노예무역을 위해 이 지역에 들어왔다. 1862년 영국의 존 해닝 스피크(John Hanning Speke, 1827~1864)와 제임스 오거스터스 그랜트(James Augustus Grant, 1827~1892)는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부간다(Buganda) 왕국을 횡단했다. 카바카(Kabaka, 통치자) 무테사(Mutesa Walugembe Mukaabya, 1838~1884) 1세는 1877년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이 부간다 왕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허용했다.
무테사 1세
1884년 무테사가 죽자 왕위를 계승한 음왕가(Mwanga, 1866~1901)는 선대와는 달리 기독교도들을 박해하였다. 그후 아랍인들이 카바카 음왕가와 기독교 선교사들을 축출하고 왕국을 지배했다. 기독교도인 바간다족(Baganda, 간다족)의 도움으로 음왕가는 왕국을 재건했지만, 다시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889년 독일인 카를 페터스(Karl Peters, 1856~1918)는 음왕가와 보호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1890년 영국과 독일이 남위 1°선 이북 지역은 영국의 영향권 하에 둔다는 내용의 조약이 체결되면서 무효화되었다.
음왕가
같은 해 영국 동아프리카회사는 영국 정부를 대신해서 이 지역의 관리를 맡았다. F.D. 루가드(Frederick John Dealtry Lugard Baron Lugard, 1858~1945)는 부간다와 음왕가를 동아프리카회사의 관리하에 둔다는 조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서부의 은콜레(Ankole) 왕국, 토로(Toro) 왕국과도 보호조약을 맺었다. 1894년 부간다는 공식적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1896년에는 부뇨로(Bunyoro) 왕국과 부소가(Busoga) 왕국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890년대 후반 영국의 보호령은 빅토리아 나일 강(Victoria Nile River) 북쪽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1914년 남서부 국경에서 몇 차례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지만, 제1차 세계대전 기간중 우간다는 거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우간다는 영국으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2차대전이 종료된 1945년 최초로 아프리카인이 입법위원회에 진출하였다. 1952년 이그나티우스 무사지(Ignatius Musazi, 1905~1990)가 범국민적인 우간다국민의회(UNC)를 창설하였다. 이후 아프리카인의 정치참여가 증가하면서 1955년에는 각료체제가 도입되었고, 1956년에는 민주당(DP)이 창당되었다. 1960년 밀턴 오보테(Milton Obote, 1924~2005)가 우간다인민의회(UPC)를 창당하면서로 UNC는 분열되었다.
1961년 9월 우간다 지도자들은 영국 런던에서 헌법제정의회를 개최하고 내각책임제 헌법을 채택하여 첫 총선을 실시한 결과 민주당이 승리하여 바간다족 출신 베네딕토 키와누카(Benedicto Kiwanuka, 1922~1972)가 초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1962년 4월 실시된 총선에서는 랑고족(Lango) 야당 지도자 밀턴 오보테가 승리하여 연립정부 수상으로 취임하였고, 6월에 독립의회를 개원하여 연방제 헌법을 채택했다.
무테사 2세
종족과 지역에 따라 정치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우간다는 1962년 10월 9일 드디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963년 부간다의 통치자 무테사(Sir Edward Frederick William David Walugembe Mutebi Luwangula Mutesa, 1924~1969) 2세가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무테사 2세는 밀턴 오보테를 총리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 다양한 종족 대표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다. 1966년 5월 이디 아민(Idi Amin Dada Oumee, 1928~2003)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자 오보테는 연방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제 헌법을 채택했다. 무테사를 축출한 오보테는 1967년 새 헌법을 공포하고 스스로 대통령직을 차지한 뒤 모든 왕국을 소멸시켰다. 1970년에는 언론의 자유가 허용되어 많은 일간지와 주간지가 발행되기도 했다.
밀턴 오보테
1971년 1월 이디 아민은 다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공포정치를 자행하던 오보테를 축출하고 정권을 잡았다. 오보테는 탄자니아로 망명하였다. 이디 아민은 오보테보다 더 심한 동포정치를 자행했다. 그는 1972년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던 아시아인들을 무차별 추방하면서 우간다의 경제파탄을 초래했다. 1973년에는 신문 발행을 금지하는 정부 포고령이 발표되면서 많은 언론인들이 처형되거나 구금되었다. 이디 아민은 또 아촐리족과 랑기족을 비롯한 여러 종족들을 박해함으로써 30만 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등 그의 집권기간 내내 폭정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디 아민
1978년 이디 아민은 심각한 우간다 내부 문제를 은폐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탄자니아를 침략했다. 그러나 1979년 오보테 등 반 이디 아민 세력인 우간다민족해방전선(Uganda National Liberation Front, UNLF)은 탄자니아군의 지원을 받아 우간다를 침략해 이디 아민을 축출했다. 이후 우간다는 이디 아민 정권 타도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준 탄자니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79년 4월 수도 캄팔라에 입성하여 이디 아민을 몰아낸 우간다민족해방전선(UNLF)은 우간다에 연립정부를 수립하고 룰레(Lule)와 비나이사(Binaisa) 두 명을 과도정부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하지만 경제정책에 대한 의견대립과 종족 간의 알력으로 연립정부는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1980년 12월 실시된 총선에서 우간다인민회의(UPC, Uganda People's Congress)가 1당을 차지했으며, 탄자니아로 쫓겨갔던 밀턴 오보테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오보테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정권유지에만 급급해서 정적과 반대파 10만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티토 오켈로
이디 아민 축출의 주역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 1944~)는 오보테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반정부 게릴라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1983년 무세베니와 오보테 간의 내전으로 인해 20만 명의 우간다인들이 르완다,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등지로 피난하기도 했다. 여기에 우간다군 내부의 아촐리족과 랑고족 출신 사이의 갈등은 정국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1985년 군사 쿠데타로 오보테를 몰아낸 아촐리족 출신의 티토 오켈로(Tito Okello, 1914~1996)는 군사평의회(Military Council)를 설치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오켈로는 반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20여 년에 이르는 내전이 종식되는 듯 했다.
요웨리 무세베니
1986년 1월 국민저항운동(National Resi stance Movement, NRM) 게릴라들이 오켈로 정권을 전복시키자 NRM 의장 무세베니가 제10대 대통령이 되었다. 1986년 3월 무세베니는 국가 최고 통치기구와 입법기구로서 국가저항위원회(National Resistance Committee, NRC)를 설치하고, 국민저항운동(NRM)을 정당으로 전환하여 재야 정치단체들과 반 오보테 정권 교전단체들이 참여한 내각을 구성하였다.
1995년 우간다와 수단은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두 나라가 외교를 단절한이유는 수단 정부가 우간다 북부반군 LRA(Lord's Resistance Army)을 지원하고, 우간다 정부가 수단 남부반군 SPLA(Sudan People's Liberation Army)을 지원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1995년 10월 우간다 제헌의회는 향후 5년 간 정당활동을 금지하는 신헌법을 채택하여 사실상 집권 NRM의 선거운동만을 허용하는 무세베니의 일당 독재체제를 확립하였다. 무세베니는 1996년 정당이 없는 상태에서 실시된 대선과 총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친서방 정책을 표방하고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면서 수출산업을 강화했다. 또 아시아인 등 이디 아민 집권시 추방되거나 우간다를 떠났던 사람들에게 토지와 재산을 돌려주었다.
오랫동안 정치적, 사회적 불안에 시달려온 우간다 국민들은 무세베니 정권의 평화회복과 치안유지 능력을 대체로 지지하였으나, 우간다 최대종족인 바간다족 지도자와 정치지도자들은 장기간 지속된 NRM 체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기존의 민주당(DP, Domocratic Party), 보수당(CP, Conservative Party), 우간다 인민회의(UPC, Uganda People's Congress) 등의 정치인들도 정당의 정치활동과 다당제의 허용 등 민주주의 실시를 요구하였다. 또 유럽과 미국 등 원조 제공국들은 우간다 민주화와 인권의 개선을 경제원조와 연계시키고 있어 NRM 체제는 대내외적인 압력을 받아왔다.
1999년 11월 탄자니아의 아루샤(Arusha)에서 우간다와 케냐, 탄자니아 정상은 동부아프리카공동체(EAC) 창설 협약에 서명했다. 2000년 6월 3일~7월 2일까지 다당제 채택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우간다 국민들은 무세베니가 주도하는 NRM 무정당주의를 지지함으로써 다당제 실시는 연기되었다. 2000년 7월 7일 동부아프리카공동체(EAC) 창설 협약 발효에 따라 EAC가 정식 발족되었다. EAC는 회원국 내 자유이동을 제한하는 규정을 철폐하기로 합의하는 등 협력 및 경제통합체제를 점차 강화하기로 했다.
키자 베시그예
2001년 3월 12일 실시된 대선에서 무세베니는 약 70%의 득표로 야당 후보 키자 베시그예(Kizza Besigye, 1956~)를 물리치고 5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하였다. 2001년 6월 26일 실시된 총선에서는 NRM이 직접 선출 의석 214석 가운데 170석 이상을 차지하였다. 거기다 여성과 노동자, 청년 등을 대표하는 의원까지 합하면 총 282석 중 230석 이상을 확보함으로써 NRM은 국회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러나 다당제를 주장하는 세력도 종래의 14석에서 42석을 확보하면서 다당제 지지세력 또한 강화되었다.
2002년 1월 무세베니는 다당제 실시를 위한 검토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무세베니 정권하의 다당제 지지자는 에리야 카테가야(Eriya Kategaya, 1945~) 제1부총리겸 내무장관, 제임스 와파카불로(James Wapakhabulo, 1945~2004) 제3부총리 겸 외무장관 등이었다. 와파카불로 부총리는 일찌감치 2006년 대선에서 입후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었다. 차기 대선과 관련 무세베니의 정치적 동지이자 국민의 존경을 받고있는 카테가야 부총리는 후계자의 조속한 선정을 무세베니에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무세베니는 후계체제 논의 자체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집권연장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5월 24일 무세베니는 카즈브웨(Dr. Kazbwe) 부통령과 카테가야 제1부총리를 해임하고 길버트 부케냐(Gilbert Bukenya, 1949~)를 부통령에 임명하였다. 부케냐는 무세베니의 3선 출마를 허용하는 헌법개정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무세베니의 집권연장 기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2005년 7월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3선이 허용되고 다당제가 채택되었다. 2006년 2월 실시된 대선에서 무세베니는 3선에 성공하였으며, NRM도 국회 과반수를 확보하였다.
2010년 7월 케냐 테러의 배후로 밝혀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샤바브는 우간다 수도 캄팔라 공공장소에서 테러를 자행해 74명이 사망했다. 우간다가 자국군을 소말리아 평화유지군으로 파병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2011년 2월 15일 폭력 사태가 빚어져 사망자가 나온 가운데 실시된 대선에서 무세베니는 야당 유력후보 키자 베시그예를 물리치고 4선에 성공했다. 2016년 우간다 대선을 앞두고 NRM 집행위는 무세베니를 단일 후보로 지지하여 대선 출마를 계획중이던 아마마 음바바지(Amama Mbabazi, 1949~) 총리의 출마를 무산시켰다. 2월 18일 실시된 대선과 총선에서 NRM은 압승을 거두고, 무세베니는 5선에 성공했다.
야당에서는 불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독립적인 선거 관리 기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경찰은 야당 후보 키자 베시그예를 가택연금시켰다. 불법선거 의혹이 커진 것은 야당 후보가 가택연금된 것과 선거기관이 선거 결과를 예정된 발표 날짜보다 하루 늦게 발표했기 때문이다.
바비 와인
2017년 12월 선거 입후보자 나이 제한 규정을 삭제하는 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무세베니는 2021년 7월로 예정된 대선에서 6선 도전이 가능해졌다. NRM은 무세베니에게 종신집권의 길을 열어주었다. 2018년 무세베니 정권은 야당 인사 바비 와인(Bobi Wine, 1982~) 의원을 포함한 33명을 국가반역죄로 기소하는 등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8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에서 우간다는 26%를 기록하여 전체 180개국 중 149위를 차지할 정도로 부패한 나라다. 동아프리카 국가 중 르완다가 48위(56%), 케냐 144위(27%), 부룬디 170위(17%), 남수단이 178위(13%)를 기록했다. 우간다 국제투명성기구 대표는 우간다 정부가 부정부패 문제 해결을 위해 르완다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르완다는 우간다에 비해 반부패기관 및 관련 법제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의지로 부패척결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9년 3월 마케레레 법학대 인권평화센터는 2016년 이래 정부에 의한 불법 살인, 고문 등 인권 침해가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2016년 5월~2018년 12월까지 우간다 정부에 의해 살해된 사람은 총 133명이었다. 이들은 집회 해산 및 군중 통제시 무분별한 실탄 사용과 신체 고문 등의 원인으로 살해됐다. 우간다 정부는 물고문, 구타 등 70종의 잔혹한 고문을 여전히 시행 중이며 전국적으로 경찰서와 군부대 내에 고문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우간다는 유엔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했으나 '고문과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굴욕스런 대우나 처벌 방지에 관한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다. 이는 우간다 정부가 고문을 지속하겠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우간다에서는 민간인에 대한 불법 체포 및 감금이 계속되고 있으며, 변호사 접견권과 같은 기본권도 빈번히 침해되고 있다.
우간다는 부족 간의 대립이 심하여 양민학살사건 등 인권문제가 국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우간다는 또 납치, 살해 등 강력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반정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치안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우간다 여론조사 기관(Research World International)이 2019년 4월 12일부터 2주간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자 2,042명 중 54%가 차기 대통령으로 무세베니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중 30%만 무세베니 6선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2019년 5월 6일 제1야당인 민주변화포럼(FDC) 키자 베시그예 대표와 바비 와인은 무세베니에 맞서 2021년 대선에 공조하겠다는 성명서에 서명했다. 무세베니와 4회에 걸쳐 대선에서 경쟁했던 베시그예는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수단 대통령이 축출된 것을 언급하며 2021년 대선 전 봉기할 것을 요청했다. 바비 와인 역시 수단 대통령 축출이 우간다 국민들에게 군사독재 타도에 자신감을 주었으며, 평화적인 시위로 시민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2020년 2월 바비 와인이 야당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하면서 그의 주도로 창설된 정치운동 단체인 민중의 힘(People Power)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키자 베시그예 FDC 대표는 무력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우간다 민주주의에 기여하겠다고 선언했다. 우간다 경찰이 바비 와인의 대선 출마를 봉쇄하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신의 저항군 대원들
우간다는 무세베니가 집권한 1986년 이후 내전이 더 심해졌다. 우간다는 1987년부터 현재까지 북부지역에서 일어난 우간다 정부군인 인민해방군과 기독교계 반정부군인 신의 저항군(The Lord's Resistance Army, LRA) 사이에 우간다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신의 저항군 사령관 조지프 코니(Joseph Kony, 1961~)는 1급 전범으로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다.
신의 저항군은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차별받아온 아촐리족의 해방과 우간다 정부의 압제에 저항한다는 명분으로 출범했다. 하지만 명분은 사라지고 조지프 코니의 사병, 살인마 집단으로 전락하였다. 신의 저항군의 만행으로 아촐리족 거주지역인 우간다 북부 지방이 초토화되었다. 이에 우간다 정부는 아촐리족 200만 명을 수용소로 보내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조지프 코니
신의 저항군은 이름과는 달리 소년, 소녀들을 납치하여 소년병이나 성노예로 만드는 등 아주 잔악하기로 유명하다. 이들은 소년병들을 시켜 무고한 사람들의 귀나 입술, 코를 자르게도 한다. 우간다에서는 반군에 납치됐다가 아이를 낳고 돌아온 소녀를 차일드 마더(child mother)라고 부른다. 조지프 코니는 기독교 광신자이며, 아내가 60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프 코니는 2014년 남수단으로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은 조지프 코니를 제거하기 위해 특수부대 100명을 우간다에 파견했다.
2020. 3. 6.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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