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순례기

지리산 서북능선을 가다

林 山 2015. 5. 30. 12:04

그리움도 사무치면 병이 되는가! 지난해 5월 세석평전을 다녀온 뒤 한동안 지리산앓이를 했다. 원래는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백두대간 마룻금을 걸으면서 깊고 넓고 큰 지리산의 품을 느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일과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세석평전만 다녀올 수 밖에 없어 안타까왔다. 


지리산은 내게 고향과도 같은 산이라 늘 그리움만 간직하고 있었다. 마침 4월 초파일 연휴를 맞아 지리산 서북능선 마룻금을 걷기로 했다. 지리산 서북능선은 성삼재에서 당동고개-작은고리봉-묘봉치-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세걸산-세동치-부운치-팔랑치-바래봉-덕두산-인월면 중군리 월평마을을 지나 인월리 람천에서 끝난다. 하루만에 성삼재에서 덕두산까지 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듯해서 정령치에서 바래봉까지 걷기로 했다.       


정령치 해돋이


해가 뜨기 직전에 정령치(鄭嶺峙)에 올라섰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5시 20분쯤 새벽 하늘을 가르고 붉은 해가 삼봉산과 오도봉 사이로 불쑥 솟아 올랐다. 찬란한 새벽의 첫 햇빛 세례를 받은 지리산 주능선과 서북능선 일대에는 엄숙하면서도 신령한 기운이 감돌았다. 만물을 차별없이 비추는 해님의 공덕은 저 항하사(恒河沙)보다 한량없어라. 월인천강(月印千江)!     


백두대간 지리산 정령치


정령치에서 바라본 고리봉


만복대와 큰고리봉 사이 안부에 있는 정령치는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은 '황령암기(黃嶺庵記)'에서 '마한(馬韓)의 왕이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장군(鄭將軍)을 보내 지키게 하였다'고 썼다. 정령치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정령치 정상에는 휴게소와 유료주차장이 있다. 겨울철 도로가 빙판길이 되면 휴게소는 문을 닫는다.

 

정령치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지리산 천왕봉-반야봉 주능선 


정령치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고리봉-수정봉


정령치 정상에서는 동남쪽의 반야봉, 반야봉에서 뱀사골과 달궁계곡 사이로 뻗어내린 심마니능선이 정면으로 보인다. 그리고 반야봉에서 천왕봉으로 치달려가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큰고리봉, 북서쪽으로는 큰고리봉에서 수정봉, 고남산,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눈길이 닿는 데까지 보인다.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는 정령치-바래봉 삼거리 9.4km, 바래봉 삼거리-바래봉 0.5km 왕복 1km, 바래봉 삼거리-운봉 주차장 4.5km 모두 14.9km였다. 1시간에 2km를 걷는다고 치면 7~8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고리봉 기슭에 있는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고리봉을 오르다가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南原開嶺庵址磨崖佛像群, 보물 제1123호) 표지판을 만났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문화유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정령치 습지 바로 위 고리봉 남쪽 기슭의 암벽에 여러 구의 불상을 새긴 마애불상군이 있었다. 


마애불상군은 크고 작은 12구의 불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암벽이 울퉁불퉁한데다가 풍화작용으로 인한 마멸과 훼손이 심해 육안으로는 5~6구의 불상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불상이 본존불로 보였다. 얼굴은 돋을새김을 했고, 옷주름은 선으로 처리를 했다. 머리에는 육계가 있고, 이마에는 백호를 표현했다. 코는 주먹코처럼 생겼고, 귀는 길게 늘어졌다. 다른 불상들도 조각 수법과 양식이 비슷하다.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은 표현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규모가 큰 불상군은 그 예가 드물다. 본존불 밑에 2구의 작은 불상과 함께 새겨져 있는 ‘세전(世田)’, ‘명월지불(明月智佛)’ 등의 명문(銘文)으로 보아 비로자나불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백두대간 큰고리봉


큰고리봉 정상


반야봉


큰고리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지리산 정령치와 만복대


큰고리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서북능선의 세걸산과 바래봉


큰고리봉(1,304m, 환봉)에 올랐다. 지리산 서북능선에는 작은고리봉(1,248m)과 큰고리봉이 있다. 고리봉 하면 보통 정령치 북쪽의 큰고리봉을 말한다. 백두대간은 큰고리봉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기삼거리로 내려선 다음 남원시 주천면과 운봉읍 경계인 들판 한가운데로 난 도로를 따라가다가 주천면 덕치리 가재마을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진다.


큰고리봉은 백두대간 지리산맥과 지리산 서북능선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만큼 전망이 매우 뛰어난 곳이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반야봉과 만복대는 산세가 웅장하여 위압감을 느낄 정도다. 지리산 서북능선의 세걸산과 바래봉도 잘 보인다. 만복대와 큰고리봉 사이 안부를 뱀처럼 구불구불 안고 돌아가는 정령치 고갯길도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주로 구례 사람들과 남원 산내, 주천, 운봉 사람들이 정령치를 넘어 다녔다고 한다.       


지리산 서북능선의 세걸산과 바래봉


정금나무꽃


반야봉과 심마니능선


1265m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지리산 큰고리봉과 만복대, 노고단


큰고리봉과 세걸산 중간쯤에 있는 1265m봉을 오르다가 정금나무꽃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종 모양의 작고 앙증맞은 꽃이었다. 정금나무의 꽃은 5~7월 총상꽃차례로 아래쪽을 향해서 피어난다. 가을에 붉게 익는 작은 열매는 장과로 둥글다. 열매는 수렴, 이뇨, 건위의 효능이 있어 민간에서 방광염, 신우염, 구토, 임질, 하리, 발진 등의 치료에 쓰기도 한다.


정금나무(Vaccinium oldhamii Miq)는 진달래과(Ericaceae) 산앵두나무속(Vaccinium)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토종 블루베리라도고도 한다우리나라에는 정금나무를 비롯해서 산매자나무(V. japonicum), 월귤(V. vitis-idaea L), 애기월귤(V. microcarpon), 넌출월귤(V. oxycoccus), 모새나무(V. bracteatum), 산앵두나무(V. koreanum), 들쭉나무(V. uliginosum) 등 8종의 산앵두나무속 식물이 있다.


1265m봉도 전망이 좋았다. 바로 앞에 수많은 계곡과 산줄기를 가진 반야봉과 심마니능선이 우람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천왕봉에서 반야봉, 반야봉에서 노고단, 만복대, 큰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백두대간 지리산맥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큰고리봉은 정령치에서 바라볼 때와는 그 모습이 사뭇 달랐다. 산을 제대로 보려면 그 산에서 멀리 떨어지라는 말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진면복을 알려면 그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세걸산이 이젠 바로 앞에 보였다. 바래봉은 저만치서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세걸산


세걸산 정상


세걸산 정상에서


세걸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 종석대, 작은고리봉, 만복대


세걸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서북능선의 큰고리봉과 만복대, 작은고리봉


1253m봉을 넘어 세걸산(世傑山, 1,216m)에 올랐다. 이름은 '세상에서 빼어난 산'이란 뜻인데..... 세걸산은 운봉읍 공안리와 산내면 덕동리, 내령리 경계 지점에 솟아 있는 산이다. 세걸산도 전망이 매우 좋다. 백두대간 지리산맥과 지나온 서북능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무슨 미련이라도 남았던 것일까! 


세동치


지리산 서북능선의 세걸산과 큰고리봉


지리산 서북능선의 바래봉


세동치(世洞峙, 1,107m)를 지났다. 세동치에서 운봉읍 공안리 전북학생교육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1,140m봉을 오르다가 어디선가 더덕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 날아왔다. 근처에 더덕이 있음이 분명했다. 정령치에서 만나 함께 산행을 하게 된 사람이 잠시 산길에서 벗어나더니 꽤 큰 더덕 몇 뿌리를 캐 왔다. 더덕의 줄기와 잎을 입에 넣고 씹으니 특유의 향이 입안을 감돌았다. 정령치에서 깜빡 잊고 물을 가져오지 않아 목마름이 심하던 차에 더덕의 줄기와 잎에서 나온 즙은 그야말로 감로수였다.


1,140m봉에 올라서자 1,123m 너머로 바래봉이 저만치 다가와 있었다. 큰고리봉은 이제 저 멀리 물러나 있었다. 부운치(浮雲峙)를 지났다. 동남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산내면 부운리 부운마을을 거쳐 뱀사골에 이른다. 


1,123m봉을 오르다가 참나물 군락지를 만났다. 참나물은 고소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삼겹살을 구워서 참나물에 싸서 먹으면 고기 맛이 더욱 좋다. 참나물을 데치면 맛과 향이 떨어지므로 생나물로 먹어야 한다. 


1,123m봉을 넘자 또 다른 부운치가 나타났다. 여기서 운봉읍 산덕리로 내려가면 산덕임도를 만난다. 산덕임도는 산덕마을에서 서북능선의 서쪽 4~5부 능선을 따라 큰고리봉 북서쪽 산기슭까지 이어진다.


바래봉에서 바라본 운봉평야와 백두대간 수정봉


바래봉


바래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서북능선


바래봉 샘터


바래봉


바래봉 정상


바래봉 정상에서


바래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바래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지리산 천왕봉-반야봉 주능선


바래봉에서 바라본 반야봉-큰고리봉 백두대간과 지리산 서북능선


바래봉에서 바라본 삼봉산과 백운산, 법화산


팔랑마을


부운치를 지나면서부터 철쭉능선이 시작되었다. 산길 양쪽으로 키를 넘는 철쭉숲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철쭉 잔치는 이미 끝난 뒤였다. 일주일이나 열흘 전쯤 왔다면 철쭉꽃의 장관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너무너무 아쉬웠다. 철쭉능선은 팔랑치(八郞峙, 1,037m)까지 이어졌다. 운봉고원에는 드넓은 운봉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바래봉 바로 남쪽에 있는 팔랑치는 남원시 운봉읍 산덕리와 산내면 내령리 팔랑마을을 잇는 고개다. 팔랑치의 유래가 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니..... 삼한시대에 마한의 왕은 진한군에 쫓겨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그는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피난생활을 하였다. 달궁은 당시 왕궁이 있던 임시 도성이었다. 달궁을 방어하기 위해 마한 왕은 8명의 장군을 북쪽 능선에 보냈다. 이후 이 재를 팔랑치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쪽 능선은 정장군이 지켰다고 해서 정령치(鄭嶺峙), 동쪽은 황장군이 지켰다고 해서 황령치(黃嶺峙),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충지이므로 성이 각각 다른 3명의 장군을 보내 지키게 했다고 하여 성삼재(姓三峙)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다.


바래봉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가자 운봉로터리클럽에서 등산객들을 위해 만든 샘터가 나왔다. 바가지로 물을 떠서 배가 부르도록 마셨다. 물맛도 좋고 시원해서 목마름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드디어 바래봉(1,186.2m)에 올랐다. 바래봉 정상에 서자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백두대간과 성삼재에서 바래봉에 이르는 서북능선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바래봉이 지리산 조망 명소라더니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바래봉에서 백두대간 지리산맥과 서북능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넓고 높고 깊고 큰 지리산은 그 자체가 깨달음이요, 스승이었다. 넓고 높고 깊고 큰..... 아, 백두대간이여! 지리산이여! 서북능선이여! 


해가 서산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운봉읍 용산리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산길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산 아래 드넓게 조성된 초지에는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용산마을로 내려가기 직전에 운지사(雲智寺)가 있었다. 마침 석탄일(釋誕日)이라 운지사에 들러 불상에 예를 표했다. 


용산리 주차장에 이르는 바래봉길 연도에는 노점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아마 무슨 축제 장터가 열린 모양이었다. 용산리 주차장으로 내려와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잡았다. 정령치에 두고 온 차를 가지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요금은 23,000원이었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했다. 오늘 내 인생길은 지리산 서북능선으로 나 있는 것이었다. 잠시 속세를 벗어나 지리산 서북능선으로 난 내 인생길을 걷는 내내 나는 행복했다. 


2015.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