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수능의 추억

林 山 2014. 11. 13. 15:25

오늘은 조카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보는 날이다. 긴장 속에서 시험지를 앞에 놓고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을 조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다른 수험생들도 마찬가지리라.  


문득 20여 년 전 내 나이 마흔에 한의과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아들뻘 고교생들과 함께 수능을 치뤘던 일이 떠오른다. 1994년 11월 23일이었을 거다. 시간에 맞춰 인문계 시험장에 들어서자 수험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개량한복을 입고 스님처럼 깎은 머리에 선비수염을 길게 기른 내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여 년도 더 지났지만 시험지를 앞에 놓고 나는 그리 긴장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수차례 치른 모의고사에서 언어, 외국어(영어), 수리탐구II 영역은 상당히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인문계 출신이라 수리탐구I 영역에서 몇 점을 받느냐가 문제였다. 수리탐구I 영역 점수에 따라 수도권 한의대냐 지방 한의대냐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수능 배점은 언어 영역 60점, 수리탐구I 영역 40점, 수리탐구II 영역 60점(문과 사회탐구 30점/과학탐구 30점, 이과 사회탐구 27점/과학탐구 33점), 외국어 영역 40점으로 총 200점 만점이었다. 수능 성적표는 1994년 12월 21일 통지를 받았다.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내가 목표로 하는 한의대에 갈 정도는 되었다. 


1995학년도 대학입시에서 한의대는 예년에 없이 커트라인이 매우 높았다. 나는 내가 목표로 했던 집에서 가까운 한의대에 원서를 넣었고, 곧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그리고 졸업해서 10여 년째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한의학은 내게 새로운 인생길이었다. 전교조 활동으로 교단에서 해직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한의대 진학을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해직은 내게 한의학이라는 신세계를 열어 준 계기가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다. 


나는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단 한 번도 내가 가고 싶었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한의대는 바로 최초로 내 의지에 따라 선택해서 간 학교였다. 그러기에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나는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수험생들 모두 오늘 수능시험 잘 치르기를 기원한다. 그리하여 먼 훗날 저마다의 꿈도 이루기를!   


2014.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