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전 옛날 이야기래요. 여주 점동에서 가난뱅이 갑돌이와 부잣집 갑순이가 살았드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드래요. 갑돌이는 밤마다 뻐꾸기가 되었드래요.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갑순이는 부모님 몰래 집을 나가 동구 밖 밤나무 밑으로 갔드래요.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드래요. 갑순이가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고 몰래 집을 나가다가 그만 부모님에게 들키고 말았드래요. 노발대발한 부모님은 갑순이에게 금족령을 내리고 갑돌이를 만나지 못하게 했드래요. 갑순이는 울면서 갑돌이에게 시집가게 해달라고 애원했드래요. 하지만 부모님은 갑돌이와 갑순이의 결혼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드래요.
그날도 갑돌이는 날마다 동구 밖 밤나무 밑으로 나가 뻐꾸기 울음소리를 내면서 갑순이를 기다렸드래요. 갑순이가 나올 때까지 그렇게요. 하지만 그날부터 기다려도 기다려도 갑순이는 나타나지 않았드래요. 갑돌이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더래요. 뻐꾸기 울음소리도 이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드래요.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 갑돌이는 부모님이 정해준 이웃 마을 색시에게 장가를 갔드래요. 얼마 후 갑순이도 부모님이 정해준 총각에게 시집을 갔드래요. 갑돌이는 고향에서, 갑순이는 서울에서 아들 딸 낳고 살았드래요. 서로의 소식도 까맣게 모른 채 그렇게요. 그래도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시도 서로를 잊은 적이 없었드래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고, 또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드래요. 갑돌이와 갑순이의 얼굴에도 어느덧 검버섯이 생겨나기 시작했드래요. 갑돌이는 아내가 먼저, 갑순이는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 여행을 떠났드래요. 둘이는 다시 혼자가 되었드래요.
아내가 죽자 홀아비가 된 갑돌이는 갑순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해지더래요. 그날부터 갑돌이는 미친듯이 갑순이의 소식을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다녔더래요. 마치 지구가 내일 멸망하기라도 하듯 그렇게요. 어느날 갑돌이는 갑순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더래요. 갑돌이는 뛸 듯이 기뻤더래요. 가슴도 마구 뛰었더래요.
갑돌이가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갑순이도 가슴이 두근거렸더래요. 갑돌이는 갑순이를 만나자마자 프로포즈를 했더래요. 갑돌이의 고향집에서 여생을 함께 보내자고 그렇게요. 갑순이는 갑돌이의 프로포즈를 기다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들였더래요. 둘이의 아들 딸들도 둘이의 사랑을 기뻐하고 축복해 주었드래요.
삶의 뒤안길을 돌고 돌아 60여년만에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은 비로소 이루어졌더래요. 둘이는 고향집에서 깨가 쏟아지는 신혼 살림을 시작했더래요. 세월은 갑돌이와 갑순이의 얼굴을 비록 쭈구렁 바가지로 만들었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만은 변함이 없었더래요.
둘이는 집 근처 남한강변으로 소풍을 나갔드래요. 갑돌이는 강변에서 들꽃을 꺾어 갑순이의 손에 쥐어 주었드래요. 갑순이는 갑돌이에게 '내가 더 예뻐요, 꽃이 더 예뻐요?' 하고 물었드래요. 갑돌이는 '꽃보다 당신이 훨씬 더 예뻐요' 하고 대답했더래요. 사랑하면 검버섯꽃도 예쁜 법이래요.
여주 점동에 가면 60여년만에 첫사랑을 이룬 갑돌이와 갑순이가 행복하게 살고 있대요. 84살 갑돌이, 81살 갑순이 둘이서 그렇게요.
2015.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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