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고구마와 발렌타인

林 山 2013. 11. 14. 18:37

고구마 이야기


한의원 단골 아주머니가 내게 도움을 받은 데 대한 고마움의 선물이라면서 고구마 한 상자를 가지고 왔다. 고구마 농사를 직접 지었는데 어찌나 맛이 좋은지 내 생각이 나더란다.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이런 선물을 받으면 왠지 마음에 부담을 느끼곤 한다. 


2012년 8월 7일이었던가? 아주머니가 30대 초반의 아들을 데리고 왔다. 청년의 첫인상은 소음인 체질로 예민한 성격의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의무를 마친 청년은 줄곧 공무원에 뜻을 두고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공무원 시험을 칠 때마다 번번이 낙방을 했다. 소음인 체질로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의 청년은 공무원 시험에 대한 중압감으로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아주머니가 아들을 나에게 데리고 온 것이다.


나는 나의 지나온 이야기를 청년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여 년도 더 지나 나이 마흔이 넘어 수학능력 시험을 치르고 한의과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청년은 다소 놀라는 표정이었다. 청년은 아직 나이가 젊으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열심히 정진하면 반드시 빛을 볼 날이 있을 거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삶의 목표가 아름다우면 공부도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는 말도 해주었다. 역으로 공부가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면 삶의 목표가 아름답지 못한 것이다. 공부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결과가 뭐 그리 중요할까! 뭐 이런 말들을 더 들려준 것 같다.


청년은 한결 평온해진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 후 나는 그 청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3년도 채 두 달이 남지 않은 11월의 어느 날 청년의 어머니가 아들의 7급 공무원 고시 합격 소식을 전해 준 것이다. 청년은 나와 만나고 돌아간 그날부터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험 공부에 임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7급 공무원 고시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나도 내 가족의 일처럼 기뻤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 한 마디가 중요할 때가 있다. 말 한 마디가 나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으며, 말 한 마디가 남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동거지도 중요하지만 말을 참 잘해야겠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발렌타인 이야기     


발렌타인(Ballantines)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모친의 노인장기요양보호 의사소견서를 발급받으러 온 보호자로부터 양주 한 병을 선물로 받았다. 지난해 내가 발급해준 의사소견서가 건강보험공단에서 높은 등급 판정을 받아 노인장기요양보호 방문요양과 방문목욕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의사소견서야 있는 그대로 작성해서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는 것이니 사실 내가 도움을 주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것이었다. 


양주는 발렌타인 17년산으로 꽤 비싼 술이라 부담을 느껴 사양했지만 마음의 선물이라는 진정성이 느껴져 어쩔 수 없이 받아 두었다. 과양비례(過讓非禮)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모친의 의사소견서를 작성해서 온라인으로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했다. 예전에는 의사소견서 양식 문서에 일일이 수기로 작성해서 당사자가 직접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해야 해서 불편했는데, 최근 온라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요즘은 편리해졌다. 그의 모친이 이번에도 높은 등급을 받아 방문요양과 방문목욕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기를 바란다. 


2013.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