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이 당원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수용 6.4 지방선거에서 기초후보에 대한 정당공천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은 기초후보 무공천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새정치연합은 대국민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는 책임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정치연합의 기초후보 공천 결정에 대해 새누리당은 '기초후보 무공천 방침 철회 이유를 밝혀라'고 하는 등 정치공세를 폈다. 새누리당이 이런 정치공세를 할 자격이 있는지 의아하다. 정권을 잡자마자 대선공약을 헌신짝 내팽개치듯이 파기한 새누리당으로서는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기초후보에 대한 정당공천제는 정당의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과 북미 등 정치선진국에서는 기초후보 정당공천제를 아무런 문제없이 아주 잘 실시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선출직 후보의 정당공천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만 유독 정당공천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정치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돈 공천이나 낙하산 공천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돈과 낙하산 공천으로 당선된 기초후보들, 특히 기초자치단체장은 본전을 뽑기 위해 승진인사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뇌물을 받거나 낭비성 사업을 벌여 리베이트를 챙기는 등 비리를 저질러 왔다. 돈 공천, 낙하산 공천 기초후보나 공천권자는 정치모리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들이 지역주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무소속의 안철수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맨 먼저 기초후보 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자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도 어쩔 수 없이 기초공천제 폐지를 대선공약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안철수 후보의 기초공천제 폐지 공약은 한국적 정치현실에 절망한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기초공천제 폐지의 참뜻은 후보의 공천권을 권력자에게서 빼앗아 당원과 국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었다. 아울러 기초후보 당선자들이 권력자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정치, 위가 아니라 아래를 위한 행정을 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정당공천제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를 폐지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광역후보들의 정당공천은 문제가 없는가? 정당공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리사욕을 위해서 이를 악용하는 정치인들이 문제다. 정당공천제가 무슨 죄가 있는가!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 이전에 기초후보들이 당선된 후 비리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며 주민소환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옳다.
6.4 지방선거에서 만약 새누리당이 기초후보 정당공천을 하고 새정치연합이 무공천으로 선거에 임한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 먼저 충주시장 선거를 예로 들어보자. 새누리당에서는 조길형(51) 전 안행부 소청심사위원과 심흥섭(52) 전 충북도의원이 2파전, 새정치연합에서는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최영일(45) 변호사와 김진영(61) 전 인천시정무부시장, 무공천 바람을 타고 최근 입당한 한창희(60) 전 충주시장이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누구든 한 명이 공천을 받아 시장후보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3명이 모두 시장후보로 나와도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 또, 설령 단일화가 된다 해도 기호 2번을 사용할 수가 없다. 박빙지역이나 열세지역이라면 새정치연합 시장후보들은 결정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룰 수 밖에 없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충주시 기초의원 사선거구는 어떨까? 사선거구는 기초의원 4명 정원에 새누리당 이종갑(55) 전 충주시의회 의원, 이호영(58) 현 충주시의회 의원, 안계남(49) 새희망 충주시민공동회 공동대표 등 3명, 새정치연합 김인기(46) 한국자유총연맹 운영위원, 윤동노(68) 전 동성기술공사 대표이사, 허영옥(56) 현 충주시의회 의원, 강명권(52) 현 충주시의회 의원 등 4명, 통합진보당 김영옥(47) 충주사랑 시민연대 사무국장, 정의당 이인석(49) 정의당 충북도당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 무소속 박종관(54) 충주시 정책자문위원 등 총 10여명의 후보가 난립한 상황이다.
새누리당 후보 3명은 기호 1번에 가, 나, 다를 받는다. 새정치연합은 정당공천을 하지 않으니 2번은 없다. 만약에 법원에서 정당해산 판결을 받지 않는다면 3번은 통합진보당, 4번은 정의당이다. 새정치연합과 무소속 후보들은 제비뽑기를 통해서 5~10번을 받게 되어 있다. 새정치연합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선거가 치뤄진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권투에서 두 손이 자유로운 선수와 한 손이 묶인 선수가 대결하면 누가 이길까? 새정치연합 후보들이 줄줄이 낙선하고 엉뚱한 후보가 당선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새누리당이 정당공천을 하는 상황에서 새정치연합이 무공천을 밀고 나간다는 것은 기관총으로 무장한 상대방에게 무모하게 낫을 들고 덤비는 격이나 다름없다. 그랬다가는 새정치연합 기초후보들이 대거 낙선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지방선거 참패는 결국 19대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새정치연합 기초후보와 당원들은 여론을 수렴해서 정당공천을 하기로 당론을 정한 지도부의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현명한 장수는 필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부하들을 결코 사지로 내몰지 않는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최선책이 없다면 차선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다.
기초후보 정당공천 논란을 통해서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는 대국민 약속인 대선공약을 지키려고 끝까지 노력했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 주었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대선공약을 지키지 않는 당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표면상으로는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와 정반대가 아닌가 한다. 안 공동대표는 기초후보 무공천 원칙을 19대 대선 전초전의 승부수로 던진 것으로 보인다. 6.4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승리한다면 안 공동대표의 공이 가장 크다. 기초후보 정당공천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끌어올린 사람이 바로 안 공동대표이기 때문이다.
6.4 지방선거에서는 당을 떠나서 더 낮은 곳으로 임하는 위민(爲民)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4.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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