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대몽항쟁 유적지 처인성(處仁城)을 찾아서

林 山 2013. 9. 11. 17:18

나는 충주(忠州)에서 태어나 대학과 군대에 갔을 때를 제외하곤 줄곧 충주에서 살았다. 고향이라서 그런지 나는 평소 충주의 향토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충주는 남한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영남지방과 개경(開京, 개성), 한성(漢城, 서울)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예로부터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 삼국의 쟁탈지였으며, 한반도를 침략한 몽고(蒙古, 몽골)나 일본(日本) 등 외침 세력의 주요 공격 목표이기도 했다. 외세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충주의 주민들은 용감하게 맞서 싸워 물리치곤 했다. 충주의 주민들은 특히 고려시대 대몽항쟁(對蒙抗爭)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 충주성(忠州城, 충주읍성)과 충주산성(忠州山城, 금봉산성, 동악성, 마고성, 남산성)은 충주의 주민들이 일치단결하여 몽고군의 침략을 막아낸 빛나는 역사의 현장이다. 


북동쪽에서 바라본 처인성


제5차 려몽전쟁 당시 몽고군을 물리쳤던 충주산성 전투의 영웅 김윤후의 발자취를 따라 처인성을 찾았다. 처인성은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아곡리 산43번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토성(土城)이다. 


막상 처인성을 바라보자 그 규모가 너무 작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둘레가 425m, 총면적 5,820평의 직사각형 성곽이었다는데, 현재는 성의 길이가 불과 250m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김윤후와 처인성의 군민들은 저런 작은 토성을 근거지로 삼아 어떻게 몽고군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었을까?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