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에서 백두대간 벌재를 넘어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방곡리로 들어섰다. 벌재에서 발원하는 단양천은 방곡리-벌천리-가산리-대잠리-상방리-중방리를 북류하여 충주호로 흘러들고 있었다. 가산리와 대잠리 단양천 중상류 삼선구곡(三仙九曲) 일명 선암계곡에는 단양팔경 제6경 하선암(下仙岩)과 중선암(中仙岩), 제8경 상선암(上仙岩)이 있다. 일명 삼선암(三仙岩)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단양편에는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이 군의 남천(南川) 상류에 있다. ..... 퇴계집에서 선암이라고 부른 곳이다. ..... 지세의 위아래를 따라서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이라 불렀으니, 선암은 세 선암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선암에는 옥렴대와 명경담이 있다. 상선암에는 경천벽, 학귀주, 일사대, 광영담, 와룡담이 있다. 시냇물 북쪽으로는 찬하대가 있고, 또 그 상류에는 쇄연대, 세이담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도(朝鮮地圖)'에는 개천(介川)의 중류 동쪽에 상선암, 상류에는 도솔산(兜率山)이 표기되어 있다.
상선암
단양팔경 제8경 상선암은 서쪽의 용두산(龍頭山, 994.4m)과 동쪽의 도락산(道樂山, 964m) 사이에 있다. 상선암(上仙岩)이라는 이름은 숙종 때의 학자인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가 지었다고 한다. 상선암 부근에는 경천벽(驚天壁), 와룡암(臥龍岩), 일선대(一線臺), 차일암(遮日岩), 학주봉(鶴柱峰), 광영담(光影潭)등이 있다.
'여지도서'의 학귀주는 학주암, 일사대는 일선대가 아닌가 한다. 경천벽은 건넌들 남쪽의 벽장바위인 듯하고, 와룡암은 용바위, 일선대는 용바위 아래쪽에 있는 바위이다. 차일암은 진소 남쪽 약 100m 거리에 있는 말바위로 추정된다. 학주봉은 가산에서 중선암 가는 고개 입구의 바위 절벽으로 학이 깃들어 살았다는 학주암(鶴柱岩)인 듯하다. 광영담은 상선암 바로 밑에 있는 소로 이곳의 중심이 되는 명소이다.
상선암 남동쪽에 솟아 있는 도락산은 한국의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 산이다. 산명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깨달음을 얻는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하고 거기에는 필수적으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도락산 등산로 들머리인 상선암마을에는 태고종 말사인 상선암(上禪庵)이 있다. 신라시대 의상(義湘)이 창건했을 당시에는 선암사(仙巖寺)라 하였다. 1822년(순조 22)과 1857년(철종 8) 두 번 중수했음에도 1910년에 이르러 거의 폐허가 된 것을 1956년 중건하여 상선암이라고 하였다. 현존 당우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상 2구와 관세음보살상, 탱화 3점이 있다.
권상하는 젊은 시절 경치가 수려한 선암사 수일암(守一菴)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권상하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거두이자 서인당(西人黨) 중 노론당(老論黨)의 영수 송시열의 수제자였다. 수일암에는 권상하의 문집인 '한수재집(寒水齋集)'과 그의 제자 한원진(韓元震)의 저서 '남당기문록(南塘記聞錄)' 등의 판본을 소장하고 있었으나, 1900년경 그의 후손들이 제천 황강(黃江)의 권씨 종택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다.
권상하는 수일암에서 머물 때 한시 '선암에서 돌아오는 길'을 썼다.
白玉鋪陳錦繡屛(백옥포진금수병) 백옥같은 바위 비단병풍을 두르고
虹光雪色鏡中明(홍광설색경중명) 무지개빛 눈빛 거울속에서 밝구나
歸來如罷瑤臺夢(귀래여파요대몽) 돌아올사 요대에서 꿈을 깬 듯한데
尙有仙風滿袖淸(상유선풍만수청) 아직도 맑은 선향 소매에 가득하네
여기서 '백옥'은 옥렴대, '홍광설색경'은 명경대를 표현한 것이다. '요대'는 신선이 노닌다는 누대를 말한다. '요대몽'에서 무산지몽(巫山之夢)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다.
중선암 옥렴대
중선암은 도락산장에서 50m 정도 내려간 지점에 있었다. 중선암이라는 이름은 조선 효종 때의 문신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이 지었다고 한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당시 척화대신으로 이름이 높았던 김상헌(金尙憲)이 그의 조부다.
중선암에는 쌍룡폭(雙龍瀑), 옥렴대(玉簾臺), 명경대(明鏡臺), 명경담(明鏡潭) 등의 명소가 있다. 쌍룡폭은 바위를 사이에 두고 두 줄기의 폭포가 마치 쌍룡이 하늘을 나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쌍룡이 여기서 승천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옥렴대는 중선암 쌍룡폭 근처에 있는 큰 바위, 명경대는 옥렴대 맞은편에 있는 큰 바위다. 명경담은 명경대 밑에 있는 소(沼)다.
옥렴대에는 조선 숙종 43년(1717) 충청도 관찰사 윤헌주(尹憲柱)가 새긴 '사군강산 삼선수석(四郡江山 三仙水石)'이란 글귀가 남아 있다. 강과 산 경치는 단양군, 영춘군, 제천군, 청풍군 네 군이 으뜸이고, 바위 경치는 상, 중, 하 삼선암이 으뜸이라는 뜻이다.
1802년 가을 옥렴대에 와서 윤헌주가 새긴 글씨를 본 청풍부사 안숙(安叔) 조영경(趙榮慶)은 4군을 유람하면서 명승지를 시문으로 읊는 한편 화가인 심재(心齋) 이방운(李昉運)에게는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서화첩 이름이 '사군강산 삼선수석(四郡江山 參僊水石)'이다. '參僊'은 '三仙'과 같은 뜻이다. 권상하의 각자(刻字) 풍류(風流)가 100여년 뒤에 안숙의 시문과 이방운의 그림 풍류로 부활한 것이다. 이들은 진정한 풍류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선암
단양팔경 제6경 하선암은 단양천 하류에서 올라오면 삼선구곡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기암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속세를 떠난 듯한 신선이 노닐던 곳'이라고 극찬했던 명승지다. 처음에는 3단으로 이루어진 넓은 마당바위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올라앉아 있는 형상이 미륵 같다고 해서 부처바위(佛岩)라고 불렀다.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 임제광(林齊光)이 부처바위를 선암(仙岩)이라 개칭했다. 이후 상선암, 중선암과 함께 하선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선암에서 해넘이를 맞았다. 하선암을 뒤로 하고 귀로에 오르다.
백두대간 벌재 나린 삼선구곡에
상선 중선 하선 바위 숨어 있네
천지신명 숨겨놓은 별천지런가
수암 심재도 넋 잃은 비경이라네
2015. 5. 5.
'역사유적 명산 명승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순례의 추억 (0) | 2015.06.01 |
---|---|
오봉산 배후령에 서다 (0) | 2015.05.15 |
백두대간 벌재를 넘어서 (0) | 2015.05.11 |
백두대간 이화령을 넘어서 (0) | 2015.05.09 |
연풍 수옥폭포와 마애이불병좌상을 찾아서 (0) | 2015.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