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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프리카(Central Africa)-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

林 山 2010. 1. 29. 20:08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지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Central African Republic, CAR)은 북쪽으로 차드, 동쪽으로 수단, 남쪽으로 콩고와 DR콩고, 서쪽으로 카메룬과 국경을 접하는 내륙국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2.8배인 약 62만2천㎢, 인구는 약 4백2십만명(2007년)이다. 수도 방기(Bangui)는 이 나라 최대의 항구로 국제공항이 있다.  

콩고(자이르) 강 분지와 차드 호 분지, 나일 강 분지의 분수령을 이루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은 평균 해발고도 500m의 평원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수단과 동쪽 국경선을 이루는 우방기(Ubangi) 강과 나일 강의 분수령은 평균 해발고도 1143 m인 북동쪽의 몽고스 산맥과 동쪽에서 남동쪽에 이르는 통두 대산괴로 형성되어 있다. 몽고스 산맥에서 서쪽의 카르 산맥으로 이어지는 중앙부 횡단능선은 북쪽의 차드 호로 유입되는 샤리 강과 남쪽의 콩고 강으로 흘러드는 우방기 강의 분수령이다. 남부의 우방기 강과 이 강의 원류인 보무 강은 CAR과 DR콩고의 자연 국경선을 이룬다. 남서부 구릉지대의 최고봉은 1200m봉이다. 

 

CAR의 기후는 북쪽의 아(亞)사하라기후와 남쪽의 적도기후 사이의 천이(遷移)기후대로 열대기후에 속한다. 연중 기온은 계절과 지역에 관계없이 24∼27℃의 분포를 보인다. 강우량은 남쪽으로 갈수록 증가하고 연중 분포도도 고르다. 북부지역은 사막열풍으로 매우 무덥고 먼지가 많이 날린다. 북동부 사바나지대의 비라오 지역은 강우량 860㎜의 90% 이상이 4~9월에 내린다. 과거 전국토의 약 60%에 이르던 삼림지대에서는 마호가니(mahogany), 오베크, 림바 등 양질의 목재가 풍부하게 생산되었으나, 이후 삼림의 남벌로 열대우림이 심하게 파괴되어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바나 초원지대에는 사슴, 영양, 물소, 코끼리, 하이에나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남부의 우방기 강과 그 지류들 유역의 열대우림지대에는 고릴라, 침팬지, 각종 원숭이 등 영장류가 서식한다.

 

고고학적 유물에 의하면 CAR 지역에는 구석기시대 말엽부터 인류가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전의 문서기록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CAR 영토가 16세기 가오가 제국의 일부였음을 알려주는 약간의 증거는 남아 있다. BC 1000~AD 1000년경 니제르콩고어족에 속하는 아다마와-동부제어(Adamawa-Eastern)를 사용하는 종족이 CAR 대부분의 지역에 정착했으며, 같은 시기 소수의 반투어(Bantu)계 이주자들은 CAR의 남서부,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하는 중부수단어군(Central Sudanic languages)계 종족은 우방기 강 유역에 정착했다고 추정된다. 이보다 훨씬 뒤에 아랍어와 하우사어(Hausa)를 사용하는 이슬람 상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800년대초에 들어온 아랍인 무역상들은 비교적 평화로웠으며, 토착민들의 도움에 의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50년대 이후 아랍인 노예사냥꾼들이 무장군대와 함께 이 지역에 침투하였다. 1860~1910년까지 아랍인 노예사냥꾼들은 수단, 차드, 카메룬 등지로부터 CAR의 북부로 침투하는 한편, 수단과 DR콩고로부터 CAR의 남동부로 침입하여 CAR 동부의 원주민들을 무차별 사냥해서 노예로 팔았다. CAR 동부지역의 인구밀도가 지금도 매우 낮은 이유는 주민들 대부분이 아랍인 노예사냥꾼들에 잡혀 노예로 팔려갔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유럽인들이 중앙아프리카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의 식민주의자인 사보르낭 드 브라자(Savorgnan de Brazza, 1852~1905)는 지금의 CAR, 콩고, 가봉 지역에 프랑스령 콩고(French Congo)를 건설하기 위해 지금의 브라자빌(Brazzaville)에 근거지를 설치하였다. 그는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우방기 강 유역에 탐험대를 보냈다. 이 무렵 벨기에, 독일, 영국도 중앙아프리카 지역에 경쟁적으로 진출하여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1889년 프랑스는 우방기샤리(Ubangi-Shari, CAR의 옛이름)의 우방기 강 유역에 있는 방기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1890~1891년에 드 브라자는 차드 호를 향하여 우방기샤리의 남서부 상가(Sangha) 강 이북과 우방기 분지의 중앙부로 원정대를 보내는 한편, 나일 강을 향하여 우방기 강을 따라 동쪽으로도 원정대를 파견했다.

 

1894년 외교협정에 따라 벨기에령 콩고자유국(Congo Free State)과 독일령 카메룬, 그리고 프랑스령 콩고의 국경선이 획정되었다. 1899년 프랑스는 콩고 강과 나일 강의 분수령을 기준으로 수단과의 국경선을 획정했다. 이 지역을 점령하는 댓가로 프랑스는 협정 당사국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에 프랑스는 우방기샤리를 분할하여 특허권을 가진 17명의 백인 사업가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들 식민지 사업가들은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혹사시키고 가혹하게 착취함으로써 많은 비난을 받았다. 1911년까지 프랑스는 우방기샤리의 식민지화를 완료하였지만, 곧 원주민들의 반란이 연달아 일어났다. 1920년대말까지 원주민 노동자들은 비인간적인 혹사와 착취에 시달렸다. 

 

1946년 우방기샤리 식민지는 프랑스의 해외 준주가 되어 음바카족((M'Baka, Ngbaka) 출신의 바르텔레미 보간다(Barthélémy Boganda, 1910~1959)를 프랑스 의회 의원으로 선출했다. 보간다는 우방기샤리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1958년 우방기샤리에 프랑스공동체 내의 자치공화국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이 창설되었다. 1959년 보간다가 사망하자 같은 종족출신으로 그의 후계자인 다비드 다코(David Dacko, 1930~2003)는 1년 후 CAR의 독립을 선포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1965년 보간다의 조카이자 다코의 사촌인 장 베델 보카사(Jean-Bédel Bokassa, 1921~1996)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다코를 축출하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여 아프리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가 되었다. 1976년 나폴레옹 1세를 흠모했던 보카사는 CAR을 중앙아프리카 제국으로 선포하고 자칭 보카사 1세 황제로 즉위하였다. 1979년 잔인무도한 보카사는 제국경비대에 명령을 내려 약 100명의 어린 학생들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프랑스는 그해 9월 낙하산부대를 투입하여 보카사를 축출하고 다코를 대통령직에 복귀시켰다. 보카사는 국외로 탈출하여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1980년 12월의 궐석재판에서 보카사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1년 야코마족(Yakoma) 출신의 앙드레 콜링바(Andre Kolingba, 1935~)는 무혈 쿠데타로 다코 대통령을 축출하고 CAR 통치를 위한 국가재건군사위원회(Military Committee for National Reconstruction, MCNR)를 설치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1986년 5월 콜링바는 신생정당 중앙아프리카민주당(Rassemblement Démocratique Centrafricain, RDC)을 창설했다. 그해 6월 프랑스 망명지로부터 귀국한 보카사는 도착 즉시 체포되었다. 1987년 6월 보카사는 재판에서 반역죄와 살인죄, 식인죄, 횡령죄 등의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988년 2월 종신독방형으로 감형되었다. 1993년 8월 콜링바는 민주주의 회복과 함께 보카사를 사면하고 석방하였다. 보카사는 17명의 부인과 70명의 자식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 10월 실시된 민주적 대통령선거에서  앙주 펠릭스 파타세(Ange-Felix Patasse, 1937~)가 앙드레 콜링바와 다비드 다코, 아벨 굼바(Abel Goumba, 1926~)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의 압력과 유엔의 기술적 지원으로  CAR 최초로 비교적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실시된 선거에서 파타세는 CAR 최대 종족인 그바야족과 그의 고향인 파우아(Paoua) 지역의 카바족(Kaba), 그리고 카레족(Kare)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그의 부친은 그바야족(Gbaya=Baya)의 일족인 수마족(Suma), 모친은 카레족(Kare) 출신이었다. 2003년 3월 프랑스의 지지를 받는 그바야족 출신의 프랑수아 보지제(François Bozizé, 1946~) 전 3군참모총장은 쿠데타를 일으켜 파타세를 축출하고 대통령이 되어 과도정부를 이끌었다. 2년간의 과도정부체제를 종료한 프랑수아 보지제는 2005년 3월 실시된 대선에서 과반수 득표에 실패하여, 그해 5월 결선투표에서 65%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6년 2월 CAR의 북부지역에서 광범위한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 고향을 떠난 수천명의 난민들이 정부군과 북부 반군의 십자포화에 갇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7천명 이상의 난민이 북쪽의 차드로 피신하였다. CAR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정부군이 조직적으로 반군을 도왔다는 혐으로 성인 남자들과 소년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2006년 이래 지속된 폭력사태로 CAR 북서부 주민 5만명 이상이 아사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CAR에는 현재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장 자크 다마포스(Jean-Jacques Damafouth)가 이끄는 민주공화회복인민군(Popular Army for the Restoration of the Republic and the Democracy, APRD)과 미셸 디토디아(Michel Detodia) 이끄는 통일민주군연맹(Union of Democratic Forces for Unity, UFDR) 등의 반군들이 활동하고 있어 정정이 매우 불안한 상태다. 그러나 2007년 이후 CAR 정부와 북부 반군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등 문제해결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한편 정부의 무능과 경제의 침체로 자주 발생하는 폭동은 CAR의 정국을 불안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2007년에는 공공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의 지불불능사태로 파업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CAR은 언제든지 내전과 폭동, 쿠데타의 발생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어 여전히 정치적으로 불안한 정세가 계속되고 있다.

  

CAR의 국민은 80개 이상의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주요 인종집단은 그바야족 33%, 반다족(Banda) 27%, 만드쟈족(Mandjia) 13%, 사라족 10%, 음붐족(Mboum) 7%, 음바카족 4%, 야코마족 4%, 유럽인을 포함한 소수민족 2% 순이다. 소수 유럽인은 주로 프랑스인이다. 우방기 강 유역과 음보무 주 지역에는 주로 우방기족이 거주한다. 우방기족은 인종명칭이 아니라 우방기 강 유역에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상고족(Sango), 야코마족, 마쿠아족, 쿠유족, 음보시족, 리쿠알라족, 응갈라족, 봉가족, 반지리족, 은자카라족 등이 이에 속한다. 반다족은 중앙부에 위치한 브리아와 방바리, 포르시부 사이의 고지대에 거주한다. 이들은 그바야족, 응구반디족(Ngbandi)과 친연관계가 있는 니제르-콩고어군의 아다마와-우방기어를 쓴다. 만드쟈족은 주로 포르시부 주변에서 그바야족과 함께 살고 있다. 사라족은 CAR의 북부에서 차드의 사르 지방까지 분포한다. 페르티족은 주로 북동부 지역에 거주한다. 음붐족은 CAR과 차드, 카메룬 등지에 폭넓게 분포하며, 아다마와어를 사용한다. 피그미족은 주로 남서부의 우림지대에 거주한다. 프랑스인들은 주로 방기에서 산다.

 

CAR의 공용어는 상고어와 프랑스어다.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가운데 하나인 상고어는 어휘의 51%가 프랑스어와 같다. 링구아 프랑카는 아프리카와 중동지방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터키어, 아랍어 등의 국제혼성어다. 프랑스어는 학교에서 가르친다. 일부에서는 스와힐리어, 아랍어도 사용한다. CAR은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CAR의 종교는 토속신앙 35%, 개신교 25%, 로마 가톨릭 25%, 이슬람 15% 순이다. 아직도 상당수의 주민들은 정령신앙을 믿고 있다. 북부에는 이슬람의 작은 공동체들이 있다.

  

CAR의 보건상황은 극도로 열악하여 말라리아, 나병 등 풍토병이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사와 병원시설도 매우 부족하다. 평균수명은 세계 최저수준인 남자 38세, 여자 45세에 불과하다. 유엔은 15~49세의 인구 중 약 11%가 에이즈 환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교육은 무상이지만 학령아동의 약 50% 정도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중등교육을 받는 비율은 훨씬 더 적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1969년에 설립된 방기대학교가 있다. 신문은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방송매체는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CAR은 저개발국가들 중에서도 최빈국에 속하며, 인구의 8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 상당량의 광물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나 도로망이나 운송수단 등 사회간접자본이 빈약하여 1980년대초까지만 해도 다이아몬드와 우라늄만 채굴되었다. 주요 수출품은 다이아몬드, 목재, 면화, 커피 등이다. CAR은 그동안 계속된 내전과 폭동으로 교통, 통신 등 산업시설이 거의 파괴되어 경제회복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화 사용지역에 속하는 CAR은 아프리카 공동재정(Communauté financiére africaine, CFA) 프랑(franc)을 사용한다. 

 

CAR의 외교정책은 대외적으로 중립적이며 비동맹국이다. 한국과 CAR은 1963년 9월 국교를 수립하였다. 이후 1973년 5월 무역협정, 1974년 2월 경제기술협력협정, 1984년 12월 의료협력협정을 체결했다. 현재 한국에서 파견한 의료진과 태권도 사범 등이 활동하고 있다. 조선과 CAR은 1969년 9월 국교를 수립한 뒤, 1971년 3월 한때 단교했다가 1977년 2월에 재수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