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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양민학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

林 山 2010. 3. 25. 23:01

 

이상우 감독의 '작은 연못'은 1950년 7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철교 밑 터널, 속칭 쌍굴다리 속으로 피신한 인근 마을 주민 수백명이 미군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무참히 살해된 '노근리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노근리 사건은 한국판 '밀라이 사건'으로 불린다. 밀라이 사건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3월16일 미군 부대가 베트남 남부 밀라이 마을의 주민 수백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두 사건은 미군이 저지른 20세기 최대 규모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북한 인민군에게 밀린 미군은 전선을 후퇴시켜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인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 저지선을 구축하게 된다. 노근리 주변 마을인 주곡리와 임계리에 소개령을 내린 미군은 5백여명의 주민들을 강제로 인솔하여 피난길을 떠나게 한다. 

 

이때 미군은 피난민 속에 민간인으로 위장한 인민군이 침투했다는 미확인 정보를 입수한다. 피난민들의 저지선 통과를 저지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미군은 남쪽으로 무작정 내려가던 피난민들을 향해 전투기 폭격을 감행한다.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3박 4일 동안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3백여명의 생존자들은 미군의 저지선이 후퇴하기 전까지 쌍굴다리에 갇힌 채 미군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2대대 병력으로부터 무차별 기관총 공격을 받는다. 3백여 명에 달했던 쌍굴다리 안의 피난민들 중 최후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단 25명 뿐이었다. 생존자들은 시체를 방패로 삼아 핏물로 갈증을 달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미 제7기병연대 참전군인이었던 조지 얼리는 '소대장은 미친놈(madman)처럼 <발포하라. 모두 쏴 죽여라(kill’em all)>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제가 총을 겨누고 있던 사람들이 군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거기에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소대장은 <목표물이 뭐든 상관없다. 여덟 살이든 여든 살이든, 맹인이든 불구자든 미친 사람이든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에게 총을 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노근리 사건'의 생존자 양해찬씨는 '다리 밑은 모래와 자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기 위해 맨손으로 구멍을 팠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들을 바리케이드처럼 쌓아 그 뒤에 숨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 울었습니다. 우는 소리를 듣고 그 아이가 있는 곳을 향해 사격이 가해져 또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자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개울물에 넣어 질식 시켰습니다.'라고 증언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생존자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진상규명 요구에도 불구하고 50여년간 한국과 미국 정부는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전쟁의 비극적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노근리 사건'의 생지옥을 경험하고 부모와 자식, 형제를 잃은 생존자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작은 목소리를 내보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관심과 냉대뿐이었다. 그러다가 1994년 4월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 정은용 위원장이 유족들의 비극을 담은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실록소설을 출간함으로써 이 사건은 다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1999년 AP통신의 기자들인 최상훈, 찰스 J. 핸리, 마사 멘도자는 비밀 해제된 미 군사문건을 검토한 뒤 사건 발생 당시의 미군 이동경로와 현장에 주둔했던 미군부대를 찾아냈다. 수년간 이들은 당시 가해자인 미군과 피해자인 한국의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은폐된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AP통신 기자들의 '노근리 사건' 보도는 2000년 퓰리처상 보도부문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노근리 다리(The Bridge at No Gun Ri)’라는 제목의 책까지 출간했다.
 

2002년에는 영국의 BBC 방송이 노근리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민간인 학살을 다시 한 번 전세계에 알렸다. AP통신 기자들과 BBC 방송의 노력으로 한국과 미국 정부가 진실을 은폐했음이 드러났다.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자행된 60여건의 민간인 학살 중 진상이 밝혀진 유일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지난 60여년간 '운 나쁜 소수의 비극'으로 치부되어 듣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진실로 외면 받았던 '노근리 사건'이 마침내 한국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져 대중들에게 소개된다. 영화 '작은 연못'은 AP통신의 보도자료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의 비극을 극적으로 재구성했다. '작은 연못'은 사건 발생 60년, 제작기간 8년만에 영화로 완성된 역사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전선으로 내몰린 하얀 옷의 민간인들을 통해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노근리 사건의 숨겨진 진실이다. 아니, 세상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지만 한국과 미국 정부만 부정하고 은폐하려 했던 진실...... 이와 함께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다.   

 

이 영화가 제작에 들어가기 전인 2006년 5월 '작은 연못' 제작만을 위한 특수 목적회사 (유)노근리 프러덕션(대표 이우정)이 설립되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영화계 최고의 스탭들이 동참의사를 밝혔고, 문성근, 송강호, 문소리, 강신일, 박광정, 김승욱, 이대연, 김뢰하, 전혜진, 유해진, 박원상, 정석용, 박노식 등 국내 연극, 영화계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도 자발적으로 출연하겠다고 나섰다. 노근리 프러덕션(유)은 후반작업 업체 및 장비관련 업체에도 참여를 제안하고 동의를 얻었다. 이에 따라 약 40억원 규모 예산의 영화를 10억여원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작은 연못'의 제작방식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려는 영화적 성취를 넘어서 전세계인들에게 전쟁의 본질을 알리고자 하는 한국 영화인들의 평화를 향한 의지가 만들어낸 일대 사건이다. 이처럼 진심에서 시작된 감동적인 제작방식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작은 연못'은 2009년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리젠테이션 초청작으로 선정되어 제작에 들어간 지 7년만에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작은 연못'이 '노근리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민중의 시선으로 보여준다'는 이유로 갈라프리젠테이션 초청작으로 선정했다. 상영 전 열린 레드 카펫 행사에서는 19인의 주연배우가 모두 참여했다. 관객들은 이 영화가 객관적이고 깊이 있는 고찰이 돋보이는 새로운 전쟁 영화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성근, 송강호, 문소리, 강신일, 박광정, 김승욱, 이대연, 김뢰하, 전혜진, 유해진, 박원상, 정석용, 박노식 등 출연진 모두가 이상우 감독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 연극을 함께 하던 선후배들, 대학로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공연을 해 온 동료들, 그리고 연극원의 제자들까지 모두 이상우 감독과 함께 작업하기 위해 모였다.

 

출연자들은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유명 배우들이었지만 이상우 감독의 전화 한 통에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이들의 자발적인 출연과 끈끈한 유대감으로 인해 촬영 현장은 항상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박광정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유명을 달리해 동료들을 안타깝게 했다.

 

'작은 연못'은 영화 속 대문바위골 사람들처럼 배우들에게서도 실제 주민들과 같은 유대감과 친밀감을 끌어내기 위해 배우들의 가족들을 캐스팅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영화에 사실감을 더해 준다. 주요 배우들의 자녀는 물론 그들의 아내, 칠순의 노모까지 등장하는 이색적인 캐스팅은 또 하나의 감동 요인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의 산과 들판, 마을의 느낌부터 피난민들의 소박한 모습, 피난길의 고요하고 서정적인 풍광, 영문도 모른 채 숨이 막히도록 무차별 공격을 받는 참혹한 학살 현장을 재현해낼 수 있었던 데는 컴퓨터 그래픽(CG)의 힘이 가장 컸다. CG는 국내 최고의 특수디지털시각효과 제작 회사인 '모팩 스튜디오'가 맡았다. 모팩 스튜디오는 피난민들을 생사의 갈림길로 몰아넣었던 기찻길 위 무차별 공중 폭격과 쌍굴 총격 현장을 생생하고 사실적인 영상으로 되살려냈다. 

 

양민학살이 일어난 쌍굴은 2003년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문화재 59호로 등록되었다.  윤정섭 미술 감독은 실제 쌍굴에 대한 분석과 자료조사를 통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실제 쌍굴의 70% 크기의 쌍굴 세트를 디자인 했다. 국내 최고의 세트팀인 '난든집'은 쌍굴 현장에서 멀지 않은 영동군 매천리에 쌍굴 세트를 만들어 냈다. 세트가 완성되자 영동군청의 지원으로 30톤 트럭 20대 분량의 자갈을 흙 바닥 위에 덮었다. 쌍굴 씬을 촬영할 때에는 세트 웅덩이에 영동중앙소방서의 지원을 받아 소방차 한 대 분량의 물을 매일 채워 넣어야 했다.

 

격동의 시대 음악을 통해서 저항한 김민기는 '작은 연못'을 위해 자신의 모든 음악을 선뜻 내주었다. 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모든 음악의 사용을 조건 없이 허락한 일은 한국의 음악사는 물론 영화사에 있어서도 그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영화와 동명 타이틀곡인 '작은 연못'은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으로 1993년 김민기의 4집 앨범에 실린 노래다. '작은 연못'의 영상은 ‘나비’, ‘작은 연못’, ‘천리길’ 등 김민기의 주옥 같은 음악들과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한국전쟁으로 빚어진 슬픈 역사의 진실을 각인시켜 줄 것이다.

 

이상우 감독은 '전쟁이 생중계되는 세상, 스커드 미사일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비쥬얼은 전쟁의 참혹한 비극을 외면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전쟁을 게임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대신, 이유도 모른 채 부모를 잃어버리고, 형제를 잃어버리고, 팔 다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목격했던 사실에 집중할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전쟁 영화도, 어떤 전쟁 다큐멘터리도, 어떤 전쟁 뉴스도 언제나 외면해 온 전쟁의 진짜 얼굴을 거짓없이 증언할 것이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세계 영화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영화가 될 것이다. 60년 전 노근리 주민들이 겪었던 3박 4일의 이야기는 오늘의 거울이 될 것이며, 인류의 기본 명제이자 숙제인 평화와 인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킬 것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