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7일 방영된 JTBC '비정상회담'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청년들이 행복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주제는 '내가 불행하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였다.
벨기에에서 온 27살의 청년 줄리안 퀸타르트(Julian Quintart)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줄리안은 '서양에서는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라 탓을 한다. 반면에 아시아 사람들은 자기 탓을 한다.'면서 '그래서 우리는 시위도 굉장히 많이 한다.'고 발언했다. 프랑스에서 온 25살의 청년 로빈 데이아나(Robin Deiana)도 '우리도 일주일에 한 번 파업을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나는 두 유럽 청년의 발언을 듣고 상당히 놀랐다. 한국 청년들에게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라 탓'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청소년들도 유럽의 두 청년과 같은 발언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왜? 가정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나라 탓'이라고 말하면 수구보수 세력으로부터 종북좌파로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럽 청년 줄리안과 로빈에서 보듯이 그들은 행복추구권에 대한 인식이 확고한 듯이 보였다. 시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나라는 시민의 행복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행복추구권이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시민이 나라에 우선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런 나라는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럽 여러 나라들이 왜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복지국가가 될 수 밖에 없었던가? 그 답은 바로 줄리안과 로빈 같은 유럽의 젊은이들 생각에 있었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민주주의 복지국가는 앉아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열심히 살았음에도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또는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면 노예정신이 뼛속깊이 박힌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예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성하지 않는 한 결코 민주주의 복지국가를 쟁취해 낼 수 없다. 요즘 세상에 노예가 어디 있느냐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노예가 아니고 무엇인가!
노예적 삶이란 무엇인가? 권력자나 가진자, 상급자, 연장자 등의 부당한 억압에 순응하고 굴종하는 삶이다. 현대판 노예들은 지금도 가정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세뇌교육을 통해서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등골이 휘도록 열심히 일했음에도 내가 불행하다면 그건 누구 탓인가? 나라 탓이다! 열심히 살았음에도 내가 여전히 불행하다면 그건 누구 탓인가? 나라 탓이다!
2014.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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