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가재)마을을 찾았다. 노치마을은 내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간성의 진부령까지 백두대간 마룻금을 걷던 때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었다. 14년 전 백두대간을 순례하던 2001년 5월 17일 나는 노고단을 떠나 코재(무넹기)-종석대-성삼재-당동고개-묘봉치-작은고리봉-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까지 온 다음 서북쪽 능선을 타고 고기삼거리로 내려와 60번 지방도(운봉로)-구룡폭포길-노치길을 따라 노치마을에 이르렀다.
정령치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큰고리봉-노치마을-수정봉-고남산
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에서 노치마을에 이르는 백두대간
노치마을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노치마을 입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큰고리봉에서 노치마을에 이르는 백두대간을 눈으로 좇으며 14년 전 저 마룻금을 걷고 있던 내 모습을 찾으려고 기억을 더듬었다. 백두대간 60번 지방도(운봉로)-구룡폭포길-노치길은 논둑길이다. 저 논둑길이 무슨 백두대간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 논둑길 어느 곳에서도 물을 건너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둑길 동쪽의 물은 운봉의 주촌천으로 흘러든 다음 람천-임천-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하고, 서쪽의 물은 원천천으로 모인 다음 요천을 거쳐 섬진강으로 합류한다. 그러니까 저 논둑길은 섬진강과 낙동강의 수계가 되는 것이다. 저 논둑길은 평지 같지만 운봉고원이 평균 해발 450~550m의 고지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낮은 지대가 아니다. 백두대간은 버스 정류장에서 방향을 틀어 노치마을 한가운데를 지나 마을 뒤편의 수정봉으로 이어진다.
노치마을 느티나무 보호수와 정자
노치마을 정자
14년 전 덕치리 노치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였다. 노치마을에서 하룻밤 야영을 하기로 했다. 마침 마을회관 앞에 정자 하나와 수백 년 묵었다는 느티나무 보호수가 있었다. 정자에 텐트를 치면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인사차 마을 이장댁을 찾았으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장댁에서 저년 식사를 준비하려고 수낭에 물을 받아왔다.
정자 위에다 텐트를 치고 나서 지나온 백두대간을 되돌아보았다. 지리산 서북능선은 만복대에서 큰고리봉, 세걸산을 지나 바래봉으로 치달려 가고 있었고, 백두대간은 큰고리봉에서 노치마을로 내려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었다. 마을 공동우물에서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인스턴트 미역국을 끓여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마을 앞 논에서 개구리들이 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어찌나 소란스러운지 잠이 오지 않아 텐트 밖으로 나와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만복대에서 바래봉에 이르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실루엣으로 다가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별빛이 초롱초롱했었다. 윤동주의 '별헤는 밤'이 떠오르는 밤이었다.
마을 정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정자를 바라보면서 추억에 잠겨 있을 때 노치마을 주민 한 사람을 만났다. 마을 공동우물이 아직도 있으냐고 물으니 지금은 물이 말라 폐쇄되었다고 한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젊은 여성 두 명이 느티나무 보호수 앞 벤취에 앉아 쉬고 있었다. 노치마을을 떠나려고 할 때 어린 남매를 데리고 백두대간을 순례하는 젊은 부부를 만났다. 긴 여정에 나선 백두대간 순례객들에게 완주 성공을 기원하면서 노치마을을 떠났다.
201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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