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맹장이 곪아터져 복막염이 된 것도 몰랐던 어느 할머니 이야기

林 山 2013. 10. 24. 15:01

오전에 70대 초반의 할머니가 양쪽 팔꿈치관절부터 손까지 차고 저린 증상으로 내원했다. 손과 팔이 찬 증상은 말초순환의 부전 같은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저린 증상은 경추간판탈출증(경추디스크), 일자목 등에 의한 목신경의 전도 이상 같은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문진을 하는데....... 3달 전 급성 할머니는 충수염(蟲垂炎, appendizitis, 맹장염)에 걸린 것을 모르고 방치했다가 충수가 터져 복막염(腹膜炎, peritonitis)으로 진행되어 큰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충수염에 걸리면 오른쪽 아랫배에 비교적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물론 통증이 심하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나 : 맹장염에 걸렸을 때 배가 많이 아프셨을 텐데 빨리 병원에 가셨어야지요.

할머니 :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우.

나 : 이상한데요. 정말 전혀 아프지 않았다고요?

할머니 : 그렇다우.

나 : 잘 생각해 보세요.

할머니 : 오른쪽 아랫배가 한 번 뜨끔하긴 했는데, 그리 심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다우.

나 : 혹시 그때 드셨던 양약 있나요?

할머니 : 고혈압약과 고지혈증약, 관절염약을 먹고 있었다우.  

나 : 어느 관절이 아프신데요?

할머니 : 다리와 손가락 마디가 아프다우. 

나 : 할머니, 관절염약이 소염진통제이기 때문에 맹장염 통증을 모르셨을 수도 있어요. 지금도 관절염약을 드시고 있나요?

할머니 : 수술을 받고 난 뒤부터 관절염약은 끊었다우.


할머니의 손가락을 살펴 보니 관절이 변형되는 등 관절염 증상이 심했다. 양쪽 무릎도 아프다고 했는데, 특히 오른쪽 무릎이 더 아프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할머니는 양의사가 처방해 준 소염진통제를 복용해 왔다고 한다. 할머니로 하여금 충수가 곪아터져 복막염으로 번지는 것도 모르게 한 주범은 바로 관절염약, 소염진통제였다. 소염진통제가 할머니의 복부에 분포한 통각신경을 마비시켜 충수염으로 인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진통제는 감각신경 중에 통각신경을 마비시켜 몸은 여전히 아프지만 통증은 느끼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허리통증, 무릎통증, 근육통 등으로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은 몸의 다른 부위에 아주 사소한 이상 증세가 나타나더라도 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신경치료라는 것을 받은 사람도 주의해야 한다.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는 사람과 같은 이유에서다. 신경치료는 신경을 잘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진통제나 마취제를 써서 감각신경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신경을 죽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추간판탈출증(요추디스크)이나 척추협착 등으로 허리에 신경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하복부나 하체의 감각마비나 감각저하가 올 수도 있다.



2013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